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중복 리뷰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중복 리뷰란 하나의 서평을 알라딘, 예스24, 인터넷 교보문고 등 여러 개의 온라인 서점에 동시에 게재하는 것을 말한다. 마태우스님과 매너리스트님 온라인 서재만 살폈지만 매너리스트님이 제기하신 “동일한 글로 서로 다른 두 군데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게 온당한 일인가?”에 대한 판단이 다른 만큼 더 이상의 논의의 진전은 보기 힘들 듯싶다.


먼발치에서 그네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지난달 국립중앙도서관이 발표한 ‘2006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이 1년 간 읽은 책은 11.9권으로 한 달에 한 권 정도다. 이렇게 척박한 독서 풍토에서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반갑다. 다른 건 몰라도 보르헤스님 댓글 가운데 “많은 사람들 중에 책을 읽는 사람은 그 중에서 소수이고, 그 소수 중에 서평을 꼬박꼬박 쓰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희귀종”이라는 구절은 참 많이 동감했다. 아무쪼록 독서할 시간을 건사하는 분들이 흉금 없이 대화하되 앙금은 남지 않기를 바란다.


논쟁이 격하게 진행된 여파로 서재를 닫는 분도 생겼다. 특히 평범하고픈 콸츠님께 아직 인사도 못 드렸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한국 경영학계의 거목이신 윤석철 교수님께서는 지난 7월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특강에서 마음(feeling)관리를 핵심으로 한 인사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프리챌의 실패 사례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따갑다. 윤 교수님은 2002년 커뮤니티 이용자 110만명을 대상으로 전격적으로 유료화를 결정한 프리챌은 ‘돈내기 싫으면 나가라’식으로 고객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고 지적하셨다. 단지 유료화 때문에 누리꾼의 마음이 돌아선 것이 아니라 그 추진 방식이 누리꾼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윤 교수님은 “마음속 상처는 육체의 상처보다 더 크고, 상처받은 고객이나 종업원의 마음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한다”고 역설하셨다.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을 헝클어뜨린 프리챌의 실책이 못내 안타깝다. 작년 말 내가 자주 들어가던 프리챌 커뮤니티 하나가 싸이월드로 옮기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나는 이전에 다소 미온적인 발언들을 늘어놓았지만 많은 회원들의 인심을 잃은 프리챌을 고수할 동력이 마땅치 않았다. 고객의 거부감을 덜 줄 알았던 싸이월드의 승리는 누가 봐도 마땅하다.


윤 교수님은 “마음관리의 중요한 수단은 언어”임을 강조하시며, 비트겐슈타인의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는 말을 인용하셨다. 프랑스는 2006년 초 최초고용계약제도(CPE)를 도입할 당시 “신입사원 채용 후 2년 이내에 해고할 수 있다”고 발표해 젊은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독일은 2005년 11월 “임시직으로 써보고, 2년 후 ‘채용’할 수 있다”고 밝혀 마찰 없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례는 의미심장하다.


어렸을 때 데일 카네기의 책을 좀 읽으면 내 사교성에 보탬이 될까 해서 탐독했던 적이 있다. 내가 반발하며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카네기 저서를 중도에 접게 만들었던 챕터가 바로 “논쟁을 피하라”는 대목이다. 철없던 시절 “아니 그럼 내 껍데기를 보여주면서 벗삼기를 청하고, 그저 허울 좋은 허수아비와 사귀란 말인가”라며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 다시 찾아본 카네기의 충고에 적잖이 끄덕였다. 그간 내가 벌였던 숱한 논쟁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던 탓일 게다.


십중팔구 논쟁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믿게 되는 것으로 끝나는 법이다. 당신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논쟁에 지면 지는 것이고, 이긴다고 해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데일 카네기 지음, 최염순 옮김, 『카네기 인간관계론』(성공전략연구소, 1995), 172쪽


내가 보기에 카네기의 논거는 그리 탄탄하지 못하다. 가령 “미움은 결코 미움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없어진다”는 부처님 말씀을 인용한 건 적절치 못했다. 논쟁이 때로는 감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논쟁을 벌이는 게 그 사람을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이 동료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젊은 장교를 몹시 꾸짖으며 한 말 가운데 “개와 싸움을 하다가 개에게 물리는 것보다는 개에게 길을 비켜주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설령 그 개를 죽인다 해도 물린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일세”라는 구절도 너무 넘쳤다. 논쟁의 단점을 이전투구로 치부한 건 지나친 처사다.


이런 험담에도 불구하고 “논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The only way to get the best of an argument is to avoid it)”는 카네기 말씀을 경청한다. “한 방울의 꿀이 한 통의 쓸개즙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는 링컨 대통령의 명언은 어떤 사람을 논리로 이겨도 마음으로 감복시키지 않으면 무용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논쟁을 흘겨보지 않을 거 같다. 생산적인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정말 멋진 친구라고 아직은 믿고 싶다. 가끔 한 방울의 쓸개즙을 쓸 줄 알아야 한다.


편견에 자유로운 인간은 없고, 합리화하기 좋아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자리를 외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한계를 알면서도 우리의 생각을 나누고 교학상장(敎學相長)을 꿈꾼다. 이성을 고양하고, 논리로 무장하는 건 가까운 사이일수록 허용되는 특권 같은 게 아닐까 싶다. 혹시 내가 괜히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 감점이나 당할까봐 그냥 입에 발린 소리나 해주는 것이나, 충언을 경청할 줄 모르고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며 멀리하는 것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비판하는 법을 좀 배우고 싶다. 혹은 미감을 거스르지 않고 티격태격하는 법 같은 거 말이다. 고등학교 때 아버님이 선생님인 친구와 교직원 정년 단축을 놓고 치열한 언쟁을 벌였던 적이 있다. 나는 선생님들이 정년단축에 반발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몰아붙였다. 교직원 정년 단축을 그렇게 반길 까닭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나갔던 거 같다. 지금도 가끔 후회가 되는 걸 보면 내가 빈약한 논리로 어지간히 우겼나 보다.^^; 그래도 나는 공무원 어머니를 둔 친구가 들을 것을 염려해 공무원 연금개혁 촉구를 물리지 않고, 군인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 군 관계자들의 책임 방기 꾸짖기를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지은이를 헤로도토스라고 말한 친구를 구박한 것도 따지가 좋아하는 모난 성격이 드러난 것 같아 민망하다. 사실 그 친구에게 청량리역을 헷갈려 청계천역이 있다고 우겼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내 훈련소 시절을 회고하며 틈새시장인 니치(niche)의 스펠링을 틀렸던 중대장을 농담 삼아 말한 것도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그렇게 말한 나는 선배님 과제물에 적어야 할 프리미엄(premium) 스펠링을 primium이 아니겠냐며 마치 아는 듯 말씀드렸던 부끄러운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카네기는 어느 인용구가 성경이 아닌 햄릿 구절이라고 시비를 따지는 것조차 무익하다고 말씀하지만 나는 적어도 기본적인 사실관계 교정 정도는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루쉰이 “페어플레이는 시기상조”라는 글을 발표하자, 린위탕이 “물에 빠진 개를 치지 않는 것이 페이플레이 정신”이라며 맞받았다. 이에 루쉰은 “물에 빠진 개일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때려야 한다”며 페어플레이를 나눌 상대가 아니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한다고 논박한다. 페어플레이 정신의 기반은 완전무결한 인간에 대한 갈망을 누그러뜨림이며, 배우며 참회하며 개선하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음이라고 생각한다. 칼 포퍼가 말씀한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라는 경구를 논쟁하기 전에 세 번쯤 외워야겠다.


일전의 이건희 회장 명예 철학박사 학위수여식 사건 때 나는 인심의 문제를 언급했다. 나는 “인심을 잃으면 삼성의 그 휘황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동탄압의 괴수가 되고, 일부 학우들의 노동자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옹고집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어정쩡한 입장을 말해서 양쪽에서 다 핀잔을 받은 기억이 난다.^^; 내가 사람의 마음을 돌아본 까닭은 논쟁을 어색해 하는 우리네 정서가 논쟁이라면 그저 악의에 찬 트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때 서라벌을 유린할 정도로 강성했던 견훤의 군대가 최종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것은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서라벌 백성들이 “옛날 견씨(甄氏)가 왔을 때에는 마치 승냥이나 범을 만난 것 같았는데 지금 왕공(王公)이 이르러서는 마치 부모를 보는 듯하구나(昔甄氏之來也 如逢豺虎 今王公之至也 如見父母)”고 말했다고 전한다. 승자의 기록이라 적잖은 미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견훤은 서라벌의 마음을 잃었고 결국에는 제 나라마저 잃었다.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에는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이긴다는 것은 선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최선 중의 최선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전이굴(不戰而屈)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며, 늘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문경지교(刎頸之交)로 유명한 염파와 인상여 이야기가 부전이굴의 예가 될 수 있겠다. 굳이 논쟁을 피해야 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상여는 진(秦)나라에 빼앗길 뻔한 구슬 화씨벽(和氏璧)을 온전히 찾아온 공로로 상경의 자리에 올랐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명장 염파는 세 치 혀를 놀린 자가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못마땅했다. 벼르고 있던 염파를 일부러 피하는 인상여를 보고 주위에서 겁쟁이라고 투덜거렸다. 인상여는 “진나라가 우리를 침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다투면 적에게만 좋은 일이다. 국가의 안위가 우선이지 개인의 감정이야 그 다음이 아니겠는가?”라고 토로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웃통을 벗고 회초리를 짊어진 채 인상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고 한다. 논쟁이 반드시 일치를 꾀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하나 됨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우애로울 수 있다. 동주 열국지에 “수레를 몰아 골목길로 피한 인상여의 도량은 참으로 크며/ 웃옷을 벗고 죄를 청한 염파의 뜻 또한 웅장했도다(引車趨避量誠洪 肉袒將軍志亦雄)”라고 찬탄한 무명씨의 시에서 그 본보기를 느낀다. 한바탕 논쟁을 벌이고도 다시 손을 건네 뜨거운 악수를 나눌 수 있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거칠지 않으면서도 그치지 않는 논쟁을 해보고 싶다. 그런 논쟁을 나눌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보다 내 자신이 말벗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겠다. - [無棄]


사람을 생긴 그대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이다.

- 황대권, <야생초 편지> 中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