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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수험생

잡록 2010.05.05 21:36 |

나는 시험보다 교육에 주안점을 둔 것에 법학전문대학원의 대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고급화될수록 교육과 상충관계가 된다. 모든 가치기준이 수험적합성에 맞춰지면서 법과대학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경험을 반추해보면 알 수 있다. 시험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교육을 향한 노력도 평가하겠다는 명분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닌 다방면의 교육으로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한 만큼 변호사시험은 의사국가고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의사국가고시의 합격률은 2010년 92.9%, 2009년 93.6%였다. 높은 합격률에도 별다른 시비가 없는 것은 의대 교육과정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경쟁을 설계해야 한다. 물론 경쟁이 늘어난다고 해서 경쟁의 강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경쟁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험과 교육의 적절한 배합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하간 나는 ‘시험보다는 교육’이라는 법학전문대학원의 표어에 끌렸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 잘게 나눠진 시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내가 로스쿨에 진학한 까닭은 행복하게 공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수험생보다는 학생으로 살고 싶다. 수험생과 학생을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험생이 시험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라면 학생은 교육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한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의 저자가 독일의 쿠벤 김나지움의 교장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사고의 깊이와 인성이 고양되지 않은 지식인을 키우는 교육을 가장 경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곱씹을 만한 언설이다.


고령화 시대에는 젊은이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한다. 이제 극소수의 승자만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잠재성과 소질을 계발하도록 노력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인간을 생각하는 경쟁이 가능할까 막막하기는 하지만 경쟁이 심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교육 현장 등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안을 계속 궁리하고 싶다.


일전에 김우창 선생님은 <자기가 선택하는 삶>이라는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젊은 시절이 없다고 탄식하셨다. 내면적 의미의 추구와 외면적 가치에의 순응 사이에서 고민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도 자기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삶을 성찰할 여유가 없다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을 도모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에 몰두하기 십상이다. 배움이 지속가능하려면 책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뛰어야 한다.


학생이 인격 도야와 자기 수양에 바탕을 두고 공부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나 혼자만의 즐거움에서 그칠 수 없다. 연못가에서 새와 짐승을 바라보며 즐기던 양혜왕이 맹자에게 현자도 이런 놀이를 즐기느냐고 물었다.


맹자는 “현자라야 이런 것을 즐겨한다(賢者而後樂此)”라고 답한다. 현자는 여럿이 함께 즐거워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공직자의 자세쯤으로 좁게 해석하기보다는 모든 배우는 이의 덕목으로 삼아봄직하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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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규범형인간 2010.05.06 13:3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고의 깊이와 인성을 갖춘 사람을 입시에서 일단 거른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기엔 너무 학벌만 봤나;;)

    또 3년이라는 시간동안 수백, 수천개의 법조문과 학설과 판례 등등을 '교육'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교육'이 된 사람과 '교육'이 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

    나도 내가 수험생이 아닌 학생이라고는 생각하는데
    그 배움의 형태가 시험의 연속이 되는 것에 대해 별 거부감이 없다고 할까.. 내지는 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공부방법이라고 생각한다랄까..

    네 소신이 강하게 묻어나는 글이어서 허투루 답변쓰기가 어렵소.
    두고두고 얘기해보자꾸나^^
    (...라기엔 기말고사 그리 멀지 않았다네ㅎㅎ)

    • 익구 2010.05.24 01:48 Address Modify/Delete

      늘 좋은 말씀 고마워. 수험생과 학생이 크게 배치되는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좋은 학생이 훌륭한 수험생도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취지이기도 할 테고 말이야. 내가 학생에 방점을 찍을 때 이것이 단지 내가 대비해야 할 시험들에 소홀하겠다는 의미보다는 수험 공부만으로 채우기 힘든 배움의 기쁨을 좀 더 찾아보겠다는 정도로 정리하도록 할게.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가 있다니 나는 참 복이 많은 녀석인 듯.^^

  2. 홍군 2010.05.17 13:3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로스쿨도 그렇고 의전원도 그렇고, MBA가 그러하듯이 아무래도 '전문대학원'이라는 어감상 직능인(technician)를 육성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 같아. 이 곳을 수료한 이라면 '법 적용에 능한' 인물이라고 기대하기가 쉬울 것 같고. 아무래도 '교육'이나 '학습'에 초점을 맞춘 기관이라면 일반법학대학원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듯도 하고.

    '법조인'과 '법학자'의 갈림길(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에서의 균형잡기야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마는, 사회에서 기대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대되는 로스쿨 학생으로서의 정체성도 생각해볼만 한 듯. 시험이냐 교육이냐의 갈림도 있을 테고, 교육을 다시 나누어 기술이냐 진의냐의 작은 갈림도 있을 테고.

    경영학도 출신으로 전공에 대한 나름의 애정과 자부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이라기보다는 '기능'의 이미지가 강하고 실제로 그렇게 기대되는 사실을 요새 몸으로 느끼고 있는 터라..

    • 익구 2010.05.24 01:49 Address Modify/Delete

      응 내가 좀 욕심을 부리기는 했어. 전문대학원이 일정 부분 직업학교의 성격을 띠는 것은 사실이고 거기에서 일반대학원에서나 실현 가능한 학생을 지향하는 건 다소 모순이 생길 수 있으니까. 대학 새내기 때 경영학만 공부하면 직능인에 머무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이따금 생각나는데... 그간 (부정적 의미의) 기능인(technician)을 면하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기능인조차 되지 못하는 허술한 삶을 산 것은 아닐까 반성이 돼. 학부나 대학원이나 객관적으로 볼 때 빵을 위한 학문을 택했으면서도 끊임없이 빵 이외의 것을 갈구하는 자세 자체가 나쁠 것은 없지만... 그것이 빵을 원하면서도 빵조차 건사하지 못할 사람의 변명이라면 민망하겠지. 좀 더 생각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