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11 굿바이 정동영!
  2. 2009.03.24 돌아올 때는 말없이

굿바이 정동영!

사회 2009.04.11 04:10 |

3월 24일에 썼던 <정동영과 617만 표>라는 잡글인데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전주 덕진 국회의원 재선거 무소속 출마 선언을 접하고 글 후반부에 바뀐 사정을 반영했습니다.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 손을 놓을 수 있어야 대장부다(縣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했을 때 정동영 당의장이 사퇴 회견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아무런 미련 없이 깨끗하게 물러나겠다는 비유다. 나는 이 회견을 접하며 그가 이 말의 정신을 새긴다면 다시 돌아오더라도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정동영씨는 7·26 재보선 정국에서 서울 성북을 출마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고사했다. 혹자는 질 것이 뻔한 선거에서 몸을 사렸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때의 삼감이 크게 험담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7년 정동영씨는 원내 제1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정동영 후보의 재능이 아무리 커다란들 그가 대선 과정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대선 참패 후에 정동영 후보와 그 둘레 사람들이 자책하는 모습을 도무지 볼 수 없었다. 이명박 후보에게 530만 표 차이로 졌지만 그에게 소중한 한 표를 건넨 617만 명의 지지자가 존재했다. 그들을 향해 진솔하게 사죄할 기회를 놓친 듯싶어 안타깝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독특한 관행 가운데 하나가 패자의 승복 연설(concession speech)이다. 패자의 연설이 먼저 있고 나서 비로소 승자가 연설하는 재미난 문화다. 1860년 링컨에게 패배한 스티븐 더글러스가 “당파심이 애국심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Partisan feeling must yield to patriotism)”라고 말한 것을 시초로 1896년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때부터는 패배를 인정하는 전보를 보냈고, 1952년 스티븐슨 때부터는 TV 방영이 관례로 굳어졌다고 한다.


박빙의 승부와 법정 공방을 벌였던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고통스런 패배를 기품 있는 승복으로 승화시킨 명문을 직접 작성했다. 가슴 아픈 패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갈등을 치유하자고 읊조리는 패자들의 연설은 승자의 환희보다 좀 더 기억에 남는다. 지고 난 다음날 아침이 괴로울 때 고어의 연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때마다 우리에게도 이런 대표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기 일쑤다.


이듬해 펼쳐진 총선에서 정동영씨가 또 다시 쓴잔을 들이킨 것도 실패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난 자리일 때 애틋함을 남기지 못했다면 대중 정치인으로서 큰 실책이다. 국민들은 정동영씨가 머물던 소중함을 깨달을 여유가 없었고, 그의 빈자리를 크게 느낄 짬도 없었다. 절벽 위를 오르려는 안간힘만 느꼈다면 실례일까.


고어는 “나는 연방대법원 결정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인다. 앞으로 미국인의 단합과 민주주의의 역량 강화를 위해 양보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에는 무수한 논쟁이 오가지만 일단 결과가 나오면 승자나 패자나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화합의 정신”이며, “나를 지지해준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나도 실망했다. 하지만 우리의 실망감은 조국에 대한 애정으로 극복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전투가 끝난 지금 문득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아무리 패배의 상처가 쓰라리더라도 패배 역시 승리만큼이나 인간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영광을 가져오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no matter how hard the loss, defeat might serve as well as victory to shape the soul and let the glory out)”라는 대목에 이르면 가슴이 짠하다. 이명박 후보를 차마 찍지 못했던 유권자들 중에 가장 큰 수의 지지를 받았던 정동영 후보가 상심에 빠진 유권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정동영씨가 오는 4·29 재보선에서 전주 덕진 재선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끝내 정동영씨의 공천을 거부함으로써 제1야당의 품위를 가까스로 건사했다.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려는 선거 구도를 유지하면서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민주당으로서는 밑천이 동난 정동영이라는 카드를 조기에 버림으로써 차기 대선을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는 전화위복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정동영씨에게 명운을 걸어야 하는 정당이라면 사실 수권정당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정동영씨가 그저 금배지가 욕심이 나서 부랴부랴 뛰어든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선택이 사려 깊지 못했음은 또렷하다. 충분히 예측 가능했을 당내 분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파하겠다는 그의 의지 앞에 어안이 벙벙하다. 자신을 대선 후보로 올려주었던 정당을 박차고 나가면서 그 정당에 곧 돌아오겠다고 읊조리는 광경은 황당하다. 그가 금배지를 손에 쥐기도 전에 금빛은 바랬다. 녹이 슬었다. 호남당을 극복하려는 민주당의 안간힘에 전주 유권자들이 적잖이 화답한다면 이 난장판 속에서도 얻는 바가 있으리라.


정동영씨가 몸 담았던 정당이 비교적 힘이 셌을 때도 그는 한나라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하물며 지금처럼 힘의 세기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그가 원내에 진입한들 무슨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특유의 비장한 어조로 호소하지만 별 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자신의 귀환을 환영하는 열렬한 지지자들이 지지자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한다면 비극이다. 당신만큼 아파했을 617만 명의 사표를 두 번 죽이는 셈이다.


지난 4월 8일 치러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범야권이 음으로 양으로 지지한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교육감은 정당 공천과는 관계없지만 향후 선거에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앞으로의 각종 선거도 이런 단일화 및 선거연합을 통하지 않고서는 거대 여당을 이기기 난망할 것이다. 그런 판단 아래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범야권은 모두 다 절반의 패배주의를 생활화할 필요가 있다. 현 정치 지형을 엄정히 성찰하고 시운에 따라 힘을 합치고 양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나마 몸집이 큰 행위자인 민주당은 어떤 식으로는 내홍을 수습해야 한다.


정동영씨의 그릇이 그만큼인 것을 너무 애석해할 필요는 없다. 재보선의 눈이 온통 정동영씨에게 쏠린 것은 비생산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선보였던 가혹하고 어지러운 통치를 심판하려는 여론이 묻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동영씨에게 보내는 과도한 관심을 거둘 때다. 그저 똑똑하고 말솜씨 좋은 아저씨가 고향에서 인기를 누리는 정다운 모습 정도로 받아들이자. 명망 있는 야당 지도자가 그 전국적 위치를 벗어던지고 지역의 일꾼으로 헌신하겠다니 어찌 아니 아름다운가. 이제 그만 그를 보내주자. 굿바이 정동영! - [無棄]

Posted by 익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돌아올 때는 말없이

사회 2009.03.24 03:44 |

어느 해라고 덜했겠냐만 내가 기억하는 2006년에는 추한 광경이 많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은 7·26 재보선 서울 송파갑 공천에 기자 성 접대와 세금 체납 전력이 있는 정인봉씨를 공천했다가 취소했다. 부랴부랴 새로 공천한 사람은 놀랍게도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했던 맹형규 전 의원이었다. 송파갑 보선은 맹형규씨가 그해 1월 서울시장 경선에 참가할 때 배수진을 친다는 의미로 사퇴해 치러졌다. 비례대표 의원이 사퇴해 지역구 의원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의원직을 자진 사퇴한 후보자가 그 자리에 다시 출마한다는 것이 너무 볼썽사나웠다. 아무리 누구를 앉혀놔도 당선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어찌 이렇게 일말의 염치가 없을지 처량했다. 이번에 코레일 사장이 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성북을 공천을 신청한 것도 두고두고 기억할 사건이다.


2006년 3월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한바탕 소란을 피운 최연희 의원은 사건 발생한지 4개월 만에 스리슬쩍 공개행보를 재개했다. 2004년 탄핵 때 의사봉을 잡았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직이 마지막 공직이라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2006년 6월 한나라당에 복당해 상임고문을 맡기도 했다. 부인이 4억 원의 공천헌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자 “조만간 정치적 거취를 밝히겠다”고 말했던 김덕룡 의원은 “대선에서 할 일이 있다”며 말을 바꿨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저렇게 구차하지 못해 안달인 모습을 보니 내 자신도 두렵다. 나는 얼마만큼 멈춰야 할 때를 잘 잡아낼 수 있을까.


남명 조식이 “선비의 큰 절개는 오직 출처(出處) 하나에 달려있을 따름이다(士君子大節 唯在出處一事而已)”라고 강조하셨듯이 공인일수록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잘 헤아려야 한다. 기왕이면 자유의사로 이뤄지고, 가능하면 시대정신에 대한 승복이어야 가치가 빛난다. 은퇴를 선언했던 정치인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그리 우아하지 못하다. 2004년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텃밭인 서울 강남을 지역구를 스스로 포기해 아름다운 퇴장이라 칭송 받던 오세훈 전 의원이 5·31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뛰어들어 당선됐다. 달랑 4년만 금배지 맛을 본 초선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해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그다. 서울 강남 을에서 쉽게 재선의 길을 갈 수도 있었던 달콤한 유혹을 저버린 그에게 설레지 않았을 사람이 누가 있었으랴.


당시에도 이미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았으나 그는 시종일관 부인했다. 그러나 역시 권세가 좋긴 좋은 모양인지 몇 번의 권유를 마다하지 못하고 그는 헐레벌떡 돌아왔다. 오세훈씨는 “(불출마 선언으로) 호감을 얻었지만 이를 밑천으로 정치적 도약을 노릴 만큼 미련치 않다”던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는 서서히 잊혀지기보다 승리자의 영광을 택했다. 그가 환멸을 느끼며 떠났던 정치판이 많이 바뀌었다기보다 그가 더 바뀐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한나라당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네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기야 오세훈 시장 탓만 할 건 아니다. 정치인이 은퇴를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에서 패한 다음날 정권타도 투쟁을 선언하더니 1990년 전격적으로 3당 합당을 해버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2년 대선을 패배하고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가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씨는 불복하고 대선에 출마했고, 2002년 민주당 후보 경선 때도 음모론을 제기하며 탈당하는 등 어지러운 행보를 보였다.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선에 출마했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있다. 그가 요즘 간간이 보여주는 총기에도 불구하고 울림이 반감되는 이유가 지난날의 말 바꿈과 관련이 있을 게다.


2004년 총선 당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10선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비례대표 1번을 받아들던 김종필씨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산(西山)을 붉게 물들이며 떠나고 싶다”라는 노욕에 빠졌지만 그리 아름답지 못한 저녁놀이었다. 민망하게도 그의 아호는 운정(雲庭), 구름의 자유로움을 좋아해 지었다고 한다. “멈출 곳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 可以不殆)”라고 할 때 知止는 소극적 개념이 아닌 적극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갈 시간이다(it's time for me to go)”라고 연설을 마무리하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승복 연설에 군침만 흘릴 필요는 없다. 드물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 당선 영순위로 꼽히던 이원종 충북지사는 3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고 소속 정당을 탈당했다. “적절한 시기에 명예로운 퇴장은 오랜 소망이었다”며 “공을 이뤘으면 몸은 떠나는 것이 하늘의 도”라는 노자의 ‘공수신퇴천지도(功遂身退天之道)’라는 문구를 꺼내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은퇴하면 그림자를 남기지 말아야 하는 법”이라는 그 마음자리를 좇고 싶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먼저 사의를 표명했느냐는 질문에 “떠날 때는 말없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제 때 떠난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해도 좋으리라. 자신의 아름다운 퇴장을 자랑스레 말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57세의 이른 나이에 정계를 은퇴하며 “떠나야 할 때를 넘겨 머물기보다 남들이 머물라 할 때 떠나겠다”라고 말한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의 뒷모습은 얼마나 위풍당당했겠는가. 나는 공인들에게 얼른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게 아니다. 돌아오는 자들의 식언(食言) 릴레이가 식상하다는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떠날 때는 말없이’의 미덕보다는 ‘돌아올 때는 말없이’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돌아오는 사람은 이어지겠지만 그 멋쩍음을 미사여구로 분칠하지 말기 바란다. 물러났을 때의 그 견결한 마음을 실천하려면 말을 줄이고 더 많이 노력하느라 바쁘실 테니 말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