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쓰나요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10.22 개를 위해 시호를 짓다 2

개를 위해 시호를 짓다

일기 2007. 10. 22. 05:13 |

(시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익구닷컴 내 졸문 <한국의 시호(諡號) 탐구>를 참조해주세요)


시호(諡號)는 행적이 뛰어난 사람에게 국가가 내려주는 것이었다. 대개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게 관례다. 하지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아 큰 벼슬을 하지 않았던 김시습은 청간(淸簡), 서경덕은 문강(文康), 조식은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와 반면에 학문이 높고 덕망이 있음에도 시호가 없는 경우에는 교우나 제자, 친지나 고향 사람들이 추도하는 의미로 시호를 짓기도 했다. 나라에서 지어준 시호와 구별하여 사시(私諡)라고 한다. 요절한 반려견 야니를 애도하기 위한 시호를 짓기 위해 한국사에 있어 시호의 의미와 용례를 살펴봤다. 내가 하는 일이 으레 그렇듯이 배보다 배꼽이 커져 버려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졸문 “한국의 시호(諡號) 탐구”참조).


개에게 시호를 주는 게 너무 괴상한 일은 아닐까 고심했으나 사사로이 시호를 쓰기로 결정했다. 오늘날 시호가 쓰이지 않는 만큼 참례(僭禮)라고 구박할 여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보다 근본적으로 생명권의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야니에게 사람과 개의 엄격한 분별은 어울리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인간과 축생을 똑같이 보기 때문에 절에서 함께 생활하던 개가 죽으면 49재를 치러준다고 한다. 본적이 없어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키우던 개를 49재 지내줬다는 애견인의 이야기는 들은 바 있다. 여하간 야니의 49재 즈음해 시호를 건넨다. 부디 세계 최초가 아니길 바란다.^^; 이민홍 충북대 교수님이 당(唐)의 주석가 장수절(張守節)이 『사기(史記)』를 해설한 『사기정의(史記正義)』의 한 편인 시법해(諡法解)와 북송(北宋)시대 문장가 소순(蘇洵)의 『시법』을 번역해 펴낸 책이 있어 큰 도움을 얻었다(이민홍 편, 『諡號, 한 글자에 담긴 인물 評』, 문자향, 2005). 한국의 시법이 이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해 다른 전거를 찾기보다 이 책으로 시호를 정하기로 했다.


야니의 시호를 강회(强懷)라고 지었다. 소순의 『시법』에 따르면 강(强)의 시주(諡註, 시호에 담긴 뜻) 가운데 “죽어도 정을 옮기지 않은 것(死不遷情)을 强이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생전에 그토록 다정다감했던 야니에게 어울리는 듯싶다. 또 시법과 관계없이 활발하고 강인했던 성품과도 잘 맞는다. 조선시대에 시호를 정할 때 보통 세 가지 안을 내는데 이를 시호망(諡號望)이라 한다. 1안을 수망(首望). 2안을 부망(副望), 3안을 말망(末望)이라 부른다(비단 시호를 정할 때뿐만 아니라 사람을 뽑거나 할 때도 이러한 3안제를 쓴다). 회(懷)자는 확고부동했던지라 수망은 강회(强懷), 부망은 강회(康懷), 말망은 경회(敬懷)라고 해서 고민하다가 수망으로 결정했다. 강(康)은 온화하고 선량하여 좋아하고 즐거워할 만한 것이라는 뜻이 있는데 시법과 무관하게 나를 평안하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에 좋은 글자 같았다. 막판까지 경합했으나 말썽꾸러기 녀석에게는 강(强)이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 정말 나는 혼자서도 잘 논다.^^;


강(强)은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 『국어國語』에 그 출전이 있다.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애첩 여희의 간계에 빠져 태자인 아들 신생(申生)을 폐하려 했다. 신생의 사부인 두원관(杜原款)이 죽임을 당하기 전에 태자에게 전언을 남기며 “군자는 정을 버리지 않고, 참언에 대해 변명하지 않으며, 참언으로 인해 죽더라도 미명을 남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이어서 죽어도 정을 옮기지 않음이 강(强)이며, 정을 지켜 아버지를 즐겁게 하는 것이 효(孝)이며, 자신을 죽여 뜻을 이룸은 인(仁)이요, 죽더라도 임금을 잊지 않음은 경(敬)이라 말한다. 깨끗한 죽음을 권하는 무서운 내용이다.^^; 주위에서는 무고한 태자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신생은 이를 마다하고 사부의 가르침을 받아서 결국 자결한다. 여희는 신생의 이복 동생인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마저 죽이려 해서 이들 형제는 진나라에서 도망쳤다. 동생인 이오가 먼저 군주가 되고, 중이는 19년 동안 떠돌다 진나라로 돌아오는데 그가 바로 제환공(齊桓公)의 뒤를 이어 패자(覇者)가 된 진문공(晉文公)이다(자세한 내용은 『국어』의 「진어晉語」참조).


회(懷)는 행실은 자애로우나 일찍 죽은 것(慈行短折), 지위를 잃고 죽은 것(失位而死)을 일컫는다. 장수절의 시법해에 의하면 단(短)은 60세 못된 것이고, 절(折)은 30세가 못된 것이다(短未六十, 折未三十). 회(懷)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시자(諡字)로는 애(哀), 도(悼), 상(殤), 민(愍) 등이 있다. 애(哀)는 공손하고 어질지만 일찍 죽은 것, 도(悼)는 중년이 안 되어 요절한 것, 상(殤)은 요절하여 이루지 못한 것, 민(愍)은 나라에 재난이나 반란을 만난 것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왕위에 올랐다가 요절하거나 뜻을 펴지 못했을 때 주로 쓰는 시자들이다. 한국사에서 이런 시자를 받은 임금을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은 숙부 김언승의 반란 때 살해되었고, 제44대 민애왕(閔哀王)은 희강왕을 협박해 자살하게 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김우징이 장보고의 힘을 빌려 쳐들어오자 패하여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閔은 愍과 상통하는 글자다). 제55대 경애왕(景哀王)이 견훤에게 핍박당해 자살하게 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고려 제7대 목종(穆宗)은 처음에는 묘호가 민종(愍宗), 시호는 선령(宣靈), 능호가 공릉(恭陵)이었다. 이는 모두 목종을 시해한 강조(康兆)가 지은 것이라 현종(顯宗) 3년 묘호를 목종(穆宗), 시호는 선양(宣讓), 능호는 의릉(義陵)이라 고쳤다. 제14대 헌종(獻宗)의 시호는 회상(懷殤)이었다가 예종(睿宗)이 즉위한 뒤 공상(恭殤)이라 고쳤다. 헌종은 숙부 계림공 왕희에게 사실상 왕좌를 찬탈당하고 후궁으로 물러나 14세에 사망했다. 조선 제8대 예종(睿宗)이 재위 13개월만에 죽자 명나라에서 양도(襄悼)라는 시호를 주었다.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둘째 아들이 뒤주 속에서 사망하자 영조는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훗날 정조(正祖)가 즉위 후 10일만에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莊獻)를 고쳤다. 도(悼)자를 바꾼 것으로 보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여하간 회(懷)라는 글자에는 야니를 가슴에 묻고 간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아마 옛사람들도 그랬으리라.


여담이지만 일본 에도시대의 5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개 장군’이라는 별명이 있다. 1685년 그가 공포한 생류연민령(生類憐みの令)은 참 서슬 퍼랬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였다는 이유로 유배나 할복에 처해졌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런 끔찍한 법이었던 건 아니고 당초에는 중병에 걸린 생물을 내다버려서는 안 된다 정도였다. 쓰나요시는 포고령을 계속 고쳐서 물고기, 뱀, 쥐는 물론 조개, 새우 등 모든 생물을 죽이거나 먹지 못하게 했다. 달걀을 먹는 것이 금지되고, 개나 고양이 등을 죽인 죄로 도망가거나 죽은 사람이 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쯤 되면 공포다(심지어 모기를 죽였다고 처벌을 받았다). 살생의 업보 탓에 아들이 없다는 어느 스님의 충고를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확실치 않다. 그는 생류연민령만은 폐지하지 말라고 유언했으나 그가 죽은 뒤 열흘만에 폐지됐다. 쓰나요시가 개띠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여러 동물 중에 개를 특히 아꼈다. 개마다 색깔과 특징을 기록하고 사망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견공의 위세가 높아지자 버려지는 개들이 급증했다.


넘치는 개들을 수용하기 위해 에도 근교에는 수십 만평에 달하는 사육장이 건설됐다. 개를 먹여 살리기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쓰나요시는 특별세를 거두기도 했고, 악화(惡貨)를 주조해 화폐주조 차익을 챙겼다. 전국시대의 호전성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쓰나요시의 정책은 너무 넘쳤다. 박재형의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에는 율곡 이이가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일을 부려먹고 도살하여 그 고기까지 먹는 것은 어진 행실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농사일에 소를 써야 했던 조선과 일본의 사정이 비슷하다는 가정 아래 쓰나요시가 이 정도 마음가짐에서 그쳤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쓰나요시 만큼이나 엽기적인 사례는 나치 정권에게서 찾을 수 있다. 틸 바스티안의 『가공된 신화, 인간』에는 나치가 집권한 지 8주 만에 동물 학대를 금지했다고 한다.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고 그들에게서 짜낸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었던 나치 집단의 분열증이 섬뜩하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눈먼 최선을 경계해야겠다. 내 사랑이 남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음을 배웠다. 여기까지 고민하고 있는 만큼 개에게 시호를 지었다고 불편해하실 분들에게 너그러운 양해를 청한다. - [無棄]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