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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설과 관련 현판

문화 2008. 12. 18. 21:23 |

이번 학기 교양한문 강의에서 염계(濂溪) 주돈이 선생의 애련설(愛蓮說)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애련설을 여러 번역본을 참조해 제 취향대로 번역하고 연꽃의 특성을 묘사한 부분은 약간의 주석을 달아보았습니다. 서울 시내 궁궐에는 애련설을 출전으로 삼아 현판을 지은 경우가 두 가지 있는데 번역문 말미에 관련 글과 사진을 부기했습니다.


<애련설(愛蓮說)>

수륙에 자라나는 초목의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수륙초목지화, 가애자심번.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다.
晉陶淵明獨愛菊.
진도연명독애국.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매우 사랑했다.
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
자이당래, 세인심애목단.


나는 연꽃이 진흙에서 나오지만 그것에 물들지 않고,
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여독애련지출어어니이불염,
* 予獨愛蓮之는 “나는 연꽃이 ~하는 점을 홀로 사랑한다”라고 해석해 可遠觀而不可褻玩焉까지 이어지는 연꽃의 특징을 나열한 뒤에 마지막으로 풀어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出於淤泥而不染은 군자가 세속과 타협해 더럽혀지지 않음을 비유한다.


맑은 잔물결에 씻기었지만 요염하지 않으며,
濯淸漣而不夭,
탁청련이불요,
* 맑은 내면을 가지고 있지만 겉을 꾸미지 않는다. 요염하지 않다(不夭)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치장하지 않는 행동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듯싶다. 겉은 단지 외모나 몸가짐을 가리키기보다 곡학아세하여 영달하지 않는 지조까지 포함한다. 바로 앞 出於淤泥而不染이 표상하는 태도와 비슷하게 되어 중복되는 감이 있다.


가운데는 비어있고 밖은 곧아,
中通外直,
중통외직,
* 잡된 생각이 없고 영묘하여 어둡지 않으며(虛靈不昧), 행동이 올곧다. 사욕이 없고 강직한 모습을 말한다.


덩굴지지 않고 가지를 뻗어내지 않으며,
不蔓不枝,
불만부지,
* 이익 때문에 편당(偏黨)을 지어 영달을 추구하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香遠益淸,
향원익청,
* 아름다운 덕이 멀리 알려진다. 명심보감에 “사향을 지녔으면 저절로 향기로운데 어찌 바람을 맞아 서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有麝自然香 何必當風立)?”라는 구절이 있는데 뜻이 상통한다.


우뚝하게 말쑥이 서 있어서,
亭亭淨植,
정정정식,
* 치우치지 않고 정결하게 바른 길을 걸어나가는 당당한 풍모.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는 것을 홀로 사랑한다.
可遠觀而不可褻玩焉.
가원관이불가설완언.
* 우러러 볼 수는 있어도 무례하게 대할 수 없는 위엄 있는 모습.


나는 말한다, “국화는 꽃 중의 은둔하는 자와 같다.
予謂, “菊, 花之隱逸者也.
여위, “국, 화지은일자야.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와 같다.
牧丹, 花之富貴者也.
목단, 화지부귀자야.


연꽃은 꽃 중의 군자와 같다.”
蓮, 花之君子者也.”
연, 화지군자자야.”


아! 국화에 대한 사랑은 도연명 이후에 들은 적이 드물다.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희! 국지애, 도후선유문.


연꽃에 대한 사랑은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자가 몇 사람인가?
蓮之愛, 同予者何人?
연지애, 동여자하인?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것이 마땅하다.
牧丹之愛, 宜乎衆矣.
목단지애, 의호중의.


<애련설 관련 현판>

전통 건축물의 이름이 걸려 있는 판을 현판(懸板)이라고 부릅니다. 현판에는 각 건축물의 쓰임새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궁궐 건축물에는 유교적 도덕관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유산을 감상할 때 그 현판에 담긴 뜻까지 살펴보면 선조들의 마음을 좀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네요. 현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문화재청에서 편집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이라는 세 권 짜리 책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 15년 기사에 “봄 정월에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았으며,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十五年 春正月 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는 말이 나옵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은 삶의 자세로 삼아봐도 좋겠네요. 정도전 선생도 『조선경국전』에서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지경에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이것이 아름다운 게 되는 것이다(儉而不至於陋 麗而不至於侈 斯爲美矣)”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이 우리 궁궐에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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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련정(愛蓮亭)입니다. 애련설 제목을 그대로 따왔습니다. 숙종 임금이 지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는 주돈이 선생의 애련설을 상당 부분 인용하면서 “나와 뜻이 같은 자는 오직 염계 선생 한 분뿐(與吾同志者 其惟濂溪一人而已乎)”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꽃도 좋지만 자신이 지탱할 만큼의 빗방울을 머금고 나면 미련 없이 비워내는 연잎의 모습도 닮고 싶습니다. 선의 아름다움과 간결미로는 한국 최고의 정자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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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있는 향원정(香遠亭)입니다. 향원익청(香遠益淸)에서 따왔습니다. 경회루가 사신을 접대하는 등의 공적 공간이라면 향원정은 휴식을 취하는 사적 공간으로서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향원정으로 이어지는 다리는 연꽃 향기에 취한다는 뜻으로 취향교(醉香橋)라고 합니다. 위에서 본 애련정이 사모지붕으로 사각형이라면 향원정은 육각형인 육모지붕입니다. 우리는 육각이나 팔각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향원정에는 중국풍이 살짝 느껴지기도 합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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