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日記(06.11.20~06.11.26)

일기 2006. 11. 27. 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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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익구닷컴 이벤트로 “익구가 궁금하다-50문 50답”을 쓰면서 당분간 이런 식의 긴 글은 당분간 쓰지 않기로 내 자신과 금석맹약했다. 그런데 열린마음님이 당신의 미니홈피에다 1000문 1000답 올려놓으신 걸 보니 또 유혹이 손짓한다.^^; 자신에게 던지는 1000가지 물음이라니 질문마다 한 줄씩 띄어쓰고, 한 문제에 한 줄씩 단답형으로 답해도 A4 50장이 넘는 대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분명 길게 잡설을 늘어놓을 테니 100장을 넘기는 것도 순식간이다. 나는 글도 잘 못 쓰면서 글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옹고집에다가 생산성까지 낮아서 변변치 않은 글 쓰는데도 한참을 붙잡고 있다. 해야할 공부는 많은데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 늘어놓는 거 같아 늘 후회스럽지만 일단 일기는 꾸준히 써보고 싶다.

오늘이 100번째 일기다.^^


061121
2학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졸업예정자”의 경우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우만 투표율에 반영하는 것으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을 개정한 것을 놓고 학생들의 반발이 심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50% 투표율에 대한 현실적인 재조정을 위해 도입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졸업예정자가 취업 준비에 바쁘다고 해도 그것이 총학 선거에 배제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보다 많은 학우들의 투표 참여를 위해 편법 연장투표를 해왔던 그간의 관행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일방적인 투표권 제한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중선관위측은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만 투표율에 반영하는 대학들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하는데 문제의 화근(?)인 50% 투표율 규정이 없는 대학들의 사례는 애써 외면한 거 같아 아쉽다. 졸업예정자를 투표율 산정에서 제외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졸업예정자 가운데 투표에 참여한 이들은 과대 대표되어 1인 1표 원칙을 거스르게 된다는 데 있다. 잠깐 계산을 해보면 투표에 참여한 졸업예정자의 한 표는 비졸업예정자(?)의 표에 비해 투표율을 더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 줌을 알 수 있다. 50%라는 형식적 대표성을 확보하겠다며 졸업을 앞둔 선배님을 투표율 높이는데 이용하는 태도는 그리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할 게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나는 학생회 살림을 꾸리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진지한 사색과 깨끗한 실천을 품는 이들이라고 믿고 흠모해왔다. 여전히 지적이며 유능한 이 분들의 황당한 행태가 민망하다. 어빙 제니스가 설파한 ‘집단사고(group think)’가 떠오른다.


061122
열린우리당이 결국 기간당원제를 폐지했다. 이로써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이라는 원대한 꿈이 막을 내렸다. 종이당원, 당비대납 등의 문제를 야기했던 기간당원제도의 문제를 보완하겠다면서 기초당원제로 바꾸고 기초당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했다. 전체 당원의 15% 범위내에서 당원협의회가 특별히 공로를 인정한 자에게 기초당원 자격을 주도록 만들었다. 기간당원들 덕분에 명줄을 유지하던 정당이 당의 기간(基幹)을 스스로 허물었다. 주인이 사라진 정당에 대리인들만 설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어쩌면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까?

우리당에 정작 필요한 것은 “기초당원”이 아닌 당원에 대한 “기초적 예의”다. 나의 대리인들에게 견결한 지조와 거창한 대의명분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선장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자신의 배를 떠나는 최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람시의 말씀은 그야말로 우이독경이다. 정계개편에 골몰하는 이들에게 사즉생(死卽生)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생즉사(生卽死)라는 험담은 좀 건네고 싶다. 자식의 종아리를 치는 부모의 마음에는 그보다 몇 배 굵은 몽둥이가 내려쳐 진다. 나는 그 몽둥이를 마다할 길이 없겠구나. ‘동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 살려고 한 내가 감내해야할 짐이다.

故 열린우리당의 명복을 빈다. 지는 꽃잎처럼 희망은 그렇게 가는구나.


061123
어제는 웹진 신입생환영회가 있었다. 역시 참이슬 과다 복용은 처음처럼에 비해 숙취가 심하다. 내 개인적인 편애가 입맛에 이어 숙취 강도도 변해버린 거 같다. 나는 앞으로도 처음처럼 시장점유율 상승에 좀 더 주력해야겠다.

문화재청 설문조사에 응하고 받은 창덕궁 자유관람권을 쓰기 위해 모처럼 하루 휴가를 내고 현식이와 함께 종로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우리는 참 많이 먹고 참 많이 걸었다. 새 단장한 조계사는 예전의 옹색함을 많이 극복한 거 같다. 역시 일주문을 새로 지은 게 이제야 좀 절터 같은 느낌이다. 조계사 불교용품점에서 새로 장만한 휴대전화가 걸 은으로 된 금강저는 중앙에 손잡이가 있고 양쪽에 창 모양으로 장신된 불교의식구다. 저(杵)는 본래 인도의 무기의 하나인데, 금강저는 밀교에서 인간 번뇌를 부숴 버리는 보리심(菩提心)의 상징이라고 한다. 여하간 까만 휴대전화기에 하얗게 매달린 금강저가 참 어울린다. 잘 샀다.

해장국이 아닌 해장궁(?)이라니 이런 호사가 있을까. 창덕궁을 안내원의 지도 아래 짜여진 동선과 시간제한 없이 제 멋대로 둘러보니 가슴이 터질 거 같았다. 더군다나 단풍도 절정이고 낙엽도 밟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유관람의 경우 어른은 15,000원이라서 좀 부담이 되지만 문화재청 1년 예산이 3,600억원 정도밖에 안 되는 만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공짜표 말고 직접 표를 사서 가봐야겠다. 자주 드나들면서도 변변치 못한 사진만 찍으니 사진을 좀 찍을 줄 아는 분을 섭외하면 더 좋을 거 같다.

2004년 10월 1일 종묘, 창덕궁 답사부터 시작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불상, 석탑 같은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더니 이제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까지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게 요즘은 아예 국가정책, 행정체계 전반까지로 확대되버렸다. 그래서 종묘와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이기 이전에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앞으로 문화유산 답사를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러다가 덜컥 문화재청에 취직하겠다고 그럴까봐 걱정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청심정(淸心亭)을 처음 찾아갔는데 정자는 매우 조그맣고 특징이 없지만 청심정 앞에 돌로 만든 조그만 연못인 빙옥지(氷玉池)와 청심정을 향해 앉아있는 귀여운 거북이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돌조각은 무섭게 만든다고 해도 어찌나 살기가 안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건축물 사진 찍기를 즐기는 나와 단풍 등의 풍경을 찍기를 즐기는 현식이가 하나의 사진기를 놓고 티격태격했지만 무척 뿌듯한 하루였다. 부디 나와 답사를 처음 나서본 현식이가 만족했으면 좋겠다. 내 탈진 답사모드는 아무에게나 권하지 않는 호의의 상징이니까.^^


061124
탄핵 악연으로 유명한 천정배 열린우리당 전 원내대표와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가 사돈을 맺는다는 걸 저는 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너그러운 척 해가며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추켜세우지는 못하겠다. 한국 지배계급의 근친성이나 동종교배 같은 부정적 뜻빛깔의 단어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계급의식에 철저한 사회 상층부와 달리 왜 보통사람들은 작은 걸로 갈라지고 싸워야 하는 건지 좀 서글펐다. 최병렬님과 천정배님의 자제분들이 사랑을 나누게 된 것도 사실 그 활동영역이 겹치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우리 사회 유리 천장(Glass ceiling)의 한 단면을 보는 거 같다. 김규항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정말 계급적이라서 지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다고 이 결혼이 잘못된 거라고 주장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자제분들의 백년가약은 가슴 깊이 축하할 일이다. 다만 천정배님의 경우 스스로 주도해서 만들었던 집권여당의 상황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배반의 장미를 흩뿌리며 언론 노출 횟수나 늘리고 있는 게 좀 얄밉긴 하다. 목표가 낳은 3대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분의 처신치고는 그리 가지런하지 못한 거 같다는 개인적인 소견이다. 이 와중에 개인적인 경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스스로 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 가지고 시비나 걸고 나 참 못됐다.^^; 하지만 천정배님의 원칙과 소신을 신뢰했던 내가 요즘 느끼고 있는 배신감은 감출 수도 없고, 감춰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까지 꿈꾸는 사람이 그만한 양식과 절제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결격 사유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 내가 내세우는 사회 지도층의 “개인 윤리의 각성”이 과연 유효적절한 해결책인가를 놓고 고등학교 선배님과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나는 논리도 모자라면서 고집을 부렸다. 앞으로 좀 더 그래볼 생각이지만 말이다. “각성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이라는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님의 말씀에 많이 동감한다. 나 또한 시스템적 측면도 많이 생각해봤다. 가령 부정부패의 리스크를 현저히 높여 그 편익을 거의 상쇄시키도록 만드는 기술적 측면도 많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의식 개혁이 좀 더 효과적일 거 같다. 왜냐하면 사회 엘리트들은 법과 제도로만 통제하기에는 너무 영민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식의 “도덕적 설득”은 비용도 별로 들지 않기 때문에 가장 경제적이기도 하다. 이건 정책학 등에서 나오는 이야기인 만큼 제 독단의 생각은 아니다.

엊그제 나눴던 대화 말미에 유민이가 제안한 역지사지가 떠오른다. 만약 “오빠가 그런 자리에 있다면 지금 구박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라는 가정형 질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나는 그 분들보다 훨씬 더 자신이 없다. 다만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 나머지 네 손가락을 제 자신을 향하도록 해볼 생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내가 남기는 글들도 미래의 차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말보다는 시시한 실천으로 응수해봐야겠다. 믿을 사람 없다고 한탄하기 보다 내가 먼저 믿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061125
지난 9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설립 60주년 기념해 문과대 건물 뒤편에 조지훈 선생님의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에 새겨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는 4.19 혁명 보름 뒤인 1960년 5월 3일자 고대신문에 '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실렸다고 한다. 서울 남산 산책로 초입에는 조지훈의 시비 앞에서 `파초우(芭蕉雨)’ 시비가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국시 가운데 하나인 ‘승무’ 시비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까지 없다면 내가 만들어 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좀 찾아보니 2004년에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에서 승무 시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조지훈 선생님의 『시의 원리』라는 책에서 “열아홉살 적 어느 가을날, 화성 용주사에서 승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와 어느 이름 모를 승려의 승무를 보고는 밤 늦도록 용주사 뒷 마당 감나무 아래에서 넋없이 서 있었다”며 “당시 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20살 되던 다음해 여름에 비로소 시로 지을 수 있었다”고 승무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고인은 시인에 머무르지 않고 민속학과 역사학을 넘나들며 국학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선생님이 48세로 요절하신 게 안타깝다. 내가 스물 넷이니 딱 그 절반인데 겁부터 난다.

자유당 말기 극도로 부패한 정치현실 속에서 친일파들이 과거에 대한 뉘우침 없이 정치일선에서 득세하고 사회 지도층들이 변절을 일삼는 세태를 통렬히 꾸짖는 <지조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난다. 이 새벽에 지조론을 톺아보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글 말미의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는 구절에 졸음이 확 달아난다. 요 근래 지조론을 권하고 싶은 나의 대리인들이 많다는 게 답답하다. 지조론은 아주 가끔씩만 꺼내 읽고 싶다. 너무 자주 읽으면 마음이 아리다.

정말 우리 사회에 배반의 장미는 도처에 만개해있다. “브루투스, 너마저...”가 아니라 “내 그럴 줄 알았다”, “너도 별 수 없구나”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박원순 변호사님은 어느 대학 강연회에서 오늘날 뭇매를 맞고 있는 386세대의 헌신을 재평가하며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만한 사람들이 되더라”고 말씀하셨다. 민주주의와 진보개혁을 장신구로 삼던 이들의 잇따른 변절은 인간에 대한 기대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그러나 남 험담하기 전에 우선 내 자신에게 무시무시한 질문을 먼저 던져보자.

내 치부를 드러내는데 좀 더 민첩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리는 세상의 한계를 스스럼없이 밝힐 수 있을까. 자아도취에 빠져 구체적 실천 대신 추상적 놀음에 열중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 자임(自任)하는 바를 함부로 포기하지 않을 의지가 있는가.

그나저나 승무와 지조론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 작품이라니 딱 그만큼은 세상이 불공평한 거 같다.^^;


061126
내가 흠모하는 광호형님의 생일이다. 형과 정식으로 인사 나눈 건 두 해가 조금 못 되지만 (아마도 내가 먼저였겠지만) 서로 친해지고픈 의지가 있었던 거 같다. 앞으로 더 그윽한 교류를 나눌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다. 만으로 25세가 된다며 슬퍼하시는 형께 황인숙 시인님 이야기를 해드렸다. 황인숙 선생님은 10대 때 스무 살 넘은 자신의 삶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른, 마흔을 넘긴 요즘은 어차피 끔찍한 나이에 이르렀으니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시란다(『인숙만필』 발문 참조). 나는 그렇게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한 살씩 먹어 가면 될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스물다섯이 넘도록 살게 운명지워진 그대들이여, 모두들 나만큼이라도 의지가지가 생기기를 빈다”는 황 선생님의 산문 한 구절이 떠오른다. 스물 다섯이 넘도록 살면 계속 살라는 뜻인가?^^;

생일을 축하드리려는데 이 표현이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어 좀 찾아봤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표준 화법에서는 ‘축하드리다’를 어색한 조어로 보고 있다고 한다. ‘축하’라는 말이 자신이 고맙게 느끼고 축하하는 일이라서 ‘드리다’라는 말과 어울려 쓸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축하합니다’와 ‘축하드립니다’가 공대(恭待, 상대에게 높임말을 함)에서 차이를 두고 쓰이는 것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언중들이 널리 쓰고 있어 이 표현을 잘못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부담 없이 써야겠다. 여하간 글은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도 하지만 형께 참 고맙다. 못 다 표현한 감사는 내 소소한 실천으로 갚아야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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