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개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4.01.27 농업개방에 대한 통상정책 중간고사 답안 (1)
  2. 2003.10.04 농산물 시장 개방을 고민하며 (2)
지난 학기에 들었던 통상정책 중간고사 서술형 문제 중의 하나가 “한국의 농업개방문제에 대해 현황, 논쟁, 대안 등을 논하라”였다. 문서 정리를 하던 중 그 때 쓰려고 작성해둔 답안지를 발견했다. 요즘 새터 준비를 핑계로 업데이트도 부실한 터에 글 이게 웬 떡이라며 반기며 싣는다.^^


2003년 10월15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폐막되었다. 비록 이번 WTO 각료회의가 결렬되었지만 이번 회의에서 한국 농업의 대폭 개방을 불가피하게 만든 초안이 마련됐고, WTO 또한 협상 타결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3년 간 진행되는 DDA 협상의 한 과정에 불과한 칸쿤 회의가 끝났을 뿐 DDA 전체 협상이 무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며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저율관세 의무수입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농업개방의 원칙이 조만간 채택될 것이다. 앞으로 DDA 협상이 계속되어도 한국에게 불리하게 정해진 조항들이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국내 농업의 전면적인 개방은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계적으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수 있게 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정부는 1994년 이후 지난해까지 농업 부문에 71조8000억원의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농업 현실이 변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농업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구조개선 사업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단기적인 부채탕감과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 소비성부문 예산에 낭비해 버리고 만 것이다. 10여 년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액이 1995~2004년의 10년 간 총 1조6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바 있는데 기초적인 산수감각만 있으면 시장개방을 막고 대응하느라 든 비용보다 활짝 열었을 때의 비용이 훨씬 적게 들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누적된 농정실패가 엄청난 손실을 유발한 것이다.


현재 농민들이 쌀 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47%에 달한다고 한다. 이 주된 돈벌이마저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DDA 농업협상이 지난 회의에서 논의된 의장 초안을 토대로 타결될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농업부문의 총소득은 15조원에서 9조원으로 감소하고, 자연감소분을 제외하고도 농업취업자 25~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런 당장에 농민들이 입을 피해와 더불어 식량안보론도 농산물 반대입장의 주요 논거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곡물자급도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주곡인 쌀만 100% 자급하고도 남아 재고가 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다른 곡물의 자급도는 5%도 안 되는 심한 불균형 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더욱 낮아진다면 국제적 식량상황이 급변할 때 어떻게 생존권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다. 또한 세계 총곡물 교역량의 85% 가량을 취급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곡물메이저에게 우리의 밥상을 편안히 맡겨둘 수 없다는 주장도 무척 설득력 있다. 또한 100년 이상부터 산업화가 착착 진행되어 농업구조조정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어 그 충격을 완화했던 선진국들과는 달리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는 그런 완충 작용을 노릴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에 조정기간 내지 유예기간을 더 얻어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을 들어 개도국 지위를 포함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본위의 생각일 뿐이다. 한국만큼 자유무역체제의 은혜를 입은 나라도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썩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지난날의 헐벗고 굶주리던 것을 확실히 벗어 던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가입하며 제법 멋을 내고 있는 것도 수출해서 부를 축적한 덕분이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앞으로도 경제성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수출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WTO와 같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다자통상협상은 우리에게 남는 장사다. 합리적 경제주체간의 협상은 상호간에 주고받는 공생관계를 지향하는 것이지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기생관계로는 성립할 수 없다. 10년 전의 개도국 타령을 또 한 번 우려먹는다면 무슨 염치로 우리 상품을 세계에 팔 것인지가 걱정이다.


설혹 다자협상인 DDA가 무산된다고 해도 한국 농업은 개방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 중 등과 개별적으로 양자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WTO라는 울타리에서 집단적으로 개방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EU 등 우리보다 협상력이 강한 국가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것이 더 힘든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식량안보론도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식량을 무기로 삼는 일은 너무나 비윤리적이어서 오히려 그 가능성을 줄인다고 생각된다. 식량 수출국인 북미와 호주, 유럽 등지의 안정되고 높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들에서 식량을 무기로 삼으리라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세계의 농업시장은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은 ‘구매자 시장’이라는 논거를 들 수 있다. 또한 농업은 공업보다 기반을 복구하기가 훨씬 쉽고 간단해서 버려진 논밭은 종자만 잘 보관하고 있다면 한두 해 안에 그럭저럭 복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남의 선의(善意)에 제 목숨을 걸어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농산물 수입자유화는 분명 식량 수입국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식량 수출국의 식량의 정치적 이용가능성과 세계 식량생산의 불확실성이 만의 하나 존재한다면 그러한 비상사태를 대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을 대비한 지출을 아까워하기보다 식량대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무리 개방이 되더라도 우리 농업을 적정 수준 개발하고 보존하는 것이 진정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협상은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상호주의에 입각하는 바, 우리의 농산물시장을 방어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이나 그럼으로써 우리가 포기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은 농업 시장을 어느 정도까지 개방하느냐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에 대비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상품의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FTA를 확대하고 있는데 한국은 WTO회원국 가운데 FTA 하나 체결하지 못한 6개국 중 하나이다. 한-칠레 FTA법안 비준은 물론,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수출상품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또 교역상대국의 보호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우리 농산물도 특화하여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최근 추진되고 있는 한-일 FTA의 경우 농산물 분야에서 4억 달러의 흑자가 예상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내농업의 생산성 향상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와 노력을 더욱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농업 개방이 전체적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지라도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역진적인 소득재분배와 이로 인한 사회적 형평성의 문제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개방으로 인한 이익을 손해를 보는 저소득 농가에게 보상하고 재분배시키려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 한 농업 보호에 대한 요구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강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소득보전직불제, 재해보험제도, 상시적 경영회생 지원제도 등의 안전판을 확충해주고, 농업을 포기하거나 전업하려는 이들에게도 생계를 위한 충분한 보상책을 마련해서 농민들의 불만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셋째로, 농외 소득기반을 늘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 서비스업과 연계한 시장 개척을 해서 농외소득을 실현해야 한다. 민속주 생산 농가들이 중국, 일본과 공동 수출을 추진하는 것이나 도시와 농촌을 연계해 관광 산업을 육성하거나 도시민의 실버타운을 개발하는 등 농촌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것이 그 예이다. 주5일 근무제와 같은 여가수요의 확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촌다움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 전국 곳곳까지 깔려있는 도로망 등은 농촌에 사람과 자본을 끌어들여 이를 소득원화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최근 정부가 시도한 300평 이하 주말 농장용 농지에 대한 비농업인 소유 허용, 농촌주택에 대한 1가구 2주택 양도소득세 면세조치 등은 도시자본의 농촌 유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로, 농업이 가지는 비교역적 기능의 급격한 감소를 막고 유지발전 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즉 식량안보나 국토의 균형발전, 환경보존과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능을 위해서 장기적으로도 일정 수준의 국내농업생산이 필요하다. 경제적 효율성 증대만큼이나 비교역적 기능을 확보하는 것이 국익을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산업에도 포트폴리오 개념을 도입하여 논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되 유사시 즉각 쌀 생산이 가능하도록 일정 부분은 논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곡물자급도의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법제화시켜 농업의 급격한 붕괴를 막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와 농업 형편이 여러모로 유사한 일본의 경우 식량자급율의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법제화했다.


농업 개방에 찬성하지만 비교우위의 역동성과 계량모델상의 증명만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되 우리 농민들이 입는 손해를 국민 전체가 분담하는 데 인색하지 않겠다는 여론 형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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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구 2007.04.28 20:57 Address Modify/Delete Reply

    “가령 최근 추진되고 있는 한-일 FTA의 경우 농산물 분야에서 4억 달러의 흑자가 예상되기도 한다”는 문장은 틀렸다. 당시에 이미 연간 4억달러의 대일흑자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업의 피해가 덜 가는 개방도 있겠다는 생각에 착오를 일으켰다. “농업부문에서 연간 4억달러의 대일흑자를 보이고 있는 일본과의 FTA와 같은 농업에 유리한 FTA도 발굴해야 한다”정도로 고쳐야 한다. 이제야 정정한다.

9월15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폐막되었다. 지난 회의는 농산물 시장 개방 반대를 외치며 자결한 故 이경해씨의 안타까운 사연에다가 이제 더 이상 버틸 여지가 없는 농산물 시장 개방의 임박에 대한 위기감을 남겼다.


우리 농업 문제만 생각하면 밀려오는 답답함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제 고민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점점 거세지는 개방 압력에 우리 농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DDA(도하개발어젠다) 농업협상이 제5차 WTO 각료회의에서 논의된 의장 초안을 토대로 타결될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농업부문의 총소득은 15조원에서 9조원으로 감소하고, 자연감소분을 제외하고도 농업취업자 25~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농민의 이익과 국익을 대립시키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이 비록 농가에는 치명타이겠지만 국가 전체로는 이익이라는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 모든 책임이 농민에게 있는 것처럼 집단 따돌림을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처사다. 지금까지의 농업 정책들은 죄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도시민들의 생활안전을 위한 것이었지 진정 농민의 처지에서 이루어진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경제발전에는 저임금을 받고 묵묵히 일해 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고들 하는데, 그 바탕에는 농민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경제개발기에 농촌 젊은이를 도시로 끌어들여 공장노동자로 만든 다음 저임금을 이용한 수출주도 정책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이른바 한국형 경제성장의 모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는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썼고, 농민들은 가뜩이나 줄어드는 노동력을 가지고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기계를 사고 비료와 농약을 많이 뿌려 다수확 품종을 선택했다. 그 결과 수확량은 늘어났지만 과도한 생산비 증가로 인해 농민들의 빚은 자꾸 늘어만 갔다. (물론 부수적으로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도 크다)


이제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인해 그나마 돈도 안되는 농사마저 완전히 때려 쳐야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한 농민 지도자의 안타까운 죽음도 무역자유화의 대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리라. 故 이경해씨는 지난 1990년 11월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이 진행 중인 제네바에서 할복을 기도했다가 치료를 받고 귀국하면서 “냉혹한 현실에서 개방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다. 한쪽 목소리만 높여서는 결국 국가 전체가 손해라는 것을 알았다”는 독백을 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끝내 목숨을 걸고 저항한 것은 거스르기 힘든 시대적 대세 앞의 절박한 호소였다는 점에서 더욱 숙연해진다.


왜 그는 그러한 극단적인 길을 택했던 것인가. 그만큼 우리 농업의 현실이 참담하다는 방증이다. 현재 농민들이 쌀 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47%에 달한다고 한다. 이 주된 돈벌이마저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UR) 때 일본, 필리핀과 더불어 10년 간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게 되어 한숨을 돌렸지만 이제 그 시한은 어느덧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대책을 마련했나를 돌아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1994년 이후 지난해까지 농업 부문에는 71조8000억원의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농업 구조조정을 위해 쏟아 부은 돈이 이렇게 큰데도 아직도 농업 현실이 이 모양이냐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정부가 농업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구조개선 사업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단기적인 부채탕감책이나 소득 보전 등으로 소진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도 한다. 10여 년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액이 1995~2004년의 10년 간 총 1조6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바 있다. 아주 기초적인 산수감각만 있으면 시장개방을 막고 대응하느라 든 비용보다 활짝 열었을 때의 비용이 훨씬 적게 들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피해보상을 후하게 해주고도 수십조가 남는 대박 장사가 아닌가.^^;


놓친 대박(?)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어느 농림부 통상정책관의 솔직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수입국은 지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0:5로 질 게임을 0:4로 지기 위해 노력한다며 어려운 처지를 호소했다. 지난 회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아도 확실히 이기기는 힘든 경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될 수 있는 한 작은 점수 차이로 지려는 경기를 보는 마음은 무척이나 착잡하다. 하지만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지는 경기를 한 것은 아니다.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이라는 경기장에서 우리는 꽤 쏠쏠한 재미를 얻어왔다.


우리나라만큼 자유무역체제의 은혜를 입은 나라도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썩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지난날의 헐벗고 굶주리던 것을 확실히 벗어 던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가입하며 제법 멋을 내고 있는 것도 수출해서 부를 축적한 덕분이다. 앞으로도 경제성장에서 가장 큰 부분은 수출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WTO와 같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다자통상협상은 우리에게 남는 장사다. 합리적 경제주체간의 협상은 상호간에 주고받는 공생관계를 지향하는 것이지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기생관계로는 성립할 수 없다. 10년 전의 개도국 타령을 또 한 번 우려먹는다면 무슨 염치로 우리 상품을 세계에 팔 것인지가 걱정이다.


100년 이상부터 산업화가 착착 진행되어 농업구조조정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어 그 충격을 완화했던 선진국들과는 달리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는 그런 완충 작용을 노릴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이를 이유로 조정기간 내지 유예기간을 더 얻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자기 본위의 생각일 뿐,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는 투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 조금 억지 비유를 들자면 병아리에서 닭이 되는 시간이 엄청 짧았으니 달걀은 좀 뜸들이고 내어주겠다는 꼴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정과 투정이 모여 치열하게 싸우고 타협하고 그러는 것이 협상의 본질이 아닌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미국의 승리를 의심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처럼 농산물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 시기를 늦추는 것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한 쪽으로는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개방에 대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분주하게 대책을 모색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 않은 것은 바로 식량이 무기로 쓰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곡물자급도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주곡인 쌀만 100% 자급하고도 남아 재고가 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다른 곡물의 자급도는 5%도 안 되는 심한 불균형 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적으로 식량무기론은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왔다. 역설적이게도 식량을 무기로 삼는 일은 너무나 비윤리적이어서 오히려 그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식량 수출국인 북미와 호주, 유럽 등지의 안정되고 높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들에서 식량을 무기로 삼으리라는 상상을 할 수 없다는 소박한 믿음에서였다. 물론 남의 선의(善意)에 제 목숨을 걸어두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이 밖에도 세계의 농업시장은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은 ‘구매자 시장’이라는 논거를 들 수 있다. 또한 농업은 공업보다 기반을 복구하기가 훨씬 쉽고 간단해서 버려진 논밭은 한두 해 안에 그럭저럭 복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생각들은 복거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을 밝힌다)


물론 그래도 영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도서관에서 아무리 손쉽게 빌릴 수 있는 책이라도 내 방안의 책꽂이에 꽂힌 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심리적 차이감 내지는 불안감이라면야 오죽 좋겠냐만은.^^; 또한 역사상 식량을 무기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은 카터 대통령 시절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빌미로 금수조치(禁輸措置, embargo)를 시행한다. 식량사정이 나빠서 미국으로부터 대규모로 식량구입을 하던 소련에게 타격을 입히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이 시기 소련은 아르헨티나와 캐나다로부터 곡물수입이 크게 늘어나서 오히려 전체 곡물수입규모가 증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식량이 정치적인 이유로 무기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그 실효성을 거두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두 가지 광경을 동시에 보여준다.


비록 소련의 경우에는 성과가 미비했지만 미국은 인도, 칠레의 경우 식량원조의 중단이나 원조방식의 변경을 통해 미국이 수원국에 대해 의도하고자 했던 것을 달성했다. 인도에서는 미국의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했고, 칠레에서는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켰다고 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경남대 사회학 교수인 김종덕의 논문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식량의 정치적 이용’을 참고했다. 이 논문은 그의 저서 [농업사회학] 2부 7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농산물 수입자유화는 분명 식량 수입국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식량 수출국의 식량의 정치적 이용가능성과 세계 식량생산의 불확실성이 만의 하나 존재한다면 그러한 비상사태를 대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 보험료를 내고서 평생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보험료가 아까운 것이 아니라 사고 안 난 것을 감사해야 하듯이 만약을 대비한 지출을 아까워하기보다 식량대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무리 개방이 되더라도 우리 농업을 적정 수준 개발하고 보존하는 것이 진정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 논의 70%는 밭이나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없는 규제대상이다. 개방에 대비해 용도 변경이 금지된 땅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대책을 추진하더라도 무작정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즉각 쌀 생산이 가능하도록 논의 형태를 유지할 부분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려는 노력 같은 것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산업에도 포트폴리오 개념을 도입하여 위험도를 낮춰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농산물 시장 개방을 고민하면서 미국계 카길과 같은 곡물메이저들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곡물메이저란 곡물의 저장, 수송, 수출입 등을 취급하는 세계적인 상사로 취급량과 독점도가 높은 기업을 뜻한다고 한다. 곡물메이저들은 세계 농산물 작황을 수시로 파악해, 흉작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해당 곡물을 매점하고 가격을 올리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국은 1980년대 냉해로 인한 벼농사 대흉작으로 미국 코넬 사로부터 t당 200달러이던 쌀을 550달러에 사들인 경험이 있다. 이들은 언제든지 수출금지, 가격담합 등으로 우리의 목을 옥죄어 올 수도 있다. 세계 곡물 시장에서 WTO 등 국제기구의 규범에 따라 유지되리라 철썩같이 믿는 것도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 농산물 시장을 놓고 군침을 뚝뚝 흘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곡물메이저들 앞에서 함부로 우리 식량의 자급문제를 자유무역주의에만 맡길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비단 곡물메이저뿐만 아니라, 순수한 경제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여력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실제 세계의 식량 수급 상황은 자꾸 나빠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러시아․동유럽 등 식량을 자급했던 인구 과밀 국가들이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심상찮은 이상기후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 농산물 시장 개방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행위이지만, 우리가 농업을 팽개칠 때에도 곡물메이저들이 지금처럼 싼값에 농산물을 공급한다고 믿는 것도 안이한 행동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경제무대에 우리의 이익 도모를 위해 WTO에 적극 동참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농업을 쉽사리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농민단체들의 정도를 넘어선 압력행사는 부당하다. 그러나 농산물 시장 개방이 농민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힐 것이 자명한 만큼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균형적인 국토 개발이라는 대의에도 부합하는 것이며, 지난  날의 희생과 노고에 대한 부족한 보은이기도 하다.


현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더 냉혹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 차가운 현실에 따스함으로 맞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민과 우리 농업에 대한 그간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애정의 손길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크나큰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경제발전을 반성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농업의 구조적인 모순과 정부의 무능한 농정으로 말미암아 늘 힘들고 어려웠던 우리네 농민들이 이제 생존의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 쌀로 지은 밥이 내 식탁에 오를지라도 우리 농민들이 입는 손해를 분담하는 데 인색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농민들이 너무 큰 목소리를 낸다며 곱지 않게 여겼던 나의 편협함을 반성한다. 여전히 농산물 시장 개방에 찬성하지만, 그 찬성하는 마음은 예전 같지 않음도 고백한다. 이전의 찬성이 농업이라는 독소를 제거해 나라전체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자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의 찬성은 여간 조심스럽고 걱정이 태산같아 대응책에 절치부심 하는 모습이다. 과거의 확신에 찬 신념이 한참이나 누그러졌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버틸만큼 버텼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감히 새로운 승부수를 던져봄직도 하다. 위기는 ‘위대한 기회’의 준말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늘진 농민이 아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듣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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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구청년 2003.10.11 02:40 Address Modify/Delete Reply

    평소 흠모하며 수학하던 통상정책 이희두 교수님께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몇 번의 강의시간을 거치면서 그 실체와 대안들을 고민해볼 수 있었다. 이 잡글은 내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해답이었다. 이 잡글이 나오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신 이희두 교수님께서 통상정책 카페에 올려둔 내 글을 보시고 이런 꼬리를 달아주셨다.^^

  2. 이희두교수님(펌) 2003.10.11 02:4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최익구 군...참 좋은 글이네요. 논리가 살아 있고, 문장이 수려하고, 인간미까지 풍기는 훌륭한 글입니다. 다만, 개방이 위험하니까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좋은데, 그리되면 지난 10년간의 과오가 반복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만 준다면 최 군 의견에 찬성표 던지겠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