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828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는 데이비드 흄에 대해 조금 찾아봤다. 흄은 지각으로 증명되거나 반증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합리론자나 경험론자들이 서로 공유하던 ‘신이 상수(常數)로 존재한다는 믿음’과 ‘과학의 대한 전폭적인 신뢰’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우리는 결코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과관계란 얻을 수가 없다는 주장은 오늘날 되새겨도 파격적이다. 흄의 회의주의는 절대성과 필연성을 세련되게 공박함으로써 우리 삶의 자유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흄이 가변적인 정념(감정)에는 그 섬세한 회의의 체를 동원하지 않음으로써 절대시해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비판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러셀이 “흄 이후 형이상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찌하면 그를 반박하느냐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듯이 그의 주장은 치밀하고 엄정한 것으로 보인다(굳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내가 흄의 저작을 읽어본 것이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해본 것이다). 각자 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다가 끝에는 “나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우리가 탄탄했다고 생각했던 합리적 판단도 사실은 조금 더 포장한 믿음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니 섬뜩하다. 흄이 남긴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철학 가운데서도 여전히 인간이어라!”는 말이 감명 깊다. 불완전한 인간이 품는 진리나 지식 또한 불완전함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러한 인간을 연민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인간 인식의 한계를 곱씹게 만들어 준 흄에게 앞으로도 좀 더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겠다. 흄이 물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무신론자라고 그가 요청한 도움을 거절했다고 한다. 물에 빠져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그 절대 고독감 속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그 정신을 흠모한다.


060829
* 이영환 교수님의 미시경제학 책을 헌책으로 주문하고 나서 받아보니 연필로 밑줄이 무진장 많았다. 나는 2시간 동안 지우개로 조심스레 지워서 거의 새책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 정성으로 이 책을 보자고 결심하기는 했지만 조금 민망하다. 내 감출 수 없는 결벽증을 긍정적으로 발현해서 염결성과 치밀함으로 가꿔야겠다.

* 반성은 하고 싶지만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아요. 주로 자기가 결정을 하면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결정을 하면은 후회하지 않고 반성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도 그렇게 살고 싶고, 많은 분들이 정말 자기가 결정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젊으신 분들은.

이금희의 파워인터뷰에서 배우 장진영이 한 말이다. 나는 얼마나 내 스스로 결정하고 있을까?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 나의 2세 할아버지 문헌공 최충께서는 1005년(목종 8년) 甲科(文科)에 장원급제하셨다. 984년에 나신 최충 할아버지와 내가 999년의 시차가 나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2004년경에 먹고 살 방편을 마련했어야 했지만 지금도 헤매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060830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였던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와 작가인 레이몬드 헐(Ramond Hull)이 1969년 공저한 책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에서 “조직체에서 모든 종업원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상급자는 자신이 무능력해지는 단계까지 올랐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이는 위계조직 메커니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특히나 연공서열 같은 계층제(hierarchy)가 강한 관료 조직에서 이런 현상이 빈번하다. 책 말미에 글쓴이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올라가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높을수록, 많을수록 좋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큰 희생을 치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러나 어디 그것이 말처럼 쉬운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 위를 향해 오르는 사람이 차분히 성찰하고 관조하는 시간을 확보하기란 여간 힘들다. 그러나 제 깜냥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과분한 자리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민망할 때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을 찬찬히 돌아보며 음미해보는 게 좋겠다. 나는 유능해지고 유식해지기 위해 애쓰면서도 내 자신의 무능을 겸허히 인정할 수 있는 용기도 품어야겠다. 자기보다 덜 무능하고 더 유능한 사람이 내 자리를 꿰차게 될 때 후생가외(後生可畏)라며 기꺼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사람, 멋지다.


060831
나의 6세조 최윤의 할아버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지으신 것으로 유명하다(혼자 지으신 건 아니고 17인 공저였다^^;). 상정고금예문은 최윤의 등 17명이 왕명으로 고금의 예의를 수집, 고증하여 50권으로 펴낸 국가의 전례서(典禮書)이다. 쉽게 말해 법령집, 규정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상정(詳定)은 골라 뽑았다는 뜻이니 가려 뽑은 예법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명언명구 수집을 즐기는 건 어쩌면 조상님의 상정(詳定)하는 자세를 이어받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것저것 주워 모으고 정리를 잘 안 해두다 보니 좀 두서가 없고 체계가 없는 게 흠이다. 여하간 나만의 상정고금옥문(詳定古今玉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될 거 같다. 내 버릴 수 없는 습관이기에.


060901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에서 주인공 꼬마가 돈을 잃어버린 뒤
“내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곤고로운 사건을 겪을 때라도
이런 정도의 넉넉함을 갖춘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다.
사실 고민하고 인상 쓰고 비감에 젖어 살기에는
시간은 열심히 달리고 있고, 인생이 너무 짧다.
설령 내가 조금 손해본 것 같아 참을 수 없을 때
누군가가 이익을 봤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를.


060902
찬구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상갓집 일을 좀 도와주려 둔촌동 보훈병원을 다녀왔다. 문상객들이 나가면 자리를 치우는 걸 했는데 먹고 논 것에 비하면 별로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거 같다. 현식이와 나는 밥값을 못한 거 같다며 한탄했다. 찬구 아버님은 삼남이셨고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시다고 한다. 그런 관계로 찬구 아버님과 더불어 누님의 사위 즉 고모부들이 상주를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다가 그런 광경을 목도하니 좀 민망했다. 뭐 어차피 한 가족 간에 그걸 따지기가 민망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두 누님들도 상주 완장을 차고 있는 게 보다 더 공평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아들 없는 집의 장례식 때 사위가 상주를 하는 관행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왜 그리 견고할지 알 것 같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경조휴가를 주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연월차 휴가에서 공제하는 청원휴가로 대체하는 관행은 이제 좀 줄었는지 모르겠다. 군인 친구의 말로는 외조부, 외조모의 사망은 규정상 청원, 위로 휴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조금 헷갈린다. 친조부모나 외조부모나 민법상 직계존속으로 같은 지위라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병역법시행령 제59조 행정관서요원의 휴가 규정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의 조부모, 증조부모, 외조부모, 외증조부모 또는 형제·자매가 사망한 때”에는 3일 이내의 휴가를 준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현역병의 경우 휴가 체계가 명문화된 것을 찾지 못했다. 일선 지휘관의 재량에 많이 맡겨진다고 하던데 마땅히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사망시 대우가 동등해야 할 것이다. 이건 재량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과연 양성 차별 문제가 여성에게 남성의 자리를 좀 떼어주는 의무할당제 같은 식으로 꾸려지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법적, 제도적 노력을 그칠 수는 없지만 남성 중심주의적 문화를 건드리려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나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예종』이라는 책에서 여성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유익하지 못하며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여자도 군대 가라 식의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남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피해를 줄여주고,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수모를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처럼 오랜 관습과 관성의 문제에서는 제도만큼이나 조금씩 조금씩 의식이 바뀌는 것도 절실하다. 문화적 해법은 오히려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여자로, 남자로 살기보다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낙관한다.


060903
“2년 동안 서로 다른 주제에 관해 쓴 150여개의 칼럼에서 저는 할 수 있는 말을 거의 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슴속에 가득 고여 절로 흘러 넘쳐 나오는 좋은 글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저는 찰랑찰랑 바닥이 보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 퍼내고 짜낸 못난 글을 독자 여러분께 보여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글 쓰기를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온 듯합니다.”
- 유시민, [가슴을 채워 다시오겠습니다] - 동아일보 2000. 6. 27

유시민 선생은 저수지에 물이 차서 저절로 넘치는 것처럼 자연스레 쓰이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밑천이 바닥나더라도 한 번 더 우려먹으면서 억지로 쥐어 짜내기 일쑤다. 내 생각의 발전이 없어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한 게 그 얼마더냐. 좋은 글이란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수 없어서 내뱉어서 큰 울림을 주는 글이다. 그것이 무언가 배운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구에서건, 사람 사이에 부대끼다 불현듯 떠오른 따끈한 생각이든, 과거 어느 날의 아픈 기억으로 말미암은 서늘한 깨달음이든... 머리보다 마음이, 마음보다 손이 먼저 가는 글에서 우리는 많은 감명을 받는 것 같다. 그간 이런저런 잡글을 많이 써온 나는 얼마나 살뜰한 글들을 써왔을까. 자꾸만 커져가는 지적 허영심에 모자란 우물을 메마를 때까지 퍼 올린 것만 같다. 앞으로 당분간은 긴 글 쓸 호사를 누리기 힘들 거 같다. 그 전에 좀 더 노작들을 완성해두고 싶었는데 기획만 하다가, 생각만 다듬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야윈 가슴과 가벼운 머리를 채워야겠다. Input을 늘리고 Output은 가다듬을 시기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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