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부부를 위하여

잡록 2006. 7. 3. 03:08 |

(제목은 고종석 선생님의 칼럼 「11월의 新婦를 위하여」 패러디입니다^^;)

청첩장을 들고 용산역 어디께를 찾아가는 길은 기쁘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좋은 사람들의 소중한 결혼식에 가는 길이 이토록 즐거운 일인지 이제 알 것만 같다. 어른이 되어 가는 징표 중에 하나가 제 앞으로 전해오는 청첩장도 해당되리라. 지난 3월 수옥누나가 내 생애 첫 청첩장 수령의 영광을 안기신 후 7월 첫 번째 일요일에 치러진 익균님과 승효님의 청첩장이 두 번째다. 특히 이번에는 신랑과 신부를 모두 잘 아는 재미난 상황이기도 하다. 사랑에 관한 명언이 하고 많지만 내가 특히 꼽는 건 실러의 말이다. "어디서나 기만과, 위장과, 살인과, 독약과, 위증과 배반이 있다. 그러나 단 하나 순수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깨끗한 인간성 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사랑뿐이다."


두 분은 고종석 팬카페를 통해 알게 된 분들이다. 그래서 나는 카페 아이디인 봄봄님과 박강님으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 두 분이 처음 만나신 것이 작년 9월초에 있었던 카페 정모였으니 딱 10개월만에 카페 커플 1호라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우신 셈이다.^^;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플라톤이 말했다지만 이 두 분은 그럴 공산이 매우 크다. 두분 다 국문학을 배우신 분들이라 보니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나시다. 두 분이 대학로 이음아트에서 정답게 책을 고르실 때 두 분 뒤로 쏟아지는 광채 혹은 깨알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유쾌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간 단벌신사로 지내다가 이번 결혼식 참석을 핑계로 여름양복을 한 벌 맞췄다. 이렇게 의상까지 신경 쓴 까닭은 축가를 불러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기 때문이다. 음치를 약간 면한 고음불가인 나도 함께 축가를 불러야 한다는 강권(?)을 끝끝내 마다하지 못했지 뭔가.^^; 카페에서 알게된 조르바님과 당일 날 알게 된 두 분을 포함해 네 사람이 급조되어 축가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난감한 마음만 가득했지만 아마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축가가 될 것이 틀림없기에 그냥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 다음에 내가 결혼식을 치르게 되면 축가는 꼭 노래 잘하는 준비된 사람을 고르리라 굳게 결심하기는 했지만.^^;


축가는 정호승 시인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였다.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어보고는 다행히 그리 높지 않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악보를 받아 들고 보니 내 음역을 뛰어넘는 고음도 있고 난리도 아니었다. 역시 가수의 첫째 조건 가운데 하나는 높은 곡조를 그리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당황하는 내 마음이 통했는지 음을 좀 낮춰 부르기로 했고 그제야 좀 상황이 호전됐다. 실제 축가를 부를 때 떨리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고음처리 불안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립싱크도 좀 하고 말았다. 추가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며 앞으로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들을 때 딴청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비문학 청년인 내가 문학을 집어드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만 인연이 닿아서 정호승님의 시집은 몇 권은 읽어봤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로 시작되는 시를 소리내 읽고 나면 힘이 생긴다. 이 밖에도 "신촌 뒷골목에서 술을 먹더라도/ 이제는 참기름에 무친 산낙지는 먹지 말자/ 낡은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산낙지의 잘려진 발들이 꿈틀대는 동안/ 바다는 얼마나 서러웠겠니(산낙지를 위하여 中)"나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中)" 같은 주옥같은 시구를 저장해두고 써먹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시 좀 읽어야겠다.


간만에 뵙는 young님과 lee856님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신랑과 신부 어느 편에 설까 하다가 완전 가운데에 섰다. 지금 생각하니 자리를 정말 잘 잡은 거 같다. 어디 가서 이 정도의 기민한 순발력만 있다면 좋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피로연 음식은 뷔페였는데 늦은 점심이라 시장이란 반찬까지 곁들여서 무척 달게 먹었다. 다만 음식 분배에 실패해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육회를 덜먹은 건 좀 실책이었다. 사실 내 식대로 했더라면 후식 이런 거 없이 마지막 접시까지 육회 등을 채워서 먹었어야 했는데 대화 나누느라 깜빡했다. 조르바님이 사숙하시고 봄봄님과 박강님이 함께 강의를 듣기도 했던 강유원 선생님과 대화 나누는 재미에 내 페이스를 잃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메밀국수를 고작 두 그릇밖에 안 먹은 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강유원 선생님이 공부하셨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자신이 비참해졌다. 사람이 어떻게 하루에 18시간을 공부할 수 있을까. 18시간을 놀라고 해도 졸려서 못할텐데 말이다. 선생님이 인세로 1000만원 모으기까지의 험난한 세월을 듣다 보니 이 나라의 부박한 학문 풍토가 개탄스러웠다. 글로 벌어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곡학아세나 연줄 타기의 유혹이 스며드는 건 아닐까. 인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이 나라에 고작 한 손가락 꼽을 수준이라니 無恒産無恒心(무항산무항심)이 떠올랐다.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이 없어진다"라는 말로 요즘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들의 단골 문구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고, 제 영혼을 건사할 수 있는 경제적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맹자는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서도 항상 꾸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고 말한다. 여기서 선비는 학자나 공직자쯤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분들 가운데 무항산은커녕 유항산인데도 무항심인 경우가 많다. 신영복 선생님은 "얼마만큼의 소유가 항산(恒産)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항산이 왜 항심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항산이 항심을 지탱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항산을 마련하는 일보다 항심을 지켜주는 문화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역순(逆順)을 밟아야"한다면서 "항산과 항심에 대한 생각을 달리다보면 결국 우리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소유를 갈구하게 하는 욕망의 생산구조에 생각이 미치게"된다는 것이다("유항산(有恒産) 무항심(無恒心)." 신동아 권두수필 1996년 11월호 참조).


강유원 선생님은 내 전공은 경영학과라고 말씀드리자 "경영과"가 아니냐고 반문하셨다. 學자를 붙일 수 있느냐의 함의가 무척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과연 이런 맹렬한 비판을 살뜰히 방어하며 學자를 사수하는 경영학도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미제스는 『자유주의』라는 저서에서 "자유주의가 인류의 물질적인 복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는 것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들을 경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외형적인 규제조치로도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고상한 것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확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경영학의 성격을 이해해봄직하다. 경영학은 유항심(有恒心)보다 유항산(有恒産)에 관심이 많다. 모든 학문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결국 비슷하겠으나 가는 길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부디 물질적이고 외형적이라는 이유로 學자에 인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여하간 강유원 선생님의 글을 좀 더 찾아 읽고 배우고 싶다.


강유원 선생님이 먼저 자리를 일어나시고 새우범생(나), young님, lee856님, 조르바님과 2차까지 이어지는 환담을 나눴다. 특히 독문학을 공부하시는 조르바님의 대학원 진학과 독일 진출이 화제가 되었는데 대학원 진학을 사실상 포기한 나로서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미 다 꺼트려 놓은 대학원의 불씨가 살아나지는 않을 것 같다. 공부를 하기에는 내 자신이 놀기 좋아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종석 팬카페에서 뵙게된 분들은 내게는 너무 과분한 사람들이다. 오래도록 함께 환담을 나누고픈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주눅 들기보다는 좀 더 바지런해지는 수밖에 없겠다. 내 둘레에 이렇게 열심히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한 최선의 보답은 나도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리라. 우리는 조만간 신혼집 집들이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오늘 하루 몸과 마음 모두 포만감에 행복했지만 밤이 되니 또 허기가 졌다. 오늘 하루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사느냐는 고민을 너무 많이 했나보다. 근심걱정일랑 미뤄두고 된장찌개와 호박전으로 맛나게 늦은 저녁밥을 먹었다. 오늘 맺어진 두 분이 때로는 채우고, 더러는 비워가며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 [小鮮]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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