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日記(06.11.06~06.11.12)

일기 2006. 11. 13. 02:13 |

061106
종종 국회의원들이 보내는 전자우편을 받는다. 아마 몇몇 사이트에 남겨진 회원정보를 통해 보내는 거 같은데 몇몇 의원님들 건 수신거부를 해버리지만 어지간하면 몇 번 오다 말겠지 싶어 그냥 둔다. 다만 이계안 의원님의 편지는 반갑게 받는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까지만 보내다 말 것을 지금까지 틈틈이 보내주는 정성이 대단하다. 이 의원님은 지난 5.31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강금실 후보님과 이기기 힘든 싸움을 벌였다. 오로지 강 후보님께 이목이 쏠려 있을 때도 “여전히 우리당은 나의 당이다”며 끝내 섭섭함을 내색하지 않는 모습에 나는 이 분이 진국이구나 생각했다. 물론 정치인에게 희망을 투자한다는 게 수익성이 낮다는 건 숱한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지만 투자하지 않으면 희망이 커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실용적인 인생을 살고 싶지만 덧없는 게 또 인생이니 어쩌겠는가.

솔직히 이계안 의원님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이 의원님의 경선 고집이 서울시장 선거 진행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당의 원칙은 좀 우직하게 지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 이 원칙이 흔들려서 후보 경선이 흥행에 참패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보기 드문 아름다운 패배와 멋진 승복이었다. 여하간 이 의원님이 <君子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보낸 엽서에서 그가 인용한 문구는 “君子는 求諸己요, 小人은 求諸人이라(군자는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그것을 다른 사람한테서 찾는다)”과 “군자는 欲訥於言而敏於行이니라(군자는 말은 더듬거리지만 행동은 민첩하고자 한다)”였다. 여기저기 주판알 굴리는 소리가 들릴 때 차분하게 제 허물을 돌아보는 모습이 얼마나 그리운가.

이계안 의원님 칭찬하는 와중에 모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하겠다며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재보선에서 다시 의원 배지를 단 모씨가 떠올랐다. 그 분은 전 의원에서 머무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분은 내 투정(!)을 받아도 싸다. 아무쪼록 군자가 되고 싶다는 이 의원님의 바람이 머잖아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그가 쓰레기통 속에서 피어난 장미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고통 속에서 진주를 품으리라 믿는다. 그에게 아름다운 승리와 멋진 수락도 함께 하기를.


061107
어제 휴가 나온 수현이와 청원이, 그리고 시험 공부를 해야하는 현식이와 함께 회기역에서 조촐한 회동을 가졌다. 수현이가 올해 송년회를 거하게 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현이가 일일이 전화를 돌려서라도 한 60명쯤 모아보자고 말했고, 나는 더 회의적으로 응했다. 수현이가 내기를 걸자고 했고, 나는 한사코 만류했다. “그냥 얼굴이나 보고 싶다”는 수현이의 소박한 바람을 나는 “그건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추억을 만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구박(?)했다. 내가 못됐다. 너무 야박하게 말했다.

나는 2002년 11월 24일 당시 동창들 온라인 클럽에다가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문회 창설을 제안합니다’는 글을 올려 동창회 논의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동창회의 성격과 구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논의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이 제안을 하고 논의를 시작했다면 더 많은 친구들이 믿고 동창회 건설에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을까라는 자괴심에 빠지기도 했다. 2003년 1월 말을 지나면 동창회 논의는 물 건너간다고 생각했던 나는 중국어과 진로를 위한 사이버 투표를 제안해 조속한 결정을 강구했다. 중국어과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친구들의 뜻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망설여졌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1월말이 지나면서 논의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2003년 11월 가까스로 중어과 엠티를 성사시켰고 그 곳에서 동창회 논의를 2시간여에 걸쳐 시종일관 열띤 토론을 했다. 전원의무가입인가, 희망참여가입인가를 놓고 표결에 붙였고 내 평소 지론이었던 희망참여가입이 많은 표를 얻어 결정되었다. 싸이월드로 새로 옮기는 동창회 커뮤니티에 가입한 친구들을 회원으로 상정하자고 해 사실상 희망참여가입의 명분만 유지했을 뿐 전원의무가입과 크게 다를 바 없긴 했다. 내가 분열주의자 소리를 감수하고도 희망자의 참여를 강조한 것은 모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인연은 운명이 아니라 정성이며, 노력이다. 그 정성과 노력은 몇몇 개인에게 과중하게 지워져서는 안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조직화가 필요하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방책이라고 좀 더 힘주어 강조했어야 했다. 여하간 이 엠티 이후 동창회 논의의 후속 조치들이 너무 미비했다. “서울외고 6기 중국어과 동창회 - 아시수”라는 명칭만 확정했을 뿐 임원진 혹은 운영진의 구성이나 동창회비 납부 문제는 결국 매듭짓지 못했다. 특히 동창회비 문제는 오래된 사이라고 해도 돈 문제로는 의 상하기 십상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나는 재정적 끈(!)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지만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은 실패했다. 몇몇 친구들은 시기상조론을 폈지만 내가 보기에 고등학교 졸업 전후로 마무리할 일이 늦어진 것이다.

나는 동창회 논의를 하면서 직접 민주주의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절절이 체험했다.^^; 내가 열렬한 의회 민주주의 옹호자가 된 것도 이 때의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나 친구들이나 논쟁에 띄어둔 사람들 대부분이 타협점을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우리는 철없고 어렸다. 내년 초를 기점으로 거의 모든 남학우들이 군 제대를 하고 나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남은 친구들의 수가 적다고 투덜거리지 말자.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옛 정을 버리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다.


061108
사람의 일생에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 가령 관운장의 오관육참(五關六斬)이나 유현덕의 삼고초려, 제갈공명의 출사표는 그네들의 일생에 걸쳐 가장 눈부신 순간이었다. 문제는 이 섬광처럼 스쳐가는 순간을 얼마나 평생에 걸쳐 꾸준히 유지하는 가다. 순간의 호기로움으로 아름다운 말을 늘어놓고, 짧게나마 그 실행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건 약간의 정성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전생애를 걸쳐 제가 품었던 아름다움을 건사하는 건 지극한 수고로움이 따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던가.

정치인 정동영은 그리 쟁쟁한 민주투사라고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1978년 MBC 기자 면접시험에서 보여준 행동은 눈부셨다. 사장은 “현 시국을 어떻게 보는지 말하시오”라고 물었고 그는 고심 끝에 “유신은 망하고 말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요 근래 취업 면접을 준비하시는 선배님들을 뵙고 있지만 이게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결단인지 금세 알 수 있다(더군다나 요즘 같은 취업난에서야 더욱 그럴 게다).


정동영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시대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당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끝이 안 보이는 유신독재의 그늘에서 그 멸망을 통쾌하게 말하는 용기는 아름답다. 이런 이들이 점차 늘어나서 오늘날 이만한 사회라도 이룬 거 같다. 정동영이 그 때의 눈부심을 지켜내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자. 그러나 오늘날 누군가는 지역주의는 망하고 말 겁니다라고 외치고, 국가경제 발전과 더불어 개인의 삶의 질 향상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외칠 수 있어야 할 텐데. 내 자신이 못하는 일을 내 대리인이라도 해주길 바란다면 지나친 탐욕일까.


061109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청장 후보 공천을 대가로 ‘명품 8종 선물 세트’를 받아 공직선거법 위반 및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박성범 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할 모양이다.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700만원에 추징금 12만원을 선고했다. “물품을 받아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의 경우 현행법상 과태료에 처하도록 돼 있어 선거법으로는 형사처벌할 수 없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배임수재죄만 인정했다. 피차 선수들인데, 뇌물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 이러한 공직선거법의 맹점을 알고 있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의 이런 가정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사과드린다.

사실상 선거법 위반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재판부가 엄격한 법리적 판단을 내린 것 자체는 시비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공직선거법 허점에 대한 개정 논의를 게을리 한 국회에 더 많은 책임을 돌리고 싶다. 그런데 “물품 공여자의 적극적인 공세에 밀려 물품을 받은 점 등을 감안해 형을 감경한다”니 조금 납득하기 어렵다. 민감한 시기에 건네는 선물이 어떤 의미인지 피차 아는 판에 그런 정상참작까지 하는 정성(?)이 갸륵하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너그러움은 생계형 범죄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왕 떨구는 법의 눈물이라면 낮은 곳에 먼저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매관매직 사건도 이렇게 묻혀간다. 돌아온 최연희, 돌아온 김덕룡에 이어 돌아온 박성범도 추하다. 우리가 그들을 잊는다면 또 그들은 앞으로도 주욱 우리를 대표(!)하려 할 것이다.


061110
3년간 쓰던 휴대 전화 기기를 변경했다. 나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책을 봐가며 공부한 녀석이라 새로운 휴대 전화기의 기능에 익숙해지기 위해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따라해 봤다. 새 휴대 전화는 음악도 많이 넣어서 듣고, 인터넷도 하고, TV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일단 나는 전화 주고받고, 문자 오고갈 수 있으면 되는지라 그 기능만 익혔다. 컴맹에 가까운 내가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글을 읽고 쓰고, 한글 문서나 활용하는 정도로밖에 쓰지 않는 것처럼 나는 문명의 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틈만 나면 문명 예찬을 늘어놓는 나이지만 정작 내 자신은 문명에서 살짝 빗겨서 있기도 하다. 하기야 첨단기술과 유행만이 문명이라고 할 건 없겠지만. 고즈넉한 궁궐도 문명이지 않는가.

전화번호부를 옮기는 문제에 마주쳤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전에 쓰던 것에서 새 것으로 단숨에 자료를 옮겨준다고 한다. 미련의 화신(!)인 나는 이번에도 고심에 빠졌다. 520개에 달하는 전화번호를 수작업으로 옮기자니 여간 막막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래저래 알게 된 전화번호를 이참에 날씬하게 정리하는 것도 필요할 듯싶다. 있던 것을 지우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입력하는 게 더 모양새도 좋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200개 쯤은 입력해야 할 텐데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하나씩 새로 입력하면서 그 전화번호 주인공과의 추억을 곱씹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새 전화기에 연락처를 입력하지 않는 분들과도 애틋한 작별을 나누고 말이다.

아! 나의 미련 곰탱이 기질이 또 발동하려고 하고 있다.^^;


061111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97학번 선배님부터 05학번까지 모였으니 최근 들어 가장 학번 분산(Variance)이 높은 모임이었다. 어렵사리 자리에 함께 해주신 초고학번 선배님들과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해서 아쉽다. 당초 계획했던 모임에서 규모가 많이 커져서 제안자였던 내가 적잖이 긴장했지만 다행히 잘 마친 거 같다. 선배님들께 자꾸 빚져서 이거 나중에 어떻게 후배들에게 다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모임을 주도하거나 제안하지 않기로 약속해놓고 번번이 어기다가 이번에는 결정타를 날려 버렸다. 나와의 약속을 어긴 보람이 있지만 그것이 면책이 되거나 하는 건 아니다.

 

후배사랑으로 열변을 토하셔서 좌중을 감동시켜주시고 학번 분산 신기록에 지대한 공을 세워주신 상준형님, 인사 못 드렸지만 먼발치서 아우라나마 만끽했던 충언형님, 결국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 와주신 인호형님, 내 얼굴을 10초간 바라 봐주시고 선후배 간의 관계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주신 문철형님, 나를 92학번이라고 불러 주시며 당혹의 도가니로 몰고 가주신 승하형님, 상추쌈도 친히 싸주시고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던 신우형님, 이 모임의 영감을 제공해주신 선후배 관계의 모범 가운데 모범 광호형님,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나의 초중고대(!) 선배님 정훈형님, 한층 훤칠해진 모습으로 내게 외모관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신 국주형님, 내 연락을 너무나 반겨주신 행시동의 다크호스 주원형님, 인사 드리기도 전에 이미 내 존재를 알고 계셨던 규현형님, “뻔한 게 좋아!”라며 늘 보는 얼굴을 좋아하시는 변함 없는 카리스마 을광형님 모두 고맙고 또 고마웠다. 정말 선배님의 뒤를 어떻게 쫓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친해지기 위해 안달하는 02 동기들 하늬형, 정환형, 단비누나, 홍익, 정석, 패창, 보경, 재한, 재연, 수정... 우리 학번이 제일 많이 왔다. 푸하하~ 헌조형을 비롯해 역시나 친해지기 위한 물밑 교섭 중인 03학번 지호, 은수, 석원, 성환 모두 고생 많았어요. 04, 05의 대표 자격으로 어려운 자리 함께 해준 용철이와 상언이에게는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당분간 근신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할 거 같은데 다음주 초에 준용형님을 모시고 고등학교 동문 모임을 기획하려고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전화기를 바꿀 것이 아니라 없애버려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흑흑


061112
행정행위에는 재량행위와 기속행위가 있다. 재량행위는 행정결정에 있어 행정청에게 선택의 자유가 인정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기속행위는 행정행위의 요건 및 법적 결과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법을 집행함에 있어 행정청에게 어떠한 선택의 자유도 인정되지 않고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행정행위를 말한다. 법제처는 2005년부터 ‘재량행위 투명화’를 중점사업로 정해 모호한 법조문 정비에 착수했다. 법조문에서 ‘상당한 이유’, ‘정당한 사유’, ‘현저한 공익적 기준’ 등 애매한 표현으로 규정될 경우 행정청에 의해 재량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고, 나아가 행정부패 소지가 발생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재량행위의 기준을 명확히 하거나 아예 기속행위로 전환함으로써 국민의 권익을 확충할 여지는 많다. 이를 통해 행정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면 국민의 권리 실현에 보탬이 될 것이다. 가령 건축허가의 경우 재산권 행사와 관련이 있는 관계로 원칙상 기속행위로 본다(강학상 허가의 경우 이와 같이 기속행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건축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행정청의 별도의 가치판단 같은 거 없이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건축허가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환경 등 공익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경우에 일정 부분 재량행위가 되는데 이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면 환경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행정의 예측가능성도 떨어져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된다.

 

경제안정정책을 둘러싼 케인즈학파와 통화주의자의 대립도 이와 유사하다. 케인즈학파가 적극적이고 재량적인 정책의 측면이 강한 미세조정 정책을 지지했다면, 통화주의자들은 소극적이고 준칙에 따른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준칙은 기속행위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일례로 통화주의자의 거두 프리드만은 k% 준칙이란 통화정책을 제안했다. 이는 정부가 화폐 공급량을 매년 일정한 배율로 증가시켜 나갈 것이라고 공표하고 경제상황의 변동에 관계없이 이를 지켜나가는 정책을 말한다. 이를 통해 민간 경제주체들의 예측가능성을 높여 장기계획을 수립하는 데 보탬이 된다는 주장이다.

 

11월 들어서 공부를 미뤄두고 너무 노는데 치중했다. 스스로 재량을 줄이고 준칙을 좀 늘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내 생활의 상당부분을 기속행위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학교는 두 번만 간다는 쿼터를 정한다고 하자. 나는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는 것이니 만큼 학교 출입을 줄이면 노는 시간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쩨쩨하게는 일주일간 쓰는 전화와 문자 횟수 상한선을 정하고, 일일 인터넷 활용시간을 제한하는 등을 검토해볼 수 있겠다. 반드시 무언가 줄이는 것말고도 하루에 영어 공부 최소 1시간은 하기처럼 무언가를 일정 수준 이상 수행하는 쪽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내 욕심을 채우려면 일정부분 기속행위와 준칙의 힘을 빌어야 할 거 같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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