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18
영국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1830∼94)의 노래(Song)라는 시는 참 슬프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 for me)”로 시작하는 이 시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종석 선생님은 “‘노래’는 그 자체가 어여쁘고 구슬픈 유언”이라고 하셨다. 나는 특히 1연, 2연의 후렴구 부분이 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으면 나를 기억하시고, And if thou wilt, remember,
잊고 싶으면 잊어버리세요. And if thou wilt, forget.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Haply I may remember,
아니, 어쩌면 당신을 잊을지도 모릅니다. An haply may forget.


우리는 각골난망(刻骨難忘)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을 너무 쉽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늘 마음에 두겠다며 호언장담하던 게 얼마나 허망하고 허술한지를 알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 자신이 누군가에 오래도록 곁에 두고픈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움에 사무치고 외로움에 절망할 때 하잘 것 없는 저란 녀석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름다운 마음들을 떠올리고 싶다. 나란 녀석과 교류 나눴던 순간이 쥐꼬리만큼이라도 유익하고 재미났다면 한꺼번에 잊지는 말기를 청하고 싶다. 인연의 끈이 닳을 대로 닳았을 때 다시 이을 수 있도록 아주 놓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를 잊고 싶으면 마음껏 잊게 해주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함께 한 순간에 충실했다면 헛된 집착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 얼마나 맍은 것을 잊고, 버려야 할까.


060919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2005년 11월 발의한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폐지법률안’이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이영순 의원은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뿐 아니라 '대한민국 안보'를 들먹이며 사상공세를 벌이고 있다. 노골적으로 친미사대성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친일에서 친미로 옷을 갈아입고 반공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왔다”고 주장했다. “재향군인회법 폐지는 재향군인회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자체적인 정관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고 다른 비영리 민간단체처럼 활동하면서 필요한 예산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법으로 국고를 보조하도록 규정된 특혜를 없애자는 것”이라는 이영순 의원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감한다.

재향군인회가 공법상 특수법인의 지위를 부여받기에는 그간의 역할이 너무 시시했다. 극소수 군장성 출신 중심의 비민주적인 운영도 민망한데 일반 사병 출신 회원들의 의견 수렴은 별로 없이 이런저런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도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더군다나 극우파들과 짝짜꿍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면서 “호국정신의 함양 및 고취(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제4조의2)”를 하겠다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제 자유시장경제가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재향군인회는 특권적 지위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 비판의 자유는 재향군인회 상층부에게만 소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애국과 우국도 제발 독점하지 마시라. 국가안보는 협박과 호들갑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060920
고대 인촌기념관에 있는 일민국제관계연구원에 엄상윤 선생님을 찾아뵈러 갔다. 대학에서 만난 숱한 스승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눈 선생님이다. 저녁에 대학원 강의가 있으셔서 간단히 저녁 먹고 담소를 나누다가 왔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받기만 한 거 같아서 민망하다. 머잖아 내가 돈을 버는 날에는 꼭 선생님께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선생님께 정치학원론, 국제정치의 이해라는 강의를 배우면서 공부하는 훈련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시일이 지나면서 많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그 고갱이는 오래도록 간직하겠다. 내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면한다면 상당 부분 선생님 덕이다. 모든 스승들이 그렇겠지만 선생님께서도 당신의 제자가 큰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 내가 그 바람에 부응하는 제자가 되고 싶다. 나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마른 녀석이니까.^^;


060921
이덕일 선생님의 『조선선비 살해사건』에는 최영과 정몽주의 실수를 지적하는 대목이 나온다. 최영이 팔도도통사로 요동정벌군을 계속 지휘했더라면 요동정벌을 해볼 수 있었고, 회군도 막았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그는 우왕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우왕 곁에 남았고 고려의 멸망을 초래했다. 적어도 이성계와 조민수가 회군을 요청했을 때 회군을 수락할 것이 아니었으면 최영이 서둘러 현장에서 이성계와 조민수를 통제하고 군대를 지휘했어야 한다.

최영의 실패가 직접 나서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면 정몽주의 실패는 너무 나선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성계가 낙마해서 몸져누웠을 때 이성계 일파를 귀양 보내며 정국 장악의 실낱같은 희망을 보였다. 하지만 위독하다던 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오자 문병을 핑계로 다녀오는 길에 이방원이 보낸 자객의 쇠도리깨를 받는다. 그런 정세 파악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시점에서 혈혈단신으로 찾아가는 여유를 부려서는 곤란했다.

여하간 두 위인의 엇갈린 실책으로 말미암아 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두 분의 패배를 보며 스스로 직접 나설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분별하는 게 만만치 않은 난제임을 알겠다. 그러나 만약에 최영과 정몽주가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손 하더라도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안 부재에 시달리던 고려는 가까운 시일에 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웅 몇 명이 인력으로 막기에는 고려의 말기는 너무 구접스러웠다. 그런데 나라가 쓰러질 때까지 탐욕을 즐기던 권문세족들은 조선왕조가 개창되고 나서 응분의 대가를 치렀을까. 그게 궁금하다.


060922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진 남자를 만났다. 고운 남자는 희소성이 높다는 경제학적 이유(?)를 떠올리는 와중에도 눈길이 자꾸 갔다.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했지만 왠지 여성스러운 느낌까지 풍겼다. 그 남자의 언행은 자주 쭈뼛쭈뼛할 거 같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팔목이 나만큼이나 가는 남자를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남성피부는 여성피부에 비해 피부가 약 30% 가량 더 두껍고, 모공이 크기 때문에 그 만큼 피지 분지가 활발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노폐물이 많아 피부가 쉽게 더러워지는데 과음, 흡연까지 합세하니 피부가 수분을 잃고 거칠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배우 이준기로 인한 예쁜 남자 신드롬을 못마땅하게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꽃미남, 얼짱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물론 획일적이기보다 좀 더 다양한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인다. 프티 부르주아적 소리를 늘어놓고 있지만 예쁘다는 좋은 말이 어느 한 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가치가 되는 건 어찌되었건 반가운 일이다. 좀 더 많은 예쁜 남자, 강한 여자가 양성평등을 좀 더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품어본다.

뉴욕타임스가 2004년의 10대 신조어 중 하나로 선정한 말로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 미적 감각을 추구하는 남성을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라고 한다. 반대로 사회적 성공과 고소득을 추구하는 씩씩한 여성은 콘트라섹슈얼(Contrasexual)이라 일컫는다. “자신감 같은 긍정적 남성의 면모를 갖추고, 기존 남성에게는 없는 감성 부족 같은 약점을 극복한 사람”이라는 뜻의 위버섹슈얼(Ubersexual)이라는 말도 들린다. 심리학자 융(Jung)은 모든 인간은 그 정신 속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적 요소, 즉 남성은 아니마(여성적 영혼)를, 그리고 여성은 아니무스(남성적 영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융이 말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극단적이면서도 서로 조화하고자 한다. 육체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있지만, 인간성의 본질은 원래 양성적이라는 것이다.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집착하기보다 내면의 인격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의 핵심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시대에 양성성을 갖춘 인간상이 추구된다면 외모에 대한 집착도 상당부분 진정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외모에 무심해서 날로 거칠어지는 피부를 방치하고 있는 내 자신에 좀 미안해졌다. 매트로섹슈얼에 대항하는 말로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의지와 관심이 없는 레트로섹슈얼(retrosexual)이라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내 견고한 내면지상주의(?)를 좀 거두고 외면의 아름다움도 무시하지 말아보자. 세안과 면도만이라도 좀 더 신경 써서 해봐야겠다. 아참 기름종이를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


060923
2006년 정기 고연전을 다녀왔다. 전날까지만 해도 경기장은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나서 작년에 발라놓고 온 꿀(?)을 찾아 벌처럼 날아들었다. 휴가 나온 군인 친구들을 만나는 게 특히 반가웠고, 그간 못 보고 지내던 사람들과 살가운 인사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경영대 다섯 개 반을 돌아다니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 인사 나누려다가 그만 뒀다. 서서히 잊혀지는데 방해가 될 거 같았다. 이제 내게도 언제든 찾아와 머물 곳이 생겼다니 감동의 도가니다.

안암역 참살이길로 와서 선배님들께서 술집 여기저기에서 후배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주류를 제공하는 “나비처럼 돌아와 범처럼 쏜다” 행사에 참여하려고 보니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나는 『시경』에서 “공짜밥을 먹지 않는다(不素餐兮)”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결국 02, 03, 04학번이 따로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훌쩍 지나가 버린 세월에 대한 한탄이 간간이 나오기는 했지만 무척 유쾌한 자리였다. 내 대학생활이 평범하지는 못했는지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이 많지 않은 게 늘 아쉬웠는데 02학번 동기들과도 환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그 자리에 끼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모두들 의기충천하여 기차놀이도 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인사 한 번 하고 맥주 네 병을 얻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배반이 낭자하던 그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처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자정 즈음 들어갔던 뒤풀이 장소에서는 놀랍게도 처음처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동난 것은 아닐 테고 아직도 존재한다는 참이슬만 가져다 놓는 얄미운 술집이었던 것이다. 분개한 나머지 나는 독점이 싫다는 지론을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말했다. 무리한 사업다각화 및 차입경영으로 부도 난 진로기업에 대한 험담도 늘어놓았다(자기자본비율이 2.69%에 불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출발을 하겠지만 참이슬에 포개지는 진로의 이미지는 지우기 힘들다. 아름다운 말만 늘어놔도 모자란 자리에서 쓸데없이 남을 구박하는 발언을 한 거 같아 후회스럽다.^^;

작년 고연전 뒤풀이 때 패배의 쓴잔을 연거푸 들이켰다가 지갑과 디카를 분실했던 아찔한 추억이 있는지라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냥 전철 막차 타고 오려던 계획은 금세 사라지고 아침 6시가 넘어서까지 놀고 먹어버렸다. 스스로 민망한 마음에 그냥 좀 이따가 다같이 자리 파하자는 후배들의 권유를 애써 뿌리치고 도망치듯 집에 왔다. 생각해보니 해장국 한 그릇 먹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올해도 즐거운 고연전이었다. 아니 점점 더 재미있어서 부담스러울 정도다. 1대 0으로 앞서던 축구 경기 종료 1분 전에 터진 동점골이 못내 아쉬웠지만 경기장의 반쪽이 누렸을 짜릿함을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060924
박강님, 봄봄님 부부 댁에 집들이를 다녀왔다. 사실 오후 4시 30분까지 고연전 뒤풀이 숙취에 시달리느라 거의 못 갈 뻔 했으나 다행히 정신이 맑아져서 조금 늦게나마 출발했다. 가보니 박청희님과 조르바님이 와 계셨고 다섯이서 맛난 저녁을 먹었다. lee856님이 불참하셔서 못내 아쉬웠다. 결혼식 비디오를 봤는데 나와 조르바님이 축가하는 장면은 참 겸연쩍었다.^^; 다시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다. 숙취 해소를 위해 술은 안 먹겠다고 결심했지만 역시나 탐스러운 와인과 설중매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백포도주는 포도를 까서 만들었다는 주장과 청포도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대립했는데 찾아보니 둘 다 맞다. 그냥 포도는 껍질을 까고, 청포도는 껍질째로 쓴단다. 내가 좀 덜 가난하거나, 덜 충동구매 했다면 남는 돈으로 와인을 즐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 개신교의 다양한 분파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한국 개신교계의 주류가 장로회에서 갈라져 나온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가 갈라진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예장과는 무척 다른 양태를 가지고 있어서 재미났다. 불교에서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법화종, 화엄종, 열반종 같은 종파가 어지럽게 나뉘듯이 개신교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나는 정부조직개편안에서 문화관광부를 문화체육관광부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청희님은 문화관광부의 공식 명칭은 문화부인데, 문광부로 많이 쓰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줄여서 문체광부로 부를 수는 없을 테고 아마도 본래 이름인 문화부로 불리게 될 거 같다.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군에 끼지도 못하던 시절에 노무현의 가치를 대중매체에서 최초로 말한 이가 고종석 선생님이라는 박강님의 분석이 흥미진진했다. 되돌아보니 그런 것도 같다. 그랬던 고 선생님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환멸을 느끼신다니 슬픈 일이다. 제 지지자들에게서 버림 받는 정치인처럼 처량한 것도 없다지만, 자신의 꿈을 투자했던 인물에게서 실망을 느끼는 지지자도 서럽기는 매한가지다.

청원이가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기 전날이라 좀 더 앉아있지 못하고 태릉입구역으로 향했다. 홍제역에서 집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리는 긴 거리라 왕복하며 고종석 선생님의 새로 나온 시평집을 절반은 읽었다. 나는 내 문장 하나하나가 고 선생님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전에 열린마음님이 이야기하셨듯이 나도 고 선생님의 오마주(hommage)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청원이를 만나 서로가 준비하는 시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벌어먹고 살기의 어려움에 장탄식을 늘어놓기도 했다. 내가 별 탈 없이 밥 벌어먹고 산다면 다섯 가운데 하나는 청원이의 공으로 돌려야 될지도 모른다. 어느덧 그만큼 내게 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금세 배가 꺼지고 허기가 진다. 산해진미를 먹어 놓고서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분식집에서 라볶이와 참치김밥을 먹었다. 단잠을 잘 수 있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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