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127
27일부터 종합부동산세 징수 절차 시작된다. 과세기준이 대폭 강화된 종부세 통지문이 부과 대상자들에게 일제히 발송된다. 지난해보다 대상자가 5배 늘어나고 세금 액수도 3배 가까이 불어났으며 앞으로 더 오를 전망이다(올해에는 공시가격의 70%인 과세표준이 내년 80%, 2008년 90%, 2009년에는 100%로 높아진다). 세금 올리는 거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 조세저항은 인지상정이다. 이미 고가 아파트 일대 주민들이 법개정 청원을 제기하고, 위헌소송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강남권에 아파트 한 채를 장기보유하고 있는 직장인과 수입이 없는 은퇴생활자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주택 1채만을 가진 분들에게 과도한 세금 부담이라는 볼멘소리도 충분히 수긍 가능하다. 미실현 소득인 부동산에 대한 과세가 과도하다는 항변은 무시하기 힘든 논리다.

그러나 세금이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어 오른 것보다 집값이 더 예측을 뛰어 넘어 올랐다. 종부세 강화 첫 해인 올해의 경우 급등한 실제 자산 가치에 비해 부담액이 엄청나 보이지는 않는다. 국세청 분석에 따르면 올해 보유 주택 때문에 종부세를 물게 된 개인 납세자는 23만7천명으로 전국 세대(1천777만 세대)의 1.3%에 불과하며 주택을 갖고 있는 세대(971만명)의 2.4%에 그친다고 한다. 종부세가 부담스러운 분들은 종부세를 잘 낼 테니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있어봤으면 좋겠다는 많은 이들의 한탄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불만이 단지 가진 자들을 시기하는 경제발전의 적이라고 본다면 너무 가혹하다. 최근 불어난 불로소득의 규모를 생각하면 세금이 과중하다는 호소에 눈을 흘기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어느 부동산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아파트 103만 416가구 중 시세가 6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28만 3,368가구로 27.50%에 달한다고 한다. 서초구와 강남구가 각각 86.59%, 86.54%에 달했지만 강북구와 금천구, 은평구는 6억원 초과 아파트가 아예 없었고, 내가 사는 중랑구는 고작 0.64%다. 종부세 대상은 시세가 아닌 공시지가로 하는 만큼 시세가 6억원이 넘는다고 곧바로 종부세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앞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가의 80%로 잡으면 현재 시가가 9억원이 넘어선 아파트들은 내년에 새로 종부세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이 땅에는 세금이 너무 높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세금을 낼 처지가 못 돼 힘겹게 살고 있다. 비록 사회적 대타협까지는 이뤄내지 못했지만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판단되는 만큼 강화된 종부세가 시행되기도 전에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얼마 남지 않은 참여정부 책임 하에서는 정책 일관성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부동산 세제 현실화와 조세형평성 제고를 잘 실천해나가길 바란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나는 내가 이 다음에 돈을 벌면 종부세를 내보고 싶다.^^; 자선을 베푸는 부자보다 법을 지키는 부자가 더 위대하다. 부는 시혜적 평등이 아니라 합법적 분배의 대상일 뿐이다. 그것이 청부(淸富)다.


061128
27일 청와대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 103일 만에 지명을 철회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의 탄생은 조금 미뤄지게 됐다. 전 헌재소장 후보자님은 보도자료를 통해 “후보자의 자질에 관한 평가나 관련 헌법 및 법률 규정에 관한 견해는 국회의원 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국회는 표결절차를 통해 다수결의 법리에 의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드 인사는 안 된다며 막무가내식으로 국회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절제의 미덕(?)을 선보인 한나라당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이번 지명 철회를 가지고 “사석(捨石) 치운 것 갖고 여권은 너무 생색내지 말라”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이 정당에 건네지는 국민들의 과도한 기대가 무참하다.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을 이렇게 욕보이고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하기야 돌 눈에는 돌만 보일 테니.

“다른 국회의원들은 물리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수수방관하면서 동의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정쟁만을 계속하고 있는 바, 문제가 어렵다고 풀지 않고 출제철회를 바라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장기간 미루어 두는 것 역시 국회가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경시하는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전 후보자님의 말씀에 동감한다. 집권여당과 군소야당도 별다른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절차상의 하자가 적잖았지만 그를 보정하기 위한 노력도 제법 있었다. 전 후보자님이 흠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였던 거 같다. 처리 절차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이렇게 무산되는 건 너무 지나치다.

듣자니 한나라당 윤리위원회가 피감기관에서 골프를 쳐 물의를 빚은 김학송, 송영선, 공성진 의원 등과 광주 해방구 발언을 한 김용갑 의원에 대한 징계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한다. “죄 없는 자여.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른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그들은 이제 또 어떤 사냥감을 향해 마녀라고 소리칠까.


061129
올해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면접관이 응시생을 상대로 사실상 사상검증을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처음 실시된 제도인 ‘심층면접’은 3차 면접에서 국가관 등 윤리의식에서 ‘부적격 의심자’로 판명 받은 이들을 상대로 따로 면접을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면접위원 재량을 존중하는 만큼 주적(主敵)이나 북핵 문제 등을 물을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부적격 의심자로 판명된 사례나 수험생들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면접시험을 통해 면접위원의 견해와 다른 발언을 하기 힘든 분위기였다고 한다. 면접위원들이 특정 답변을 요구하는 듯한 모양새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많은 국민들이 그나마 사법부라도 불편부당한 판결을 내려 국민의 권리 구제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판결을 숱하게 보았지만 그래도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사회의 공정성을 지켜내는 보루로서의 권위는 막강하다. 사법부의 편식(?) 의혹은 그래서 더 우려스럽다. 그래도 심층면접 탈락자 등 8명은 내년에 3차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한 차례 더 주어진다니 다행이다. 내가 날림으로 준비하는 행정고시의 경우 면접에서 탈락하면 다시 기회를 주지 않으니 더 잔혹하다. 면접 강화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식의 면접이라면 솔직히 답변하기가 참 망설여질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사시 면접대상자라고 사고실험을 했을 때,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에 대해 물어왔다고 하자. 나는 내 소신대로 폐지를 스스럼없이 주장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내가 그토록 애호하는 ‘사상의 자유시장’에 대한 신념을 떳떳하게 밝힐 자신이 없다. 법이 한 개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권능이 있는지 여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상상만 해도 자존감이 마구 헝클어진다. 이런 나를 한심하게 여겨도 좋다. 하지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란 인간의 구차한 한계도 아프지만 밝히는 게 예의다.

어쩌면 이번 사시 면접 파동은 우리 사회가 겪을 변화의 한 단초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압도적 보수 우경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암묵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 입 좀 다물고 살아야겠다. 내 생각을 말하기가 두렵다.


061130
가수 양희은님이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신보를 발매했다. 양희은님은 71년 데뷔곡 아침이슬을 회고하며 “노래는 ‘서정’이지 ‘참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 노래를 만든 사람도 이 노래를 부른 나도 아침이슬이 데모 주제가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노래는 가수의 것도, 저작권을 받는 사람의 것도 아닌 되불러 주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양희은님의 말씀이 고맙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존재’의 방식이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소유를 갈망하지 않고 해석의 자유를 인정하는 양희은님의 자세가 멋지다. 신곡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도 참 좋다.


061201
중국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탁오(卓吾) 이지(李贄)는 성교소인(聖敎小引)이라는 글에서 “쉰 살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이다. 왜 짖느냐고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라고 말한다. 제 그림자를 보고 놀라 짖는 것조차 따라 짖는 개였음을 고백하는 마음은 얼마나 따가웠을까. 나도 개처럼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하고 각성한 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삶이 더 실패하기 전에 자기수정을 해보자는 의미로 반성문을 써봤다. <노예의 삶을 반성합니다>라는 글에서 나는 스스로 “역사의 패자”라고 칭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역사의 패자로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김규항 선생님의 ‘우리의 도량이 저들의 도량보다 적다면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의 꿈은 이루기 어렵다’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나의 반성이 더 크고 깊기를 바란다. 니체는 석양에 빛나는 호수를 보고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듯이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좀 더 아파해야겠다.


061202
문화재위원회가 세 차례 불허 결정을 내렸던 서울시청사 신축이 조만간 통과될 모양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님께서 “신청사는 어차피 짓도록 결정된 것이고,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신 만큼 디자인만 조금 수정하면 통과될 예정이라지만 과연 지금의 고압적이고 우악스러운 모습을 얼마나 탈피할지는 미지수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재건축을 불허하는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지적을 수용하더라도 황룡사 구층목탑보다 더 큰 건물이 시청 자리에 들어서는 건 그리 달가운 소리는 아니다. 문득 자금성 앞에 펼쳐진 널따란 광장이 부럽다. 우리는 어떤 아름다움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까?


061203
성삼제 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재정담당관님을 본받고 싶다. 성 담당광님은 2001년 일본 후쇼샤 역사교과서 사태 이후 교육부의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실무반장을 역임하시며 일연 스님의 저서를 통해 고조선 역사를 접했다. 작년에 펴낸 『고조선 사라진 역사』라는 책은 정부 업무를 맡으며 꼼꼼히 기록해둔 정성의 산물이다. 특히 7장의 <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성 담당관님은 일제의 조선 강점 이전인 1904년 발행한 동경제국대학학장판(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서 석유환인(昔有桓因)이 아닌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는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환인(桓因)이라는 불교식 용어를 써서 단군신화가 창작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고 있는 일연 스님의 누명을 벗기는데 일조한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는 석유환국(昔有桓國)과 “옛날에 환인이 있었다”는 석유환인(昔有桓因)은 글자 하나 차이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고조선 이전의 환국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환인이라는 신화속 인물만 남게 되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낳는다.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은 밝혀서 널리 알려야겠다는 성 담당관님의 노력이 참 고맙다. 당장의 태스크포스팀 업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역사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말쑥한 책을 펴낸 성삼제 담당관님을 존경한다. 땅 투기에 혈안이 된 공무원도 많지만 이런 공무원도 있기에 우리가 또 부질없이 기대를 품어보는 건 아닐까. 그런데 꽤 오래 전부터 국회에 설치했다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무슨 일을 해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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