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선동이 아니다

경제 2006. 11. 10. 01:00 |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님은 “세금을 올리더라도, 상위 20%가 소득세의 90%를 내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손해볼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소득 상위 20%’의 실체와 ‘세금을 올리면 누가 부담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일부 언론은 “상위 20%=월급쟁이 대부분”이라며 저소득층의 부담을 신랄하게 써내려갔다. 상위 20%가 월급쟁이 대부분이라면 당최 그 아래 80%의 생활수준은 어떻다는 것인지 소름이 다 끼친다.


2005년 11월 재정경제부가 낸 자료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과세표준이 1원도 안돼 세금을 한 푼도 안내는 사람이 전체 봉급생활자의 50.7%(643만8천명)고, 과표가 0~1천만원인 사람이 29.7%(377만7천명), 과표가 1천만~4천만원인 사람이 17.6%(224만2천명), 과표가 4천만~8천만원인 사람이 1.6%(20만8천명), 8천만원 초과가 0.3%(4만1천명)이라고 한다. 과표 0원이면 연봉 기준으로 대략 2000만~2500만원, 과표 1천만원이면 연봉 기준 대략 3000만~35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연봉 2000만~2500만원도 못 받는 사람이 전체 봉급생활자의 절반이나 되고, 연봉 3000만~3500만원 이하인 사람을 합하면, 80.4%로 봉급생활자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근로소득 상위 20%일 뿐 봉급생활자, 자영업자를 통틀어 가구당 소득이 상위 20%에 들어가려면, 연간 6855만원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상위 20% 월급쟁이’와 ‘상위 20% 가구’는 엄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여하간 월급쟁이 상위 20% 내에서도 소득구간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건 과표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누진세율 체계로 인해 세율을 동일하게 올리면 소득이 높을수록 자기소득 대비 부담은 더 커지는 게 상식이다. 과표 1천만원 이상이 근로소득자의 19.5%이고, 이들이 근로소득세의 93%를 부담하고 있다. 더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과표 8천만원 초과인 인원이 0.3% 밖에 안 되지만, 이들이 근로소득세의 19.3%를 내고, 과표 4천만~8천만원인 인원이 1.6%인데, 이들이 21.0%를 부담한다. 상위 1.9%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40.3%를 내는 셈이다.


여하간 월급쟁이 대부분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한다는 일각의 분개는 좀 지나친 감이 있다. 오히려 일부에게 집중될 세금폭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민생과 직결되는 세금 정책에 있어서 자신들의 편을 부러 늘려서 논쟁을 유리하게 끌어오는 건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아울러 미온적인 특수직연금 개혁에 대한 의구심이 국민연금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듯이 전문직,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세금탈루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세금 문제만큼은 ‘계급의식’에 철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과세표준에 따라 나뉘는 계급이라 통상적 의미의 계급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증세든 감세든 세금 논쟁은 산수도 좀 살펴가며 꼼꼼하게 해나가야겠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단대표님이 지난 2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제안했듯이 민노당의 부유세, 열린우리당의 공평과세론, 한나라당의 감세론 등 각 당의 세제방안을 놓고 정직하게 토론하고 정책 경쟁을 하길 바란다. 세금은 선동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 [無棄]


* 권태호 기자님의 “‘세금폭탄’의 진실…난 상위 20%에 포함될까(한겨레신문. 2006. 03. 30.)?”를 거의 베껴오다시피 했음을 밝힌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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