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02
“고연전 땐 오시죠?”라는 말에 결국 고연전 둘째 날에 참석해 다음날 아침까지 열심히 놀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 길에 유혹에 약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니, 좀 더 좋게 말해서 소중한 인연의 권유에 약하다고나 할까. 고연전 뒤풀이 때 너무 넘치게 논 것이 마음에 걸려 당분간 조신하게 지내려고 했더니 며칠 뒤 “올꺼지?”라는 문자에 마음의 빗장이 열려 늦게나마 회식 자리를 향했다. 그러고 보면 “올 거지?”, “안 오고 뭐해?”라는 말처럼 사람을 불러내는 문구도 없는 거 같다. 나의 참석이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느낌이 그리 불쾌하지 않다. 내 자유의사가 침해받았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압도한다.

황인숙 선생님은 “자기가 타인의 주의를 끄는 사람인 줄 아는 것도 오해의 첩경”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그 오해가 있어 사는 게 덜 팍팍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오실 거죠?”, “왜 이제야 오고 난리야?”라는 말을 많이 해왔다. 이제 흔들리지 말자고 결심했지만 작심삼일이 되어 후배가 “저 군대 가는데 환송회 때 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살가운 전화 통화에 넘어가 버렸다.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준 후배의 정성을 외면하기에 내가 너무 모질지 못했다. 나는 그 정성에 보답하느라 열심히 마셨고, 다음날 아침에 살짝 후회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어 참 고맙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사양도 해봐야겠다.


061003
개천절에 태어난 용철이 생일을 어떻게 축하할까 고민하다가 “하늘이 열린 날 태어난 용철아 너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길 바란다 생일 축하해^-^”라는 문자를 보냈다. 보내놓고 잘 쓴 거 같아 자화자찬했다. 나는 문자를 분량 제한(80byte)이 걸릴 때까지 꽉꽉 채워서 보내는 편이다. 달랑 한 글자를 보내는 것과 요금이 같은 이상 최대한으로 보내는 게 경제적이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길게 문자 보내는 비용이 있겠지만 편익이 더 앞서는 거 같다. 예전 연인과는 멀티메일을 몇 통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야 그게 즐거웠지만 역시 긴 말은 전자우편이나 메신저를 사용하고, 문자는 액정화면 하나에 꽉 찰 정도로만 주고받는 게 좋다. 문자는 딱 그 정도 양을 감내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일본의 하이쿠가 보여주듯이 짧은 문자도 알차게 보내면 문학 부럽지 않다. 모든 말글에는 혼이 깃들어 있으니까. 다만 80byte는 살짝 부족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0byte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


061004
경영飛반 웹진 10월호 교환학생판에 대한 교열을 간단히 봤다. “근데 보면 대체적으로 기본적 매너가 좋아”는 “근데 언뜻 봐도 대체로 기본 매너가 좋아”로 고치고, “개인적인 조사도 많이 해보셨으면”은 “개인적으로도 많이 찾아보셨으면”으로 고쳤다. 나는 교열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기초적인 오자와 문맥만을 살폈는데도 무척 까다로운 녀석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내가 상급자가 되면 결재서류의 오타를 살피는 무시무시한 상관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교열 맡은 사람이 조금 꼼꼼한 것은 그리 흉이 아니다. 수십 개를 고쳤더라도 놓친 한 두 개의 오타나 비문을 발견한 이들에게는 성의를 다하지 않은 글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일전에 “당시 반대표를 맞고 있던”을 교열에서 누락시켜서 지적 받았을 때 내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 같아 부끄러웠다. 우스운 건 내가 맡은 짧은 연재물은 정작 교열이 소홀해서 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다(難作人間識字人)”을 “難作人間識者人”이라고 써놓고는 한참 뒤에야 발견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정말 경험적 진실이다.^^;

교열을 잠시나마 해보니 틀리는 걸 또 틀림을 알 수 있다. “-것”은 띄어쓰는 것이지만 붙여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사이시옷이 어려운지라 뒤풀이를 뒷풀이로 자주 틀리는데 누차 지적해도 자꾸 틀린다. 맞춤법은 원리원칙을 익히기보다는 다양한 용례를 접해서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 맞춤법 오답 노트까지 만들라는 게 아니라 의식은 하고 쓰자는 말이다. 시간을 내서 문장을 다듬는 법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고 좀 더 교열 내공을 쌓아보고 싶지만 이제 뒷사람에게 맡겨야겠다.^^; 새로 뽑는 후배 가운데 이 악역을 맡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061005
아침 일찍 귀성길에 나섰다. 나는 차만 타면 잠에 빠지는 습성이 있는지라 어차피 잘 거 밤새 놀다가 가기로 했다. 메신저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문화유산 답사를 다닌 후로 풍경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황금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즐거웠다. 대구 외가를 들렀다가 경주 안강읍 친가로 향했다. 제사를 치르지 않는 터라 특별히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지만 나는 명절 음식 준비를 거의 돕지 않았다. 뭐라도 거들 게 있었겠지만 그냥 애견 야니를 음식 곁에 가지 못하도록 돌보는 일만 했다. 이 녀석이 어찌나 칭얼거리는지 거의 인내심 함양 수준의 정성을 요했지만 말이다. 김언수 교수님의 손자병법 강독서인 『전략』 1권을 틈틈이 읽었다. 주위가 어수선해서 손자병법의 세세한 내용까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곁다리로 나온 명언 두 개가 마음에 들었다.

니체의 “If you know ‘why’ to live, you can endure almost any ‘how’.” “왜” 사는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출전을 찾을 수 없지만 아마 독일어로 왜(Warum)가 명확하다면 어떻게(Wie)는 극복해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씀일 것이다. 김 교수님은 개개인의 미션(mission)을 이해하고 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당신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helping others)”이라고 말씀하셨다. 내 미션은 이 세상에 한 뼘의 자유라도 넓히는 “more liberal”이라고 정의해봤다. 사실 자유, 정의, 진리 모두 독점 불가능하고 골고루 배분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하나만 화력을 집중하는 게 미션의 달성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거 같아서다. 하기야 자유, 정의, 진리가 엄격히 분리되지는 않을 거 같기도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Fools say that they learn by experience. I prefer to profit by others' experience.” 바보들은 직접 경험을 하고서야 배우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내가 누차 강조하는 간접 경험의 힘! 그러나 나는 점점 젊었을 때 직접 경험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지니는 지도 깨닫고 있다.

조명도 미비하고 두 군데서 서로 다른 TV 채널이 어지러워서 더 이상의 독서는 무리였다. 윤정 누나를 졸라 사촌들과 모두 근처 번화가(?)로 나와서 통닭에 맥주 한잔을 나눴다. 간만에 먹는 통닭이 참 달았다. 돌아오는 길에 강인형님의 한가위 잘 보내라는 문자를 받았고 나는 어린애처럼 자랑했다. 비록 휴학 네 학기 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 대인관계가 와해되지 않았음을 자랑하고 싶었다니 좀 우습기는 하지만. 구름이 달 사이로 빨리 지나갔다.


061006
언제부터인가 큰집에 제사를 지내러 가지 않았다. 내가 가야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거니와 제사 말미에 여자들이 절 네 번 연속으로 하는 장면이 어린 시절 내게 큰 충격을 주었나 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도 하지만 제사 의식은 내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여하간 이건 핑계고 내 귀차니즘이 가장 큰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간단히 인사 나누고 틈틈이 야니를 산책시키고, TV 채널을 어지럽게 돌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늦은 오후에 다시 외가댁으로 향했다. 다리를 다치셔서 깁스를 하고 계신 외할머니를 뵈니 마음이 아팠다. 집안 어르신들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착각은 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참 어렵다.

우연히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재해석한 KBS1 ‘HD TV문학관’을 보게 되었다. 김동리의 ‘등신불’이었는데 잠깐 보다가 게임TV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묘한 흡입력이 빠져들었다. 중일전쟁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한 재일유학생 ‘나’가 1000년 전 자기 몸을 불살라 열반하면서 등신불이 된 ‘만적선사’에 관한 전설을 접하는 이야기다. 단순한 구조고 뻔히 예측 가능한 결말이지만 배우의 연기력 덕분이었는지 빼어난 영상미 덕분이었는지 넋 놓고 봤다. 중국 현지 촬영이 많았는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낙산대불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등신불은 단편 소설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길게 풀어 나가는 것을 보니 이야기에 살을 붙인 거 같은데 나중에 원작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안고수비(眼高手卑)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눈은 높으나 재주가 낮다는 뜻이다.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어제 내 미션으로 정의한 more liberal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기 위한 결심인 셈이다. 등신불의 여운 때문이었는지 보름달에 맺은 언약 때문이었는지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부엌에 불을 켜고 『전략』 2권을 읽었다. 김언수 교수님은 마케팅에서 나오는 push와 pull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용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내가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가는 방법이 있고(push),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만드는 수(pull)가 있”는데 최소한의 push와 최대한의 pull로 제자들을 이끌겠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다. 무척 설득력 있는 비유다. 경영학적 개념 가운데 이렇게 실생활에 응용해볼 수 있는 게 적잖은데 좀 더 열심히 배워둘 걸 그랬다.


061007
일찍 나선 덕분에 그리 막히지 않고 집에 올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거의 잠만 잤지만.^^;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김동리의 단편집이 있었다. 역시나 하는 생각에 읽어보니 어제 본 TV문학관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원작에는 없는 허구의 인물인 이복 여동생 여옥이 없다는 게 놀라웠다. 만적 선사의 소신공양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 여옥에 대한 애틋한 연모의 정은 각색의 힘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나도 세상사의 고뇌 가운데 상당부분은 이성간의 관계에 비롯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나쁜 행실을 하다가 미쳐버린 어머니가 아들의 소신공양을 계기로 정신을 차린다는 대목도 원작에는 없다. 사실 원작의 완결성을 깨는 대목이 어머니의 악행만 기록되고 추후의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 점에 있어서는 TV문학관이 더 밀도가 높은 결말을 보여준다. 물론 내 완벽증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지만.

TV문학관은 마지막에 주인공 내가 “자네 바른손 식지를 들어 보게”라는 원혜 스님의 말씀을 “만적 선사처럼 온 몸을 다 바치는 대공양(大供養)뿐 아니라 비록 손가락 하나나마 신심으로 맹세하여 부처님께 공양한 나 또한 이미 누구 못지 않은 진실한 불제자인 것은 아닐는지”라고 생각한다. “만적의 소신공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원작과 견주어 적극적인 해석이다. 문학적으로는 원작이 뛰어나겠지만 주인공의 자족적(?) 해석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교 문학자습서 등에서는 만적의 소신공양과 주인공의 혈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소신공양은 이타적, 대승적 행위며, 혈서는 이기적, 소승적 행위로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부처님의 은혜에 대한 구원을 꾀한다는 공통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願免殺生 歸依佛恩(원컨대 살생을 면하게 하옵시고 부처님의 은혜 속에 귀의코자 하나이다)라고 혈서를 쓴 정성은 소중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테레사 수녀님의 시가 계속 떠올랐다.

[한번에 한사람] - 마더 테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061008
한가위의 대미를 영화 연애술사로 장식했다. 거시경제학 예습을 좀 하겠다는 연휴 계획을 거의 실천하지 못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를 보낸 스칼렛이 스스로를 위로하며 던지는 마지막 대사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멋진 재창조다. 이 명구의 실제 원작은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Tomorrow is another day)”였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살짝 실망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미련한 나는 이 대사를 듣기 위해 그 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 여하간 내일은 명절의 기운을 훌훌 털고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쉴 만큼 쉬었고, 놀만큼 놀았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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