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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6.30 법률가의 길 소감문(2)

법률가의 길 소감문(1)

2010.06.30 23:33 |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개설한 <특강 법률가의 길>은 법률가의 길에 관하여 귀감이 될 만한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시간입니다. 모든 강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소감문을 제 때 제출한 것도 뿌듯한 일이지만, 더 놀라운 점은 오전 강의임에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P/F 과목이라 대부분의 학우들이 비중을 덜 두었던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목일수록 더욱 열성을 다하는 비효율적(?) 학생인 저로서는 이 수업시간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소감문에다 너무 많은 장밋빛 공약을 써 놓아 다시 읽으니 민망하기도 합니다. 선현들은 말이 행동보다 지나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는데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강연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강연 내용을 비판하는 대목이 거의 없다는 건 이 소감문이 반쪽짜리임을 의미합니다. 적잖은 부분이 제가 예전에 했던 말을 반복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로스쿨에서의 첫 학기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이 소감문을 일부 손질해서 올립니다. 한 학기 동안 만나 뵀던 여러 스승님들의 삶에서 제가 얼마나 배웠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도록 애쓰는지를 지켜봐주십시오.


<3월 8일 김영란 대법관님>

  판사가 어떻게 창의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 오셨다는 김영란 대법관님의 말씀은 내게 죽비소리였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라는 수식어를 떠나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에 그분이 계셔서 감사하다. 특강 중간에 인용하시는 영화나 문학작품, 심지어 만화책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 탐구 정신은 창의적 관점을 쌓기 위해 본받을 점이었다. 

  김 대법관님은 “실정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혜택을 받는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역설하셨다. 형식적 법치주의에서 실제적 법치주의로 나아갈 것을 주창하시며 그 과정에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의 역할을 당부하셨다. 로스쿨 제도는 불문법 국가의 이념과 관습이 결부되었기 때문에 성문법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접목해낼지가 관건이라는 말씀에 공감한다. 조문 해석에서 출발하는 성문법 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로스쿨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다.

  김 대법관님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의 경험을 회고하며 반대 관점에서 생각하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성찰하셨다. 문득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일화가 떠올랐다. 힐러리의 고교 선생님은 공화당 지지자인 힐러리에게 대통령 후보 모의 토론회 시간에 힐러리에게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 역을 맡겼다. 힐러리는 민주당 강령과 백악관 성명 등을 읽으며 민주당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종국에는 민주당원이 되었다. 힐러리는 자기 스스로가 반대자가 되어 가려진 일면을 보았다. 자기가 틀렸음을 고민하고,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법률가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싶다. 대법관님께서 “결론은 옳았을지 몰라도 상처 받은 사람들의 서운함을 배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를 늘 고민하시는 모습과 잇닿는다.

  김 대법관님은 시종일관 입법의 중요성을 설파하셨다. 입법 단계에서부터 법률가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법률가들이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서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나도 궁극적으로는 좋은 법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입법이 법률 제정 실무자들에게 국한된 기술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입법의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이지만 정치학이나 행정학, 정책학과 연계한 통합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개척할 여지가 많은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법’, ‘지킬수록 이득이라고 여겨지는 법’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싶다. 

  강의 말미에는 판사들이 국가 대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는가를 검토하셨다. 선출되지 않아서 간접적인 정당성에 그치는 판사들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하는지에 대한 고찰인 셈이다. 김 대법관님은 사법부는 직접 민주주의에서 소외된 소수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다원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사법부의 역할에 동감한다. 김 대법관님은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만 다수파 기관인 입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함도 지적하셨다.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 용기 있는 판결을 내릴 때가 비다수파 기관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빛난다. 인용하신 “다수자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다수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라는 워렌 미 연방대법원장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김 대법관님이 임명 제청된 지난 2004년 당시에 파격적인 인사라는 이유로 설왕설래가 오고간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대법원이 대표성 확충이라는 목표에만 매몰되어 각계각층의 출신을 안배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좀 더 넓어진 대법관 구성원을 갖춰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이바지하길 희망한다. 좀 더 많은 제2, 제3의 김영란 대법관님을 만나 뵙고 싶다.


<3월 15일 김진태 검사장님>

  서울북부지검 김진태 검사장님은 삶에 정해진 답(定答)이 없음을 강조하셨다. 끊임없이 ‘왜’의 관점에서 사고하여 창의성을 기를 것을 주문하셨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Poetic Justice)』라는 저서에서 시인과 판사가 하나가 되는 세상이라야 공적 영역에서 정의가 세워진다고 주장하고,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 없이는 법의 집행이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학은 개인의 연민을 사회적 연대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문학은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며 개인의 상상력을 공공의 상상력으로 탈바꿈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꼭 문학에 한정될 필요는 없을 듯싶다. 김 검사장님께서 언급하신 재판 사례들 역시 공공의 상상력을 키우는 훌륭한 소재들이 된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개인의 상상력을 공공의 상상력으로 확장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설계해야겠다.

  김 검사장님께서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은 자기완결적이며 무한책임을 지며, 외부의 책임 추궁 장치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고 역설하셨다. 프로라고 칭할 만한 분들을 살펴보면 일상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도저한 근면함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산 정약용이 책상다리로 앉아 바닥에 닿은 복사뼈 자리에 구멍이 세 번 뚫렸다는 고사를 떠올리다 보면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至誠無息)”라는 『중용』 구절과 만난다. 누구나 사흘쯤은 성인군자 행세를 할 수 있다. 닷새 정도는 공부를 하다가 지쳐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사흘과 닷새를 보름으로, 달포로 늘려나가는데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수학하는 동안 망양지탄(亡羊之歎)을 그치고 “나는 이것을 제일 잘한다”라고 외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싶다.

  그런데 프로가 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뉴질랜드의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는 “나는 기술적으로는 프로가 되고 싶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아마추어이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프로가 맡은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재주라면 아마추어는 순수함이나 겸손함을 가리키는 뜻으로 많이 풀이한다. 전문 분야의 솜씨에 국한되지 않는 통섭하는 능력이라든가, 인간미와 동떨어지지 않는 기예라고 봐도 괜찮다. 빼어난 기능인이 되기도 어렵지만 이를 넘어서려는 다짐도 필요하다. 김 검사장님이 바람직한 법조인이라는 화두를 제시하시면서 열거하신 덕목들은 결국 기술적인 면과 아마추어적인 면을 모두 아우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프로이면서도 아마추어인 법조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강의안 말미에 나오는 홀로 있을 때도 몸가짐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이라는 문구에 눈길이 간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내밀한 행동이 한결같다는 것만 해도 참 어려운 일인데,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잘하려는 마음가짐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신독하면 오규원 선생의 「죽고 난 뒤의 팬티」라는 시가 떠오른다. 교통사고를 몇 번 겪고 나니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시다.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에 신경 쓰는 사람은 도무지 대충 살 수가 없다. 팬티로 눈동자를 굴리는 마음은 혼자 있을 때 경계하는 마음과 통한다. 나도 세월의 무게 때문에 때가 묻을 대로 묻어 남는 건 팬티 한 장의 깨끗함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첫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겠다. 법조인이라면 품어야 할 명예이자 자존심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에 착한 법조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선량함은 법조인의 덕목이라기보다는 모든 직업인의 윤리에 지나지 않을 테니 그 바람을 자주 접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법률가는 규범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김진태 검사장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3월 22일 민형기 헌법재판관님>

  민형기 헌법재판소 재판관님께서는 우리들을 구법조인과 대비되는 신법조인이라고 지칭하셨다. 법학전문대학원 체제의 불확실성은 결국 시간이 해결될 문제이므로 이에 신경 쓰지 말고 미래의 주역으로서의 역할과 자세를 궁리하는 원론적 고찰이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대학 시절에 자신의 꿈을 글로 기록해서 간직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졸업 후에 살펴보니 전자가 후자보다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떠올랐다. 물론 경제적인 부만을 측정했기 때문에 진정한 삶의 성공이라고 보기에는 성급하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몇 줄 글로 압축해서 써둔다면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좀 더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싶다. 

  법조인이 처한 여러 환경적 요인 가운데 전문집단을 경원시하게 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언급이 흥미로웠다. 보통 사람도 전문지식을 공유하거나 전문분야에 참여할 기회가 늘어났기 때문에 법조 직역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강화된 추세다. 이제는 법조인의 권위를 강조하기보다는 신뢰를 구축하고 수요자 중심의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씀에 동감한다. 갑(甲)의 사고에서 벗어나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갑이 아닌 지금 시기부터 연마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맹자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라고 설파하셨다. 법조인이 전문가로서 그 역할을 존중받으려면 스스로에 대한 가치 부여가 필요하다. 이 일환으로 민 재판관님은 소명적 전문성을 강조하셨다. 오늘날 법조인이나 지망생들이 소명성을 버리고 전문가가 아닌 직업인이 되려 한다고 비판하신 대목이 인상 깊었다.

  민 재판관님은 사법시험 면접에서 술집을 함께 찾던 친구들이 무단횡단을 할 때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던지셨다고 한다. 민 재판관님은 당신께서도 친구들을 모두 이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범답안을 매번 실천할 자신이 없다고 하시면서 횡단보도를 안 건너고 갈 수 있는 술집을 제안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2006년 3월 학부 엠티에서 후발대로 간 나는 청량리역에서 기차표가 모자라서 무임승차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내가 일행에게 다음 기차를 기다리든가 아예 엠티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시외버스를 타고 엠티 장소로 향했다. 나는 선배의 권위를 이용해 후배들을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끌고 다닌 셈이다. 지난날의 나는 모범답안을 거의 지켰지만 방식이 세련되지 못해 마냥 뿌듯하지는 않았다. 규범을 어떻게 준수하고, 또 준수하도록 유도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더 이어가야겠다.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뒤뜰에서 천연기념물 8호 ‘재동의 백송(白松)’을 만날 수 있다. 이 백송은 밑동부터 V자로 갈라진 모습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나눠진 줄기는 하늘에서 무성한 잎을 맺어 다시 만난다. 결국 뿌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헌법정신이라는 뿌리 위에서 이따금 갈등할 수도 있겠지만 종국에는 힘을 합쳐야 함을 백송은 담담히 술회한다. 이 정갈한 노거수(老巨樹)처럼 헌재를 비롯한 전 법조가 우리 사회에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려면 좀 더 열려있고 쉽고 낮은 자세가 요구된다. 민 재판관님께서는 그런 맥락에서 쉬운 사회현상도 법률용어로 환원하려는 행태를 꼬집으셨다. 아직 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현재의 모습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향후 의뢰인이나 시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거울로 삼아야겠다.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는 것이 성숙된 양심이고, 한 사람의 품위를 나타내는 시금석이다.


<3월 29일 구상진 교수님(1)>

  구상진 교수님은 강연 모두에서 문민정부 이후 의원입법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씀하셨다. 의정사를 고찰하며 입법에 대한 실권이 입법부에 없었던 시절을 돌아보니 감회가 깊었다. 실제로 17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이 정부입법을 처음으로 앞지르는 등 입법부의 활동이 양적으로 증가했음은 또렷하다. 다만 늘어난 양만큼 질도 높아졌다는 분석은 아직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앞으로 국회의원을 평가할 때 대표발의안 횟수 같은 식의 정량적 개념에 치중하기보다는 얼마나 당대에 필요한 법을 고민했는지를 정성적인 측면으로도 접근하는 활동이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입법 현실은 사적인 성격이 강한 보좌진 등의 인재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얼마 전 출범한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공적인 조직으로서 기대가 크다. 사안이 터질 때마다 각자의 ‘해석’이나 ‘의견’만을 내세워 갈등을 증폭하기 전에 차분히 ‘사실’을 축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 교수님은 법제사를 언급하시며 법조 집안의 내력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역설하셨다. 켈젠 선생이 한국을 독일의 알려지지 않은 손자라고 지칭하셨을 정도로 한국의 법제는 일본을 계수했다. 그 이전에는 중국의 영향력이 컸다. 일전에 고려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현재천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현 교수님께서는 한국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역사적 의제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생존하고 번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중국 대륙을 차지했던 북방 유목민족들이 하나둘 중국화(中國化)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아름다운 예외였다. 

  한국이 독자적인 문화권을 일정 부분 건사할 수 있었던 근본 동력을 개방성이라는 요인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개방성이 반드시 독창성을 담보하지 않고, 우리가 모든 면에서 개방적이지도 않았다. 가령 양명학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보다 이단으로 여겨진 사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대목의 고민을 이어가는 까닭은 대한민국이 복수의 문명권이 협력과 경쟁을 하는 좀 더 이상적인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특수성을 뽐내면서도 보편성을 잃지 않는 한국적 가치나 국가 브랜드의 모색은 편협한 민족주의로 가두기에는 그 품이 너르다. 로스쿨 제도도 그런 거시적 안목에서의 시도라고 보면 좋을 듯싶다. 

  나는 시험보다 교육에 주안점을 둔 것에 법학전문대학원의 대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고급화될수록 교육과 상충관계가 된다. 모든 가치기준이 수험적합성에 맞춰지면서 법과대학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닌 다방면의 교육으로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한 만큼 변호사시험은 의사국가고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의사국가고시의 합격률은 2010년 92.9%, 2009년 93.6%였다. 높은 합격률에도 별다른 시비가 없는 것은 의대 교육과정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쟁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험과 교육의 적절한 배합의 문제로 요약된다. 

  시험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교육을 향한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구상진 교수님께서 설파하신 학교 수업의 중요성에 동감했다. 수험생이 시험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라면 학생은 교육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 아닐까 막연히 나눠본다. 물론 수험생과 학생이 크게 배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좋은 학생이 훌륭한 수험생도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취지다. 내가 학생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앞으로 대비해야 할 각종 시험들에 소홀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수험 공부만으로 채우기 힘든 배움의 기쁨을 좀 더 찾아보겠다는 정도의 뜻이다.


<4월 5일 구상진 교수님(2)>
 
  구상진 교수님께서는 법은 정신적 체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배우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법은 가치의 기준이어서 우리 정신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정신 속에 있는 것을 남과 공유하기 위한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이 요청된다. 나에게 주관이 있듯이 상대방도 그 분 나름의 주관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상호주관성은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법조인으로서 간주관성을 체화하기 위해서는 인간다움에 대한 믿음과 열린 자세,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구 교수님은 법의 진화과정을 설명하시면서 집단적 신분관계에서 개인의 의사결정 선택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역설하셨다. 다만 이러한 인간의 의사에 대한 강조가 오만한 마음의 발로가 아닌지 반성하고, 과거의 신분사회보다 더한 신분사회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고 첨언하셨다. 구 교수님은 시종일관 지엽적인 판례 암기나 수험기술적인 접근이 아닌 핵심 원리와 법적 사고를 세울 것을 주문하셨다. 이런 노력을 통해 법의 진화에 이바지하기를 다짐한다. 

  법의 진화는 결국 법의 출처(出處)를 따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법이 나아갈 자리와 물러날 자리를 분간하는 혜안을 키워가는 길을 뜻한다. 법은 모든 인간의 자유와 독립에 신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행정국가화 경향은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고를 상당 부분 수정했다. 좀 더 실질적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입법정책에 대한 요청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럴 때일수록 법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판별하는 지혜가 더욱 요청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일정 부분 직업학교의 성격을 띠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정적 의미의 기능인(technician)에 그쳐서는 안 된다. 로스쿨 졸업생이 입법 자문이나 법제 컨설팅 등에도 많이 진출할 것을 감안해 이런 부분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가야 한다.

 또한 법은 공동체 내에서 집행되어야 하는 규범임을 강조하셨다. 전혀 집행되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님은 자명하다. 법은 현실로 집행될 수 있어야 하고, 현실이 법에 피드백 되어 규범력을 높여야 한다. 근래에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통상적으로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구별해서 생각한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법의 지배보다는 법에 의한 지배가 될 공산이 크다. 법의 지배는 평평해야 한다.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게 기울어진 ‘편향된 법치’는 형용모순이다.

  자기에 대한 기준과 남에 대한 기준을 달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다(待人春風 持己秋霜)”라는 채근담 구절을 많은 이들이 좌우명으로 삼는 것을 보았다. 자기와 타인에게 동등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나에게 더 촘촘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처럼 천학비재한 사람도 자기보다 빼어난 사람을 왈가왈부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 민주주의의 혜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권리는 절제해서 행사할수록 더 빛난다. 

  물론 비판하는 대상보다 반드시 뛰어나야만 비판의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더욱이 공적 영역에 있는 인물을 비판하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엄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적 사표가 될 만한 모범이 되라는 구상진 교수님의 가르침을 생활신조로 삼는다면 남의 잘못을 손뼉 치며 지적하는 건 삼가야겠다. 더욱이 법률가는 남을 책망하는 일을 맡기도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스스로를 먼저 책망하는 자세가 있어야만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남 탓보다 자기 탓이 바지런한 사람을 좀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4월 12일 이재후 변호사님>

  이재후 김앤장 대표변호사님은 법관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실을 어떻게 판단하고 인정할 것인가를 꼽으셨다. 법률의 적용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학기 초에 우리 학교 최은희 교수님께서 사실심인 하급심 판결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다 배운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사실관계 파악은 법해석학을 연마하는데 있어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실무에서는 사실관계를 따지는 능력이 가장 먼저 필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당사자가 가져다주는 사실만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그냥 단순히 법률만 아는 것이라는 지적이 매서웠다.

  이 변호사님은 기존 변호사와는 다른 접근을 선택하셨다. 거의 100%가 송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재판정이 아닌 투자자를 찾아가 기업법무와 국제법무의 영역을 개척하셨던 용기가 인상 깊었다. 이 변호사님은 다양한 법률 수요를 충족하고 전문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로스쿨의 역할을 역설하셨다. 앞으로 전문화가 가속화되면 변호사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힘을 모아야 할 사건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 변호사님은 어느 인터뷰에서 인재 영입을 위해서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도 할 각오가 돼 있다”라고 하셨는데 로스쿨에서도 다양한 인재가 육성되어 활약하길 희망하며 나도 일조하도록 애쓰겠다.

  이 변호사님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변호사의 기본이라고 다시금 강조하시면서도 변호사의 자질을 몇 가지 더 열거하셨다. 법률 적용을 위한 리서치 실력, 짧게 요약 정리하여 핵심을 도출하는 글쓰기 기술, 설득하는 능력, 의뢰인을 획득하고 관리하는 방법 등이다. 어느 하나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찌 보면 마케팅과 연관되는 내용이어서 경영학자 윤석철 교수님께서 마음(feeling)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하신 대목이 떠올랐다. 윤 교수님은 ”마음속 상처는 육체의 상처보다 더 크고, 상처받은 고객이나 종업원의 마음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한다”라고 설파하셨다. 사실에 대한 균형적 감각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설득하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그 이전에 지극한 정성이면 감인(感人)이다.

  이 변호사님은 앞으로 법치주의가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법률수요는 증가할 것이라고 예견하셨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가 될수록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법의 역할이 커질 것임은 자명하다. 일전에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님은 금융이 선진화되려면 법치가 바로 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셨다.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산업으로서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엄정한 법치의 관행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법이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된다면 금융산업의 성장잠재력을 저해한다는 말씀이다. 비단 법치금융만 확립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법치의 준수가 요청된다. 법 앞의 평등은 법의 내용이 모두에게 평등할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법의 집행도 모두에게 평등할 것을 요구한다. 

  김앤장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 모델로 통한다. 혹자는 법률을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김앤장의 성과가 공익보다 사익만 추구한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김앤장의 영향력이 입법부나 사법부의 권능까지도 넘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들린다. 나는 김앤장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런 고언도 새겨들으시리라 믿는다. 독선은 누구에게나 해롭다고 배웠다. 이 변호사님의 강연을 들으며 미래의 법조인은 전문성을 갖추되 특권의식을 버려야 함을 절감했다.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법조인에게 응당 보장되는 ‘권력’이란 없다. 소명적 책임감을 맡은 이에게 부여한 제한된 ‘권한’이 있을 따름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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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길 소감문(2)

2010.06.30 23:32 |

<4월 26일 양경승 교수님>

  양경승 사법연수원 교수님께서는 한 순간도 즐겁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공부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고 책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읽었는지가 관건이라고 역설하셨다. 이를 위해서 공부할 때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시간도 자유롭게 운용하라고 귀띔해주셨다. 다만 이해를 못했는데도 진도만 나가서는 곤란하고 이해가 안 되면 꼭 물어서 해결하라는 묵직한 단서 조항을 다셨다. 이와 더불어 복잡한 개념들을 파악하기 위해 도표화시키고, 주제별로 묶고, 목차를 많이 보는 등의 여러 공부 방법에 대해 아낌없이 조언해주셨다. 

  양 교수님께서 공부는 요령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까닭은 아마도 시험 통과를 위한 수험 공부에만 매몰되는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법학을 주업으로 삼더라도 부업을 찾으라고 하신 이유도 결국 좀 더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아니 그 이전에 법학을 더 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모든 공부가 다 그렇듯이 법학도 넓게 배우지 않으면 깊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양 교수님은 아직도 내가 즐겁게 할 마음이 있으면 성실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데도 매달리면 집착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일전에 김우창 선생님은 <자기가 선택하는 삶>이라는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젊은 시절이 없다고 탄식하셨다. 내면적 의미의 추구와 외면적 가치에의 순응 사이에서 고민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도 자기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삶을 성찰할 여유가 없다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을 도모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에 몰두하기 십상이다. 정조대왕은 “끝끝내 지키는 사람이 위기지학을 하게 된다(『일득록』)”라고 말씀하시며 총명함이 발현하는 ‘속도’보다 총명함을 유지하는 ‘지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설파하셨다. 배움이 지속가능하려면 책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뛰어야 한다. 인격 도야와 자기 수양에 바탕을 두지 않고 세속적 공명(空名)에만 집착한다면 내 배움이 누추해질 것 같다.

  나는 ‘시험보다는 교육’이라는 법학전문대학원의 표어에 끌렸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 잘게 나눠진 시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내가 로스쿨에 진학한 까닭은 행복하게 공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의 저자가 독일의 쿠벤 김나지움의 교장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사고의 깊이와 인성이 고양되지 않은 지식인을 키우는 교육을 가장 경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곱씹을 만한 이야기다. 고령화 시대에는 젊은이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한다. 이제 극소수의 승자만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잠재성과 소질을 계발하도록 노력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인간을 생각하는 경쟁이 가능할까 막막하기는 하지만 경쟁이 심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교육 현장 등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안을 계속 궁리하고 싶다.

  양 교수님께서 중시하신 즐거움은 나 혼자만의 즐거움에서 그칠 수 없다. 연못가에서 새와 짐승을 바라보며 즐기던 양혜왕이 맹자에게 현자도 이런 놀이를 즐기느냐고 물었다. 맹자는 “현자라야 이런 것을 즐겨한다(賢者而後樂此)”라고 답한다. 현자는 여럿이 함께 즐거워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공직자의 자세쯤으로 좁게 해석하기보다는 모든 배우는 이의 덕목으로 삼아봄직하다.


<5월 3일 한이봉 변호사님>

  법무법인 태평양의 한이봉 변호사님께서 국제거래에 있어서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열강을 해주셨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기업의 M&A나 해외진출이 활성화되는 상황에 따른 변호사의 활동 영역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사내 변호사, M&A Vehicle 도입, 국내기업의 해외기업 인수, 국제적 반독점(Anti-Trust) 감시 활동, 법 준수 감사(Compliance Audit), 해외부패관행법(FCPA) 같은 새로운 활동 무대에 대해 관심을 기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자칫 소홀하기 쉬운 금융 기법에 대한 이해를 통해 경제 흐름을 읽는 노력을 이어가야겠다. 때에 맞춘다는 시중(時中)의 의미를 가슴에 새긴다. 끊임없는 변화에 맞춰가면서도 균형을 잡아봐야겠다.

  우리가 보통 의료 서비스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 의료 기술 자체의 문제보다는 긴 대기 시간 끝에 짧고 불친절한 진료를 받고 마는 경우에 대한 불만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개선하는 것은 의료 시장 개방 여부와는 관계가 없는 문제다. 의료 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는 첫걸음은 고객의 사소한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다. 불만 고객의 클레임을 잘 해소하면 오히려 충성도(loyalty)가 높은 핵심 고객이 된다는 것은 마케팅의 상식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률 시장 개방 문제도 접근해 봄직하다. 아마도 대형 로펌들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서비스 정신의 구현에 있을 것이다.

  한 변호사님께서 언급해주신 변호사의 역할 가운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고 애쓰고, 사후관리까지 챙기라는 말씀에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이와 더불어 거래구조를 검토할 수 있는 혜안을 갖추는 것은 만만한 과제가 아닐 것이다. 한 변호사님은 책뿐만 아니라 일을 하면서 배웠던 본인의 경험을 술회하시면서 실습을 통한 체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이를 통해 문제 해결자(Social Provider), 위기 관리자(Risk Manager)로서 가치 창출에 기여할 것을 오늘날의 변호사는 요구받고 있다는 가르침이 무겁다. “배움이라는 것은 장차 그것으로써 행하려고 하는 바이다(學者 將以行之也)”라고 정이천(鄭伊川) 선생은 말씀했다. 단순히 알고 있다는 수준을 넘어 시험 답안지에 정리해내고, 남에게 설명해줄 수 있고, 실제 업무에서 활용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정성을 들여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새삼 아득하다.

  국제거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고사 하나가 떠올랐다. 화담 서경덕 선생이 한 젊은이를 만났다. 눈이 멀었다가 갑자기 앞이 보였는데 자기 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화담 선생은 그 젊은이에게 눈을 감으라고 충고한다. 눈감은 젊은이가 예전처럼 지팡이를 짚어가며 집을 잘 찾아갔음은 물론이다. 이 고사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서 외부의 문물을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다시 너의 눈을 감아라(還閉汝眼)”라는 일갈은 개안의 미덕에만 열중하던 내게 폐안의 가치를 품게 해주었다. 자신의 잣대를 먼저 세워야 제 것으로 삼을 만한 것을 가려내는 안목이 길러지게 마련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세계화의 너울에 맞선다면 좀 더 슬기롭게 넘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변호사님은 강의 말미에 현재 할 수 있는 일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경쟁력을 찾으라고 조언해주셨다. 자기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일보다 120% 정도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움직임과 행동을 혼동하지 말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곱씹는다. 나는 등 떠밀려서 움직이고 있는가? 자기가 선택한 걸음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나는 앞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 그저 차려주기를 바라는 식객에 지나지 않는가? 목표 세우기는 내 자신이 주인이 되겠다는 매운 의지를 벼리는 일이다.


<5월 10일 구상진 교수님(3)>

  아무런 의심 없이 영미법이라는 말을 많이 써왔다. 구상진 교수님께서는 미국의 건국 초기에는 영국보다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영국법을 계수할 상황이 아니었음을 짚어주셨다. 다만 선례구속의 원칙 같은 영미법의 공통된 원칙 등에서 영국법의 전통이 미국에 스며든 것을 엿볼 수 있다. 법학은 개념에서 시작해서 개념에서 끝나는 학문이라고 들었다. 섬세한 개념 정의를 하는 실력을 좀 더 연마해야겠다.

  구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신 이항녕 선생님의 풍토 법학은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었다. 시간, 공간, 사람이 합성된 종합체인 풍토라는 것은 상당 부분 동양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적, 구체적 특성이 법 내용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입법 과정에서부터 염두에 두어야 할 사안이다. 우리가 법이라고 지칭하면서 상정하는 공통된 원리에도 역사적인 특수한 제약이 있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이항녕 선생님이 설파하셨던 풍토는 민족보다 넓은 개념이라고 한다. 이항녕 선생님의 법철학 저서를 살펴보니 세계사의 시원은 정신과 물질의 불가분적 결합체인 풍토적 자연이라고 한다. 자연적 조건을 무시하고 정신적 조건만을 중시하는 인종설과 자연의 물질적 조건만 강조하는 환경설은 각 일면의 진리는 있으나 전적으로 찬성할 수가 없다는 견해에 동감한다. “풍토적 배경 없는 법은 생활성이 없는 것이요, 생활성이 없는 것은 법이 아니다”라는 구절에서 보이는 ‘생활성’이라는 개념은 앞으로 법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곱씹어야 할 대목인 듯싶다. 

  북송 시대 사마광은 황하 유역의 서북 지역 출신이었고 왕안석은 양쯔강을 중심으로 한 동남 지역을 대표했다고 한다. 주도권을 쥐고 있던 서북 지역이 전통주의를 주장했다면 신흥세력인 동남 지역은 신법(新法)으로 쇄신할 것을 주장했다. 이 사실을 접하고 지식인의 철학이나 정견이 온전히 그 개인의 것은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시공간의 제약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요소(要素)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생각에 시공간과 인간이라는 요소를 눅여낼 때 그 사상이 좀 더 탄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와 환경을 톺아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법학도로서 살아야겠다. 

  구 교수님께서는 지금 당장은 역부족이라고 느끼더라도 최상급의 법조인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스스로 이류나 삼류로 자리매김하지 말고 어떤 분야이든 일류가 되라고 충언을 해주셨다. 정신이 없으면 우발적으로 성취할 수 없다는 말씀에 그간 나태해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수험생보다는 학생으로 살고 싶다고 자주 말해 왔다. 수험생과 학생을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험생이 시험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라면 학생은 교육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하고 있다. 이 보금자리에서 훌륭한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는 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부족이라는 말씀을 접하니 공자의 제자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에 부칩니다(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라고 고충을 토로한 대목이 떠오른다. 공자는 “능력이 부족한 자는 도중에 그만두게 마련인데 지금 너는 미리 금을 긋고 있구나(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라고 꾸중한다. 즉 중간까지는 가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계를 긋고 멈추는 자포자기한 상태를 질타한 말씀이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남들의 모습을 보고 지레 겁먹어 몸을 움츠리고 발을 뺄 궁리만 했던 건 아닐까 부끄럽다. 법학 공부는 획(畫)을 긋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한다.


<5월 17일 권남혁 변호사님>

  법무법인 로고스의 권남혁 고문변호사님은 어렵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라고 역설하셨다. 힘들고 우울할 때 생각을 바꿔서 완전히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것을 조언하셨다. 100%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100% 긍정적인 현상이 전개된다는 말씀에 가슴이 설렜다. 강의 말미에도 행복에는 조건이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행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이라고 귀띔해주셨다.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라이프니츠가 생각난다. 라이프니츠는 신이 이 세상을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도 넘쳐나는 악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반론한다. 그러한 악이 있기에 세상은 선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악이 없다면 선한 것은 결코 선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위해 있는 것이며, 불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을 위해 있다는 논변이다. 

  그는 비록 부분적인 악이 있다 할지라도 전체 속에서는 선한 것이며 무한한 신의 눈에는 결코 악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결국 악함이나 추함이나 불완전함 모두 우주의 질서를 위해 필요한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그의 견해를 ‘철학적 낙천주의’라고 하는데 언제 들어도 시원한 느낌이다. 내가 낙관주의자를 자처하고 다니는 건 사소한 현상에만 분노하다가 정작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지엽적인 것에 호들갑을 떠는 내 자신을 반성하며, 좀 더 길고 넓게 보고 대응하자는 마음에서 나온 구호다. “군자는 평생토록 지니는 근심은 있어도 일시적인 걱정은 없다(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라고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루아침의 걱정이라는 것은 이런저런 외부적인 조건을 의미할 것이다. 이에 반해 평생의 근심은 내면적인 고뇌이다. 내가 근심하는 것은 무엇인가?

  권 변호사님은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요약하셨다. 절차가 결론보다 중요할 수 있으며 절차를 중시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존 롤즈가 설파한 반성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외부의 비판을 검토해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이라며 마냥 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평가하고 스스로 다시 궁리하여 보다 나은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중용(中庸)과 비슷한 개념이다. 결국 조금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자신의 직관적 판단이나 개인적 선호에서 시작하여 끊임없이 숙고하면서 적절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서 반성적 균형 상태는 단순한 산술평균이 아니며, 숙고한 반성의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절차에 대해 좀 더 세심한 관심을 모아야 할 때이다.

  권 변호사님은 여기에다가 다수의 지지를 받은 사람 말고 소수의 이익도 보호해야 한다는 요건도 역설하셨다. 다수와 소수가 변동 가능한 것이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일 것이다. 특정한 각성만을 강요하고 칭찬하는 건 한 사회의 구성과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 불가피성을 이유로 남발될 때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겠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고양될수록 다채로운 각성이 만개할 텐데 나와 다른 견해를 경청하는 자세를 갖춰야겠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 제2장에서 이미 설득력 있게 논증했듯이 단 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제약한다면 의롭지 못할 뿐더러 이롭지 못하기까지 하다. 교정의 대상이 아닌 교류의 대상으로서의 각성이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확신한다. 나도 그 풍요로움에 모래 한 알만큼이라도 보태길 희망한다.


<5월 24일 이만덕 변호사님>

  이만덕 인터로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의 씀씀이에 대한 경계의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하셨다. 월 100만 원 정도를 받는 사법연수원생과 달리 로스쿨생은 특별한 수입이 없을뿐더러 만만치 않은 학비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도 절반쯤은 변호사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재정 운용이 헤퍼질 수 있음을 지적하셨다. 빚은 늘어나기는 쉽고 갚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님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사례를 많이 언급해주셨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운동 경기장을 즐겨 찾던 어느 변호사는 지금은 로펌에서 모셔가려는 인재가 되었다고 한다. 드라마 명대사를 즐겨 외우던 어떤 변호사는 작가들과 인연을 맺고 그네들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한다. 사내 변호사를 하다가 중국 유학을 간 변호사는 학부 때의 중국어 전공을 살려 중국에 진출한 회사의 상근 부회장에 올랐다. 기존의 소송 업무와는 다른 길이 많으며 서비스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다.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쌍방대리를 못하기 때문에 대형 로펌은 주로 원고보다 피고의 위치에 서게 되므로 개업 변호사나 중소 로펌은 원고 측의 대리를 할 수 있는 등의 여러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했다. 

  루쉰(魯迅)은 단편 「고향」에서 희망을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땅 위의 길에 비유했다. 누군가 먼저 간 땅 위를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경우가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토스카니니(Toscanini)는 본래 첼로 연주자였다고 한다. 그는 심한 근시였기 때문에 연주 시간에 제대로 악보를 볼 수 없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악보를 외웠다. 어느 날 연주회를 앞두고 지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벌어져 단원들 중에서 지휘를 맡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토스카니니는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이 지휘자로서의 시발점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에서 충실한 삶을 살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이 변호사님은 로스쿨 생활에서 도움이 될 만한 태도를 설파하셨다. 먼저 옆에 있는 동기들을 경쟁자로만 생각하지 말고 동업자라고 넓게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그리고 너무 법리적으로 매몰되어 사고의 경직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다. 경제 위기 때문에 아파트 전매가 어려워져서 계약금을 날릴 위험에 처한 사안에서 조정 신청을 이끌어 내 계약금의 일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이 변호사님의 경험담이 흥미로웠다. 또한 의뢰인이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잘 들어주는 자세를 갖추고 의뢰인이 의지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될 것을 주문하셨다. 이 변호사님은 경찰 입회를 많이 하시면서 경찰서 조사를 어려워하는 형사사건 당사자들에게 신뢰를 쌓았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셨다. 비슷한 맥락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통해 현장에서 새로운 의뢰인을 만날 수도 있음을 강조하셨다. 로스쿨 시대가 배출하고자 하는 변호사 상을 잘 정리해주신 듯싶다.

  이 변호사님은 사건 선임이 문제이지 사건 처리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역설하셨다. 새로운 사건이 주어지면 책, 동료, 선배를 통해 공부하면 된다는 것이다. 학교 공부가 현장에서의 활용과 다를 수가 있고, 배운 것이 바뀌는 경우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세상 모든 공부는 무상(無常)함을 빗겨나갈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이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행복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풀이해본다.


<6월 1일 김현 변호사님>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님은 강연 모두에 법률시장 개방의 개념을 명확히 설명해주셨다. 김 회장님은 영국 로펌이 전세계 법률시장을 장악한 것은 고객에 대한 완벽한 서비스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서비스 정신만이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 로펌이 갖춰야 할 요건이라고 역설하셨다. 세계화 담론이 요란하지만 진정한 세계시민이란 자기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한국 변호사는 한국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21세기가 다중심성의 사회가 되었다고 보기는 조심스럽지만 역사상 세계는 어느 하나의 가치와 문화로 통일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편성의 영역과 특수성의 영역이 저마다 충실하게 확장되는 형국이다. 법률시장 개방에 응수하는 우리의 자세도 보편적인 기준을 충족하려고 애쓰면서도 특수성에 대한 고민도 이어가야 한다.

  법률시장 개방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언급되는 독일의 경우에서 곱씹어볼 점이 많았다. 독일은 상위 10대 로펌 중 순수 독일 로펌은 2개만 남았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이면서 변호사의 공공적 (profession) 측면을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었으나 사업가적(business) 측면이 중요시 되는 영미 로펌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시장이 잠식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시간당 청구(time charge)방식이 채택되면서 변호사 비용이 상승했고 변호사 간의 수입격차가 벌어졌다고 한다. 법률시장 개방은 국민의 법률서비스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데 주안점이 있지 반드시 법률서비스 부담을 낮추는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법률시장의 개방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좀 더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더 행복해진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다. 우리 변호사법 제1조에서 규정하듯이 한국 역시 독일 못지않게 변호사의 공익적 측면을 강조한다. 사적 측면을 보강하면서도 공적 측면에 대한 기여를 견지하는 변호사상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김 회장님께서는 국제화 시대에 국내 변호사들이 대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대형화 전략보다 더 방점을 두고 추구해야할 목표라는 말씀에 동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는 회원 변호사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전공별 커뮤니티를 운영한다고 귀띔해주셨다. 이를 보며 이제 우리 사회는 평생에 걸친 지적 훈련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했다. 김 회장님은 해상법 국내 2호 박사이시다. 국내에서 해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로펌의 대표변호사이기도 하시다. 김 회장님은 한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확산되어 전공분야가 넓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가령 해상과 금융, 해상과 건설이 연계되어 이해되는 것이다. 

  김 회장님께서는 지금 당장 전공분야를 정하고 전공 법과목을 많이 들을 것을 조언해주셨다. 개인적으로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천연기념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반년 전에 헌법재판소 경내에 있는 백송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사고의 틀이 넓어진 경험이 있다. 어떤 문화유산에서 인공미를 느낄 때 그 소재까지 헤아린다면 좀 더 복합적인 감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화유산의 모태가 되는 자연유산을 도두보는 혜안을 갖추는 셈이다. “옛날 문화재의 개념이 점이었다면 이제 점에서 면으로, 면에서 공간으로 확대”된다는 이인규 문화재위원장님의 말씀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화유산 감상이 넓어질수록 깊어지듯이 세상 모든 공부가 마찬가지다. 짐 콜린스의 『Built to Last』에서는 비전 기업들은 이상과 이익의 중간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이상과 높은 이익을 동시에 추구했다고 평가했다. 아마도 비전을 가진 변호사의 길도 이와 같으리라.


이 과목의 마지막 과제물은 미래의 법률가로서의 삶을 설계하는 <나는 이렇게 산다>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들의 잔치가 벌어졌지요. 인격 없는 지식이나 지식 없는 인격이 아니라 인격 있는 지식, 지식 있는 인격처럼 지성과 덕성을 결합해 앎과 삶의 숙명적인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 제가 그리는 삶의 모습인데 얼마나 실천에 옮길 수 있을는지요. 여하간 마지막 과제물의 도입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설마 이 잡글들을 다 읽으신 분이야 없겠지만 한 꼭지라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꾸벅

“저는 삶은 한 번 뿐이라고 믿습니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라는 명제를 지지합니다. 그래서 한 번 밖에 없는 생을 가능한 한 옳고 아름답게, 착하고 재미나게 살고자 합니다. 안연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는 자라면 또한 그와 같아질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임금이나 자신이나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성인이 되고, 안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이 위대한 문장은 “터럭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율곡 이이 선생의 자경문에도 계승됩니다. 저 또한 그 호기로움을 본받아 목표로 삼습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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