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사극의 진실?

문화 2006. 11. 5. 23:23 |

요즘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 한창입니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은 고구려의 탄생, 고구려의 마지막 전성기, 고구려의 패망과 이어지는 부흥을 그려내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료가 부족하다 보니 역사왜곡의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 봐도 우리나라 고대사 사료는 정말 너무 적거든요.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은 그보다 천년 전에 쓰인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비해 그 양도 1/10에 못 미칠뿐더러 그 질도 변변치 못하거든요. 우리 국사 교과서 초기 국가편의 부여, 옥저, 동예니 하는 나라들의 기록은 진수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그대로 베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자료가 적은 고대사이니 만큼 상상력을 가미한 해석이 많이 필요합니다. 고대사 부분은 정설과 통설이 가장 적다고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죠.


몇 가지 지적해보겠습니다. <주몽>에서 소서노와 주몽의 애틋한 로맨스는 역사적 사실과는 크게 다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는 주몽이 소서노와 결혼할 때 이미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이 딸린 과부라는 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편찬자는 백제의 시조를 온조왕설과 비류왕설 등을 기록하며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하간 적어도 소서노와 주몽의 사랑은 주몽이 북부여를 나와 졸본부여에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할 때 비로소 싹튼 것이지요. 소서노는 졸본지역 족장의 딸로서 주몽의 건국사업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소서노는 주몽의 첫 부인 예씨의 아들 유리가 태자로 책봉되고 주몽이 죽은 뒤 비류, 온조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해 백제를 세우게 됩니다. 어찌 보면 남편을 고구려 시조로, 아들을 백제 시조로 만든 한국사의 여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략결혼에 시달린 가련한 여인일지도 모릅니다. 아참 슬프게도 우리들의 단세포 왕자 영포는 사료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점도 밝혀야겠군요. 금와왕에게는 대소를 비롯한 일곱 아들이 있다고만 전해집니다.


이 밖에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종합하면 부여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2개 이상의 부여가 존재했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라고 합니다. 북부여와 동부여의 구분이 매우 어지럽습니다. 금와왕은 해모수가 부여에 자신의 나라를 세움에 따라 동부여로 옮겨간 해부루의 양자였기 때문에 드라마에서처럼 진한 우정을 나누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몽은 동부여 금와왕 밑에 있다가 독립했다고도 하지만 광개토태왕비와 모두루묘지에는 주몽이 북부여로부터 나왔다고 말합니다. 알쏭달쏭하지요?^^; 더 놀라운 것은 <삼국유사>에는 해부루가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족보가 난리가 납니다. 졸지에 해모수는 금와왕의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고 유화부인은 금와왕의 할머니뻘이 되며, 주몽은 금와왕의 삼촌이 되어버리거든요. 뭐 부여사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혼돈으로 보이니 만큼 추후 연구 결과를 주목해봐야겠습니다. 이 밖에도 한사군의 하나인 현토군의 지리적 위치와 정치적 위상에 대한 논란도 치열하다는 점을 부연합니다.


다음으로 <연개소문>과 <대조영>에서 겹치기로 출연하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연개소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두 드라마에서 연개소문과 양만춘의 관계가 사뭇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 태종을 패주시킨 안시성 전투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주역인 성주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사료에 없습니다. 조선 후기 송준길과 박지원이 이를 양만춘이라 밝혔지만 우리 학계는 여전히 안시성주라고만 쓰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안시성주 양만춘 장군이라고 쓰고 있다고 하고요. 여하간 두 드라마는 안시상주를 양만춘이라고 호칭합니다. <연개소문>에서는 연개소문의 지휘를 받는 부하장수로, <대조영>에는 군권의 2인자로서 요동 지역을 관할하며 연개소문의 친한 친구 사이로 나옵니다. 하지만 둘 다 사실성은 떨어집니다.


안시성주는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통해 영류왕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에 반발했습니다. 연개소문은 안시성주를 복속시키려다 실패하고 결국 서로를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연개소문> 도입부에 연개소문을 띄우려는 의도가 지나쳐서 당시로서는 시골 촌구석인 안시성에 연개소문이 전쟁을 직접 지휘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연개소문과 안시성주와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반추해볼 때, 영류왕과 귀족들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한 연개소문이 평양성을 비우는 위험을 감수하고 안시성까지 온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이죠. 당나라와의 혈전을 총지휘한 사람은 어디까지나 연개소문이지만 안시성 전투에 연개소문이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 부분은 <대조영>이 좀 더 현실과 가깝게 그렸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으니 만큼 여기에서 그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에 강한 매력을 느낍니다. 연개소문이 665년에 사망할 때까지 당나라는 고구려를 상대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삼국사기> 연개소문 열전에는 잔인하고 포악한 독재자로 그려져 있지만 그 편찬자들이 이용했던 거의 모든 사료는 자치통감, 북사, 수서, 구당서, 신당서 등 중국 측 자료였습니다. 연개소문에 번번이 패한 중국인들의 증오에 찬 묘사를 그대로 끌어다 쓴 건 김부식을 위시한 삼국사기 편찬자들의 나태라고 구박해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연개소문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4천 년 역사에서 첫째로 꼽을 만한 영웅”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고구려 전통의 호족공화(豪族共和)라는 구제도를 타파하고 정권을 통일”했으며 “서수남진(西守南進) 정책을 변경해 남수서진(南守西進) 정책을 세”워 “당 태종을 격파해 중국 대륙을 공격”했다는 진취적 기상을 높이 평가합니다.


저는 신채호 선생님의 긍정적 평가에 상당 부분 수긍하면서도 연개소문 정권의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귀족연립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제도개혁이 아니라 사적 권력기반을 강화하는데 치중하였습니다. 시스템의 개편에 집중하지 않고 1인 개혁에만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사후에 불거질 혼란에 대한 면밀한 준비가 없었지요. 아들들에게 중요한 직책을 수여하고 그들로 하여금 권력을 세습하게 했으며, 태막리지(太莫離支), 태대대로(太大對盧) 등 집권을 위한 관직을 새로 만들어 취임하는 등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추종 세력의 발판을 넓히지 못하고 귀족세력의 반발을 유발한 점도 과오입니다. 665년 연개소문 사후에 벌어진 그의 자식들 간의 골육상쟁은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한 리더십이 얼마나 허약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결국 연개소문이 죽은지 3년 만에 고구려는 멸망했습니다. 연개소문은 자신이 그토록 지켜내려 애썼던 고구려의 존속을 위해 좀 더 섬세하고 균형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야 했지만 이 대목에서는 한계를 보여줬지요.


우리는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의 리더십을 취사선택해서 오늘날에도 발현할 여지가 있는지 살펴야겠습니다. 일세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화려한 업적과 아쉬운 한계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면 과거의 사실(史實)을 재해석하면서 오늘날에 주는 교훈을 거름 삼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숙적이기도 했던 당 태종 이세민은 이 세상에는 구리거울(銅鏡), 사람거울, 역사거울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위징이 병사하자 이세민은 매우 비통해 하며 “사람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성쇠와 왕조가 바뀌는 이치를 알 수 있으며,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면 자신의 잘잘못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게 되었구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얄밉지만 말을 제법 그럴듯하게 하네요.^^; 이 말대로 역사거울에 우리를 자주 비춰봅시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킨 한반도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사명감도 품어봅시다.


비록 조금 미비한 점이 있더라도 앞으로 이런저런 시기를 다룬 사극이 많이 등장해서 온 국민의 역사적 소양도 넓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사극 하나 보는 여유 어때요?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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