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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6 學如不及 猶恐失之하는 제자

이번 학기를 마치면서 “배움은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고, 이미 배운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學如不及 猶恐失之)”라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미욱한 제자가 교수님의 강의에 보답하고픈 마음에 꺼내든 구절이다. 학기 내내 내 능력이 모자라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할까 전전긍긍했지만 이제 학기를 마치며 그렇게 애태우며 배운 것을 너무 일찍 잊어먹지 않도록, 기왕이면 생활 속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정약용 선생은 猶恐失之를 『논어고금주』에서 嚮道而行 如有重寶在前 爲他人所先獲 此之謂惟恐失之라고 풀이하셨다. 기초한문을 수강한 학생으로서 용기를 내보자면 “도를 향해 가는데 마치 귀중한 보배가 앞에 있어 다른 사람이 먼저 얻어 가는 바를 두렵게 여기는 것이니, 이를 일러 惟恐失之라고 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싶다. 爲는 ‘생각하다’로 보았는데 여기서는 두렵게 여긴다, 조마조마하게 생각한다 정도로 의역을 하면 대강 이런 뜻이 나온다.


정리해보면 學如不及은 배울 때는 능력이 모자라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정도로 볼 수 있다. 猶恐失之의 경우 통설은 그렇게 애태우면서 배운 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잘 체화시키라는 뜻이다.  猶恐失之는 배운 것을 온축해내는 복습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정이천 선생은 “오히려 잃을까 두려워하여 그대로 지나칠 수 없으니, 잠시 내일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猶恐失之 不得放過 才說姑待明日 更不可也)”라고 주석을 달았다.


반면에 정약용 선생처럼 읽는다면 견선여갈(見善如渴)과 비슷한 맥락에서 배움도 목마를 때 물을 본 듯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기야 착한 일도 그렇지만 배움이라는 것도 남에게 양보하기보다는 먼저 달려가야 할 것일 테니 말이다. 정약용 선생의 견해는 부지불식간에 놓치고 있는 진리가 없나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고 혹여 숨겨진 가르침이 있거든 귀한 보석을 만난 듯 내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박세당 선생의 『사변록』에는 “학문을 할 때에는 부지런히 하되, 항상 부족한 것같이 하며, 오히려 잃어버릴까 두려워해야 하는데, 하물며 자기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 얻음이 있겠는가”라고 풀이하면서도 정이천의 주석을 인용하되 “이같이 하여도 오히려 얻지 못할까 근심한다(又云如此猶恐不獲)”라고 의역을 했다. 정이천이 내일로 미루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얻지 못할 것을 염려하듯이 공부하라는 뜻으로 본 모양이다. 주희의 주석과는 사뭇 다른 뜻이라 “앞뒤 말이 조금 같지 않는 바가 있다(前後說 微有不同)”라며 의문을 표했다.


동양고전연구회에서 낸 『논어』 번역서에서는 猶恐失之에 대한 정약용 선생의 견해를 “이미 배운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가르침을 놓칠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뜻이 와 닿지 않는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놓칠까 걱정하는 것은 이미 學如不及에 내포되어 있는 개념 같기도 하거니와 앞서 언급한 정약용 선생의 비유에서 그런 내용이 선뜻 도출되지도 않는 듯싶다.


물론 여기서의 ‘가르침을 놓친다’는 의미를 學如不及에서는 강의 진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개인적인 문제로 보고 猶恐失之에서는 여러 학생들 가운데 쳐져서 체득하지 못한다라고 좀 나눠볼 소지는 있다. 그런데 스승의 가르침은 우수한 제자 몇 명이 독차지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그런 식의 경쟁으로 묘사하는 건 어색하다. 역시나 내가 봤던 대로 진흙 속의 진주와 같은 깨우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보자 뭐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하간 學如不及 猶恐失之하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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