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日記(06.12.04~06.12.10)

일기 2006. 12. 10. 22:52 |
061204
제34회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에 합격했다. 가채점을 좀 엄격하게 해서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넉넉하게 합격선을 넘었다. 2002년 5월, 2006년 6월에 이어 삼수 끝에 딴 자격증이라 기쁨이 더 크다. “한자는 호모 사피엔스 문화의 한 극점”이라며 격려해주신 고종석 선생님 덕분에 막판에 힘내서 벼락치기 할 수 있었다. 방심하는 사이에 2급을 날름 따버려서 내가 1급 시험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청원이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2000년 11월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에 도전한 이래 6년 만에 그 대미를 장식했다. 맨 처음 한자자격증을 소개해주셨던 양성준 선생님을 언제 찾아뵙고 소식을 전해야겠다.

사실 쟁쟁한 자격증에 비해 내가 딴 것은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쓸모 있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실용성이 별로 없어도, 남이 안 알아줘도 마냥 즐겁다. 고3 수험시절이 한창인 2001년 5월에 2급 시험에 도전했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분야가 아닌가. 작은 성취를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기반으로 더 큰 공부를 할 수 있어야겠다. 내 한자공부의 본래 지향점이었던 동양고전 읽기도 서둘지 말고 쉬지 말고 해봐야겠다.


061205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님이 “언론에서 ‘발목 잡는다’고 표현한 야당 간부들을 찾아가 손목을 잡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간청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사법개혁안 지연처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시는 기사를 읽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3000여건에 달하는 신기록 행진 중이라는데 그 가운데 사법개혁안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발목 잡았지만 나는 손목 잡았다”라는 기사제목을 참 잘 지은 거 같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지도자들의 추태가 식상한 요즘 묵묵히 맡은 소임에 충실한 분들이 있어 참 고맙다.

어제 강인형님, 광호형님, 재연이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정석이가 노무현 대통령님이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야기를 잠깐 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는 내 요즘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통합신당 논의를 “결국 舊민주당으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의 표류가 반복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자는 제안이나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표결을 통해 결론을 내주지도 않는” 야당을 질타하는 내용은 발설자가 대통령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품어봄직한 화두다. 첨언하자면 정치 관련해서 장문의 편지를 쓴 정성으로 연금개혁이나 종합부동산세 같은 갈등적인 민생이슈에 대한 편지를 써보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다만 편지에 국정 최종책임자로서의 무한책임감이 잘 읽히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대통령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남 탓을 하기 전에 자기 탓을 먼저 하는 것을 빼먹는 바람에 편지의 설득력이 반감됐다. 부디 대통령님께서 상대방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에만 재능을 쓰지 않으시길 바란다. 아울러 대통령님께서 내가 먼저 손목 잡겠다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조악한 정치공학에 빠져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여당 지도부보다는 대통령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보기도 좋을 거 같다. “군자는 헤어지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아니하며, 충신은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의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君子交絶不出惡聲, 忠臣去國不潔其名)”라는 사기(史記) 구절이 사무치게 그리운 나날들이다.

참이슬을 과다 복용했더니 오전 내내 숙취에 시달렸다. 숙취 방지용 처음처럼을 좀 확보했어야 하는데 실수다.^^;


061206
영국의 정치가인 필립 체스터필드는 지식을 회중시계에 비유했다.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에서 지식은 회중시계처럼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굳이 꺼내 보이면서 자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시간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 때만 대답하면 된다. 시간의 파수꾼이 아니니까 누가 묻지도 않는데 시간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지만 누가 시간을 묻거든 그 때는 정확하게 대답해 주어라. 이 때는 다만 네 시계가 정확해야한다”는 조건도 붙였으니 체스터필드는 꽤 치밀한 분인 거 같다.

나는 그간 우리의 부싯돌은 부딪힐수록 빛이 난다는 볼테르의 말씀을 빌린 ‘지식 부싯돌론’, 퍼낼수록 샘솟는 우물에 빗대어 ‘지식 우물론’ 등을 주장했다. 그런데 점점 체스터필드의 ‘지식 회중시계론’이 맞는 거 같다. 상대방은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은데 너무 내 이야기만 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되짚어본다. 나는 더 겸손해진 걸까? 더 겁이 많아진 걸까?


061207
나는 고건 전 국무총리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분이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도통 또렷하게 밝히지 않으니 애써 찾지 않고서야 알 길이 없다. 혹자는 고건님의 행보는 정당정치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인물중심으로만 돌아가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고건님이 당적을 가지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고, 정무직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셨으니 그 지적은 지나친 감이 있다. 하기야 거대 양당의 유력 대권주자 지지율이 열 배 차이가 넘는 나라에서 무슨 정당정치를 기대하겠냐 싶다.

우리나라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당일체감이 거의 없다. 일부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는 정당일체감의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대해 갖는 정서적 일체감이 적으니 지역주의적 투표가 여전히 큰 변수로 부각되는 것이다. 또한 소수 정치 엘리트들이 이합집산하며 정계개편을 하는 것도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당일체감이 어느 정도 뿌리 내렸다면 당원이나 지지자가 무서워서라도 감히 그렇게 못할 것이다. 자신이 아끼는 정당의 영광과 치욕을 함께 하려는 지지자들이 좀 더 늘어난다면 철새 정치인도 줄고 책임정치 실현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고 전 총리님은 정치색이 엷고, 무색무취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집권여당이 제 당원을 배신하고, 제 금배지를 지키겠다며 정치공학 꼼수를 부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고 전 총리님은 전문 행정가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했을 뿐이라고 해명하지만 그렇다면 이제라도 자신이 꾸릴 정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당이라는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 있다면 그 정당의 정강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고 전 총리님은 그런 면이 부족하다.

고 전 총리님을 예측 가능한 안정적 리더십으로 추켜세우는 분들도 있지만 고 전 총리님은 지금 시점에서는 너무 예측 불가능해서 문제다. 정당정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 전 총리님만 바라보고 있다는 게 딱하다. 혹시 있을 고건 신당이 철새 정치인들을 모아 건실한 ‘원내정당’을 이룰 가능성은 요원하다. 그렇다고 ‘대중정당’이라도 건설하자니 고 전 총리님은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게 고 전 총리님의 일차 과제가 될 것이다.


061208
드라마 <황진이>에서 백무가 기생들의 춤을 끝까지 안 보려는 벽계수 일행의 술상을 뒤엎는 장면을 우연히 봤다. “신분이 천하다 하여 가진 재주도 천하다 보는가? 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외침이 인상 깊었다. 하층민으로 서글픈 삶을 살았던 이들의 기록이 미미한 건 비단 우리 역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몸은 천민이었을지언정 정신은 양반 못지 않았을 기생들의 애환보다는 매춘이 먼저 떠오르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게오르그 짐멜은 『돈의 철학』에서 “인간을 단순히 목적으로 취급하라는 칸트의 도덕명령은 매춘의 경우 두 당사자에 의해 완전히 부정된다. 아마 매춘은 인간관계 중에서 관련 당사자들을 모두 수단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시켜 버리는 인간관계의 가장 전형적인 본보기”라고 말한다. 황진이 같은 기품 있는 기생들은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지 않을까 싶다.

한 푼의 외화라도 더 벌겠다며 기생관광을 묵인했던 지난날의 아픈 과거들이 떠오른다. “성매매로 인해 이룬 경제라면, 그런 경제는 망해도 좋겠다”는 김선주님의 일갈대로 성매매로 흥한 경제라면 성매매로 망할 것이 뻔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수출액이 3천억 달러가 넘었다는 자부심은 이런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061209
옛사람의 사귐에 대한 글을 묶은 『거문고 줄 꽂아놓고』라는 책을 즐겁게 봤다. 성호 이익 선생이 「사귐을 논함論交」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옛날 월(越)나라 민요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어떤 조건이나 지위보다는 사람 그 자체를 사귀는 걸 노래한 시 같다. 나는 이 시를 홍익이에게 생일선물로 전하며 좀 더 친구 노릇을 잘할 것을 기약했다.

君乘車我戴笠 그대는 수레 타고 내가 삿갓 썼거든
他日相逢下車揖 수레에서 내려와 인사를 해주시게
君擔簦我跨馬 그대가 우산 메고 내가 말을 탔거든
他日相逢爲君下 기꺼이 그대 위해 말에서 내리겠네

* 3연 簦(竹+登) 우산 (등)

책 206쪽에 나오는 이야기를 좀 옮기자면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벗 사귐에 차이가 컸다고 한다. 정약전은 여항의 술꾼들과 가까이 지냈지만 정약용은 주로 깔끔한 엘리트들과 어울렸다. 1801년 신유사옥(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이 일어나 형제의 처지가 위태로워졌을 때 형의 벗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정약전 형제를 잘 대해준다. 아우인 다산은 “이 점이 바로 내가 형님께 못 미치는 점!”이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래저래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밀기도 했다. 수레에서 내리고 말에서 내린다고 진심을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성이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061210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했던 프랑스의 해군장교 주베르는 “이 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고 탄식했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해놓고 외규장각에 소장된 의궤 등 189종 340여 책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말이다.

주말에 행정법 동영상 강의를 몰아서 듣느라 읽으려던 책을 못 읽었다. “독서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다”는 게 내 철석같은 신조지만 자꾸만 책읽기를 후순위를 미루게 되어 씁쓸하다. 모자람을 채울 게 많은 녀석이라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며 살지는 못하리라. 그래도 책을 덜 읽으면 마음이 가난해진다고 믿는 고지식한 녀석으로 남고 싶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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