미몽에서 깨어날 때

잡록 2006. 3. 10. 02:43 |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 유치환, 「생명의 書」부분


몸과 마음이 노곤해서 잠깐 졸 때면 종종 내가 깨어났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나는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아직도 쿨쿨 자고 있다. 아마도 가위눌린 것처럼 머리는 깨어났는데 몸은 좀 더 잠을 청하고 싶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인가 보다. 어쩌면 지금 나는 미몽에서 깨어나는 게 마뜩잖아서 미몽의 안락을 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미몽 속에 있으면서도 미몽을 깨어나고 있다는 착각만 안고 말이다. 이 두터운 각질에 굴하지 않길 바라면서 좀 더 간소해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재물이 넉넉해 일 안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지낼 수 있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이기를 무던히 꿈꿨다. 세상 통념에 비추어 그리 재미나게 사는 것 같지 않아 보여도 내 자신이 끔찍이도 놀기 좋아한다는 것을 요즘 절감하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않으면 얼마나 기품 있을까, 각박한 세상에 한 잠 늘어지게 자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우아할까 늘 갈망한다. 내가 꿈꾸는 문화 향유가 미만한 세상은 실상 속 편하게 놀고 먹는 세상이다. 인간의 진보는 실상 귀차니즘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 깜냥 전체를 걸고 진지한 고심을 시작했다. 삼월의 미묘한 힘에 이끌려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이제는 마냥 한가로이 세상을 유랑하며 즐길 수 없어졌다. 내 둘레에 사회인이 되어 세상의 번다함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친구들과 그 부잡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 자신을 갈고 닦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을 보면 한없이 부끄럽다. 자꾸만 설렘을 갉아먹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내 성정을 잘 아는지라 궁리할 시간을 많이 주고 싶지만 그냥 무턱대고 돈오(頓悟)에 휩싸일 그 날까지 기다릴 짬은 안될 듯싶다. 결단이 임박했다.


삘 꽂히는 대로 가버리고픈 열정을/ 마음에 품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며/ 순간순간의 행복을 놓치고픈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줄 위에서 균형을 잡은 채 계속 나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잠시 내려와서 기술을 더 연마하자(...)//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잠시 묶어두자/ 불씨만 우선 살려두자/ 활활 타오를 기회는 나중에도 널리고 널렸다.


이 말을 남기고 행정고시 준비에 매진한 그 벗은 지금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려나. 멀리 뛰기 위해 잠시 움츠리는 냉철한 현실감각, 내일의 당당한 주체로 서기 위해 오늘의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 자세가 참 멋져 보였는데 말이다. 분명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간의 행복을 유보한 만큼 얼마나 더 큰 행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순간의 행복은 말 그대로 대체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부지깽이로 들쑤시지는 것마저 마다하고 그저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잘 간직하는 절제는 가슴 아리다.


고시생이 되기로 결심한다고 해도 반년 정도는 신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듯싶다. 도저히 이 달콤쌉싸름한 세속세계를 하루아침 사이에 절연한 자신이 없다. 내가 만났던 아름다운 마음들에게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고 싶다. 미처 못다 쓴 잡글도 마저 써야겠다. 내가 쓰고 싶거나 공부하고 싶은 목록을 뽑다가 아연실색했다. 공민왕과 신돈정권 연구, 수원화성 답사기, 뮌헨 영화평, 로스 어버전(loss aversion, 손실회피) 개념 적용, 파시즘 연구, 파레토 최적과 소극적 자유주의, 정암 조광조 탐구, 부여/공주 답사기, 왕의 남자 영화평,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비교 대조, 드라마 궁과 조선왕조 추존문제 고찰, 면암 최익현과 보수주의... 어디 그뿐인가. 당분간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못 볼 것을 감안하면 반년도 모자라다. 이게 미련이고 집착이다.^^;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 같지 않고, 극락세계와 내세도 도무지 믿기 힘들다. 가끔 농담 삼아 "내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다고..."라며 말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는 명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나는 내 우주가 소멸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도 해보고, 해야 할 일도 해보고, 하면 좋은 일도 해봐야겠는데 게으른 몸뚱이가 늘 머뭇거렸다. 나란 녀석 덕분에 이 우주가 조금은 재미나고 조금은 푸근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늘 품고 있다. 이 우주의 은혜를 아는 게 진짜 개인주의자의 미덕일 테니 말이다.^^;


나는 누리기에 견디고, 견디면서도 누리는 일을 찾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밥벌이에 대한 고심으로 몸살이 나야하는 내 처지를 원망했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 오히려 나보다 더 힘겨운 이들의 고통과 함께 하기로 하자. 황인숙 시인처럼 나도 웃음이 헤픈 건 좋아하지만 울음이 헤픈 건 언짢다. 내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이미 충분하고 앞으로도 흥건할 것이다. 자기연민은 굳이 품지 않아도 늘 내 뒤를 쭐레쭐레 따라올 것이다.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고 싶다. 세파에 찌들어 먹고살기 힘들다며 징징거리지 않겠다. 내 눈물은 최대한으로 아껴두도록 하자. - [小鮮]


웃음이 헤픈 건 좋다. 울음이 헤픈 건 화가 치민다. 미감이 상한다. 내 성질이 이상한 건가? 울음은, 눈물은, 정말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상비약처럼 아껴둬야 한다. 정말 그것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순도와 농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이 돼버려서는 안될 눈물을 위해서.
- 황인숙. 2003. 『인숙만필』. 마음산책. 15쪽 '쓰달픈 인생' 中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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