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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3.12.05 정치적 현실주의 서평 유감

2003년 2학기에 듣는 정치학원론의 서평 과제인 [정치적 현실주의의 역사와 이론](화평사 刊)은 내내 골칫거리였다. 정치적 현실주의를 주제로 삼은 19개의 논문의 압박은 과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탈고를 마치던 그 순간까지 마음 한 구석에서 부담감의 곰팡이를 마구 키워대고 있었다. 실은 그보다 불편했던 것은 예전 같으면 콧방귀도 안뀌었을 현실주의 논리들이 어느 정도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다.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는 여전히 주도적인 위치에 있고, 한국의 현실도 비슷하다고 한다.


인간은 악하고, 인간들이 모여 사는 국가 또한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서 국가의 유일성, 단일성, 합리성을 가정하는 현실주의는 국제 관계는 무정부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고 결국 힘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다고 역설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우드로 윌슨 등의 이상주의자들이 추구한 국제법, 국제기구를 통한 국가 이익의 조화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도래한 냉전시대에 그 적실성을 상실하고 쇠퇴하게 된다. 이상주의 경향을 비판하며 등장한 현실주의는 오늘날까지도 국제정치학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군림하고 있다.


현실주의에 맞서기 위해 자유주의가 다양한 치장(다원주의, 신자유주의...)을 하고 나오는 모습은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무척 재미나게 들려왔다. 지금까지 정치 어쩌고 하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라는 도식만을 그려왔는데, 현실주의와 이상주의(혹은 자유주의)의 대립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몰론 이상=진보, 현실=보수라는 등식도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따져 볼만한 기준인 것 같다. (어쩌다가 자유주의의 우산을 빌려쓰게 되었지만, 거대한 산이 그렇듯이 자유주의 또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사회과학 용어라는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서도...^^;)


특히나 국제정치 분야에서는 현실주의 맞서는 자유주의라는 것이 진보적이거나 이상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물론 상호의존을 강조하고 다원주의를 주창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진보성이나 이상적 측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자유주의자들은 자기들은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야말로 현실을 바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현실을 더 잘 반영하고 있게 만들기 위해 현실주의 논리를 과감히 차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현실주의가 그만큼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소리가 될 수도 있지만)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크게 자유주의, 현실주의, 구조주의(Structuralism)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구조주의 이론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이론인 근대화 이론(후진국의 저개발, 저발전은 사회, 정치적 개혁과 효율적인 경제전략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 대한 반발에서 나타났다. 후진국의 발전은 한참이나 더뎠고 국가간 격차는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적 처방전을 부인하고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면서 구조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후진국들의 저발전 요인을 국내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체제의 구조적 모순인 지배와 착취 때문이라고 본다. 즉, 구조주의는 국가간의 불균형을 주된 연구과제로 삼는다. (박재영, [국제정치패러다임], 법문사, 2002 500~ 503쪽 참고)


적어도 분홍빛 이상의 색깔을 선보이는 구조주의는 강의 시간 관계상 생략이 되어 여러모로 아쉽다. 아무래도 교수님께서 아직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라는 도식 정도를 이해하는 것이 초심자 수준에서 맞다는 판단 때문이셨던 것 같다. 실은 논지와 관계없는 구조주의 타령을 해본 것은 구조주의 이론의 하나인 세계체제이론을 주창한 대표적인 학자에 미국 사회학자 월러스틴이 있다는 것을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월러스틴은 “학문은 대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며 그런 학문은 도덕적 선택에 이바지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실행을 통해 세계를 바꾸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학문과 정치의 변증법이라는 화두를 고등학교 시절 익구에게 던진 각별한 인연이 있다.^^;


여하간 횡설수설이 길었다. 자유주의와 현실주의의 기본적인 논리는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나오는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두 관점이라는 부분에서 배운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자유주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계몽주의적 낙관주의라는 레토릭에 묘한 향수를 품고 있는 나의 알 수 없는 미신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너무 차가운 현실주의 논리들을 접하면서 의분이 올라온 나는 서평을 결국 현실주의 비판에 대부분 할애하고 말았다. 현실주의의 거두인 모겐소 교수의 제자인 이호재 교수에게서 수학하신 지금의 내 정치학원론 교수님께 어줍잖은 비판이 통할 리가 없다고 몇 번이나 몸서리치면서도 말이다.^^;


이런 이론들을 접하면서 가끔은 이게 다 무슨 쓸데없는 말장난인가라는 생각을 배우는 입장에서 해보기 마련이다. 어떤 현상을 분석함에 있어 기존 이론을 가지고 현상을 바라보는 것을 일컬어 ‘이론에 이끌린 분석(theory-driven analysis)'이라고 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론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면서 어떤 새로운 규칙성을 찾아내려는 분석의 경향을 ‘자료에 이끌린 분석(data-driven analysis)’이라고 한다. (앞의 책 머리말 참조) 물론 새로운 이론의 수립은 자료에 이끌린 분석이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배우기 바쁜 학생인 나로서는 이론에 이끌린 분석을 내려보는 것도 벅차다. 그렇기 때문에 말장난 핑계 될 여지가 없다.^^


의도했던 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되었다. 감정적 의견이나 일방적 자신의 주장 나열을 금지한 서평의 규칙을 지키느라 무척 무미건조해져서 내가 쓴 글 같지 않은 애물단지 서평 녀석을 긁어 붙이기 전에 속 시원히 할 말을 하고 싶었다. 결론은 두루뭉술하게 냈지만 실은 현실주의를 좀 더 비판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은 이 거다. 경박한 자유주의와 천박한 현실주의 중에 어느 녀석이 더 해악이 클까? 소심한 나는 또 부지런히 최악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끝으로 큰 가르침을 주신 엄상윤 선생님께 가슴 깊이 감사를 표한다. - [憂弱]

(아래부터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입니다)


[위협받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위상] -  2003년 12월 1일
  

  “강자는 권력을 행사하여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약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정치적 현실주의의 선구자인 투기디데스는 말했다. 이처럼 국가간 힘의 불균등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힘의 논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가정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현실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학계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군림해오고 있다. 이 책은 현실주의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법을 선보이며 이해를 돕고 있다.  현실주의 이론의 형성과 발전을 정리해보고, 여러 나라들 속에서 나타난 현실주의의 모습을 고찰하며, 한국 정치의 주요 이슈에 현실주의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현실주의는 악한 인간들의 권력투쟁과 국가이익 추구라는 분석틀로 정치현실과 국제정치를 설명한다. 이상주의자들이 당위적 목표를 설정해 정치현실이 이에 따라 작동해야한다고 본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현실정치 형태의 법칙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상주의가 도덕적 가치를 중요시하여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통한 방법론을 제시한 것과 달리, 현실주의는 비도덕적(amoral) 가치관으로 무장할 것을 주장한 마키아벨리와 같이 현실을 가장 잘 파악하여 이를 잘 조정할 것을 강조하는 힘의 논리와 세력균형 등의 개념을 설파한다. 현실주의만큼 현실 그대로의 세계를 바라보고, 서술할 수 있는 이론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의 우수성이 입증된다.


  현실주의 지지를 표명하는 이 책은 현실주의의 발전과정과 주요 논쟁들을 시계열적 방법으로 검토하고, 자유주의를 비롯한 비판을 소개하면서 현실주의의 실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각 국의 적용사례를 살펴보는 데 있어 현실주의의 개념을 유리하게 적용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논지를 전개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었다. 가령 베트남전쟁 종식을 위해 현실주의자들이 반대운동을 주도했다는 대목에서는 전쟁반대라는 단순하지만 숭고한 인류의 가치를 가지고 반전을 주장했던 많은 수의 반전평화론자들의 노력은 평가하지 않고 있다. 비슷하게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세력균형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의 주요 특징이 잘 드러난 정책이라고 평가하면서 마찬가지로 현실주의에게만 일방적으로 찬사를 늘어 놓는다. 또한 현실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일본의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국을 군부의 이상주의적 정책노선이었다고 평가하는 부분에서는 현실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상주의를 억지로 끌어들이고 있다. 설령 잘못된 이상이 많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주의의 정당성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띄었다. 탈냉전을 예측하지 못하고, 유럽통합 같은 국제 협력 증진과 초국적 단체들의 영향력 확대를 과소평가했다는 현실주의의 실패에는 관대하면서도 자유주의의 실패에는 매서운 칼날을 들이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쉬운 점은 현실주의에 경쟁할만한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대항마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검토가 부족해서 객관적 비교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실주의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을 일부 싣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보다는 그들의 실패를 소개하는 것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현실주의가 이상주의에게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나, 이상주의의 이념적, 이론적 경향은 자유주의 등의 이름으로 현실주의의 대안으로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예로 세계무역기구(WTO)의 확산은 절제된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로 말미암은 경제적 다극화가 미국의 일방적 패권에 세계가 휘둘리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주요 관심사로 부상한 경제 분야의 파급력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중국의 경우 국가주권이 박탈당한 역사적 경험을 가져서 국가주권 문제에 있어 감정적으로 강경하게 반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다가도, 우리의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강한 민족적 정서가 개입되어 이상적인 목표에 기울고 있다며 햇볕정책을 실현 가능한 현실적 목표를 얻지 못하는 이상주의의 특징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하는 등의 사안 평가의 상이함이 눈에 띄였다. 이는 다양한 필진들로 구성된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보인다.


  최근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며 민주주의 실현 같은 이상을 내세웠고, 남북 전쟁 상황의 링컨이 자신의 현실주의를 노예해방이라는 이상으로 포장한 것처럼 세상은 적당한 위선으로 덧씌운 현실주의가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상이 그렇듯이, 현실주의도 지나치면 '미치광이 현실주의'가 되어 파렴치한 전쟁광과 같은 얼굴로 등장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다.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개인주의와 세계화의 물결이 이러한 천박한 국가주의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겠지만, 국가 중심의 구조가 당분간은 큰 틀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되는만큼, 현실주의 패러다임의 분석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우리는 일부 자유주의자들의 실효성 없는 외침도 가려 들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다자주의를 무시하고 노골적인 일방주의를 주창하는 네오콘(neoconservatives)의 발호를 더욱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균형감각이 되어야 한다.


  [위기의 20년]에서 “건전한 정치이론이라는 것은 유토피아와 현실의 양 요소 위에 입각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외친  E.H 카의 지적은 앞으로도 유효하다. 극단적 이상주의자들이 객관적 조건과 물리적 법칙을 외면하고, 극단적 현실주의자들이 정치를 통해 추구할 이상과 목적을 잊은체 현상유지에만 급급한 것은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 없는 정치는 맹목적이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정치는 공허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국제정치를 바라 봐야할 것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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