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08
스토아학파(Stoicism)는 세계는 대우주, 인간은 소우주에 비유했다. 개인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본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우주 이성이 깃들여 있으며, 본질상 인간 이성과 우주 이성은 같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보편타당한 법률인 자연법 사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법은 실정법(實定法)에 대비되는 법 개념으로 민족·사회·시대를 초월해 영구불변의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법을 말한다. 인간의 이런저런 문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연적 성질에 바탕을 둔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지 않는 법이라는 뜻이다. 스토아학파는 자연법이야말로 ‘올바른 이성’에 맞는 완전히 평등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스토아학파를 알기 한참 전에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인 소국가론’을 만들어 썼다. 말 그대로 개개인은 하나의 작은 국가라는 인식론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읽었던 도덕경의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을 알게 되면서 구체화했다. 고등학교 때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접하고 2000여 년 전에 선수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여하간 요즘도 관계 맺음을 ‘외교’라고 지칭하고, 나의 다짐을 ‘정책’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옛날의 습관이 이어져 내려와서다.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윤준호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젊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공화국”이어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까닭은 내가 ‘내각총사퇴’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20대 전반과 후반밖에 없다는 내 개인적인 신념(?)에 비추어 나는 20대 후반이 되었다. 이 때가 되도록 딱히 이뤄놓은 게 없다는 게 둘레 또래 친구들의 한탄이기도 하지만 나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하다. 나의 무능과 태만을 반성하는 의미로 내각총사퇴라는 표현을 써봤다. 현실 정치에서는 내각총사퇴라는 말이 정략의 도구로서 함부로 발설되는 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쓰는 이 말에는 내 자신을 벼리겠다는 서늘한 결의만 있을 뿐이다.

이래서 내 친구들이 나를 보고 “혼자서도 잘 논다”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070109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창한 진지전은 매운 기운이 서린 말이다. 통상 진지전 개념은 서구 자본주의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기동전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 현상에 대응해 내놓은 새로운 전략이라고 본다. 지배계급의 막강한 헤게모니에 맞서기 위해서 지적, 문화적 참호를 파고 장기전에 대비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서글픔이 살짝 배어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강고함에 절망하지 않고 그 체제 안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말한 진지라는 것이 그저 아픈 다리를 서로 기대는 안식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지전은 함부로 좌절하지 않겠다는 끈기의 언어이며, 비탄에 잠겨 있지 않겠다는 긍정의 언어다. 일상의 바지런함으로 자발적 복종의 악순환을 막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중용』 26장에는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至誠無息)”는 구절이 있다. 누구나 사흘쯤은 성인군자 행세를 할 수 있다. 닷새 정도는 공부를 하다가 지쳐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사흘과 닷새를 보름으로, 달포로 늘려나가는데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정성이 하늘까지는 몰라도 사람은 감동시킬 수 있기를.


070110
9일 노무현 대통령님이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발표했다. 각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헌을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응답이 많다.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는 노 대통령이 개헌을 정략적인 승부수로 던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인 셈이다. 그래서 원론적으로 찬성하나 시기적으로 반대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문득 대인 논증(argumentum ad hominem)이 떠올랐다. 이는 논증 그 자체가 아니라 논증을 제시하는 사람에 대한 논증을 말한다. 논리학에서는 오류의 하나로 보고 있다. “사람에 반대하는 논증”은 어떤 명제가 특정한 사람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그르다고 판단하는 논증을 일컫는다. 주장의 논거를 살피기보다는 그 주장의 발설자에 따라 타당성이 결정되는 오류다. 이처럼 주장한 사람의 환경적 요인을 문제 삼는 것을 특정해서 “정황적 대인논증 오류”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대통령님께서 진정성과 선의를 강변해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부산에서 또 다시 낙선한 노무현 후보는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현 정치지형에 순응하고 체념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밭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제 몫의 일을 찾아 끊임없이 궁리하고 부딪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회의 또한 대통령님이 감내해야할 업보이자 책무다.


070111
동아일보는 2004년 4월 29일자 ‘개헌 우선순위 아니다’는 사설에서 개헌 시기를 2006년 후반기나 2007년 초로 꼽았는데 정작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주장하고 나서자 2007년 1월 10일자 사설에서 “왜 지금 개헌이냐”며 민생을 걱정했다. 개헌 논의의 맥락에 바뀌었다는 지적을 수용하더라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상관관계를 헤집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트집거리를 찾기 위해 필요할 때는 텍스트 비판을, 아쉬울 때는 컨텍스트 비판을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언론의 말 바꾸기는 하도 겪어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사주들이 탈세 혐의로 구속되자 사설에서 일제히 무죄추정원칙과 불구속수사 확대를 주장하다가 강정구 교수 사건 때는 입장이 돌변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일전에 진중권 선생님이 통박하신 바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이들의 말을 내가 얼마나 참을성 있게 귀 기울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개체와 실존이 전체와 보편이라는 미명 하에 뭉뚱그려져 이해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었다. 그는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주체적 결단을 강조하며 “주체성이 진리다”라고 설파했다. 겉으로는 불평부당을 외치면서 파당성을 주입하고 있는 이들에 맞서 내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을지 두렵다. “정신을 꼿꼿하게 곧추세우고 있는 한 인간은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님의 말씀을 꺼내 본다.

내 실력과 열려있음이 그 분들의 저주와 냉소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생산적 논쟁을 피하고 사상의 자유시장을 봉쇄하려는 비겁한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


070112

경영飛반 웹진 신입부원 멘토-멘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월 한 달 동안 과제를 내주고 간단한 강평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낸 두 번째 과제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시사논쟁 이슈에 대해 A4 1장 내외의 글을 써보는 것이다. 언젠가 웹진에서 좋은 책 골라서 소개하거나, 사회적 논쟁거리를 분석하는 기사가 실릴지도 모르니 미리 연습해보자는 의도에서 내봤다.

나는 서평을 쓸 때 “인상깊었다”식의 개인의 인상에 근거를 둔 주관적 비평인 인상비평보다는 글쓴이의 주장과 논리체계를 파악하고 시사점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해볼 것을 요구했다. 시사논쟁의 경우도 찬반양론을 정리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이 좀 더 기운 입장을 편들어볼 것을 주문했다. 나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얼마나 녹여낼 수 있느냐가 이번 과제의 핵심 포인트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단순한 사실 나열도 아니면서 일방적인 감정 토로도 아닌, 읽을만한 글을 쓰기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나도 잘 못하는 것을 내 멘티에게 하라고 던져준 못된 멘토다. 손석춘 한겨레 기획위원님의 “기름진 글과 기름 묻은 글의 차이”라는 글 제목을 되새겼다. 내가 기름 묻은 글을 쓸 자신은 없다. 내가 원하는 글은 담백한, 아니 솔직히 조금의 윤기는 흐르는 글이다. 나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지 않고, 천박한 인식을 먼저 부끄러워할 줄 알며, 화풀이 저주를 함부로 내뱉지 않기 위해 진력을 다해야겠다.


070113

금요일 저녁의 안암역 근처 참살이길은 붐볐다. 02학번, 03학번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03학번 후배들이랑 친해질 기회를 많이 놓친 아쉬움 때문인지 03학번들과는 좀 더 교류 나누고 싶다. 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에는 제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관중은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라고 소중한 벗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사마천은 세상 사람들이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아를 더 우러러봤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한비자 십과(十過)편을 보면 제나라 환공이 관중의 후임자를 물색하며 “포숙아는 어떻겠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관중은 불가하다고 답하며 그 까닭을 설명한다. “포숙아는 사람됨이 지나치게 곧고 고집이 세며 일 처리에 있어서 너무 과격한 면이 있습니다. 강직하면 백성들에게 포악할 우려가 있고, 고집이 세면 백성의 마음을 잃게 되며, 과격하면 아랫사람들이 등용되기를 꺼릴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니 패왕의 보좌역은 아닙니다(鮑叔牙爲人, 剛愎而上悍. 剛則犯民以暴, 愎則不得民心, 悍則下不爲用. 其心不懼, 非覇者之佐也).”

과연 포숙아는 관중에게 섭섭했을까? 관중이 포숙아의 원칙주의를 염려해서 진언을 한 것이라고는 하나 포숙아가 관중에게 베푼 후의를 생각하면 차마 못할 말 같다. 하지만 포숙아의 성품이라면 자신의 결점을 짚어주고 나라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을 천거하려는 관중의 선의를 인정했을 듯싶다. 포숙아와 관중을 본받아 모자란 녀석과 선연(善緣)을 맺어준 고마운 분들이 나를 추억하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애쓰고 싶다.


070114

나의 2대조 최충 할아버지와 나는 생년이 999년 차이가 난다. 최충 할아버지는 고려시대에 손꼽히는 문무겸전의 행정가셨다. 1170년 정중부 등의 무신란 때 할아버지의 문집이 소실되어 지금 전하는 건 시 몇 수와 단편적인 행적이 전부다. 최자 할아버지의 보한집(補閑集)에 최충 할아버지가 두 아드님에게 경계하며 했던 말씀이 전한다.

“선비가 세력을 이용해 출세하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렵고, 학문과 덕행으로 영달하여야 비로소 경사가 있다. 나는 다행히 문행으로써 드러나 밝고, 청렴함과 삼가함으로써 세상을 마치게 되었다(士以勢力進 鮮克有終 以文行達 乃爾有慶 吾幸以文行顯哲以淸愼終于世).”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기고만장할지 모르는 자식을 훈계하는 쓴 소리가 천년 뒤의 후손에게도 큰 가르침을 준다.

1996년 1월 14일 오늘 나는 “험난하기는 해도 인생은 사회에 적응하는 게 아니고 만들어 낸다는 것이 내 철학이야”라고 일기장에 썼다. 이 헌걸찬 한 구절을 기리며 매해 1월 14일은 개인적인 기념일로 삼고 있다. 뭔가 거창한 걸 시작하기 좋은 날인 만큼 나는 최충 할아버지의 시호인 문헌(文獻)을 따서 ‘문헌공 프로젝트’라고 이름지어봤다. 그나마 내가 비교우위를 갖는 유일한 소질인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이렇게 에둘러 말했다. 이제 날라리 고시생의 생활을 접고 모범 고시생이 거듭 나야겠다. 그간 너무 많이 놀았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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