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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9 고대 교수님들의 시국선언을 읽고 2

제가 몸담고 있는 고대 경영 B반 클럽에서 <고려대는 시국 선언 안 하나요>라는 익명게시판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인터넷 실명제의 확대는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만, 제 자신이 익게를 쓰는 건 참 어색하네요. 다만 실명게시판에 글을 쓰고 나면 댓글을 실명으로 다는 게 부담스러우신지 서로 활발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단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자주 마주치는 선후배 나 동기 사이에 너무 얼굴 붉히며 논쟁하는 거 꺼려지는 일일 테니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익게는 그 나름의 효용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본래 제 이름 걸고 (남들이 보기에) 편파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에 크게 부담 갖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제 꽤 높은 고학번 선배가 된 점을 악용(?)해서 실명으로 글을 남겨봤습니다. 시의성이 중요한 잡글 같아 부랴부랴 끼적거려서 내용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어제 교수님들의 시국선언이 나왔더군요. 아무리 먹고 살 걱정이 덜한 교수님들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 겁니다. 대통령의 모교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한다는 게 얼마나 머뭇거려지는 일인지 익히 짐작하고 남습니다. 경영대 교수님이 한 분도 안 계신 것도 그런 연유겠지요. 시국선언문의 세세한 문구까지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정부의 책임마저 외면하는 교수님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여기저기서 용기 내서 대통령을 비판했는데도 듣는 시늉조차 잘 보이지 않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소리나 날아오니 그럭저럭 전진해왔던 지난 민주화 20년이 흔들린다고 느꼈습니다.


선출된 권력은 정해진 기간 동안 자신의 국정 운영 철학을 구현할 권한을 위임 받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한계나 금도가 있어야겠지요. 이 정부 들어 기본권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자유권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고, 그간 정부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롭던 권력기관들이 다시 정권의 사유물로 전락하는 건 아니냐는 우려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하네요. 대통령을 넘치도록, 어떤 때는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욕할 자유를 만끽하던 국민이 작금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여기는 건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동’과 ‘세뇌’를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런 단어는 그 발설자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입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자기 머리로 생각하며 움직이는 모습은 삶에서 작은 부분이니까요. 날선 표현은 마지막까지 아꼈다가 쓰시는 게 좋겠네요. 그 논리를 그대로 따와서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선동과 부자들에게 감세하면 서민이 혜택을 입는다는 세뇌에 사로잡힌 분들이 적잖았다고 공박하는 건 참 쉬운 일입니다. 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선동과 세뇌가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의 선동과 세뇌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걸 굳이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특별히 공부한 적은 없지만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의 첫 정부였던 노태우 정부는 여전히 공안통치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두환의 제5공화국이나 유신독재의 제4공화국에서 나타났던 폭압성보다 그 정도가 약해졌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노태우 정부가 너그러웠기 때문이라기보다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말미암아 군사정부의 파시즘 색채를 절반 정도 탈색시키는데 성공한 것이죠. 집권자의 절제를 기대하는 것보다 민주화 세력의 견제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음을 방증합니다.


여하간 군사반란의 수괴도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거스르지는 않은 셈입니다. 그 이후 들어선 정부들은 저마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적 자유를 신장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역시 지금 위치에서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시대적 소명을 수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지난 정부를 극단적으로 폄훼한 분들이니 더더욱 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정부는 앞 정부들의 치적을 이어받아 늘어난 자유가 경제적 약자들에게까지, 지금 고통을 겪는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넓어지도록 애써주길 희망합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경제적 민주주의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는 보수나 진보 같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우리 모두의 바람 아닙니까? 방법론은 엇갈리더라도 이 대의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데 이 정부가 그 대의를 이따금 망각한 듯이 행동하셔서 아슬아슬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살리겠다는 경제는 제가 기억하기로 국민 모두의 경제였습니다. 지난 정부들에서 모자랐던 점을 채워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바라는 시민의 마음이 그렇게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 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더 나은 미래를 더듬어야 할 분들이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못한다고 비판받는 모습이 영 안쓰럽네요.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크고 무거운 주제이겠지만, 그 엄숙주의를 좀 줄이고 서로가 그리는 민주주의의 최소 기준 혹은 핵심을 논의해봅시다.


이 와중에 4대강 정비사업 예산은 22조 2000억 원으로 늘었군요. 지난해 12월 발표했던 13조9000억 원에 비해 60%가 늘어난 금액입니다. 일전에 대운하 찬성측이 대운하 사업비 예상액으로 14조에서 18억 정도를 제시하셨는데 이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입니다. 지금 국민과의 소통이 안 된다고 아우성인 판국에 청와대는 불통(不通)이란 무엇인가 온몸으로 증명하고 계시네요. 정부 여당은 국민에게 마음을 열라고 윽박지르기 전에 스스로의 귀부터 먼저 여시길 진심으로 건의합니다. 그게 공복(公僕)의 자세입니다. 권력은 유한합니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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