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 효성가톨릭대 교수님은 계간 <문화과학>에서 한국보다 먼저 신자유주의화의 길로 간 일본 사회의 서민들에 대한 복지 서비스 후퇴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읽었다. “일본의 신자유주의화가 한편으로는 국가의 복지 영역을 민간기업에 떠넘기고 또 한편으로는 상징 천황제를 강화하며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우경화로 갔다”는 주장이다. 나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천황제 같은 건 없지만 우리네 천민 자본주의적 속성은 그에 못지 않은 저력(?)을 품고 있는 듯싶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곧잘 언급되는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지만, 나는 자영업자 및 가족종사자가 36~37%인 고용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좋은 일자리의 부족으로 인한 불완전취업 및 저임금계층의 증가로 말미암은 고용시장의 구조적 모순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의 안정성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데 행정역량이 상당부분 집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의 사회 안정망 구축이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공무원 열풍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영업자 비중을 낮추는 고용구조 개편도 시급하다.


한국개발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계열사와 공기업, 금융회사 같은 괜찮은 일자리 종사자가 1997년 157만 9,000명에서 2004년 130만 5,000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월평균 명목임금이 전체 업계 평균치를 웃도는 ‘괜찮은 일자리’가 2004년 30만5000개에서 지난해와 올해 각각 14만1000개와 16만3000개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조사 결과도 우울하게 들린다.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인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너무 적은 탓도 있지만 문제는 보다 근원적이다. ‘성장→일자리→분배 개선’이라는 사이클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화, 자동화, IT화 등으로 말미암아 성장을 해도 그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회자되고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 출산율 저하 및 노동력 고령화, 중국의 급속한 성장, 지식노동으로의 노동방식 재편 등도 들어볼 수 있겠다. 성장에 따른 고용흡수력 감소는 선진국이 먼저 경험하고 있는 통상적인 현상이니만큼 이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님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경제구조 고용구조를 고민하지 않고 정부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에 문제가 심화되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알아서 살라고 하니, 길이 없어 자영업으로 몰린” 셈이다. 스웨덴은 보육 보건 복지 노동 교육 등 공공서비스가 전체 노동력의 약 30%라고 한다. 뭐 스웨덴 사례가 우리와 맞지 않다고 본다면 우리가 좇으려고 애쓰는 미국도 15%선임을 말해야겠다. 우리는 고작 5% 정도라고 한다. 다른 통계에 따르면 2005년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2,286만명 중 사회서비스 분야가 13.1%를 차지하고 있어 2003년 OECD 국가 평균에 10%정도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얼마 전 세금 논쟁에서 불거진 조세부담 비중에 대한 통계처럼 공공서비스와 사회서비스 분야 이런 것들에 대한 명확한 통계는 좀 헛갈리는 면이 있다. 참고로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는 2004년 기준 27.3%(한국은행 결산기준 28.1%)로 OECD 국가 평균 40.8%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58.2%), 프랑스(54.4%)에 비교할 것도 없이 작은 정부의 표상처럼 떠받드는 일본(37.6%), 미국(36.%)보다 낮은 수준이다. 넓은 의미의 정부개념을 기초한 우리나라의 재정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크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의 범위도 좀 명확히 해야 논쟁의 접점을 찾기 쉬울 거 같다. 제 입맛에 맞는 통계를 들고 나오는 건 나도 잘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의 비율을 높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모범답안이 없음은 명백하다. 어쩌면 이론적 논증 영역이라기보다는 실천적 적용 영역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배를 표방한 복지정책이 언 불에 오줌 누기 식의 임시변통이라는 주장과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총수요의 증가를 가져다 온다는 주장이 팽팽하지만, 일자리 창출이 긴요하다는 데는 견해가 일치한다. 성장한 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는 시대일수록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More and Better Jobs)’ 공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힘은 어디까지나 기업에서 나오지만, 정부 또한 보이지 않는 손만 기다리기보다는 재주 있는 손을 동원해야 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과 ‘사회서비스 확충’이 양립 불가능한 과제로 보이지 않는다. 민간과 시장이 뛰어들어 이문이 나기 힘든 사회서비스 영역에는 정부와 공공부문이 좀 나서겠다는데 인색할 까닭도 없다. 공공부문의 역할을 ‘민간이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분야’로 제한한 케인즈의 단서를 수용하고 공공부문 개혁이 선행한다면 ‘할 일을 하는 좋은 정부(good government)’가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문제다. 아무쪼록 새로운 질적 성장모델로 전환하기 위해 우리네 고용구조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야 한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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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민 2006.11.12 16:3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읽으니무섭더라구요. 그게 더이상 남의나라 일은 아닌 거군요... 지금 직장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단 생각이..

  2. 익구 2006.11.13 02:55 Address Modify/Delete Reply

    공공서비스와 사회서비스 분야의 고용률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단 양질의 일자리여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필요하겠지만요. 저도 여러모로 뭐하면서 벌어먹고 살지 고심이 참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