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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1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2)

俗人昭昭 我獨昏昏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어수룩하고,
俗人察察 我獨悶悶 세상 사람 모두 살피고 따지는데 나 홀로 답답합니다.
澹兮其若海 담담하구나, 마치 바다와 같이.
飂兮若無止 몰아치는구나, 마치 멈출 곳이 없는 듯이.
衆人皆有以 뭇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而我獨頑似鄙 나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럽게 보입니다.


『도덕경』 20장의 일부다. 내게는 여러모로 각별한 구절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온라인 필명(혹은 별명)을 만들어 썼을 때 아독혼민(我獨昏悶)이라고 지은 것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2003년 말 이래로 ‘새우범생’이라는 별칭을 쓴다). 고요히 흐르는 모양을 묘사한 담혜(澹兮)는 내가 스스로 지은 생애 최초의 호(號)이기도 했다. 『도덕경』이 본래 어려운 텍스트이기는 하지만 20장의 이 구절은 복잡한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모양이다. 오강남 선생님은 노자의 실존적 고독이 묻어나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노자도 여기서 자기의 이런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 사람 모두 희희 낙락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분명하고, 여유 있고, 쓸모 있고, 목적 의식이 투철하고 희망으로 가득한 것 같은데 자기 혼자 멍청한 것 같고, 맹맹한 것 같고, 촌스럽고, 답답하고 미욱하게 보이고, 빈털터리 같고, 정처없이 떠다니는 것 같고……. 하면서 자기의 ‘홀로임’을 슬픈 어조로, 그러나 담담하게 읊고 있다.
- 오강남 풀이, 『도덕경』, 현암사, 1995, 97쪽


왕필은 “무엇을 바라고 하고자 하는 바가 없으므로 어둡고 멍청한 것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둔하고 또 고루하다고 했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하상공은 “뭇사람들은 유위하는데 나 홀로 무위하여 세상의 일반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풀었다. 대체로 억지로 하려는 일이 없이 순리대로 살다보니 세속적 기준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노자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에 고독했다. 나는 평균적인 삶을 사는 분에게서 배우듯이 평균적인 삶을 살지 않은 분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노자는 초월적 발상을 통해 세상의 이분법을 극복하려 한다. 김진석 선생님은 ‘초월’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포월(匍越)’을 제시했다. 현실의 경험과 인식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둘레의 현실을 부둥켜안고 기어서 넘어가자는 말씀이다. 여하간 ‘포월’하며 ‘다른 삶’을 살고 싶다. ‘다른 삶’에 대한 열망 역시 또 하나의 목적이 되어 내 자신을 수단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삶’에 대한 과시는 또 하나의 지적 허영심이 아닐까? ‘다른 삶’을 꾀하는 것이 결국은 세속적 기준에 맞추려는 정성을 회피하는 면죄부는 아닐까?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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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612 2008.09.01 22: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나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럽게 보입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자신의 모습에 회의가 듭니다. 진위를 가릴 수가 없어 방황하네요. 외롭습니다.

    새우범생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많은 글 올려주세요. 위로가 됩니다.

    • 익구 2008.09.02 04: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인생이 부질없다고들 하지만 이는 남몰래 나쁜 짓, 못된 짓을 일삼고, 남을 헐뜯고 비방하면서 이루어낸 것이 부끄럽고 허망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덧없는 세상사에서 치열하고 재미나게 사는 모습마저 업신여기는 것은 아니겠죠. 노자께서 토로하신 고충이 정확히 무엇인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탐욕과 성냄을 걷어내고 고독마저 벗삼는 여유가 진짜 자유로운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듯싶어요. 저도 요즘 제 자신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모멸감이 들기도 하지만 외로움을 억지로 벗어나려 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외로움에 빠져 지내지도 않으려고요. 많이 웃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