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타고라스의 재판

2006. 10. 19. 01:30 |

프로타고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리석은 젊은이여, 그대가 이 소송에서 승소하든 패소하든 그대는 내가 요구하는 것을 지급해야만 할 걸세. 만약 그대가 패소한다면 내가 승소하므로 판결에 따라 내게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대가 승소한다면 그대가 승소하므로 우리의 계약에 따라 내게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네.”


에우아틀로스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현명하신 선생님, 제가 이 소송에서 승소하든 패소하든 저는 선생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제가 승소한다면 제가 승소하므로 판결에 따라 제가 선생님께 지급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만약 제가 패소한다면 제가 승소한 적이 없으므로 우리의 계약에 따라 제가 선생님께 지급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 재미난 이야기를 손수 번역해주신 사문난적님께 각별한 고마움을 표합니다.^-^

<출전> 스승과 제자---최후의 승자는?
http://www.cyberoro.com/board/board_view_pnt.asp?db=TB_CULTURE&num=3350
http://www.tygem.com/Column/Cboard/view.asp?seq=1699&pagec=1&find=프로타고라스&findword=title`content`&gubun=C002


프로타고라스의 제자 에우아틀로스는 법정에서 변론하여 승소하는 최초의 날에 절반의 수업료를 지불하기로 해놓고 차일피일 미뤘다. 프로타고라스는 제자가 한 번도 법정에서 변론을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을 보냄으로써 나머지 수업료를 지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에우아틀로스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딜레마의 대표적 사례로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이 사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안을 찾았다.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명순구 교수님의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정구태님이 올려주신 답변인데 사견을 첨가해서 좀 더 알기 쉽게 정리해봤다. 물론 이것은 우리 민사소송법에 의거한 해답일 뿐이다.


프로타고라스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민사소송법상 법관은 사실심판변론종결시(事實審辯論終結時)까지 현출(顯出)된 자료만을 기초로 판결을 내리게 되어 있다. 따라서 사실심판변론종결시까지 에우아틀로스가 아직 승소한 적이 없으므로 프로타고라스의 수업료채권(授業料債權)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원고인 프로타고라스는 수업료채권의 부존재가 되어 청구가 기각될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에우아틀로스는 승소하게 되므로 판결확인시에 프로타고라스의 에우아틀로스에 대한 수업료채권도 발생하게 된다. 프로타고라스는 이러한 사실변경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소를 제기하면 승소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확정판결의 기판력(旣判力)이 문제가 된다. 기판력이란 확정판결의 내용이 갖는 구속력을 말한다. 일단 재판이 확정된 때에는 동일한 소송물에 대하여는 다시 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변론종결 후에 사정변경이 생긴 경우 기판력에 의하여 확정된 법률효과를 다시 다툴 수 있다. 가령 채무이행소송에서 기한이 도래되지 않아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었다가, 변론종결 후에 기한이 도래한 경우에 원고는 새로운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복잡하게 할 것도 없이 에우아틀로스가 고의적으로 승소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 프로타고로스의 청구는 이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에우아틀로스가 몇 번의 패소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변론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성실원칙에 반한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부러 법서의 문체를 흉내내봤다. 행정법 책을 훑어보는 중인데 그 방대한 양도 양이거니와 헌법, 민법, 형법 같은 기초 법학의 소양도 없이 덜컥 행정법을 배우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언젠가 김훈 선생님이 법학을 공부하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게 생각나서 좀 버티고는 있다만서도.^^; 조악한 문장에 주눅들지 말고 그래도 법학 특유의 논리적 구조를 배우려고 노력해봐야겠다. 이 재판의 결과만큼 궁금한 게 프로타고라스의 속내다. 이처럼 속 썩이는 제자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에우아틀로스 같이 얄미운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을 경계해야겠다. 유능한 확신범만큼 무서운 게 없구나.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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