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11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지난 9월 5일 유럽 순방을 앞두고 유럽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양한 고전을 인용하며 박학다식을 과시했다. 영국 더 타임스 기자가 “잠자기 전에 주로 읽는 책은 무엇인가. 책을 덮은 뒤 잠 못 이루게 하는 고민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인용해 답변하겠다”며 중국 고전 명구들을 내리 인용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이소(離騷)’가 인상적이었다. “긴 한숨으로 눈물을 가리며, 백성의 수많은 고통을 슬퍼한다(長太息以掩涕兮, 哀民生之多艱)”라며 애민정신을 넌지시 내비치는 모습에서 중국의 거대한 문화적 힘을 느꼈다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그는 일전에 “배움의 길은 까마득하고 멀지만, 나는 장차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찾아내리라(路曼曼其修遠兮, 吾將上下而求索)”라는 이소 구절을 인용해 중국의 잠재적 힘을 과시한 바 있다.

2005년초 열린우리당 임채정 당시 당의장은 굴원의 ‘어부사(漁夫辭)’에서 유명한 구절인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을 인용해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하는 실용노선을 강조한바 있다. 물론 그런 유연한 자세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아쉽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 쓰고,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함을 읊조리는 사람도 몇 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라고 말한다고 해서 굴원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 않은가.

염결성을 강조한 나머지 비타협적이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라는 게 아니다. 다만 국민들에게는 봄바람처럼 자애로우면서, 스스로에게는 가을서리처럼 까다롭기를 바랄 뿐이다. 남 위에 있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남을 대표하고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060912
신라 제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김춘추-외교의 승부사』(박순교 著, 푸른역사 刊)란 책의 서평을 읽다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삼국 가운데 거의 모든 게 뒤쳐졌던 신라가 결국 삼국을 통일한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광활한 만주벌판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장탄식을 늘어놓기 일쑤다. 일전에 소설가 이문열 선생은 계간 역사교양지 <한국사 시민강좌> 32호에 기고한 글에서 18세기 이후에나 형성된 민족개념을 신라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삼국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민족주의적 관점이었다. 이민족인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게 신라를 비난하는 이유”라고 말하며, “1300년 전 신라에게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민족적 동질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영어를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사람을 무식하다고 나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도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개념으로 고대사를 재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에 이문열의 주장은 수긍할 점이 많다. 그런데 글 끄트머리에 고구려 중심사관이 “뭔가 정치적으로 의심쩍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논의에 스스로 먹칠을 한다. 그의 논리를 조금 거칠게 말해보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개하는 이들은 북한의 꼭두각시놀음에 당하고 있다는 것이 되기도 한다. 민망하다. 좋은 문제 제기가 그 때문에 엉망이 되버렸다. 하기야 굳이 이문열이 아니더라도 신라의 삼국통일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역사가들이 하고 넘쳤으니 하나쯤 빠져도 무방하겠다만서도.

비록 삼국이 민족공동체 같은 관념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삼국간의 이질감이 수나라나 당나라 같은 중원 국가들에 대한 이질감에 비해 더 적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국에 비해 낮은 이질감, 낮은 수준의 친밀감 정도로는 서로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후발주자인 신라가 당나라와의 연합에 성공해 대역전극을 이룬 것은 그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무열왕은 고조선 멸망 이후 800여 년 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분열을 종식한 공이 있다. 더군다나 백제처럼 충신의 간언을 멀리하지 않았고, 고구려처럼 핵심 지도부가 내분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러나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지적대로 “고구려 영토의 회복의지라든지 북방으로의 진출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외세의 힘을 빌지 않고, 고구려 계승의지를 통해 북방진출 의지를 누차 피력했던 고려의 통일에 견주어 신라의 통일이 많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신라라는 거름에 힘입어 고려라는 거목이 자랄 수 있었다. 뒷사람이 보기에 앞사람이 한 행적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 하기는 쉽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신라에 대한 미움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그네들이 성공하게 된 원동력 가운데 배울 점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역사에서 억울한 패배는 많지만, 거저 이루는 승리는 없기에.


060913
차선의 이론은 만족되지 못하는 효율성 조건의 수를 세어 이를 후생 평가의 근거로 삼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만족되지 못하는 조건의 수와 사회후생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경우 한 조건만 만족되지 못한 상황보다 다섯 개의 조건 모두가 만족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사회후생이 더 높을 수 있다. 이 이론은 효율성을 위해 만족되어야 하는 여러 조건 중 가장 사소한 것 하나만 만족되지 못한 상태가 반드시 차선의 상태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 이준구, 『새열린경제학』, 2001, 다산출판사, 339쪽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가 주창한 차선의 이론(second best theory)은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선택하라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완전한 사회에서 무엇이 차선인가”를 묻는 심도 있는 질문이다. 차선이론에 따르면 점진적 사회개혁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비합리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고 해도 예기치 않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막으면 저기서 새나간다는 것이다. 부분적인 개편안이 반드시 더 놓은 사회후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은 경청할 만 하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상수(常數)에 가깝다.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완전하지 못한 사회를 조금 덜 나쁘게 만들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영원히 추진될 것이다. 상충관계에 있는 효율성과 공평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면서 사회후생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실현가능한 대안을 찾아보는 수밖에. 우리는 부지런히 최악에서 차악을 골라내고, 최선을 못한다면 차선이라도 일구어야 한다.


060914
익구닷컴에 "알쏭달쏭 남북한 국방비"라는 글을 쓰다. 북한 관련 통계는 너무 불분명하다. 세상에 저렇게 폐쇄적이고 제 멋대로인 나라와 통일을 해야하는 대한민국의 운명이 너무 가련하다. 분단 비용으로 눈에 보이는 군사적 지출 외에도 분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는 협상 비용,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민족사적 과제 등을 꼽는다. 그런데 나는 분단 문제를 고민하는 지력(知力) 비용도 막대하다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 고민할 시간에 다른 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생산적일까!


060915
내 영혼의 스승 고종석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다. <한국일보>, <시사저널>, <씨네21> 등의 매체에 실은 글 중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글들을 솎아낸” 다음 골라 모은 것이라고 한다. 책 제목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에서 말하는 신성동맹(神聖同盟)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직후인 1815년 9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군주들이 파리에서 맺은 반동적 기독교 동맹을 지칭한다. 4국동맹(러시아ㆍ오스트리아ㆍ프로이센ㆍ영국사이의 동맹)과 더불어 성립한 빈체제는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탄압한 보수 반동 체제를 일컫는다.

선생님은 이 제목의 칼럼에서 반동정치세력과 반동언론권력 간의 신성동맹과 이념적, 정책적 차이가 있다고 여기는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의 착각을 질타하신다. “언어는 온건할수록 좋고, 실천은 어기찰수록 좋다”며 신성동맹의 눈치를 보느라 최소한의 개혁도 지지부진한 집권자들의 안일을 지적하신다. 선생님은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실망을 참 여러번 토로하셨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내 생각이 그 사이에 크게 변했다. 그러나 변한 것은 내 입장이 아니라 그의 입장일 것이다’고 책머리에 적고 있다니 슬픈 일이다.

신간에 묶여진 대부분의 칼럼을 그 때 그 때 챙겨 읽은 나이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로 이 책을 사서 읽고 가슴이 짠해질 예정이다. 다음 주 일요일로 예정된 고종석 팬카페 분들과의 모임에서 이 책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고 선생님의 쓴소리가 너무 과도하다고 핀잔을 늘어놓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선생님께 투정 섞인 전자우편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이 강고하고 굳건한 집단주의자들의 획일주의적 수구동맹에 투항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두렵다. 자신이 넘치는 말보다는 배운 대로 살겠다는 누추한 실천이 필요하다.


060916
KBS 파워 인터뷰에서 한비야 선생님이 나오셨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앞서게 마련이지만 한비야 누님(이렇게 부르고 싶다)은 내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신이 나게 해주셨다. 누님은 “만만한 사람이 열정과 노력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아니겠냐며 겸양하셨지만 정말 이 시대의 역할 모델이 될만한 스승이다.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씩씩한 목소리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 “우리들이 가진 생각의 틀 밖으로 나가보자”는 제안이 정말 와 닿는 사람,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해보셨어요?”라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꾸짖음을 주는 사람, “百見이 不如一行이예요”라는 말이 천금처럼 들리게 하는 사람... 멋있는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누님이 역설하시는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정글의 법칙이 아닌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사랑과 은혜의 법칙”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

문화평론가 김갑수 선생님은 “관계없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게 낯선 한국인”이라며 아무 관계없는 민족, 다른 지역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는 질문을 던지셨다. 비야 누님은 1950년부터 1990년까지 도움을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언급하시며 “그 때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요?”라며 반문하셨다. “돈이 남아서 우리를 도운 건 아닐 거예요”라며 우리가 이제 도울 때라고 말씀하셨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게 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도 하던데 베푸는 데 조금 더 넉넉해져도 좋겠다.

그가 책에서 쓰기도 했지만 소말리아 국경에서 만난 한 케냐인 안과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누님이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그 의사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자신의 재주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자는 등의 말은 나도 참 많이 하고 다녔는데 나는 그리 실천하지 못했고 그 의사 선생님은 실천하고 있었다.^^;

비야 누님은 여자치고도 작은 발 사이즈인 225mm라고 한다. 어른 신발이 없어서 아동용 신발을 사 신어야 한다고 한다. 그 작은 발로 세 바퀴 반을 돌고, 국토를 종단했다. 팔목 가는 게 콤플렉스인 나이지만 내 작은 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을 거 같다. 함부로 포기하지 말자. 그러고 보니 비야 누님이 어느 강연회에서 손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이 있던데 나도 꼭 실천하고 싶다.

나는 이 손이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상처를 어루만줘 주는 손으로 썼으면 좋겠다. 나는 적어도 이 손이 약자의 뒤통수를 치는 손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옳지 못한 돈을 세는 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지구 세 바퀴 반 돌고 내린 결론 ‘세상은 좁다’”, 이코노믹리뷰, 2006. 02. 24


060917
평교수로 복귀한 서울대 정운찬 교수님의 첫 강의는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지난 9월 1일 경제학연습2의 첫 강의 시간을 스케치한 기사를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 정운찬 교수님은 경제학과 학생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자신의 학창 시절 일화를 소개하셨다.

누가 자신에게 어느 대학을 다니냐고 물으면 경제학과를 다닌다고 답했고 재차 물으면 ‘상대’ 경제학과를 다닌다고 했으며 그래도 학교를 물으면 “당연히 서울대지 다른 대학을 다닐 데가 있느냐.”고 답했다는 것이다. 경제학과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이야기라지만 마지막 말씀은 좀 지나쳤다. 물론 자신의 후배들에게 격려하는 말씀으로 하신 것이니 웃으며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적 명망을 얻고 있는 정 교수님이신 만큼 자신의 말에 실릴 무게를 인식하셨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지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고대 나오고도 기자가 될 수 있냐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 서울대 중심주의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그 발언이 100%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일국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의 발언치고는 너무 천박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님이나 이 후보님의 농담 어린 말씀들은 서울대가 아닌 다른 대학을 다니는 나로서는 참 무서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도 애교심이 넘쳐서 오버를 한 적이 참 많다. 자신의 지적 고향이 그립고 애틋한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쳐 남에게 역겨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지 점검해봐야겠다. 자신의 것을 사랑하는 데도 절제가 필요한 모양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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