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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5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 2

글 말미에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드라마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으나 혹시 미리 짐작하시게 만들 수 있으니 유념해주세요.


정이현의 동명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주인공 오은수(최강희 분)는 양다리를 넘어 세다리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결혼 상대를 물색하려는 궁여지책일 수도 있겠다는데 생각이 미치니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늘날 연애 결혼이 일반화되면서 동반자적 관계, 일부일처제를 내면화한 부부가 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혼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충동적 이혼을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2008년 들어 이혼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이혼을 다시 고려해 보는 기회를 부여하는 이혼숙려제도의 기간을 늘려 도입했다. 이는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대해 합의하지 않은 경우 협의이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성숙한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적잖다. 이혼숙려제도는 개인적인 행복이나 독자적인 인격을 국가가 나서서 억압할 소지가 크다. 굳이 나라가 할 일을 찾자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일 공산이 큰 이혼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 봄직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결혼을 순수한 사랑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결혼의 문제는 대개 제도상의 결함으로 말미암는다고 봤다. 남자에게 결혼은 생활양식이지만 여자에게는 운명이라고 주장하며 결혼이 여자의 경제주권을 확보하는 기능을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결혼을 계기로 남녀 관계에서 여성의 수동화, 예속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을 염려했다. 또한 남편과 아이들의 굴레 안에서 자신의 자주성을 잃어버리고 권태에 시달리는 여성의 실태에 좀 더 주안점을 두었다. 그람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독립성과 부부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여성이 모성을 발현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기 영역을 마련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고 봤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스스로 원해서 간통을 했다면, 거기에는 자유의 한 단면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남녀평등을 확립하는 것이 간통을 사라지게 하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고 주창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결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행복한 삶을 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근본적 방책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혼자서도 윤택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면 이성 사이의 사랑이나 결혼이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고 원만하게 유지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요즘 법과 제도의 변화는 가부장제의 약화를 초래했다. 1990년대 들어 남녀차별을 시정하고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입법이 잇따랐다. 여성발전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하여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법도 제정됐다. 호주제와 제대군인가산점제도에 대한 위헌결정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우리 법 제도에는 아직 주부의 가사활동을 폄하하거나 여성의 사회활동을 방해하는 성차별 조항이 남아 있다. 국민·공무원·군인 연금법에서 유족연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 재혼하면 그 권리가 소멸한다고 규정한 것과 재산 등록 대상에서 '출가한 여자'는 제외시키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등이 그 사례다. 맥락은 다르지만 강간의 피해자를 여자로 한정해 동성 사이의 강간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 간의 획일적 성역할을 법제화한다며 피해자를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미비점을 메우기 위한 입법은 계속될 전망이다. 법조문상의 형식적 문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성역할을 해체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눅여나가는 장치로서 법의 역할이 촉구된다.


고종석의 『사십세』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야합에 의해 태어난 자식, 첩의 자식이라고 명명한다. 사생아라는 처지를 자괴하면서 가족과 부인에게 무책임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하다. 소설의 핵심 주제는 아니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 관계가 자식의 인격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불륜은 배우자의 피해 뿐만 아니라 자식의 고통을 야기하기 마련임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축첩과 같은 지속적인 간통으로 형성된 부자관계는 위태로웠고 가족 관계는 그다지 화목하지 못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자신의 육욕을 충족하려 했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결혼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외도를 저질렀다.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했음은 물론이고 자식들에게도 갈등의 씨앗을 남긴 폐해가 크다. 이처럼 간통 행위는 혼인 외 자녀 문제나 가족의 유기 문제 등을 낳는다. 형법 제241조는 법률상 혼인을 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자와 성관계를 가지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대부분 간통죄를 형사처벌하지 않는 대신 민사상 배상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1990년 김양균 헌법재판관이 간통죄에 대한 합헌결정에 반대하며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윤리 도덕을 지키는 주요 동기가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윤리의식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제시한 의견을 경청할 만하다. 간통한 배우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입법화 한다는 전제조건 아래 간통죄 폐지를 논의해 볼만 하다.


간통이 위헌이든 합헌이든 그것이 나쁜 행위이고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은 또렷하다. 간통죄를 세분화하고 중벌 규정을 완화하는 대체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 접근을 해볼 수 있다. 다만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양육비 지급에 관한 강제 조항을 보완하는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소설에서는 서자인 주인공이 아버지의 호적에 올랐다는 내용이 있는데 새로 시행되는 가족관계부는 다양한 가정 모습을 보듬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맞을지도 모른다. 만프레트 타이젠의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5천 종이 넘는 포유류 가운데 평생 같은 짝과 더불어 지내는 동물은 비버와 수달 등 약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섹스의 진화』에서는 대부분 포유동물의 새끼들은 젖을 떼자마자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는데 반해 인간의 아이는 혼자 먹고 살 수 있으려면 훨씬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성이 배란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지 남성과 성교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남성이 가족의 둥지에 머무르며 아이를 함께 양육하게 되고 이것이 일부일처제로 진화한 것이라는 주장이 흥미롭다.


현재의 결혼제도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잠정적으로 합의된 산물이라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점은 기꺼이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인간이 연애 호르몬에 의해 전적으로 조종 당하는 존재가 아닌 한 혼인서약을 나눈 배우자에 대한 신의와 존중은 봉건윤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권장할 덕목이다. 한스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에서 재벌의 아내 마리안네는 작가 베르톨트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훌쩍 떠나버린다. 일견 지위와 명예를 버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해방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그러나 이는 소설적 구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거꾸로 마리안네가 가난한 남편을 버리고 부유한 남자에게 마음이 동했다면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남을 해쳐가며 탐닉하는 사랑에는 삼감이 필요하다. 내 욕망에 앞서 배우자를 배려하고 자녀가 받을 상처를 생각한다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품어야 할 미덕이다.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수 없다면 적절한 시기에 헤어질 수 있는 시대다. 그것이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앞으로도 개인의 선택과 다양한 애정관을 수용하도록 법제도가 개편되어야 한다. 법이 상당부분 비켜서야 할 것이다. 법이 물러난 자리에 사랑이 다 들어차기보다는 여백을 남겨둬야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무한하거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욕망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는 결혼제도를 더듬기는 어렵다. 박현욱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한다는 아찔한 상상력을 선보였다. 비독점적 다자연애(Polyamory)라고 멋지게 이름지어진 이러한 시도들을 우리는 어디까지 수긍할 수 있을까? 독점은 대개 나쁘지만 한 사람을 독점하려는 노력은 그래도 애틋하다. 일부일처제를 건사해왔던 정성들을 퉁명스럽게 내치지 못하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결혼을 무덤이라고 투덜거리면서 내심 근사한 후원으로 가꾸려고 무진 애쓰는 사람들을 두둔한다. 두 남자를 사랑한 아내는 끝내 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는 살면서 임자(?) 없는 매력적인 여남(女男)을 얼마나 많이 만나는가?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오은수는 한 사람을 선택하려고 고심하는 듯싶다. 은수는 세 남자와의 줄다리기 끝에 가장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꾸린다고 여겨지는 김영수와 결혼을 계획한다. 그녀는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반듯한 세계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였다”라며 자신의 결정을 치장하지만, “내 입으로 결혼이라는 말을 뱉은 뒤, 그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역설이 거기 있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은수가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거나 팔자를 고치려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득 보부아르의 언설이 떠오른다. 우리 둘레의 은수가 계산할 건 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 나누는 사랑에 충실하길 바란다. - [無棄]


<소설 속 한 구절>
세상의 숨겨진 이치들을 이미 다 꿰뚫어 버린 것 같지만 실상 곰곰이 따져보면 내가 몸으로 직접 겪어낸 것은 별로 없었다. 아는 것과 겪는 것 사이에는 분명 엄청난 간격이 가로놓여 있다.
-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中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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