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821
그 사람이 지은 죄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짓는 것이다.
과도한 벌이 내려지는 경우는 대개 그 사람이 만만한 소수자이거나, 별 볼일 없는 비주류일 경우일 때가 많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이 개인주의의 원칙이라면 보상과 문책이 누구에게나 공정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만큼의 상을, 죄만큼의 벌을!


060822
대한상공회의소에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님을 모시고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마음(Feeling) 관리’를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한 동영상을 봤다. 휴학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PPT강의도 참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윤 교수님은 “기업이 곧 사람”이란 말이 있듯이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사결정, 종업원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축적되는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자본권력을 누리는 몇몇 대기업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적잖았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님의 말씀대로 “삼성의 공화국인가 공화국 속의 삼성인가”에 대한 성찰이 요긴하다. 윤 교수님께서 강의 말미에 강조하셨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돈다. 말조심해야겠다.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060823
현식장 폐쇄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모였다. 처음처럼을 많이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현식이와 내가 익구닷컴에 쓴 "공인(公人)이라면"면 글을 놓고 제도 개혁과 의식 개혁에 관한 문제로 수다를 떨었다. 나는 시스템 개혁의 중요성에 동감하면서도 마음의 문제, 인심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우겼다. 공인들의 행동반경을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제도의 구비도 긴요하지만 공인의식을 갖추는 것 또한 의식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반문했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이 경제활동의 원동력임을 강조했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이기심도 가지면서 한편으로 자비심을 품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자기가 좋으면서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은 반드시 이기심만으로 구현되는 건 아닐 것이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장인정신은 이기심이라는 동인으로 묶기에는 그 품이 넓다. 복잡다단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제도 개혁을 얼마든지 꾀할 수 있다.


060824
철구 입대 환송회에 스리슬쩍 참석했다. 후배들 몇 명을 모아놓고 일장연설(?) 비슷한 걸 늘어놓았더니 집에 오늘 길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잘 해내지 못했던 일을 후배들이 더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들이니 그리 민망해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후생가외를 느끼는 건 두려우면서도 가슴 뛰는 일이다. 나를 뛰어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후배들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이다. 나는 내 후배들이 내 어줍잖은 잔소리도 잘 가공해서 듣고 그 좋은 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사람이 하찮다고 그 사람의 말과 글까지 무시하지 않고 경청할 수 있는 후배들의 형형한 눈빛을 바라보는 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060825
경북 영주 답사를 다녀왔다.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둘러봤는데 한나절 코스로 훌륭한 것 같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명하다. 사액서원이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 받고 면세,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명성에 비해 규모는 무척 소박하다. 특히 서원의 원장과 교수가 기거하던 스승의 집무실인 직방재와 일신재,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인 학구재와 지락재가 매우 가까이 붙어 있었다. 학구재와 지락재가 스승의 그림자를 피해 뒷물림하여 지어진 점은 재미났지만 그래도 서로 조금 불편했을 거 같고 그 불편함도 수양의 방편으로 삼았을 것을 생각하니 옛사람의 교육열도 대단했구나 웃음이 나온다.

부석사는 너무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에 집착한 나머지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거 같다. 무량수전 주위만 맴돌고 그럴듯한 기념사진 남기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주위 풍광을 보고 다른 건물들과의 조화를 보거나 하는 식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국보 제45호인 소조여래좌상은 우람한 풍모가 매혹적이었다. 국보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도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돋을새김 된 보살상이 기품 있었다. 국보 제46호인 조사당 벽화를 좀 보고 싶었는데 실물은 보지 못했다. 무량수전 안에 복사본을 걸어두었고, 국보 제19호 조사당의 원래 벽화 자리에는 새 불화를 그려놓았는데 그림 솜씨가 엉망인지 색채 배합이 어색한지 그리 정감이 가지 않았다. 조사당 벽화를 떼어서 따로 유물보관동에 옮겼다고 하는데 일반에 공개를 안 하는지 아니면 다른 전각들을 신경 쓰지 않아서 보는 걸 놓친 것인지 헷갈린다. 여하간 조선의 폐불 정책으로 말미암아 사장된 고려불화들이 적잖을 생각을 하니 배가 아팠다.

아직 더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은데 차차 짬을 내서 둘러보기로 하자. 문화유산 완상은 속 좁은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평생 취미 아닌가.^-^


060826
지난 3월 행정고시 공부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시작하더라도 반년의 말미를 둬서 9월 말까지는 대책 없이 자유와 유흥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나는 반년의 여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들을 미리 읽어두자고 했으나 수험 서적들을 들춰보았고,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어 자꾸 머뭇거렸다. 결국 반년의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슬금슬금 이것저것 뒤적거리고 있다. 내 나름대로 금석맹약을 했지만 결국 막판에 지켜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조금 일찍 덜 놀고 더 공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도 많다.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도 잘 지키지 못하는 내가 과연 얼마나 더 유식해지고 유능해져서 그것을 써먹을 수 있을지 민망하다. 앞으로 내 자신과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여하간 이제껏 나를 이끈 힘 가운데 조바심이 적지 않았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애써보자.


060827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 왕 디오니시우스의 신하 가운데 다모클레스(Damocles)라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왕을 부러워하던 다모클레스가 안쓰러웠던지 디오니시우스는 그에게 임금의 자리에 앉아보라고 권한다. 얼씨구나 싶어 왕좌에 오른 다모클레스가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카락 하나로 묶인 칼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권력의 자리가 밖에서 보는 것처럼 마냥 화려하고 안락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1961. 9. 25. UN 총회에서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핵무기를 "인류에게는 다모클레스의 칼"이라고 말하며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유명해졌다고 한다. 다모클레스의 칼은 인간세의 불확실성을 표상하고 있다. 다모클레스의 칼이 성공을 자만하는 순간 툭 떨어진다는 비유처럼 조금 이루었구나 싶을 때 밀려오는 유혹을 뿌리치기는 여간 어렵다. 칼이 여차하면 툭 떨어져서 부정부패를 함부로 저지르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 구축도 긴요하겠지만 늘 머리 위에 혹은 마음 속에 나를 향하고 있는 칼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성찰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개인에게는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각성된 개인의 힘을 믿는다. 내 머리 위의 다모클레스의 칼은 튼튼하게 잘 매달려 있을까?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