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결의안 유엔 안보리 통과가 실망스럽다
- 유엔의 권위는 추락하고 한국은 궁지에 몰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시간 16일 밤(현지시간 16일 아침) 이라크 통치와 관련된 수정 결의안을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은 9월 3일 결의안을 제시한 이래 네 차례 수정을 하는 고생 끝에 억지 춘향 식으로 결의를 얻어냈다. 그간 유엔의 역할 강화 등을 요구하며 미국을 속썩이던 독일, 프랑스, 러시아는 물론 아랍권의 시리아까지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미국은 앞으로 이라크 점령을 위한 병력과 자금을 모으는 데 추진력을 얻게 되었으며 조지 부시 일당들은 외교적 승리라며 한껏 고무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라크 침공은 결코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이번 이라크결의안 통과가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유엔의 권위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 뿐 전쟁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며 인류평화에 이바지해야할 유엔의 무력함에 실망할 따름이다. 평화를 외치는 세계민중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미국의 야욕을 6주간 막아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 결의안은 이라크 치안 유지를 위한 다국적군 구성을 촉구하고, 결국 미국의 다국적군 지휘권 등을 인정하고 있어 미국의 입김이 비교적 많이 녹아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번 결의안을 바탕으로 미국은 다국적군 파병과 관련하여 한국에게 더 큰 협박을 가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으로서는 이제 국제사회의 결정이라는 짐까지 안고서 파병결정을 내려야 하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여기서 정확히 집고 넘어갈 것은 유엔 평화유지군(PKO)와 다국적군의 차이점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사무총장이 사령관을 임명하고 목적도 평화유지활동에 국한되며 파병 비용도 유엔에서 부담하는 군대를 말한다. 즉 유엔이 이 군대를 전적으로 통솔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은 유엔으로부터 위임을 받았지만 미국이 지휘하고 통제한다. 평화유지군이 말 그대로 평화로운 지역에서 이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다국적군은 불안정한 치안 상황의 한복판에 내던져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유엔’만 끌어다 쓴 미국침략군의 일원이 된다는 것일 뿐이라고 얼마든지 폄하할 수 있다.


평화유지군과 다국적군간의 차이점에 대한 이해부족이 있기도 하지만 여론은 유엔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파병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결의안 통과가 안 되는 외적 변수를 기대했던 파병반대 세력으로서는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파병반대가 양적 소수파가 된 이상 정부와 국회의 결정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이 뻔한 수순을 밟을지라도 말이다) 정부는 이라크 추가조사단을 이어서 보내고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등의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야 한다. 설령 파병결정이 내려진다고 해도 최대한 전투병의 규모를 줄이고 인도적인 지원으로 돌리는 등의 세부 협상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국제 정치에서 이상주의도 무척 소중한 가치이지만 현실정치를 외면할 수 없고, 냉엄한 세상 질서와 힘의 논리를 외면할 수 없는 우리네 형편이다. 그러나 그것이 합리적인 수준을 한참이나 넘어선 미치광이 현실주의가 될 경우 진짜 국익은 내동댕이치고 맹목적 친미주의로 흐르거나 냉전 논리에 빠지는 것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비록 허울뿐이기는 해도 세계는 이라크 침략을 어느 정도 묵인해버렸고 우리의 입지도 그만큼 좁아졌지만 신중한 파병결정과 더불어 혹시 있을지 모르는 후유증을 최소화하는데도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삽질을 우리가 나서서 막을 만한 힘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함께 파자며 쥐어준 삽을 들고 적당히 농땡이를 부리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 국제 사회의 동의를 얻었다며 득의양양하며 삽을 건네줄 미국의 손을 뿌리치지 어려운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삽의 크기와 삽질의 횟수와 깊이를 조절하는 것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 갈피를 잡기 힘든 혼돈일수록 균형감각의 미덕이 소중하다. 파병찬성 세력들은 이번 결의안 통과를 삽을 덥석 잡는 것의 근거로 삼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전히 이라크 침공은 인류사의 부끄러움이며 파병요구도 부당하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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