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日記(06.10.16~06.10.22)

일기 2006. 10. 22. 22:19 |

061016
소은, 재호와 함께 연정이의 졸업전시회를 다녀왔다. 동양화에 대한 나의 고정된 틀이 깨어지는 문화적 충격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사군자에다가 수묵담채화의 향연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동서양의 통합을 체험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연정이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재료 같은 것들이 동양화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화가 대세인 서양화에 비해 동양화 특유의 맛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고흐의 자화상을 수묵으로 다시 그려낸 서민정님의 [고흐 씨?]를 잘 만든 작품 같다며 추켜세웠다. 또한 같은 작가의 작품인 악수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악수공화국]에서 “악수는 얼마나 긍정적이고 따뜻한가. 또 얼마나 비굴하고 너저분한가. 그래서 악수를 잘하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가”라는 도록에 실린 설명이 와 닿았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김해림님의 [일상-흐름]은 동양화의 색감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덜 무섭게 그리기 위해 애쓰셨다고는 하지만 송승희님의 [할 수만 있다면]은 제 심장을 덜어내 보이는 장면에서 절실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로를 재창조한 김동훈님의 [Neo_天象列次分野地圖Ⅱ]는 내 취향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들의 주인공 연정이의 작품은 “나”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나만 생각하고 끊임없이 채우고 싶지만 너와 함께 더불어 비우고 살아가고자 한다”는 작품 설명이 한참을 입에서 맴돈다. 장지 위에 채색한 탈춤 추는 사람, 순지 위에 수묵담채한 탈춤 추는 사람, 작은 탈들을 이어 붙여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 작품까지 세 점의 작품을 한참을 감상했다. 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지만 나는 거기서 환희를 읽었다. 현대 미술하면 멜랑콜리와 데카당스가 언뜻 연상되지만 나는 이 젊은 가능성들이 좀 더 희망과 낙관을 말했으면 좋겠다. 여하간 연정이가 졸업전시회 준비한다고 바쁘다고 했을 때 너무 바쁜 척한다고 투덜거렸던 내 자신이 민망해졌다. 대학 4년간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참 복된 일이다. 물론 이렇게 작품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와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친구의 정성어린 전시회를 보며 내 자신이 더 초라해져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너무 칭찬만 한 거 같아 부러 험담을 하자면 문인화 같은데서 볼 수 있는 시서화(詩書畵)가 겸비된 작품을 만나기가 힘들어서 살짝 아쉬웠다(어쩌면 그건 기본으로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특별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드물기 때문에 조금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리타분한 걸 고집하는 답답한 사람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가. 나오면서 방명록에 최순우 선생님 선집 제목인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를 썼다. 내 나름의 안목과 잣대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에는 마음을 아낌없이 내어놓을 줄 아는 여유도 있고, 추한 것을 미워하되 그 배경을 헤집는 여유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채로운 동양화의 빛깔을 통해 내 미적 지평을 넓혀주신 고려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전공 졸업자 여러분들께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061017
어제 연정이 졸업전시회 끝나고 처음으로 가본 무아의 회국수는 달콤했다. 차나 한 잔 하자고 했지만 나는 부득이 함께 하지 못했다. 광호형님, 을광형님께서 뜻을 모으시고 나와 지현이가 껴서 경선, 종관이 입대 환송회를 조촐하게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이 겹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놀기 좋은 날은 대개 엇비슷하기 마련이라 취사선택을 하거나 겹치기 출연을 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 책임지지 못할 사람 욕심 때문에 한 모임에 충실하기 보다는 두 모임에 겹치기 출연을 한 경우가 조금 더 많았던 거 같다. 어떤 모임을 조금 일찍 나서는 대신, 혹은 조금 늦는 대신 앉아 있는 동안 알차고 재미나게 담소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하간 시험기간과 관계 없는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술자리에서 으레 등장하는 진솔한 이야기는 사람 사이의 유대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도 글과 말을 통해 내 속내를 제법 많이 밝히는 편이라 특별히 더 드러낼 이야기가 없기 일쑤다. 혹여 내가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녀석이라고 비춰진다면 내 표현력의 부족과 더불어 투명해질수록 탁해지는 아이러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내 대외홍보용 장래희망이 “국무회의 구성원”이라든가 하는 걸 나는 부러 숨긴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나는 내 둘레 사람들이 나를 대강 관찰한다면 어느 정도 언행이 예측 가능할 수 있게 자리매김하고 싶다. 날마다 성장하면서도 늘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탐욕인지도 모르겠다.

4차로 중앙광장을 향하는 길에 정환형과 재연이를 간만에 만나 잠깐 자리를 함께 가졌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자리에 나는 함께 한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못한 거 같지만, 함께 한 사람들은 나를 기쁘게 해줬다. 광호형님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머지않은 훗날 동창회 형식을 빌려서라도 이 인연을 유지해나가고 싶다. 그 때 내가 미력이나마 도울 게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다. 내 술버릇 가운데 하나는 모임을 가진 사람들이 귀가를 잘했는지 확인하는 거다. 요즘은 문자가 잘 안 보내지는 관계로 한 사람 한 사람 전화를 걸어 내 무사 귀가를 알리고 무사 귀가를 기원했다.

2차 천하객잔에서 마셨던 공부가주(孔府家酒)는 도수는 얼마 안 되었지만 후폭풍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조신하게 지내는 건 너에겐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걸?”이라는 소은이 문자가 뜨끔했다. 그나저나 종관이 환송 섞어주에 금붕어를 넣겠다는 계획을 말려야 할지 먼발치서 발만 동동 구를지 고민이다. 작년 8월경 나는 섞어주가 너무 갑자기 사라질까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석 달간은 유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섞어주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역시 관성을 깨는 게 무너진 관성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 횡설수설을 보면 현식이가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논다고 구박할 듯싶다.


061018

나의 모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가 종교 집회를 개최해 학생들을 참석시키는 등 미션스쿨(개신교계 학교)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지난 9월 서울외고는 전일제 CA 활동 대신, 1, 2학년 학생들을 모두 강당에 불러들여 서울 S교회 김 모 목사의 종교집회에 참석토록 했다. 여기서 학생들을 위해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겠다면서 ‘사탄’ ‘미신’ ‘무교’ 등의 문구가 써진 송판을 격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강연 중간 중간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라며 예배를 강요하기도 했단다. 김 모 교장이 “이 강연은 대 서울외고가 미션스쿨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라고 발언했다니 점입가경이다. 뿐만 아니라 연초 기간제 교사 초빙 공고 때는 신앙경력을 기재하라는 교사 채용 지원서 양식을 만들었다고 하니 이래저래 강한 의구심이 든다.

서울외고는 1994년 개교한 이래 이제 13년에 지나지 않은 짧은 역사지만 적잖은 이들이 거쳐 갔고 많은 추억과 가르침을 안고 사회로 나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짠한 그리움일 서울외고를 제 멋대로 바꾸려는 이들이 밉다. 지난 12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개정 사학법을 따를 경우 설립 취지에 맞는 종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개연성이 커진다는 측면에서 헌법 제20조 제1, 2항의 종교의 자유 등을 위배하여 위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정 사학법과 서울외고 사태 가운데 무엇이 더 위헌의 소지가 클까? 그 답은 비교적 또렷하다. 가장 낮은 이들과 벗했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이들이 누구인가. 절대 약자인 학생들을 상대로 저열한 종교 장사를 벌이는 이들이 누구인가. 이런 강압으로 자신의 어린 양이 느는 것을 반기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차라리 대한민국 헌법을 더 애호하겠다. 서울외고 미션스쿨 전환을 반대한다.


061019
경영B반 웹진에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한글 자음 ㄱㄴㄷ을 열쇠말(키워드)로 하는 시 감상 연재물을 총 14부작, 10개월만에 탈고했다. 얼렁뚱땅 시읽기 마지막 글을 올리니 글빚을 갚느라 노심초사했던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처음의 호기로움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그런 시시한 글들만 쓰고 말았지만 내 졸고를 버리지 않고 이렇게 끝을 보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성과물이 하잘 것 없어도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법이니까. 열 줄 짜리 글이라 순식간에 쓸 거 같아도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고 갈고 닦았다. 많이 걸릴 때는 서너 시간동안 작업하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 들이고서도 고작 이런 글밖에 못 쓰는 게 민망하다.^^;

가을가뭄 때문에 제대로 단풍도 들지 못하고 말라버린 나뭇잎 마냥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재주가 부족해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해 미안하다. 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시를 너무 쉽게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허술한 글에 화사한 옷을 입혀준 레이아웃팀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WE飛ZINE 여러분은 내 희망의 원천이며, 오래도록 함께 걷고 싶은 동반자다. 황금들판 같은 우리네 인연 오래도록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이제 객원기자 딱지를 떼고 정식기자 시켜달라고 졸라봐야겠다.


061020

섞어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어제 환송회 자리에서 다들 즐거우셨죠? 저도 간만에 처음처럼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어요. 제 나름대로 준비해본 야심 찬 아이템이었던 붕어빵과 더불어 들어간 새우젓, 브로콜리 등으로 말미암아 섞어주가 거의 해물샐러드 수준이 되었던 거 같아요. 아마 또 다시 섞어주가 존폐의 논란에 쌓이겠구나 싶습니다. 작년 8월경 저는 섞어주가 너무 갑자기 사라질까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석 달간은 유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격세지감이 밀려오네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개인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자리를 빠져 나온 거 같아 죄송스럽지만 이게 다 조금 덜 놀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음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집에 와서 제 디카를 확인해보니 엄청난 양의 사진이 있더군요. 용철이가 부지런히 도촬한 건데 정말 이 사진을 공개해야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들 도촬에 대한 대비가 별로 되어 있지 못한 모습이었어요. 저작권자인 용철이와 상의해서 선별하던지 해야겠습니다. 쿨럭

이역만리 미국에서 섞어주에 파워에이드를 꼭 좀 넣어달라고 제안해주신 혜진누나, 저만 보면 술을 주고 싶어하시는 헌조형, 이제야 정식으로 인사 나누고 친해질 날만 남은 지호, 후배 환송회를 위해 귀한 외박을 써가며 굳이 새우젓을 들고 와 섞어주 바다 버전에 일조한 성구, 환송회 극초반에 바람처럼 사라져서 아쉬웠던 영걸, 간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나서 반가웠던 패창, 결국 술을 약간 마셔버린 기민, 돈 걷느라 고생한 지수와 준웅, 섞어주를 고운 손을 넣어 휘젓던 준수, 제 잡설을 듣느라 고생했을 용휘, 그리고 저와 함께 처음처럼 술동무가 되어주신 많은 분들, 무엇보다도 짜디짠 섞어주에도 생존해준 종관이까지... 모두 고마웠습니다.^-^

-  종관이 환송회 다녀와서 쓴 <섞어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어제>  中


061021

나는 북핵을 저지하기 위한 비협상전략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북핵 불용(不容) 원칙에 위배될 경우 어떠한 형식의 남북 교류도 전면 중단하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하자는 거다. 이러한 비협상전략은 햇볕정책과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래야만 햇볕정책의 실효성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06학번 후배 하나가 어떠한 협상도 거부하게 된다면 이는 햇볕 정책과도 상충관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좀 더 정교한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이재석님의 지적대로 북한을 비난하는 게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아무런 효용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반북적(?) 발언은 좀 자제해야겠다.^^;

여하간 모든 정치인들이 몸 사리고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을 때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나 김대중 전대통령님 같은 분들이 소신 있는 행보를 하는 건 기꺼운 일이다. 특히 현실 정치적 관점에서 손해볼 여지가 많아 보이는 일에 투신하는 김근태님의 행보는 이채롭다. 이런 정치인이 있다는 게 반가우면서 한 편으로는 너무 적다는 게 슬프다. 김근태님이 개성공단 방문했다가 식당에서 춤은 춘 게 화제다. 점심 식사자리에서 북한측의 거듭된 요청으로 율동을 좀 한 거 가지고 광란의 춤판 운운하는 게 섬뜩하다. 얼마 전 음주가무를 즐기다 여기자를 성추행한 모씨나 술좌석에서 오징어로 경비원 뺨을 때리거나 술병을 집어던지던 모당 의원들이 떠오르고 이런 걸로 시비를 거는 한국 정치의 낙후성을 새삼 탄식하게 된다.

그나저나 송영선, 공성진 의원이 내년쯤에 해병대를 원산에 상륙시키자는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 전쟁을 농담 삼아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모로 불안하다. 두 사람은 국정감사 피감기관인 해병대 사령부에서 평일에 골프를 쳐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보니 발언의 진솔함이 많이 떨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평화통일이 우리의 목표라면 그 수단도 마땅히 평화적이어야 한다. 조금씩이나마 남북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낮춰 가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북 간 평화적 군축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 앞으로도 추진해야할 통일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핵 같은 중차대한 사안에서는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게 내 소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차 강조했듯이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지를 줄일뿐더러 국제적으로도 시비 걸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애국질을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태에 차가운 머리로 애국을 궁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061022

4년 반만에 토익시험을 봤다. 나는 대학 새내기 시절 토익 시험을 두 번 접수했는데 두 번 다 전날 술을 마셨다. 한 번은 결국 못 갔고, 다른 한 번도 그리 맑은 모습으로 시험을 치르지는 못했다. 그 후 내 공부도 부족했고, 인연이 닿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뤘다. 이제 더 이상 미루기 힘들어서 토익 시험을 당분간 계속 볼 듯싶다. 행시 1차 시험 응시 요건은 700점, 대학 졸업 요건은 780점이니 당분간 그 점수를 넘기 위해 애쓸 참이다. 나는 영어 공부를 그리 많이 하고 싶지 않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최소 기준만 채우고 다른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최소 영어 공부에 밀도가 있다면 그리 나쁘게 볼 일도 아니다.^^;

오후에 뉴스 검색을 하니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나온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기간이 8개월로 짧았음에도 그 기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979년 12.12 사태와 이듬해 벌어진 광주 5.18 민주항쟁의 진상에 끝끝내 함구했다. 어느 책제목대로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고 묻고 싶다. 최규하 일개인의 청렴함과 영민함은 준엄한 역사의 과오에 빛이 바랬다. 그는 비굴했고 시대정신을 외면했다. 그 자신의 문약함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그는 국가 최고권력자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조금이라도 진전시키는 과업을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부지런했던 인물에게 험담을 늘어놓는 건 민망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는 나 같은 이의 볼멘 소리를 들어도 그리 섭섭해하지는 못할 거 같다.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