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日記(06.12.25~06.12.31)

일기 2006. 12. 31. 22:31 |

061225
나는 이런저런 글을 쓸 때 맞춤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정확한 한국어가 아름다운 한국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론 그 정확성의 기준은 선뜻 제시하기 힘든지라 명백한 비문이나 오류를 고치는 데 그치지만. 한글 문서를 사용하면 오타의 상당 부분을 손쉽게 고칠 수 있다. ‘걸맞는’에 빨간 줄이 그어지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걸 맞는’이라고 띄어쓰기를 했다. 빨간 줄이 없어지니까 맞게 썼다고 생각하고 넘어 갔다. 한참이 지나 한 후배가 띄어쓰기의 의문을 제기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좀 어색해 찾아봤다.

찾아보니 ‘걸맞다’는 형용사이므로 ‘걸맞은’으로 써야 맞다. 동사의 어간에 관형사형 어미가 붙을 때는 시제가 현재이면 ‘-는’(가는 벗, 먹는 꿀), 과거이면 ‘-은(ㄴ)’(간 벗, 먹은 꿀)을 쓴다. 그런데 형용사의 어간에는 현재와 과거 시제의 구별 없이 항상 ‘-은(ㄴ)’만 붙는데, 어간의 받침이 있으면 ‘-은’, 없으면 ‘-ㄴ’이 붙는다.

형용사 ‘기쁘다’‘예쁘다’는 받침이 없으니까 ‘기쁘는 일’‘예쁘는 아이’라고 쓰지 않고 ‘기쁜 일’‘예쁜 아이’라고 쓰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따라서 ‘걸맞다’도 ‘걸맞은’이 되고, ‘알맞다’ 역시 형용사이기 때문에 ‘알맞은’으로 쓴다는 것도 같이 알아두면 좋을 듯싶다. 후배 덕분에 그간 틀리게 알고 있던 표현을 고칠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잘못이나마 지적해주는 지인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061226
군 원로들이 노무현 대통령님의 지난 21일 평통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군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가르쳐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만들어 내는 국민교육의 도장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태연스럽게 하다니 정말 당혹스럽다. 군대에서 훌륭한 민주시민을 만들어 낸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시다니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 그 분들의 민주주의는 많이 다를 듯싶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군 복무기간을 단축시키려는 시도에 대하여 우리는 강력하게 반대한다”는데 국민의 병역 부담을 합리적으로 덜어줄 생각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성명에 참여한 군 인사 가운데 노재현 전 국방장관의 이름을 발견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가 누구인가. 전두환이 12·12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맞서 싸우기는커녕 한미연합사 지하벙커로 피신한 사람 아닌가. 평생 자숙하며 살아도 모자란 위인이 목청을 높이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아무리 관용이 좋다지만 우리 사회가 고작 이런 인물이 뻔뻔스럽게 활개를 칠만큼 일말의 양심조차 부재한 곳인가. 이 분들은 애국은 당신네들만의 전유물인 줄로 아신다. 신성함은 오로지 자신들을 치장하는 수식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그저 대자연이 알아서 해결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061227
광호형 덕분에 사베인-옥슬리 법안(Sarbanes-Oxley Act)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미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엔론 회계 부정 사태 이후에도 회계부정과 경영자비리가 잇따르자 회계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제정돼 현재 시행중인 법이다. 폴 사베인 상원 은행위원장과 마이클 옥슬리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 주도로 마련된 이 기업회계개혁법은 내부통제시스템 도입, 경영인증시스템 구축을 통해 모든 단계별 기업활동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최고 경영자(CEO) 및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재무보고서에 서명하도록 규정한 302조와 감사인이 내부통제프로세스에 대해 인증, 날인하도록 한 404조가 핵심 조항이다(“[IT키워드]사베인 옥슬리 법안(Sarbanes Oxley Act).” 전자신문. 2004. 10. 28. 참조). 

이 법안은 경영자들은 실적보고서에 거짓이 드러나면 성과급을 반납해야 하고 자사주식 거래를 보다 신속하게 보고해야 하는 등 더욱 엄격한 회계책임을 골자로 한다. 뉴욕증시에 상장됐거나 진출을 추진 중인 외국 기업들은 이 법안이 엄청난 비용 상승의 유발한다며 볼멘소리를 내왔다. 기업들의 회계 보고를 강화하도록 하는 한편 외부 인사의 회계 감시를 의무화하는 404조가 외국기업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기업 이사회가 스스로 회계투명성을 위해 회계 시스템을 점검해 문제가 있다면 회사 비용을 들여 시정해야 함을 의무사항으로 정해놓음으로써 미국기업은 물론 외국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13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 내부통제시스템의 효율성 평가를 외부 회계사에게 맡기도록 한 규정을 폐지해 기업의 감사가 독자적으로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SEC가 404조에 대한 논란에 입장 정리를 한 셈이다. 사베인-옥슬리 법안의 개정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정도 완화 조치에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추가적인 규제 완화 조치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규제 강화, 유지, 완화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건 선진 민주주의 사회의 일상사다. 필요한 규제는 유지, 강화하면서 효용이 다한 규제는 재빨리 덜어주는 게 위정자들의 할 일이다. 규제는 원칙이 중요하지만 관성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061228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를 읽고 갈무리 해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크루그먼의 세계화에 대한 논설이 역시나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부분도 눈길이 가는 곳이 많았다. 좋은 에세이를 아직 꼼꼼히 독해할 내공이 없어서 건성으로 읽은 게 좀 민망하다.

여하간 크루그먼은 1996년 6월 <슬레이트>지에 기고한 「Downsizing Downsizing」(31~36쪽)라는 글에서 “보수가 좋은 미국 노동자들이 중산층에서 밀려나 다운사이징될 상황에 처해 있다”는 당시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의 주장을 정서 만족용 소설(emotionally satisfying fictions)이라고 구박한다.

요점은 라이시 스타일의-통계보다는 뒷이야기에, 진지한 분석보다는 구호에 의존하는-경제학은 미국이란 큰 나라의 다양성과 방대한 규모를 정당하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 낯선 이가 아동을 유괴하고, 수학자가 테러리스트가 되며, 회사 중역이 햄버거 장사로 전락하기도 한다.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전체 맥락과 맞아 떨어질 것인가? (책 34쪽)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몇 개의 특수한 사례를 들어 전체가 그 사례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추론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성을 결여한 자료를 근거로 도출한 사실을 일반화하면 그릇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찬반이 첨예한 사안일수록 균형을 잃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례만을 골라잡고 싶은 유혹이 커진다. 그러나 봄이 아무리 기다려진다고 해서 한 마리의 제비가 당장 봄을 불러 올 수는 없다. 물론 우리네 언론들은 종종 봄을 만들기도 하지만.^^;

무릇 지성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저지르기 쉬우면서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상을 대충 살피지 않겠다는 지적 성실성으로 무장하는 것이 믿는 것을 보지 않고, 보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힘이 된다. 침소봉대하지 않고, 호들갑 떨지도 않으면서 본질을 꿰뚫으려는 혜안에 도전해보고 싶다.


061229
KBS 드라마 황진이가 28일 종영했다. 대학로에서 즐거운 모임을 갖느라 마지막 방송을 챙겨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정통 사극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그리 눈길을 보내지 않은 드라마였다. 기사로나마 종영 스케치를 살펴보니 주말에 재방송을 보고 싶어졌다. 황진이와 부용이 여악행수 자리를 다투는 장면이 무척 감명 깊게 표현되었다. 드라마 신돈이 새삼 아쉬운 대목이다.

패배를 자인하는 부용에게 여악행수 자리가 돌아가는데 그 이유가 압권이다. “조선 최고의 춤꾼은 그냥 춤을 추면서 살면 그 뿐이다. 하지만 여악 행수는 달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춤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할 줄 아는 자, 경쟁에 위치에 놓여 있으나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야하는 것도 행수의 몫”이라는 행수 매향의 해설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재주를 인정하고 북돋워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황진이는 여성에다 천출이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이름도 나와 있지 않다. 소수파의 표상을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한계에 결연히 맞섰던 그 호기로움을 배워야겠다. 숨쉬기조차 답답했을 억압에 좌절하지 않고 제 길을 의연하게 개척한 수많은 황진이들에게 경애를 표한다. 그네들의 신명나는 춤이 계속되길 바란다.


061230
한해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막판에 앓았다. 감기 기운에 술병까지 겹쳐 총체적인 몸살이 나고 말았다. 대학로에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송년회가 있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갔지만 결국 얼마 못 있다 자리를 나서야했다. 정말 더 앉아있고 싶었지만 초췌한 모습으로 자리만 지키는 게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내가 본 처음처럼만 열댓 병이었는데 나는 딱 두 잔밖에 못 마셔서 안타까웠다.^^;

집에 돌아와서 계속 누워 있다가 새벽에 영화 <연인>을 봤다. 듣던 대로 영상미도 뛰어났고 반전도 흥미진진했다. 서로의 대의를 저버리고 바람처럼 살기를 원했던 주인공들의 애틋함이 돋보였다. 주인공들이 장기판의 졸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보며 이들이 사소취대(捨小取大)하지 못했다고 꾸짖을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매염방을 추모하며(In memory of Anita Mui)”라는 문구가 자꾸 떠올라서 연유를 찾아봤다. 엔딩 크레딧에 종종 추모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기 일쑤인데 매염방이라는 묘한 매력의 이름에 마음이 끌렸나 보다.

홍콩의 유명 배우 메이옌팡(梅艶芳)은 본래 <연인>에서 비도문의 두목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암 투병 중임에도 영화 촬영에 나섰던 그는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제작진은 매염방을 애도하며 그녀의 배역을 삿갓을 눌러써 얼굴을 보이지 않게 했다고 한다. 혹자들은 <연인>의 스토리 구성이 흐트러진 것은 매염방의 급작스런 죽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매염방의 출연을 격려한 장이모우 감독, 주연 유덕화의 진한 우정까지 알고 나니 영화의 여운이 배가된다. 고등학교 동창회는 차가 끊겨 택시를 나눠 타고 귀가를 해야할 만큼 성황리에 마친 모양이다. 흔치 않은 기회를 놓쳐서 아쉽지만 머잖아 또 좋은 자리가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내가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고 해서 즐거움을 더 보탰을 거 같지는 않지만.^^; 나는 내 성장통을 함께 해준 이 친구들에게 유익한 벗이 되고 싶다.

처음처럼 그렇게 영원히 함께하길!


061231
197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호주 출신의 작가 패트릭 화이트는 『행복한 계곡』이라는 소설에서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분량만큼 진보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는 괴테의 『파우스트』 구절도 떠오른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내 허물을 고치는 일, 가슴 뛰는 일로 다사다난하다면 한 해를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내 미력을 다해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고 희망의 무게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근하정해(謹賀丁亥)! 새해에는 내수 경제가 좀 더 살아나기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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