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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7 복수법과 정치보복
  2. 2009.04.23 노무현 이후 (4)

복수법과 정치보복

2009.06.07 07:05 |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잘 안 됩니다. 제가 비우는 술잔으로 원망하는 마음까지도 삼켜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득 고려 경종이 시행했던 ‘복수법’이 떠올랐다. 사료에서 복수법이라고 명시된 바는 없지만 편의상 복수법이라고 부르는 관행을 따랐다. 고려 4대 임금 광종은 집권 후반기에 왕권을 위협하는 호족들을 상대로 피의 숙청을 벌였다. 광종의 공포정치가 종결될 무렵 살아남은 호족 공신은 겨우 40여 명이었다고 한다. 경종이 즉위하자 왕선(王詵)이란 인물은 광종 치세에 참소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자손에게 복수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복수법을 제안해 왕의 허락을 받았다. 복수의 공식적 허용은 한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보인다. 본래 취지는 왕실에 등을 돌린 호족들을 달래고 화합정치를 모색하기 위한 조처였으나 복수전이 가열되면서 또 다른 피바람을 일으켰다. 『고려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전한다.


집정(執政) 왕선(王詵)을 외직으로 내쳤다. 왕이 일찍이 선대 임금 때에 참소를 당한 사람의 자손이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마침내는 서로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서 다시 억울함을 부르짖게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왕선이 복수한다는 핑계로 임금의 명을 거짓으로 꾸며서 태조의 아들 천안부원낭군(天安府院郞君)을 죽였다. 이에 선을 내쫓고 제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 복수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放執政王詵于外,王嘗1)許先朝被讒人子孫復讎,遂相擅殺復致冤號,及是詵托以復讎,矯殺太祖子天安府院郞君2),於是貶詵,仍禁擅殺復讎。
1) 『고려사』에서는 王嘗, 『고려사절요』에서는 初王으로 되어 있다.
2) 『고려사』에서는 天安府院郞君, 『고려사절요』에서는 天安府院君으로 되어 있다. 고려에서는 왕자를 낭군, 원군, 대군 등으로 일컬었다.


호족들의 복수혈전은 약 1년간 지속되었는데 976년에는 태조의 아들이 살해되는 지경에 이른다.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상서문에서는 이 때 살해된 이가 천안낭군(天安郞君)과 진주낭군(鎭州郞君)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효성태자와 원녕태자를 지칭한다고 보는데 이처럼 종실의 어른마저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자 경종은 복수법을 폐지하고 왕선을 귀양 보냈다. 최승로의 상서문을 좀 더 살펴보자.


더구나 광종 말년에는 세상이 어지럽고 참소가 일어나서 형벌에 연루된 이들은 대부분 죄가 없었고, 역대로 공훈을 세운 신하와 경험 많은 노장들이 모두 주살을 면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를 때 옛 신하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은 40여 명뿐이었습니다. 그때에도 피해를 만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모두 후생과 참소한 무리들(後生讒賊)이므로 진실로 애석하게 여길 것은 없습니다. 다만 천안(天安)과 진주(鎭州) 두 낭군(郞君)은 본래 황실의 자손이어서 광종께서도 오히려 스스로 관용을 베풀고 마침내 이들을 법으로 처리하지 않았으므로 경종의 재위 기간에 이르러 충분히 황실의 울타리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권세를 잡은 신하에게 해침을 당해서 지하의 원통한 넋이 되었으니 어찌 종실의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돌아가신 선왕(경종)께서 장수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불행에서 기인함이 많으니 이런 일은 후세에 경계로 삼으셔야 합니다.

況屬光宗末年,世亂讒興,凡繫刑章,多是非辜,歷世勳臣宿將,皆未免誅鋤而盡,及景宗踐祚,舊臣之存者,四十餘人耳,其時亦有遇害衆多,皆是後生讒賊,誠不足惜,唯天安鎭州二郞君,本皇家之枝葉也,光宗猶自寬容,意不置於法,至景宗朝,足爲藩屛,却被權臣之賊害,沒爲地下之冤魂,在於宗盟,寧不痛惜,先朝不保永年,多因此禍,後世可以爲鑑戒。


최승로는 경종의 복수법이 왕선 같은 권신에게 좌지우지된 것을 비판하지만 그 취지는 공감한다. 광종의 전제정치를 반대하고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했던 최승로는 집정제가 운용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는 정도로만 비판한다. ‘후생과 참소한 무리들(後生讒賊)’이 해를 입은 것은 그리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도 그런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후생참적은 광종의 개혁에 참여했다가 경종 초기에 제거된 무리로 본다. 노비안검법에 의하여 양인이 된 자들을 비롯해 하급관리 같이 광종 이후 벼슬을 한 인물들로서 고려 개국 이래 권세를 누린 호족공신들과는 대립되는 계층이다.


광종의 치적이 많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고려사』에서 광종의 기록은 소략한 편이다. 광종이 처벌했던 이들이 그럴 만한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왕권 강화의 걸림돌이어서 청산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숙청의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 죄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도매금으로 처리되었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경종의 바람과는 달리 칼자루를 쥐게 된 호족들을 무자비한 보복을 감행한 것으로 사료된다. 통합은커녕 복수심만 증폭시켰다.


경종이 복수의 대물림을 수수방관만 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경종이 즉위했을 때 위협이 되는 세력은 호족공신이라기보다는 후생참적이나 종친이었다. 그래서 종친의 죽음에 경종의 묵인이 작용했다고 보는 견해도 보인다. 복수법이 폐지된 이후 전시과(田柴科)를 제정하여 토지제도의 근간을 마련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왕권 강화를 위한 경종의 의도가 개입되지는 않았을까 추측하게 만든다.


여하간 부모의 원수를 갚는 행위를 폭넓게 긍정하는 유교적 이념이 투영되어 복수법이 한때나마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경종이 선대의 조정에서 참소를 입은 사람의 자손에게 복수를 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인 광종을 원수로 삼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참소를 한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 참소를 받아들인 자는 임금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전개하면서 언급한 이야기가 경청할 만하다.


아들이 아비의 원수를 갚는 것은 당연한 바른 이치이고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는 것이 왕자(王者)의 큰 법이다. 만약 효자(孝子)의 뜻에 따라 원수 갚기를 허락한다면 이것은 어지러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부모를 죽인 것이 도리가 아니었다면 비록 그 원수를 갚았더라도 용서해 주어 효자의 의리를 펴게 한다. 부모를 죽인 것이 도리에 맞는다면 이는 법에 의해 죽은 것이므로 원수를 갚으면 이것은 왕법(王法)을 원수로 하는 것이니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이 두 가지일 뿐이다.

子復父讐,當然之正理,殺人者死,王者之大法,若循孝子之情,而許人復讐,是亂未有已也, 然則當奈何,殺人而非其理者,則雖復讐,原之而申孝子之義,殺人而當其理者,則是死於法,若復讐,是讐王法也,罪在不赦 惟此二端而已。


안정복은 왕법(王法)을 따랐는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정치적 타살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나온다.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보도가 공정한 과정을 밟아 정의로운 법의 잣대를 들이댔는지 돌아볼 일이다. 아울러 이명박 정권 역시 보복의 정치를 펼치지 않았다면 훗날 정권 교체가 되고 나서 복수를 당할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노무현을 향해 정당한 법 집행을 했다면 원수를 갚겠다고 이를 가는 분들이 그릇된 것일 테니 말이다. 『고려사』를 보면 경종은 왕선을 추방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내린다.


순질(荀質)과 신질(申質)을 좌우집정(左右執政)으로 삼아 그들에게 모두 내사령(內史令)을 겸하게 했다.

以荀質,申質,爲左右執政,皆兼內史令。


검찰을 왕선 일당에 억지로 비유해봄 직하다. 국민은 이제 권력을 마음대로 하는 검찰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권력형 비리와 공직자의 부패를 찾아내 처벌하는 노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재상 역할을 했을 집정(執政)의 권한을 둘로 나눠 서로 견제하게 만들었던 지난날처럼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중앙수사부 폐지와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이 활발히 논의 중이다. 적어도 사법방해죄, 유죄협상제, 참고인 구인제도 도입 등을 통해 힘을 보태려던 검찰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음은 또렷하다.


민주당이 검찰의 무절제한 칼부림을 막기 위해 정치보복금지법을 제정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명분으로 정치보복금지법 제정이 공약으로 나오기도 했다. 2002년 10월 한나라당은 정치보복금지법이 입법기술상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그 대신에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의 부활을 추진해 퇴임한 대통령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기실 정치보복의 개념을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이전 정부의 상층부에 있었다는 이유로 법을 어겨도 면죄부가 발급된다면 법치주의를 크게 흔든다. 아무리 정교하게 입법을 하려 해도 이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렇다고 마냥 양식 있는 정권과 권력기관을 가정하며 그네들이 베푸는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법에 공무원의 직권남용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이에 대한 보강이 요구된다. 정치적 외압 등 특수직권남용죄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고 어떤 식으로든 유한한 권력을 농단하는 무리들을 실질적으로 단죄하길 희망한다. 사사로운 복수의 유혹을 눅이는 해법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정당하게 복수하는 길 뿐이다. 법의 지배를 허무는 망동에 단호하게 대처하기 위해 실정법을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니겠으나 상징적인 입법이 필요할 듯싶다. 국민의 공복(公僕)들은 국민을 향해 원망하지 말라고 윽박지르지 말라.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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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

사회 2009.04.23 02:59 |

(지난 4월 8일에 썼던 ‘친노 이후를 고민할 때’라는 잡글을 조금 수정 보완했습니다. 한 시절 저의 대표자이자 일꾼이었던 노무현 대통령님이 처참한 모습의 패장이 되어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침통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을 버려주기를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다가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라고 썼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그를 서서히 잊어감으로써 얻는 평화를 잃었다. 열린우리당이 맥없이 무너진 후에 참여정부의 계승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기에 참여정부의 지지자들은 노무현 개인을 향한 편애에 의지한 측면이 컸고 이번 사건에 더욱 허탈감을 느낄 듯싶다. 국민을 향한 그의 사죄가 진솔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으면 좋겠다. 노 전 대통령에게 보장된 법적 방어권은 허위사실을 막는 선에서 보장돼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자기 잘못을 외면하거나, 남에게 전가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마지막 기품을 건사하길 기원한다. ‘바보 노무현’의 잔영이나마 더듬고 싶다.


노무현의 재임 시절 그의 작은 성취마저 용납하지 못하던 이들이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깨끗한 정치를 들먹인다. 개중에는 지난 대선 때 도덕보다는 능력이라고 목청을 높이던 분들이 적잖을 게다. 그런 말씀을 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은 무능한데다 부패하기까지 했으니 더 구박받아야 한다고 항변하겠지만 그 말을 하는 스스로도 얼마나 믿을지 궁금하다. 설령 노무현에게 험담을 할 만큼 떳떳하지 못한 자들이라도 노무현을 향해 얼마든지 돌을 던질 수 있다. 그것이 권력을 가진 자들이 마땅히 져야할 짐이기 때문이다. 측근과 가족의 허물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허물이기도 하다. 그 허물에게 쏟아지는 꾸지람을 담담히 감내해야 한다. 참여정부 민정 기능의 부실은 너무 뼈아픈 실책이다.


현 정권 인사를 향한 수사 강도와 견주어 볼 때 균형이 맞지 않다는 볼멘소리는 마음으로 삭혀야 한다. 물론 이 정부 들어 검찰의 신뢰는 많이 실추된 상태다. 아무쪼록 여야를 가리지 말고 공정하게 수사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일각에서는 편파, 표적, 기획수사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검찰은 이런 우려의 시선이 존재함을 헤아려야 한다. 지은 죄 만큼의 벌을 골고루 내리지 못하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셈이다. 검찰이 할 일은 죄 만큼의 벌을 공평하게 부과하는 것이다. 물러난 권력에는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는 칼집이나 만지작거리는 시늉을 한다면 지금의 비극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피의사실을 무차별적으로 공표하면서 과거 정부의 흠집을 대서특필하는 데만 온 정신이 팔린 몇몇 언론들도 이 비극에 동참하지 말길 부탁한다.


이번 사안은 부정한 돈을 받은 이들이 각자의 책임을 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듯싶다. 정치적 실체로서 존재하던 ‘참여정부 계승세력’ 혹은 ‘친노 세력’라고 불리던 자들이 몰락한 후의 한국 정치의 지형도를 그려볼 때가 다가옴이 느껴진다. 친노파라 불리는 이들은 참여정부가 표상했던 정신을 창조적으로 이어가기보다는 노 대통령과의 연줄로 권세를 누린 사람들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담담하게 참여정부와 명운을 함께 하려는 몸짓이 있었다면 이렇게 마냥 동네북이 되는 신세는 면했을지도 모른다. 친노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줬던 국민들의 정성을 생각했다면 오늘날의 참담한 꼴을 당하지 않았으리라.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기 머리부터 칠 일이다.


정권 차원의 음모가 있든 없든 간에 이번 일로 말미암아 참여정부를 지지했던 국민들의 가슴에는 멍이 들었다. 정권 차원의 부패까지는 못 되고 몇몇 측근들의 난행이라고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을 향해 도덕적 권위를 내세운 이들이 그 상대적 우위를 반납하고 나면 너무 초라하다. 친노 세력은 차떼기를 하고도 떵떵거릴 수 있는 저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깨끗한 정치는 참여정부의 핵심 가치 가운데 하나였다. 그 가치를 내걸고 목에 힘주던 이들이라면 좀 더 사려 깊은 처신을 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4·19혁명 49주년 기념식에서 “선진화는 절대로 부정부패와 함께 갈 수 없다”라는 기념사를 남기는 빌미를 제공하다니 치욕스럽다. 저들이 유능을 참칭하더니 이제 청렴마저 훔쳐가려고 한다. 물론 유능이나 청렴은 특정인이 독점할 수 있는 덕목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때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노 전 대통령을 가엾기 여긴다는 건 민망한 일이지만 자나 깨나 노무현의 실패만을 꿈꾸던 이들의 열망을 깨트리지 못해 애석하다. 친노파와 명랑하게 이별할 준비를 하다가도 개혁세력의 한 축이 무너진 자리를 대체할 행위자가 당장 채워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친노의 중심인 영남 개혁세력은 한국 정치에서 소중한 존재다. 도매금으로 넘기기보다는 어지간하면 존속시켜야 할 실체다. 친노 세력에게 권력을 쥐어주었던 국민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서 우아하게 떠날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다.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세력에 맞설 최후의 보루 몇 개쯤은 지켜내길 바란다. 별다른 충원 세력도 없는데 징검다리부터 치우려니 마음이 스산하다. 이 과정에서 퇴행적 지역주의가 독버섯처럼 돋아날 조짐이 보인다.


만약 친노가 붕괴하고 나면 유권자들은 하나의 선택지를 잃어버린다. 진보정당으로 달려가기를 머뭇거리는 상당수 국민들이 정치 냉소자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현 정치 구도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대변할 정당이 없다고 여겨 적극적 기권층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사분오열된 야권이 거대 여당을 이길 생각은 포기하고 그에 버금가려는, 즉 2등이나 하는 경쟁에 함몰된다면 끔찍하다. 야권에게 필요한 건 ‘절반의 패배주의’다. 지금 이 상태로는 필패한다는 생각을 늘 품어야 한다. 현 정치 지형을 엄정히 성찰하고 시운에 따라 힘을 합치고 양보하면서 지지 않기 위한 모든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간신히 으뜸이 될 수 있다.


이 뒤숭숭한 와중에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를 훼철하는 작업에 더욱 열을 올릴 공산이 크다. 자기네는 유능한데다 깨끗하다는 허황된 자부심을 품고 말이다. 융단폭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노무현 시대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도 긍정적 유산을 몇 개 건져 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긍정적 유산을 부수려는 시도를 얼마나 저지할 수 있을까. 도둑고양이처럼 엄습한 친노와의 작별은 곤혹스럽다. 때 이른 친노의 퇴장은 한국 정치에 암운을 드리운다. “굿바이 노무현!”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모든 것을 노무현 탓으로 돌려 그만 수렁에 던지고 나면 우리는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 아닐 것 같다. - [無棄]


여담 - 노무현의 첫 번째 고백이 나왔던 시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끝내 몸통이었다니>라는 제목의 4월 8일자 세계일보 사설은 노무현에 대한 저주라고 이를 만하다. 나는 세계일보의 독자는 아니지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적 지면을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는 것인지 치가 떨리고 분통이 터진다(이 사설의 첫 구절을 그대로 따왔다). 나는 그저 이 사설의 구절들을 기억했다가 앞으로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터질 때 세계일보 사설이 뭐라고 쓸지 비교해볼 따름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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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정윤 2009.04.10 08:22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래도 이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이 좀 진정이 되네.
    잘 지낸다는 것도 알겠고.

    • 익구 2009.04.11 03:18 Address Modify/Delete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저를 대표할 만한 집단을 만나지 못할 거 같아 살짝 우울합니다. 온건 보수 노선이나 개혁적 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수요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다면 한국 정치는 더 앙상해지겠죠.

  2. 악당천하 2009.05.04 15:0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네이버 블로그에 같은 날 신문사별 사설을 종합해둔 게 있어
    뒤늦게나마 찬찬히 읽어봤네요. 슬픈 일입니다.

    • 익구 2009.05.07 04:29 Address Modify/Delete

      형사소송법의 원칙들이 여기저기 무너졌다는 게 슬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