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원 선생님이 역주한 『중국고전산문』(2001, 다락원)이라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기에 내 나름대로 다듬고 생각을 풀어봤다.


1.
돌아가자! 전원이 곧 황폐해지려고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왕에 스스로가 마음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홀로 근심에 빠져 슬퍼하는가? 지난 일은 탓해봐야 돌릴 수 없음을 깨닫고, 또한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 실로 길을 잘못 들어 헤맸지만 멀어진 건 아니기에, 비로소 지금이 옳고 어제가 그릇됨을 알았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以獨悲? 吾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

동진(東晋)의 저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나이 41세 되던 해에 평택현령(彭澤縣令)에 부임하게 된다. 지금의 면장쯤 되는 자리였는데 봉급은 쌀 다섯 말이었다. 그런데 상급기관인 군의 독우(督郵)가 평택현을 시찰하게 되니 현리(縣吏)가 위관을 갖추고 나아가 맞이할 것을 권했다. 자유로운 영혼 도연명은 “내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시골뜨기 아이에게 허리를 굽힐 수 있으랴(吾不能爲五斗米折腰, 拳拳事鄕里小兒)!”라고 탄식하며 미련 없이 사직하고 불후의 명작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조린다. 나는 귀거래사보다 직장을 때려치는 도연명이 더 감명 깊다. 내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있겠는가(吾不能爲五斗米折腰!)! 이렇게 외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태사공(사마천 자신)이 말하길, “부친께서 말씀하셨다. ‘주공이 죽은 뒤로부터, 오백 년이 지나 공자가 태어났고, 공자가 죽은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백 년이 되었다. 마땅히 어느 누가 능히 태평성세를 계승하며, 주역을 바로 해석하고, 춘추를 이어 지으며, 시경, 서경, 예기, 악경의 취지를 근본으로 삼아야 할 때가 되었는데, 너는 여기에 뜻이 있느냐?’ 제가 어찌 감히 양보하겠습니까?”

太史公曰, “先人有言, ‘自周公卒, 五百歲而有孔子, 孔子卒後, 至於今五百歲. 有能紹明世, 正易傳, 繼春秋, 本詩書禮樂之際, 意在斯乎. 意在斯乎.’ 小子何敢讓焉.”

“어찌 남에게 양보하겠는가?”라는 말을 하며 주공과 공자의 길을 계승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사마천이 부럽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명심보감』으로 수업을 하셨던 선생님께서 당신이 무척 아끼는 구절로 꼽으신 것이 견선여갈(見善如渴)이었다. 계선편(繼善篇)에 나오는 말로 “태공이 말하기를,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본 듯이 주저하지 말며, 악한 일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하라’ 또 말하기를,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고,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는 구절의 일부다. 나는 과연 어떤 일을 남에게 양보하지 않고, 목마른 듯이 탐낼 수 있을까. 철없던 시절에는 할 게 너무 많아서 망설였다면 요즘은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은 거 같아서 주저하게 된다.^^; 사마천 흉내를 좀 내보자면 나는 나보다 999년 전에 태어나신 문헌공 최충 할아버지나 나보다 꼭 100년 앞서 태어난 J.M 케인즈 같은 경제지사(經濟之士)가 되고 싶다.


3.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

君子以行言, 小人以舌言

『공자가어』 「안회」에 있는 말이다. 이 구절은 안회가 공자에게 “소인의 말과 군자의 말이 같습니까? 군자 된 사람은 이를 분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질문한 것에 공자가 답한 것이다. 퇴계 선생의 『자성록』 서문에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으로 실천함이 말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간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내 자신이 지키지 못할 말들을 너무 많이 한 것은 아닐까. 너무 혀로 많이 말해온 거 같아 부끄럽다.


4.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날과 달이 가고,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는다. 아! 늙었구나! 이 누구의 허물인가?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歲不我延, 嗚呼老矣是誰之愆?

『명심보감』 권학편(勸學篇)에 나오는 주자의 말씀이다.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는다(歲不我延)는 말처럼 무서운 게 없다. 이것 말고도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으로 시작하는 주자의 권학시와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로 시작하는 도연명의 권학시도 끔찍이 좋아한다. 퇴계 선생은 『자성록』에서 “다만 이 이치를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기 어려운 것이며, 또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참을 쌓아 오래도록 힘쓰기가 더욱 어렵다(惟此理, 非知難而行難, 非行難而能眞積力久爲尤難)”고 하셨다. 퇴계 선생은 학문에 있어서 참을 쌓고 오래 힘쓴다(眞積力久)는 노력을 매우 강조하셨다. 학문은 단순한 앎이라거나 일시적 선행이 아니라 조바심 내지 말고 애면글면 해나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서둘지 않고 쉬지 않는 노력이 부디 배반의 장미를 꽃피우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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