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말들의 풍경 19편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이 쓴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따온 제목인 듯하다. 고 선생님은 당신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낱말 열 개로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을 꼽았다. 김수영 시인은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다. 김수영은 그 수필에서 “그런 것(아름다운 말)을 아무리 많이 열거해 보았대야 개인적인 취미나 감상밖에는 되지 않고, 보편적인 언어미가 아닌 회고 미학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고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차피 개인에 따라 다른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가 설령 회고 미학에 그치면 어떠한가. 그렇게나마 모국어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노력이고 용기다. 서로의 아름다움이 섞이고 스밀 때 보편적인 언어미도 시나브로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저런 진통 끝에 내가 아름답게 여기는 우리말 열 개를 뽑아봤다. 개인적으로 한자어도 한국어에 마땅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고유어 혹은 토박이말로 한정했음을 밝힌다.


하나, 벗. 벗은 사랑만큼이나 파생되는 게 많은 말이다. 아니 오히려 품이 더 크다. 만남과 인연이며, 그리움과 설렘이며, 희노애락과 훼예포폄이 얼룩져서 한 사람의 삶을 빚어낸다. 『후한서』 송홍(宋弘) 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후한 광무제가 누이를 재혼시킬 사람을 물색하다가 송홍을 불러 “옛말에 지위가 높아지면 벗을 바꾸고, 재산이 생기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던데, 공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諺言貴易交, 富易妻, 人情乎?)?”라 물었다. 송홍은 “신이 듣기로 가난하고 천할 때의 벗은 잊지 말아야 하며,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으며 함께 고생했던 아내는 부귀한 뒤에는 호강시켜준다고 했습니다(臣聞貧賤之知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라고 말했다. 『삼국사기』 강수 열전에도 미천한 사람을 배필로 삼지 말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강수가 “옛사람의 말에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고 빈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천한 아내를 차마 버릴 수 없습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보통 여기서 조강지처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고 있지만 빈천지교도 두고두고 곱씹을만하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에서 영속성보다는 일시성이 두드러진 미래사회의 인간관계는 한 사람과 총체적인 관련을 맺기보다는 그 사람의 한 부분에만 관련을 맺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만나지도 않고 이해도 달리하는 친구들 대신에, 새로운 친구들을 탐색하는 사회적 발견의 냉혹한 과정”을 통해 효용가치가 없는 옛친구들은 빨리 버리거나 잊고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만한 새 친구를 찾아야한다는 그의 주장이 날카롭다. 그러나 그 탁견은 내 자신이 좀 더 진지한 유쾌함을 나눌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겠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나는 내 벗들과 『논어』에 나오는 구이경지(久而敬之)할 수 있기를 꿈꾼다. “오래되어도 여전히 공경한다”라고 해석하면 친해지더라도 존경심을 잃지 않고 범속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간이 흘렀다고 무심해지지도 않고, 세월이 지났다고 차갑게 식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다. “오래 사귈수록 공경하게 된다”라고 해석하면 오래 사귀어도 그 사람의 약점이 드러나기보다는 강점이 더욱 커진다는 뜻이다. 아니 어쩌면 그 약점과 한계마저 품을 수 있을 만큼 그릇이 커진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간에 벗과 관계맺음의 이상향으로 삼을만하다. 『명심보감』에서 “얼굴 아는 이야 천하에 가득하되, 마음 아는 이는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라는 구절이 있지만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요. 다 스스로 말미암을 뿐이다. 내 주위 사람은 다 착한 거 같다고 말씀하시던 어느 형이 생각난다. 선한 인연의 시작은 이런 자세부터다.


둘, 끼니. 중세어로 ‘끠’는 시간을 말하는 고유어였다고 한다. 지금은 ‘때’에 밀려 쓰이지 않지만 ‘같은 때’를 의미하는 ‘함께’라는 말과 ‘밥 때’를 의미하는 끼니, 끼에서 흔적이 남아 있다. 『사기(史記)』에 “임금 노릇을 하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는 말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6년 기사에서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부지런히 농사에 힘쓸 것을 하교하면서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라고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국민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근본(制民之産)이란 맹자의 경구를 교훈 삼아 어려운 서민경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기로서니 날도 좀 가리지 못하고 골프를 쳐서 국민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지도자들이 좀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전태일 열사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건 그 얼마나 인간적인가. 먼 훗날 캡슐 하나만 먹으면 끼니 해결이 되는 약품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밥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이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배곯는 사람에 가장 먼저 눈길을 보내고 손길을 건네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의 것이다”고 말씀하셨다지만 인생이 한번뿐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그 천국은 얼마나 허망한가. 빈곤 문제를 하나님에게 맡기는 건 비겁하다.


삼봉 정도전 선생은 “먹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큰 일이구나. 하루라도 먹지 않을 수 없고, 또 하루도 구차히 먹을 수 없다. 먹지 않으면 목숨을 해치고, 구차히 먹으면 의리를 해친다(食之於人 大矣哉 不可一日而無食 亦不可一日而苟食 無食則害性命 苟食則害義理)”고 말했다. 무척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시경』에서 “공짜밥을 먹지 않는다(不素餐兮)”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삼시 세 끼 밥값을 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늘 돌아볼 일이다. 군침 떨어지는 산해진미 앞에서 잠깐이나마 “먹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하여 먹으라”라는 키케로의 말도 떠올려보자. “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 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밥을 씹어야 하는/ 저 생의 본능이,/ 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 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라고 노래하는 이수익 시인의 「밥보다 더 큰 슬픔」을 찬찬히 읊조리면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 기쁨을 북돋우기 위해서든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든 부지런히 먹고 마셔야 한다. 『도덕경』은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운다(虛其心, 實其腹)”라고 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무지(Ignorance)가 아니다. 선의의 무심함을 발휘하는 넉넉함을 말한다. 생활을 간소하게 꾸리고, 헛된 욕심으로 간계를 꾸미지 않고, 제 영혼의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부러 배부른 돼지를 경멸하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숭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얼마든지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다.


셋, 차마. 차마 뒤에는 부정의 몸짓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 부정은 애틋하고 안쓰럽고 안타까워 감히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이것을 하라고 강권하는 사회보다는 이것만은 차마 할 수 없지 않느냐고 호소하는 사회가 좀 더 열려있고 낮은 사회가 아닐까 싶다. 차마 할 수 없는 일은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포지티브 시스템보다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나아가서 자유와 권리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우직한 사람의 어리석음이 세상을 바꾼다고도 하지만 그 우직함은 무언가를 기꺼이 하는데서 있다기보다는 차마 이것은 못하겠다는 데서 출발한다. 남이 모른다고 해서 몰래 나쁜 짓을 하면 결국에는 천벌을 받는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못된 짓 좀 할라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차마 이 짓거리는 못하겠다며 팽개치는 사람이 그립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늦게까지 제 자리를 지키는 바보들이 많아야 세상이 좀 더 넉넉해진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적어도 그 바보들에게 함부로 눈 흘기지 말자. 우리는 저마다 차마 못하는 구석은 하나씩 있게 마련이니까. 그것을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고 말해볼 수 있겠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남에게 모질게 굴지 못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품는 희망의 고갱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이태. 두 해라는 뜻의 이태에서 ‘이’는 원래 ‘읻’으로 둘이란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이틀이나 이듬해처럼 ‘읻해’에서 발음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자주 틀리는 맞춤법 가운데 ‘며칠’이 있다. 종전에 ‘몇일’과 ‘며칠’을 둘 다 쓰던 것이 1988년 새 한글맞춤법에서 ‘며칠’로 통일된 것이다. 한글맞춤법 제27항은 “둘 이상의 단어가 어울리거나 접두사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은 각각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고 규정하지만 [붙임2]에서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그 용례로 ‘며칠’을 들고 있다. ‘며칠’은 ‘몇-일(日)’로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질 형태소인 ‘몇’과 ‘일(日)’이 결합한 형태라면 [멷닐->면닐]로 발음되어야 하는데, 형식 형태소인 접미사나 어미, 조사가 결합하는 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ㅊ’ 받침이 내리 이어져 [며칠]로 발음된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몇 월(月)’의 경우 두 음절 사이에서 발음의 끊어짐 현상이 일어나서 ‘몇’이 [멷]으로 발음돼 [멷월->며둴]이 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틀도 어원이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 단어를 읻흘이나 잇흘로 적는다면 ‘흘’은 사흘, 나흘 등의 흘과 공통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읻, 잇’은 무슨 뜻의 형태소인지 알 수가 없다. 한자어 ‘이(二)’와 결부시키기도 어려운 것”이라니 알쏭달쏭하다. 요는 며칠, 몇일의 ‘일’이 한자어 ‘일(日)’에서 온 것인지 이틀, 사흘, 나흘의 ‘흘’에서 온 것인지 통일이 되지 않아서 이런 혼선이 생겼다. 날짜를 나타내는 단위 명사의 어원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자주 쓰는 언중의 입장에서 좀 섭섭한 일이다.


이태는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간이다. 이태라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다면 이 사람이 내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프로젝트형 인간관계에 치이는 시대에 이태를 숭상하는 내가 고지식하게 보이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태라는 시간은 관계가 소원해지는 심리적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가수 김동률의 2집 ‘希望’에 실려 있는 ‘2년 만에’라는 노래에서 이태 만에 돌아온 사람의 심정을 말한다. “2년 만에 다시 이렇게 돌아왔는데/ 이만큼만 기다리면 됐는데/ 곁에 없다는 게 그렇게 그대 힘들었나요/ 그럼 나는 쉬웠을까요”라면서 “생각이 잘 안 나요 마지막 모습이”라고 탄식한다. 세월이 빠르다지만 이태는 제법 긴 시간이다. 이태 정도 못 보고 이야기 나누지 않으면 어지간한 금란지계(金蘭之契)도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몇 십 년 만에 학창시절 동창을 찾아도 낯설지 않게 환담을 나눌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란이 있어 부득이 헤어진 게 아니라면 세파에 시달리느라 서로가 잊어버린 것이다. 미디어평론가 변정수 선생은 “인터넷은 사랑을 싣고?”라는 칼럼에서 “내내 친하게 잘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온다간다 말 한 마디 없이 실종되었던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이미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는 말에 조금 거부감이 들지만 내 자신이 이미 지금도 충분히 겪고 있는 일이다. 내 곁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겠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대개는 옳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이 늘어나서 어쩔 수 없이 소홀해지더라도 있을 때 잘했다면 서서히 잊히고 다시 재건할 수 있는 여지도 남길 수 있으리라. 게으른 주제에 미련이 많다.


다섯, 젊음. 젊음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나는 다짐을 남발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부담 없이 작심삼일할 수 있고 허영심에 들떠 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게 젊음이다. 이렇게 잉여적 행동을 만끽할 수 있는 게 젊음이기에 그 자체로 특권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는 사무엘 울만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공감한다. 각박한 세태에 묻어가면서도 짬짬이 옛 다짐을 기억하고, 어린아이처럼 즐길 수 있다면 젊음을 사수하지는 못해도 조금 천천히 잃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즐겨 보았던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노자 강의 한 토막이 떠오른다. 청춘의 가장 위대한 순간은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할 때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헌신할 때 평화가 온다는 그 말씀이 얼마나 가슴 뛰게 했던가. 색신(色身)은 늙어도 법신(法身)은 함부로 늙지 말자.


극작가 배삼식 선생님은 “제갈량의 오만”이라는 칼럼에서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유능해’질 것이고, 세상사에 묶여 닳고 닳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젊은이들이 잠깐이라도 그들의 ‘무능함’을 즐기며, 도도하고 오만하게 폼 잡을 여유를 우리 사회가 주기 바라는 것은 영 배부른 소리일까”라고 말한다. ‘유능 권하는 사회’에서 젊음은 너무 담백해지다 못해 메마르고 있는 건 아닐까. 삼고초려한 유비를 맞이하는 공명선생이 지은 시는 호방함이 일품이다. “큰 꿈을 누가 먼저 깨닫는가/ 일평생 내 스스로 알고 있다네/ 초당에 봄잠이 넉넉한데/ 창밖에 해는 아직도 더디 가는구나(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며 유비를 따라나선 자신이 세상의 먼지에 뒤덮일 것을 자조하면서도 포부를 품는다. 젊은 날의 큰 꿈이 너무 빨리 깨버리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는다(歲不我延)는 말, 정말 무섭다. 젊음은 칼날 위의 꿀물인지도 모른다.


여섯, 고맙다. 어원이라는 게 이설이 많지만 ‘고맙다’의 어원은 무척 재미나다. ‘고마+ㅂ다’에서 ‘고마’는 본래 신(神)을 일컫는 말이어서 ‘고맙다’는 존귀하다의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즉 고맙다는 우리말을 예전 의미로 풀어보면 상대방의 존귀함을 신처럼 받든다는 극존칭이 탄생한다. 당신이 내게는 하느님처럼 존귀한 분으로 여겨져서 공경한다는 표현이라니 이토록 절절한 감사의 말이 흔치 않을 것 같다. 이 풀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고맙다는 말을 쓸 때 이런 마음을 품어보면 좋겠다. 불가에서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하듯이 말이다. 곳곳에 부처님이 계시니 하는 일마다 불공을 드리는 마음으로 둘레 사람들을 고마워하자. 문득이 어떤 이가 얄미울 때 그에게 신세진 것은 없는지 내가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겠다. 남에게 고마웠던 일은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금세 잊힌다. 고마웠던 기억만 건사하기에도 우리 두뇌 용량은 버겁다.


일곱, 너그럽다. 너그럽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말들은 무척 많다. 어질다, 미쁘다, 미덥다, 살갑다, 베풀다, 나누다, 노느다 같은 말들이 언뜻 떠오른다. 하지만 너그럽다는 나와 다른 것을 인고(忍苦)한다는 의미가 좀 더 강한 것 같다. 똘레랑스라는 말이 여기저기 회자되고 있지만 자신이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고, 그 자유를 향유하는 사람을 보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너그러움은 양시론을 휘두른다거나 줏대 없이 일단 얹혀서 가자는 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송논쟁이 한창일 때 서인의 영수 송시열에 대항했던 남인 논객 윤휴는 주자의 해석과 다른 문장해석을 했다는 이유로 송시열 일파들에게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맹렬한 공격을 받았고, 급기야 억지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약을 받았다. 교조적인 이념에 반기를 들었던 그를 포용하지 못한 것은 조선의 비극이었다. 나라에서 선비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푸념을 다시 반복해본다.


그러나 오늘 날에도 송시열과 같은 독선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를 궤멸시켜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이 세상은 성인과 악당이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아마겟돈(Armageddon)의 연속이 될 것이다. 조선 당쟁에서 배워야할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관용이다. 선악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일쑤인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는 것이 혼란스러울 때 칼 포퍼가 말한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라는 경구를 습관처럼 꺼내보자. 진수의 삼국지 오나라 편에 있는 제갈량 조카 제갈각의 전기에는 “그 사람의 약점으로 그의 장점을 버려서는 안 된다(不以人所短, 棄其所長)”는 말이 나온다. 그 사람의 약점에 천착하기보다 장점을 도두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종대왕 때 박연이 왕에게 시각장애 악공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다(天下無棄人也)”고 말한다. 정말 마음을 흔드는 말이다.


여덞, 처음처럼. 브랜드를 만들고 회사 로고를 디자인하는 네이밍 업체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는 처음처럼이란 말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가 개발한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은 성공회대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체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처음으로 하늘을 나르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는 시와 함께 쓰인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손 대표는 신 선생님의 글씨로 브랜드를 개발한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자신이 받은 작명료 8000만원 중 5000만원과 두산이 내놓은 기금을 합쳐 1억원을 성공회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시경』에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이란 말이 있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잘 마무리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시작이야 누구나 곧잘 하지만 끝맺음을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초심을 버리고픈 아찔한 유혹은 늘 내밀하고 지근한 곳에서 맴돈다. 임종을 앞둔 김유신 장군이 문무대왕에게 남긴 말에도 “예로부터 대통을 잇는 임금들이 처음에는 잘못하는 일이 없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臣觀自古繼體之君, 靡不有初, 鮮克有終)”라며 이 구절이 나온다. 어릴 적에는 한결같음을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삼아 놓고 일로매진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진리는 늘 여러 겹이고, 아름다움에는 섬세한 무늬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처음처럼 유지해야할 것은 아주 적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아홉, 애면글면. 힘에 부친 일을 최선을 다해 이루려는 모양을 나타낸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던 괴테의 말, “절름발이 자라도 천리를 간다(步而不休, 跛鼈千里)”는 『순자』 구절, 『시경』, 『논어』, 『대학』에 3관왕으로 나오는 절차탁마(切磋琢磨)에 이르기까지 노력과 정성을 다하는 말을 무궁하다. 이 가운데 내가 각별히 여기는 말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계원필경(桂苑筆耕) 서문에 보이는 “남이 백을 하면 나는 천을 한다(人百己千)”는 구절이다. 최치원의 아버지는 당나라에서 10년을 공부하여 진사에 급제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라고 하지 말라며 열 두 살의 어린 아들을 머나만 타국 땅으로 보낸다. 최치원은 서문에서 “상투를 대들보에 걸어 매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노력에 부응하기 위하여 참으로 남들이 백의 노력을 할 때 천의 노력을 하였습니다(實得人百之己千之). 그래서 당나라에 유학간지 6년 만에 신의 이름이 방(榜)에 걸리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人百己千을 되뇌는 까닭은 사람들의 능력이 언제나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는 시간과 의지력만 있으면 어떤 것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나 한계는 존재한다”고 말했고, 그 말을 이제는 상당 부분 수긍하고 있다. 바람에 비해 재주가 모자란 한탄은 서글프다.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보고 “오! 신이시여, 저런 하찮은 존재에게는 천재성을 부여하고 나에게는 그런 천재성을 알아볼 재주 밖에 허락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탄식하는 대목은 범인의 안타까움을 함축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人百己千하려고 해도 모든 것에 최선의 노력을 하는 건 내 역량을 벗어난다. 人百己千마저 애면글면 포트폴리오를 해야 한다.^^;


열, 부끄러워하다. 부끄럽다는 형용사형보다는 부끄러워하다는 동사형이 더 생동감 있다. 『맹자』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비롯해서 부끄러워함을 촉구하는 내용이 많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다(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는 구절이나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다(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라는 구절은 제 얼굴에 자꾸 철판이 늘어가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봤자 오징어라도 구워먹지도 못하는데 개기름까지 바르고 있으니 처연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는 “군자는 홀로 서 있을 때도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게 하고, 홀로 잠을 잘 때도 영혼에 부끄럽지 않게 한다(君子獨立不慙於影 獨寢不慙於魂)”고 했다. 공식석상에서 정갈한 말과 우아한 자태로 우리를 설레게 만들던 숱한 지도자들이 이래저래 망가지는 것을 보면 참 의아하다. 적어도 나보다는 똑똑하고 잘난 분들일 텐데 왜 저럴까 답답하다. 습관적으로 그네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려다가 문득 이 분들이 정말 몰라서 저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능한 확신범만큼 두려운 게 없다지만 인간을 가장 무능하고 무지하게 만드는 것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우렁차게 말하는 사람, 이제 식상하다.


<마치며...>

너무 인용이 많지 않느냐는 핀잔이 있을 것 같다. 뭐 이번 글은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내 취향에 충실해봤다. 독일의 사상가 리히텐베르크가 “새로운 것에서는 진실을 찾기 어렵고 진실한 것에는 좀처럼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말한 것에 동감하기 때문이며,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이 말했던 “좋은 말을 만들어낸 사람 다음으로 가치 있는 사람은 그 말을 인용한 사람이다”는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싶기 때문이다. 과학자 뉴턴은 과학의 발전에 엄청난 공로를 세워놓고도 자신을 바닷가에서 장난을 치는 소년이라고 겸양했다. “내 앞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진리의 대양이 펼쳐진 채로, 이제나 저제나 더 매끈한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질을 찾으려고 애쓰는 소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끝으로 열 개라는 숫자 제한에 걸려 아쉽게 다음을 기약했던 숱한 말들을 기억나는 대로 읊어본다. 모국어의 맛은 두고두고 우려내도 묽어지지 않는다. - [小鮮]

글, 값, 꿈, 즈음, 당최, 아이, 노을, 사흘, 달걀, 글쎄, 비꽃, 선비, 드므, 눈물, 그림자, 즐거움, 갈매빛, 누리다, 보듬다, 가엾다, 덧없다, 거닐다, 하소연, 나그네, 해맑다, 헌걸차다, 도두보다, 마음자리, 오롯하다, 우러르다, 시시하다, 보드랍다, 깔끔하다, 생각하다, 알콩달콩...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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