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교육인적자원부는 그간 전국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던 외국어고등학교 입학을 거주지 시와 도 소재지에 있는 외고에만 지원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교육부는 2006년 현재 전국적으로 31개 외고가 운영되고 있으나 서울, 경기, 부산에 전체의 64% 이상인 20개교가 몰려 있고, 울산, 광주, 충남, 강원에는 1개교도 설립되어 있지 않아 지역적 불균형이 심화되는 문제를 거론한다. 또한 어학분야 영재 양성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면서 졸업생의 동일계열 대학진학비율이 2004년 기준 31.2%에 불과해 과학고의 72.5%에 크게 못 미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학생부를 중심으로 한 내신성적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하에서는 동일계 이외의 분야로 지원하는 외고 학생들은 불리하기 때문에 자퇴를 하거나 내신경쟁을 위한 사교육에 의존하는 등 비교육적 사태가 초래될 것은 우려된다고 말한다.


사실상의 외고 입학 제한 조치에 논쟁이 거세다. 추측컨대 이런 특단의 대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공영형 혁신학교를 띄우기 위한 의도도 있겠지만, 내신 성적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의 원칙을 견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대학들이 외고 학생을 흡수하려고 내신 반영률 50% 원칙을 지키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100점 만점에 내신이 50점이라 명목반영률(외형적 반영률)이 50%라고 해도 40점을 기본점수로 주면 실질반영률은 10%밖에 되지 않는 맹점이 있다. 실제로 2006학년도 서울 주요 대학 입시에서도 표면상 40%에 달했던 내신의 실질반영률은 2.28%(서울대)∼11.7%(연세대)로 태반이 10% 이하였다고 한다. 내신이 강화되더라도 실제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을 것이라는 믿음이 특목고를 필두로 확산될 여지가 많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경제행위에 있어서 위협(threat)과 약속(promise)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협이나 약속에 얼마나 신빙성(credibility)이 있는가가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고려해야할 중요한 요소다. 대학들이 실질반영률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명목반영률만 높여봤자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즉 수험생들에게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위협 혹은 약속이 되게 된다. 공교육 정상화를 고심하는 교육부는 정책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외고의 모집 단위를 제한하는 식의 처방으로 입시 명문고로 자리매김한 외고에 대한 선망을 얼마나 줄일지 회의적이다. 신통찮은 효과만 누릴 정책을 급박하게 내어놓는 건 전략적으로 미숙하다. 벌써부터 실제 입시에서 학생부 영향력은 실질반영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실질반영률보다 좁은 개념의 ‘사실상의 반영률’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전망이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내신의 실질반영률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부는 지난해 2008학년도 입시 내신 강화안을 발표하면서 동일계열 진학 외 내신불리 조항을 명백히 하여 입시 목적의 특목고 지망생에게 신호(signal)를 보낸바 있다. 그러나 2002학년도 입시 때 수능 등급제를 도입하면서 얼마나 큰 혼란이 유발되었던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몇 해 전에 수능 총점제 폐지를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닥치니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 고초를 치렀던 전례를 살폈어야 했다. 물론 외고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교육부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적절하다. 그러나 정책 입안 및 발표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공영형 혁신학교 시범운영 방안에 끼워서 발표한 것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교육정책은 섬세하게 추진해야 한다. 외고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그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대처했어야 하는데 그저 문제점 몇 개를 던져놓고 해법도 그다지 설득력 없으니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이다. 원론이 맞다고 곱게 봐주기에는 각론에 너무 허점이 많다. 외고에 대한 수요를 공영형 혁신학교로 흡수하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안일한가. 과연 현행 입시제도의 틀 안에서 공영형 혁신학교는 입시위주의 교육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974년 도입된 고교 평준화 제도는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중학생의 과외 열풍, 고입 재수생의 누적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를 통해 명문고 중심의 학벌주의를 완화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이 안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수월성 교육의 부족과 학교선택권의 제한 같은 문제도 적잖았다. 이런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80년대 후반부터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 사립고 등을 설립해 평준화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다양한 고교 시스템을 꾀하고 있다. 외고는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내신 적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요동을 쳤다. 1994년 2월 교육부는 특목고 학생들이 동일계열 진학 때 학교 성적이 아니라 수능시험 성적에 따라 내신점수를 부여하는 ‘비교내신제’를 99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폐지한다고 밝혔다. 비교내신제와 대학별고사 전형을 믿고 외고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은 크게 반발했고 97년 2월에는 ‘입시제도 변경에 따른 신뢰이익의 손실’을 두고 헌법소원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교육부는 99학년도부터 비교내신제를 폐지했고, 당시 전국 외고와 과학고에서 무더기 자퇴사태가 벌어지며 홍역을 앓았다.


이해찬 당시 교육부장관이 주도하는 2002년도 입시개혁안까지 나오면서 외고 진학을 고민하는 중3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을 바꿔야 했다. 나 같은 경우 외고 진학을 결정한 날을 선택기념일이라고 명명해가며 고등학교 시절 내내 기렸을 정도다. 내가 서울외고에 지원했던 98년도에 서울 시내 6개 외국어고의 99학년도 신입생 모집 결과 평균 1.74대 1의 경쟁률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나는 1.6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가까스로 서울외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내신이 생각만큼 불리하지 않을 터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들의 격려를 거름삼아 그럭저럭 2학년까지 마치고 마침내 고3 수험생이 되었다. 대대적으로 확대된 수시모집 제도에 도전하려니 석차백분율이 필요했다. 중국어과 두개 반을 다해도 100명이 안 되다 보니 모든 과목을 과 10등을 하더라도 석차백분율은 10%가 넘었다. 수시모집에 대한 꿈을 안고 석차백분율을 계산하다가 패닉 상태에 빠졌던 고3 교실의 광경을 아직도 선하다. 수시모집에서 다소 불리한 점이 있었다고는 해도 정시모집에서는 내신 절대평가제나 수우미양가의 평어 계산이 도입되면서 불리한 면을 불식시켰다. 고대나 연대 등 일부 대학들이 절대평어 방식으로 특목고생들을 유혹하면서 일반고까지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만연하는 촌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부 대학의 고교 등급제 적용 논란까지 불거지더니 결국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입부터 내신을 상대평가하기에 이른다.


외고 문제에 대해 솔직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내가 외고에 간 건 외국어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니었다. 사실 내 고등학교 1학년 동안의 꿈은 국문학도였고, Y대에서 나를 거절하지 않았으면 지금 사회학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외고 입학 당시만 해도 외국어가 정말 좋아서 외고 온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였다. 대개는 좋은 환경과 시설을 누리며 모범생 혹은 우등생들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그 불안함 속에서도 지원한 것이다. 물론 수업시수도 많고 하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중문과를 전공하게 된 친구들이 많지만 시작부터 일편단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외고의 어문계 진학비율이 낮다고 하지만 외고가 생긴 이래 동일계 진학비율은 늘 30~60% 정도였다는 점은 엄연한 현실이다. 10년 전인 1996년에도 31.9%였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고등학생들의 진로가 애초부터 정해진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사실 외고의 설립 취지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역관 양성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외국어 능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외국어를 도구삼아 다른 학문의 지평을 넓힌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닐까. 영어도 열심히 공부 안하고, 그나마 좋아했고 잘했던 중국어마저 하루하루 까먹어가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외고는 고교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나왔다. 좀 더 명확히 말해 평준화 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교육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어느 정도 공급하기 위한 사회적 타협의 산물이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10년 이상을 유지해오며 어느 정도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당장 고교평준화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면 외고 같은 타협은 불가피하다. 외고보다 좀 더 나은 대안으로 공영형 혁신학교를 내놓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외고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수도 적고 힘도 없고 역사까지 짧은 외고는 지난날 평준화 도입으로 말미암아 명문고들이 입었던 타격보다 더 많은 피해를 감내해야하기 때문이다(제법 위용을 자랑하는 대원외고 같은 몇몇 외고는 좀 예외일수도 있겠지만). 공영형 혁신학교가 그리 자랑스럽거든 잘 만들어서 외고랑 경쟁에 붙이면 그만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교육정책을 운용하기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들의 눈물이 너무 무겁다. 외고에서 외국어‘도’ 잘하는, 외국어‘마저’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게 뭐가 그리 잘못인가. 어딜 가나 출신학교를 따지는 이 나라 풍토에서 외고만 세류에 휩쓸리지 말고 독야청청 외국어만 파고 있으라는 주장은 너무 끔찍하다. 외고생과 그 학부모들은 천사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애쓰는 사람들일 뿐이다. 다시금 내신 불이익의 공포에 떨 이름 모를 후배들이 가여워 쓴소리를 해봤다.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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