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日記(06.10.09~06.10.15)

일기 2006. 10. 16. 02:23 |

061009
북한이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건 희망이 아닌 절망일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김정일 일당의 영속적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몰상식과 파렴치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오기로 느껴진다. 아울러 그간 북한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민족 공조는 허울뿐인 거짓이었음이 또렷해졌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김정일 일당의 행패로 말미암아 대북 포용정책이 철저히 실패했다는 반응이 봇물 터지듯 나올까봐 걱정스럽다. 당분간 남북한 냉전세력들의 추잡한 상부상조를 보는 것도 고역일 게다.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재미에 사는 이들의 몽니는 북한 인민을 내 나라 사람처럼 아끼고 보듬으려 한 이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가 될 것이다. 대뇌피질을 상실한 전쟁광들은 대한민국이 그간 갈고 닦은 진정한 힘을 이제 똑똑히 보길 바란다. 이 사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풀어내는 가는 우리 사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지나친 호들갑은 금물이다.


061010
어제 북핵 실험 때문에 한글날에 너무 험악한 말을 내뱉은 거 같아 하루 종일 후회스러웠다. 차분한 대응을 하자면서 정작 내 자신이 그다지 침착하지 못했다. 여하간 어제(9일)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가 공군 전산특기병으로 입대하셨다. 개인적으로 프로토스 팬인지라 임 선수에게 죽어 나간 숱한 프로토스 유저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많이 본 연유로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가 최연성 선수와의 스타리그 결승전 때 석패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릴 때 나는 그의 눈물이 헤픈 행동이었다고 얄미운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오영종 선수와의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석패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 때 나는 내 옹졸함에 고개를 떨궜다. 수명이 짧은 이스포츠 세계에서 만 7년째 버텨온 것은 그가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영민한 인물임을 말해준다. 병역특례를 주자는 여론에 기대어 볼만한데도 그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임요환 같은 인물이 병역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멋지다. 그러나 임 선수가 총 대신 마우스를 계속 잡을 수 있는, 징병제가 사라진 나라가 훨씬 더 멋질 것이다. 아무쪼록 요환형님이 늘 건승하시길 바란다.


061011
옆 사무실의 상근병 동생이 전역을 했다. 나는 축하를 하면서도 아직 10개월이나 남은 나의 군역을 헤아리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문득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꺼워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 됨을 기뻐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진짜배기 축하는 참 어렵다. 남의 성공을 축하하기 이전에 나의 안일과 나태를 질책하기 바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나태에 대한 벌로서는, 자기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 이외에 타인의 성공이 있다”는 소설가 르나르의 말에 공감한다. 

정신의학자 아들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열등하게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To be a human being means to feel oneself inferior)”고 주장한다. 내가 곧잘 쓰는 표현인 ‘조바심은 나의 힘’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 것 같다. 자기반성이 아무리 따갑더라도 지인의 경사를 가슴 깊이 반길 일이다. 운 좋게도 축하 받는 입장이 될 때에는 진심 어린 축하를 받지 못할까 염려해야겠다. 우리가 남의 잘됨을 내 일처럼 기뻐하는 건 단순히 성과 자체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의 신실함과, 이에 비추어 기대하는 더 나은 모습에서 찬사를 보낸다.


061012
신자유주의에 대한 탐구를 좀 더 하고 싶어졌다. 나는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니 순서를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탐구라고 거창히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대세적 분위기에 대한 차분한 검토 정도라고 칭하면 될 듯 하다. 적어도 “냉전적 수구세력의 집권을 저지하자”거나 “좌파들의 농단에서 나라를 구하자”라는 구호보다는 세금을 얼마나 더 걷고, FTA는 어떻게 할 것이냐 같은 논의가 좀 더 유익할 거 같다. 신자유주의를 마냥 증오하는 건 너무 단순해서 재미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신자유주의도 여러 겹일 테니 말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데도 살기가 더 팍팍해지는 것에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인 최소수혜자들이 최소한의 고통을 겪는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적 기법과 양식을 체화하는 것이 이 난국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여러 겹이듯 그 대응 방안도 여러 겹일 테니 함부로 속단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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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은 사람이나 기업의 상호작용을 해석하려는 데서 시작된 학문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행동에 상대방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수학적으로 분석한다. 게임이론에 관심은 많은데 조금만 깊이 들어가려고 하면 알쏭달쏭 수학 세상이 펼쳐져서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게임이론이 언뜻 보면 비정해 보여도 인간사의 냉혹함을 가능한 한 반영해 이론의 현실적합성을 높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게임이론을 현실 상황에 적용시켜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아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셸링은 납치범과의 극단적인 협상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는 공약(Commitment)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더욱 좁게 만들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헌법에는 비행기 납치범과 협상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약은 상대방의 선택 폭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스라엘의 비협상정책은 비행기 납치로부터 기대되는 이득을 제거함으로써 납치 실익을 0에 가깝게 만들어 버린다.

정부가 스스로 재량을 0으로 수축시킴(행정법 용어를 따왔다)으로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방안을 남북관계에도 적용해보자. 북핵 불용(不容) 원칙에 위배될 경우 어떠한 형식의 남북 교류도 전면 중단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 한반도 생민들을 볼모 삼으려는 시도에는 사정 판단, 정상 참작의 여지없이 법대로 처리해버리는 셈이다. 이러한 비협상전략은 햇볕정책과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대한민국의 ‘결정적 이익(vital interest)’을 심대하게 침해할 때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햇볕정책을 훼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나저나 요 며칠 모기가 부쩍 늘어서 다섯 마리는 잡은 거 같다. 미물을 살생하는 데도 가끔은 마음이 아픈데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장사를 하려는 자들이 너무 얄밉다.


061014

승현(섭), 승현(정), 현식이와 간만에 만나 담소를 나눴다. 나는 이번 주에 공부한 거시경제학 상식들을 꺼내 놓으면서 우리나라 실업률이 상당부분 과소 계상되어 있음을 역설했다. 고용시장이 불안정한 건 우리 사회의 큰 짐이 될 공산이 크다.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사회는 힘들더라도 평생고용을 달성하는 사회는 만들어 내야하지 않을까 싶다. 두 단어는 거의 비슷한 뜻이지만 종신고용이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한다는 개념이라면 평생고용은 직장을 몇 번 옮기더라도 일할 나이까지는 계속 밥벌이를 해나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여하간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는 남들이 힘들게 포장까지 다 해놓은 사탕을 얄밉게 홀라당 까먹는 사회 지도층을 통박했다.

승현(정)은 보다 더 적절한 밤의 비유를 들어줬다. 밤송이를 애써 까놓고, 심지어 깎아놓기까지 했는데 슬쩍 챙기는 사람이라니 모두들 정말 밉살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레몬시장(lemon market)이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처럼 경제학 용어 가운데 재미난 비유가 많은데 “밤알 빼먹는 사람(chestnut thief)”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놓고 자화자찬에 빠졌다. chestnut thief가 생산성이 낮은 태만한 노동자라는 가리키기보다는 무능한 정치인 같은 사회 지도층을 주 타깃으로 한다. 좀 더 문제의식을 확장해서 chestnut thief가 사회후생에 어떠한 손실을 입히는지에 대한 좀 더 체계화된 정리를 해보면 재미날 거 같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억상실증은 밤알 빼먹는 사람에게 너그러워서 그네들이 또 밤을 빼앗게 만든다.


061015

김경수, 박대근 교수님이 지은 거시경제학 책을 일주일에 걸쳐서 통독했다.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고, 복잡한 수식들은 적당히 건너 띄었지만 그래도 거시경제학의 기초를 훑어봐서 뿌듯하다. 거시경제학은 소비자와 기업의 경제활동, 물가, 금리, 대외수지 및 환율 및 각종 경제정책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흔히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고 부르지만 본래 그 별명이 붙여진 배경과는 다른 이유로 경제학 공부를 하는 내내 조금은 우울했다. 복잡한 수식을 맞닥뜨릴 때나, 참신하고 아름다운 이론들을 접할 때면 내 모자란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동전의 양면과 같은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현란하게 펼쳐지고 케인즈학파와 고전학파의 건곤일척도 흥미롭다. 얼마나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거시경제학은 두고두고 내 지적 원천으로 벗삼고 싶다. 내가 보기에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안정성의 부족이다. 멀쩡한 직장인이 실직을 하는 순간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파른 생활수준,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1/3이 넘는 기형적 경제활동 구조가 그 예다. 나와 생년이 꼭 100년 차이가 나는 경제학의 태두 케인즈에게서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확충하는 방안을 많이 얻을 것 같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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