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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를 위한 기도

일기 2009. 12. 10. 21:32 |

2008년 10월에 썼던 잡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의 비장한 결심은 온데 간데 없고 1년이 지나고 봐도 그 때의 심정과 비슷해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영화의 줄거리를 대강 들었다. 우리말에서 ‘밥숟가락을 놓다’가 죽음을 일컫듯이 미국에서는 ‘양동이를 걷어차다(Kick the Bucket)’라는 표현이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여하간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노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내용이다. 대학 시절의 카터(모건 프리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 백만장자가 되기 따위의 목록을 적었지만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같은 소박한 바람을 적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내가 품었던 꿈도 야무졌다. 학보사 편집장 되기, 책 1,000권 읽고 유식 찬란해지기, 평생 함께 할 지인 50명 만들기 같은 거창한 목표로 그득했다. 졸업이 임박해서는 버킷리스트를 흉내 낸 학사모리스트를 만들어보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많이 단출해진 목록을 손에 쥔 순간에도 유종의 미를 빙자한 요행수를 앞세웠다. ‘그래도 이거 하나쯤은 성사되겠지’하는 열망 말이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나의 권리인양 행세했다.  


고종석 선생님은 <미친 사랑의 기도>라는 칼럼에서 자식이 수능시험을 잘 치르길 비는 어머니의 기도가 추하다고 쓰셨다. “그들 가운데 자식이 애쓴 만큼만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는 거의 없을 것”이며, “그들 대부분은 자식에게 ‘덤의 운’이 따르기를 기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내 실력을 다 발휘하고, 상대방도 제 실력을 다 발휘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도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천착하는 한국 사회에서 겨루기를 거듭할수록 그런 자신감이 자꾸 줄어든다.


수능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때 거의 모든 수험생과 관계자들은 ‘덤의 운’을 빌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평가로 배분하는 자원의 차이가 현저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내신, 논술,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을 반영하려는 교육 현장의 시도는 ‘덤의 운’을 빌려는 유인을 줄인다. 매번 운수에 기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학생들의 고통을 자아내는 부작용을 낳았다. 획일적인 대학 서열화라는 또 다른 절대적인 기준이 온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분야에 ‘덤의 운’을 빌어야 하는 기도의 남발 사태로 귀결되고 말았다. ‘덤의 운’이라도 빌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놓은 구조를 고찰해야 한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2008년 상반기 인턴십을 진행한 32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인턴사원 평균 경쟁률이 54대 1로 집계됐다. 2009년 상반기에 42개 기업을 조사해보니 49 대 1로 조금 하락했는데 이는 정규 신입사원 대신 인턴사원을 뽑아서 모집인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떨어질 위험(Risk)이라고 해야 할지 그마저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고 해야 할지 헛갈린다. 이런 별 따기라면 ‘덤의 운’을 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편익을 내고 싶다는 바람은 모든 수험생과 지원자의 꿈일 게다. 어떤 시험이든 찍은 문제는 남들보다 더 맞히길 바라고, 무슨 면접이든 아는 질문이 나오길 희망할 게다. 그것이 아름답지는 못할지언정 차마 비루하다고 손가락질하기 힘들다. 나 또한 내 분수보다 큰 것을 누리기를 바랐고, 실제보다 높은 명성을 탐했다. 더 나아가 내 둘레에 나와 친한 사람들의 ‘덤의 운’을 빌면서 생색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둘레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조르면서 잘 되면 베푼다고 유혹하기도 했다.


다만 ‘덤의 운’을 바라는 정도를 자꾸 줄여나가고 싶다. 운의 자리에 재주를 채워 넣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건 자기가 하는 일에 가슴 뛰는 사람이 되고, 자기가 딛고 있는 곳에 정성을 쏟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를 위한 기도가 조금 덜 추하고 조금 덜 역겨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했던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 순간이 내 삶의 공백을 넘어 여백쯤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평평함에 누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대학원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스스로를 다잡지만 어느 순간 ‘너는 이미 합격해 있다’를 주문처럼 외우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기도의 무기력함을 잘 안다며 짐짓 의연한 척한다. 하지만 이런 태연함보다는 만약을 대비한 백수리스트를 좀 추려보는 게 좀 더 생산적인 일일 게다. 나를 위한 기도가 대개 무기력하듯이 나와 무관한 것들을 위한 기원도 무기력하다. 내 이익과 관계없이 아주 좋은 의도에서라도 ‘덤의 운’을 바라는 것은 삼가야겠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덤의 운’을 넘보는 것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좋은 습관의 축적’과 잇닿는다. 시의 적절한 절제는 습관으로 삼아 마땅하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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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GATE 2008.11.12 00:3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버킷리스트는 괜찮은 영화였어요. 한번쯤 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듯 합니다. 오빠 글을 읽다보면 제 블로그는 어디 내놓기가 부끄러워지네요 하하. 여튼 오늘 잠깐 뵌김에 웹에서도 한번 들러 보았습니다. 근시일내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남은 한주도 잘 보내시길:)

    • 익구 2008.11.21 15:00 Address Modify/Delete

      난 영화를 도통 안 봐서 민망하다는... 나를 위한 기도를 가능하면 줄이자고 했는데 최근에 남발한 것 같아. 이 글 쓴 것도 있고 해서 친구에게 나 대신 축원을 해달라고 강권(?)하고 있어. 학기 중에 외국 여행 다녀오는 모양인데 영문은 모르겠으나 재미나게 지내다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