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01
30일부터 아프기 시작하던 것이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새해 첫날까지 액땜을 하였으니 올해는 정말 좋은 일이 많을 모양이다. 두 해에 걸쳐 앓았으니 그보다 더한 경사가 있지 않겠는가? 내 일개인을 넘어 둘레의 고마운 분들의 액땜까지 했겠거니 그렇게 믿고 싶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기 앞서 그의 모든 재산을 병사 가족에게 나누어주자 측근 한 명이 “왕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출발하시려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알렉산더는 “단 하나, ‘희망’이라는 이름의 보물을 가질 뿐이다”고 답했다고 한다. 내 희망이, 내 성실성이, 내 도량이 더 커지도록 노력해야겠다.


070102
사흘 째 약을 먹었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서 동네 의원을 찾았다. 어지간하면 병원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나 같은 사람은 간호사나 의사분께서 미워하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내심을 알 리가 없는 의사선생님께서는 따뜻하게 진찰해주셨다. 컴퓨터를 이용해 처방전을 만드는 모습이 재미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감기->고열->알약A, 감기->코막힘->시럽B 이런 식으로 범주화된 곳에서 필요한 약을 척척 골라내시는 듯했다. 의사들의 전매특허였던 휘갈겨 쓰기 대신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니까 훨씬 친근해 보인다. 앞으로 병원을 좀 덜 꺼릴 듯싶다. 내가 싫어한 건 주사기보다 병원을 감도는 묵직한 공기였던 모양이다. 하긴 엉덩이에 주사 맞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몽테뉴는 “부귀, 영화, 학식, 미덕, 명예, 사랑도 건강이 없으면 퇴색되고 사라져버린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건강을 버려 가며 그 가운데 하나라도 건사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도 하다. 보왕삼매론에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易生)”고 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소설 동의보감에는 “병도 긴 눈으로 보면 하나의 수양(修養)이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런저런 역경과 마찬가지로 아플 때도 사람의 진가가 나오는 것 같다.

“술은 마시지 말아요”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보니 어쩌면 내가 병원을 멀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무시무시한 금주령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070103
06년 5.31 지방선거 때 서울 중구청장 선거에서 얼마나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졌는지 알만한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크로스 포지션이라고 놀렸는데 어느 보도에서는 ‘후보 스와핑’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나라당 소속이던 전장하 전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자 열린우리당 소속이던 정동일 전 시의원은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해버렸다.

전장하님은 고 성낙합 당시 구청장과의 공천 경쟁을 피해 한나라당을 떠났고, 정동일님은 전장하님과의 경쟁에 부담을 느껴 열린우리당을 나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정당정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낯 뜨거운 일이다. 지방일꾼들에게 정당정치 가치를 너무 중시하는 건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

서울 중구청이 3일 구민 눈높이에서 투명하고 친근한 구정을 펼치기 위해 구청 본관 3층에 위치한 구청장실을 1층으로 이전했다. 구청장 집무실과 비서실, 직소민원실이 1층에 위치하게 된다. 구청장실 1층 이전은 정동일 구청장의 선거 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새해에 맞춰 이전을 하게 되었다. 중구는 이에 앞서 관내 15개 동사무소의 동장실도 모두 1층으로 옮겼다고 한다.

구청장실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낮은 사람에게 더 낮아지는 구청 문턱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구청장님께서 작년에 거두셨던 그리 개운치 못한 승리를 이렇게 좋은 정책으로 하나 둘 메워나가실 바란다. 구청장실 개소식 연하장 수백 장 만드는 걸 도운 녀석의 충언이니 너무 섭섭하게 듣지 마시기를.^-^


070104
국방부가 입법예고한 ‘군인복무기본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구타나 가혹행위 및 언어폭력 등 사적(私的) 제재를 받지 않도록 명시했다. 또 지휘계통상 상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거나 편제상 직책을 수행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병 상호간에 어떠한 명령이나 지시, 간섭을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무엇이 사적 명령이고 무엇이 공적 명령인지 경계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 법안을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발생할 전투력 약화의 우려를 덜기 위해 세부적인 실무규범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군 복무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하더라도 군대는 민간사회만큼 안락하게 지낼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 현격한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너무 적었고 더뎠다는 점을 관계자들이 겸허히 인정했으면 좋겠다. 왜 우리 젊은이들이 영어점수만 따면 카투사 지원에 몰리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본권과 사생활을 철저히 보장하는 미국군의 질서를 선망하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부문이 미국 기준 못 맞춰 안달인 나라에서 왜 군대 구조는 미국식을 보고 배우지 못하는가.^^; 왜 대한민국 국군이 미군을 보며 군침을 흘려야 한단 말인가.

병역자원이라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쓰듯이 일개 병사는 군사전략의 주요 자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던, 어떤 외적환경에도 이용되지 않는 최종 목적이라고 외쳤던 칸트의 말씀이 사무친다.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만큼은 부끄러워하고 아파해야 한다.


070105
꾀 많은 토끼는 굴이 세 개 있어 위험에 대비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는 맹상군의 식객이던 풍환이 강조한 이야기다. 외골수로 치닫기 일쑤인 내게는 매우 유효적절한 충고다. 일어날 법한 상황을 여러 가지 산정해놓고 그에 대비한 대안을 마련하는 사고실험이 내게는 너무 부족하다. 통상관례에 따르는 내 고루한 습속과 더불어, 닥치면 부랴부랴 해결하는 대증적 처방을 남발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내 자신은 이렇게 살면서 사회 문제에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하려니 좀 멋쩍다.^^;

미국 경제학자 마코위츠는 현대 투자이론의 기본을 이루는 포트폴리오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자산을 단순히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계수가 낮은 자산을 서로 결합하여 투자하는 것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비결이라고 설파했다. 상관계수란 두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상관계수 -1에서 1 사이의 값을 갖는데 양수면 두 변수가 정의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음수면 두 변수가 부의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0일 경우는 유의미한 선형(線形)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코위츠는 분산투자의 효율성을 이론적으로 규명함으로써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의 이론을 응용하면 주식, 채권, 부동산으로 분산투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유럽 등 지역분산,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 통화분산 등도 포트폴리오의 대상이 된다. 여하간 이 분산투자 이론을 내 삶에 적용해보려니 측정의 어려움이 적잖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교류하는 사람과 나와의 상관계수, 내가 읽는 책들 간의 상관계수 등은 명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억지로 계산하는 게 더 미련한 짓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관습에만 너무 얽매이지 말자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야겠다. 나와 상관계수가 높은 소중한 인연의 그물에 걸려 공사의 구분을 못하는 것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070106
2002년 대선 정국은 참 역동적이었다. 특히 집권당이던 민주당의 어지러운 행각들은 후세 사람들이 사극 소재로 써먹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오래 기억해야할 것은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의원들의 현란한 추태다. 그 가운데 백미는 역시 김원길 전 의원이다.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다가 정작 후보단일화가 성사되자 한나라당으로 향한 그의 변심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독일의 히틀러보다 더 심한 나치 독재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집권여당의 요직을 두루 맡고,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위원까지 한 사람이 정치 도의를 어디까지 저버릴 수 있는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한나라당 입당을 밝히는 기자회견장에서 환하게 웃던 모습은 내가 2002년을 통 털어 가장 잊고 싶지 않는 사진이다. 김 전 의원을 따라가지 않고 사표를 던졌던 윤후덕 보좌관과 최종환 비서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제 밥줄을 끊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그네들은 우직하게 정당정치를 지켰다.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가 어지러운 가운데 염동연 의원이 선도 탈당의 기수가 되기로 한 모양이다. “교섭단체(20명) 구성이 되든, 안되든 나가서(탈당해서) 기다리는 게 떳떳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씀은 시원해서 좋다. 어쩌면 제 2의 후단협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국민을 더 두려워하는지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길. “가는 길이 다르면 서로 더불어 일을 꾀하지 않는다(道不同 不相爲謀)”는 공자의 말씀이 그립다. 그간 공통점이라고는 오로지 권력에 대한 집념 밖에 없던 이들이 단물이 떨어지니 갈라서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래서 이익만을 위한 사귐이 추하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070107
일반적인 법대 강의 과정에서 행정법은 3학년 이상에서 배운다. 그도 그럴 것이 1, 2학년 때는 헌법, 민법, 형법 등 법학의 기초를 습득하는데 투자해야하기 때문이다. 기초 법학의 소양도 없이 덜컥 행정법을 배우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언젠가 소설가 김훈 선생님이 법학을 공부하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게 생각나서 좀 버티고는 있다만.^^;

모든 법학이 그렇게 주장하듯이 행정법도 그 나름의 논리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아직도 생성되고 있을 정도로 어지러운 학문이기도 하다. 통일된 법전이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짜깁기한 ‘모자이크’적 성격이 강하다. 이 복잡다단한 행정법을 어떻게 체계화해서 익히느냐가 관건이다. 조악한 문장들을 헤집어 가며 조금씩 익혀보자. 행정법 공부는 내가 넘어야 할 큰산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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