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행정고시 대비용 행정학 무료 동영상 강의를 재미삼아 듣다가 고위 공무원이 될 여러분들은 공무원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답안을 쓰는 것이 좋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관리자급인 고위 공무원과 현행 공무원 노조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수험생 신분에서부터 공무원 노조를 부러 부정하는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는 게 씁쓸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보장한’ 대표적인 법률인 국가공무원법 제65조는 다음과 같다. 사실상 정치적 행위라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전면 금지되고 있는 셈이다.


제65조 (정치운동의 금지) ①공무원은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
②공무원은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를 하기 위하여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아니하도록 권유운동을 하는 것
2. 서명운동을 기도·주재하거나 권유하는 것
3. 문서 또는 도서를 공공시설 등에 게시하거나 게시하게 하는 것
4. 기부금을 모집 또는 모집하게 하거나 공공자금을 이용 또는 이용하게 하는 것
5. 타인으로 하여금 정당 기타 정치단체에 가입하게 하거나 또는 가입하지 아니 하도록 권유운동을 하는 것
③공무원은 다른 공무원에게 제1항과 제2항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또는 정치적행위의 보상 또는 보복으로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약속하여서는 아니된다.
④제3항외의 정치적 행위의 금지에 관한 한계는 국회규칙·대법원규칙·헌법재판소규칙·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개정 1963.12.16, 1964.5.26, 1981.4.20, 1994.12.22>


지난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탄핵 정국 관련 시국 성명은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의문사위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시국성명서를 발표하여 야3당의 ‘국민주권 찬탈행위’를 규탄했다. 더 나아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결의함으로써 공무원의 정치 참여에 대한 논쟁을 심화시켰다. 이 와중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004년 3월 25일 중학교 교사 김모씨가 지난 2001년 10월 “초중고 교사의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을 금지한 정당법과 선거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청구인들과 같은 초ㆍ중등학교 교원의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금지함으로써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규정한 헌법 제7조 제1항ㆍ제2항,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제31조 제4항의 규정취지”와 “국민의 교육기본권을 더욱 보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라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초ㆍ중등학교 교육공무원의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합헌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헌재의 본안 판단 가운데 눈 여겨 볼 대목은 다음과 같다.


다.공무원 및 교육공무원의 정치활동 제한의 헌법적 정당성
(1)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공무원은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며 일부의 국민이나 특정 정파 혹은 정당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편, 헌법 제7조 제2항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요청은 정권교체로 인한 행정의 일관성과 계속성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신조에 따라서 행정이 좌우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공무집행에서의 혼란의 초래를 예방하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헌법재판소는 1995. 5. 25. 선고한 91헌마67 결정에서 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의 필요성에 관하여,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중립적 위치에서 공익을 추구하고(국민전체의 봉사자설), 행정에 대한 정치의 개입을 방지함으로써 행정의 전문성과 민주성을 제고하고 정책적 계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며(정치와 행정의 분리설), 정권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신분적 안정을 기하고 엽관제로 인한 부패ㆍ비능률 등의 폐해를 방지하며(공무원의 이익보호설),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르는 사회경제적 대립의 중재자ㆍ조정자로서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담당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것(공적 중재자설)”이라고 하면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요청은 결국 위 각 근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무원의 직무의 성질상 그 직무집행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판례집 7-1, 722, 759).
헌재 2004.03.25. 2001헌마710, 판례집 16-1,422,436-436


헌재는 “초ㆍ중등학교의 교원들에게 정당가입과 선거운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현행 법률을 과잉입법금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법학 공부가 일천한 내가 볼 때에도 해석론적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할 여지도 적잖다. 논란의 핵심은 헌법 제7조 2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헌재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규정을 의무로 봤다. 그런데 의무를 보장한다는 건 대다수 한국어 사용자들의 상식에 어긋난다. 통상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것이며, 의무는 부과하고 부담하는 것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조악한 한국어 구사에 수치심이 없는 법률가들이 많으니 헌법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각종 학설과 판례는 그렇다고 쳐도 적어도 법조문만이라도 읽기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일반 국민들이 법조문을 읽고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 아닌가.^^; 물론 이런 험담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 다른 헌법조문들을 보면 헷갈리는 헌법 제7조 2항의 해석이 좀 수월해질 거 같다. 가령 헌법 제6조 2항의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나 헌법 제8조 1항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는 조문을 보면 아무리 봐도 여기서 의무가 도출되지는 않는다. 또한 헌법 제38조인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나 제39조 1항인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처럼 의무의 경우에는 “진다”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 제7조 2항을 권리로 해석할 경우 더더욱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해석론적으로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이 특정한 계층이나 정파의 눈치를 봐서 이익집단의 사익에 복무하지 않기 위한 보호막을 마련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공무원들도 국민인데 너무 과도하게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위 공무원이나 하위 공무원이나 정치적 기본권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의 확대는 하위 공무원부터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백 번 양보해서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 우선순위는 정책결정권을 가진 고위 공무원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선거 낙선자를 고위 공직에 임명하는 보은 인사가 정치적 중립성이 모자랄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일선 구청에 근무하는 운전수나 전기기사에게까지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건 가스검침원들에게 토익 성적표를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지나치다.


“모든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일괄적으로 전면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임지봉 건국대 교수님과 “공무원 개인의 직무수행과 관련이 없는 한 정당 가입, 지지 표명 등 정치활동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는 것이 옳다”는 장영수 고려대 교수님의 말씀에 거개 동감한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1월 확정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s·NAP) 권고안에는 ‘공무원은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는 국가공무원법 제65조 1항과 ‘공무원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9조 등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법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혹자들은 이 권고안대로 관련 법 개정이 되면 수십만에 달하는 공무원과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해서 나라가 혼란스러울 것을 염려한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인공기를 흔들 것이라는 논리와 대동소이하다. 호주제 폐지 논쟁이 한창일 때 금수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던 일부 유림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떤 법률의 개폐문제에 있어서 반대하는 이들은 그 법률로 인해 지금 현재 발생하는 문제보다 그 법률이 개폐되었을 때 발생할 문제를 강조해왔다. 물론 논리 전개상 자연스러운 입장이지만 그 분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예측가능성을 너무 과도하게 신뢰한다. 그래서 측정가능한, 관찰가능한 현실의 문제는 외면하는 우를 범한다. 나도 예측을 좀 해보자면 공무원과 교사들이 국민의 법 감정을 넘어 과도한 행동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 및 여성의 고용촉진을 위해 시행 중인 육아휴직제도가 남성들에게 그림의 떡으로 운용되고 있는 현실이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물론 업무상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의 직무 특성상 정치 행위와 업무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은 정치행위 금지를 내포하는 개념이라고 해석한다. 쉽게 공박하기 힘든 일리 있는 견해다. 교사의 정치 참여가 학생들의 학습권이라는 또 다른 기본권을 침해하고 제한할 수 있다는 헌재의 고뇌도 충분히 동감한다. 하지만 공무원과 교사의 권리 확대가 일반 국민들의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할 것 같지는 않다. 혹여 수인한도(受忍限度)를 넘어선 경우가 있다면 관련 법률을 통해 처벌하면 그만이다. 아마도 추상적 조직으로서의 정부나 각 부처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제법 실현해낼지 모른다. 하지만 일개인은 불편부당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의사결정을 산술적 평균으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마다의 생각과 견해는 늘 갈리게 마련이다. 어차피 공무원과 교사는 지위의 특성상 온전한 정치적 자유를 누리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제 자신을 감추고 숨겨야만 간신히 법을 지키는 상황은 고쳐야 한다. 범법자를 양산하는 법은 그 목표의 적절성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좋은 법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은 원칙적으로 공무원의 정치활동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당원가입은 물론 사직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마도 가능하다고 한다. 미국은 연방공무원에게는 공개적인 후보지지 의사표시, 정치자금 기부 참여 등을 허용하고 있으며, 주와 지방공무원에게는 정치현안에 대한 의견개시, 정당활동 참여, 특정정당후보를 위한 선거운동도 가능하다. 영국은 하위직에게는 정치활동을 완전히 보장하고 있으며, 중간직은 국회의원 출마는 금지하고 다른 활동은 기관장의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 고위직은 정당가입은 인정하나 그 외 활동은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일본이 우리나라처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자민당 일당독재에 가까운 일본 정치 수준을 우리와 비교하는 게 좀 민망하다. 일본 우익들의 모델을 차용할 까닭도 없다. 하기야 우리 법률의 상당 부분이 일본 것을 베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제부터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 국민의 권익을 더 신장하도록 고쳐나가면 될 것이다.


어느 친구는 삼성병원 면접 때 노조 가입 여부에 대한 질문에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어서 다른 병원에 취직했다고 한다. 이태 전 나는 노사관계론 강의 시험 시간에 노동자라고 쓰지 않고 줄곧 근로자라고 써 내려갔다. 여기까지는 법률용어에 충실한 것이라 그리 문제될 것은 없지만 답안 내용도 논란되는 사안마다 노조에 비판적인 내용으로 일관했다. 평소 생각이기도 했지만 사실 조금이라도 점수를 더 받으려는 속셈도 섞여 있었다. 적어도 참된 지식을 흠모하고 기품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녀석이라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사무실 폐쇄 행정대집행이 100%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무원과 교사가 보수를 차등 있게 지급 받을 자유(?)를 강조하기 이전에 제가 믿는 바에 꿈을 투자할 자유부터 보장하는 건 어떨까. 의무를 지울 때는 재빠르면서 권리를 부여할 때는 머뭇거리는 것만큼 법치국가를 초라하게 만드는 건 없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헌법 제11조가 조문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이 불평등한 인생사에 법마저 사람을 차별한다면.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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