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05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교수님의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었다. 인터뷰 말미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死)고 했는데 제가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려선 안 되죠”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전국책』, 『사기』에 등장하는 의로운 자객의 표상 예양의 고사를 반추해봤다. 자신을 진실로 알아준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저 실패했다는 말씀밖에 안 해주시는 학자분들보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헤집으려는 노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한미 FTA 관련한 이 교수님의 쓴소리에 더 무겁게 다가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전에 외우(畏友) 소은이는 “노무현 대통령은 외롭겠다. 정태인 같은 사람을 잃어서”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참여정부는 아까운 인재들을 그만 잃어야 한다.


070306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進新)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신영복, 『강의』(돌베개, 2004), p. 130

궁(窮)은 궁극에 이르다, 막히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변화의 근본은 한계를 바라봄이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내쉬는 한숨이다. 정채봉 시인의 멋진 시구대로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썩는 길밖에 없다”는 게 주역의 정신인지도 모르겠다. 변화하는 것이 영원하다는 오묘한 역설이다.

변화야말로 만물의 본질이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존재’는 언제 어디서나 불변한다고 역설한 파르메니데스의 대립을 종합한 것은 데모크리토스다. 그의 원자론은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불변하는 원자의 존재 양식을 고안해내고,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원자들의 운동과 결합으로 말미암아 사물의 다양한 모습이 만들어짐을 도출했다. 물론 오늘날의 원자와는 차이가 있지만 데모크리토스의 종합은 배울 점이 많다.

한결같음과 너그러움의 조화는 내 어린 시절의 화두였다. 데모크리토스 흉내를 내서 그럴 듯하게 융합해봤으면 좋겠다.


070307
드라마 <주몽>이 인기 속에 막을 내렸다. 주몽이 오매불망 한사군(漢四郡) 중 하나인 현토군과 싸워 다물군의 유지를 이어 받는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고구려가 현토군 영역에서 세워졌다는 건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우기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나라 무제가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을 물리치고 낙랑, 진번, 임둔, 현도 4개 군(郡)을 설치한 한사군은 중국 동북공정의 도구로 곧잘 활용된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이견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과연 한사군 가운데 가장 오래 남아 한민족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낙랑군의 존재다. 고구려에 멸망당하는 기원후 313년까지 존속했다는 낙랑군을 기원후 8년에 망한 전한(前漢:西漢)은 물론 기원후 220년에 망한 후한(後漢:東漢)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지 의뭉스럽다. 일제는 한반도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을 통해 원시시대를 끝냈다며 한민족 역사발전의 타율성 늘어놓기도 한 만큼 낙랑에 대한 세밀한 탐구가 있어야겠다.

더군다나 1차 사료인 사마천의 조선열전에는 4군을 설치했다는 이야기(遂定朝鮮爲四群)가 있을 뿐 낙랑, 진번, 임둔, 현도 등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열전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한서(漢書)에서 “수멸조선위낙랑현도진번임둔(遂滅朝鮮爲樂浪玄兎眞番臨屯)”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서 한사군의 명칭이 등장한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런 정황에 비추어 한사군은 후세의 가필이라고 주장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若無古朝鮮史, 是無韓國史)”고 역설하셨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꼭 반만년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국 상고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땅이 줄을 수는 있지만 역사는 빼앗겨서는 곤란하다. 민족주의적 감수성 같지만 중국과 일본의 천박한 역사 분탕질에 생채기를 입고 싶지 않다.


070308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드라마 <궁S>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입헌군주제라는 상상력을 품게 한다. 입헌군주제는 왕권과 의회 사이의 타협이 만든 제도다. 세계에서 왕실이 있는 나라는 대략 30개국 정도라고 한다. 영국과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편이지만 중동국가들의 경우 왕이 실권을 행사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말레이시아는 선출직 입헌군주제라로 13개주 가운데 말레이 반도의 9개주 군주들이 5년마다 한 명을 새로운 국왕으로 선출하는 독특한 체제를 뽐내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입헌군주제 국가는 역시 일본이다. 입헌군주제 하의 왕들이 각별한 대접을 받는다는 걸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일왕은 그 정도가 좀 심하다. 일본 극우파들의 구심점이 되는 일왕의 존재는 우리에게는 영 불편하다.

일각에서는 황실과 의례를 상징적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대한민국 헌법에 비추어 볼 때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정작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것은 민주공화국 안의 황제들이다. 곧잘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을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삼성이 입헌군주제는커녕 절대군주제와 비슷한 행동 양식을 보일 때 나는 껄끄럽다. 대한민국에 황제는 필요 없다. 과연 삼성은 절제된 자본 권력의 기품을 보여줄 수 있을까.


070309
오전 6시 55분에 출근해 오전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중구청 직장민방위대 비상소집훈련을 진행을 도왔다. 내가 맡은 업무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면 좋겠지만 민방위 교육만큼 일하는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 과업도 없다. 이미 민방위 비상소집훈련 대리 출석과 부실한 교육 운영이 언론 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올해부터 민방위 편성연령이 만45세에서 40세로 낮아진 관계로 민방위대원의 수가 대폭 줄었다. 연간 8시간 교육을 실시하던 민방위 1-4년차도 4시간을 줄어 국민의 부담을 줄인 만큼 내실 있는 교육 운영이 더욱 요구된다. 하지만 유사시 비상대비태세를 갖추려는 훈련목적은 퇴색하고 출석도장 찍는 거 자체에 치중하고 있는 게 솔직한 실정이다.

이날 훈시 말씀을 하신 행정관리국장은 불참자 명단을 파악해 불참 사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하셨다. 구민회관 교육장으로 이관되는 보충훈련과 달리 구청에서 자체 실시하는 기본훈련이 더 유의미하다는 주장은 일면 수긍할 만하다. 참석인원을 파악해 부정출석을 막겠다는 의지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참 사유서를 내라는 건 지나쳤다. 불참 사유서를 독촉해서 받아내는 하루 종일 내 기분도 언짢았다.

법적으로 보장된 보충훈련을 무시하고 직원들 기강 단속으로 활용하려는 구청 고위직 공무원의 행태는 그리 사려 깊지 못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추레한 일은 민방위 훈련을 대충 넘기기 위해 이런저런 경로로 빠져나가는 어른들이다. 민방위 훈련이 어차피 출석 확인하고 끝나는 건데 뭘 그리 깐깐하게 구냐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 출석 확인이라도 공평해야 한다. 자신에게 귀찮은 일은 남도 귀찮다.


070310
경영飛반 개강총회 때 새로 뽑힌 반일꾼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성인지미(成人之美)다. 『논어』 안연편에는 “군자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고, 남의 나쁜 점을 이루어주지 않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고 말한다. 성인지미(成人之美)는 다른 사람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점을 도와서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성(成)이 성인지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구성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져야겠지만 직선 대표들은 특별히 제 둘레의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서 우리의 아름다움을 고양해주길 바란다.

3월 9일~10일 동안 벌어진 이날 행사에서 마신 소주는 1차 레드 크라우드 101병, 2차 대성집 투 41병, 3차 대성집 원 42병 도합 184병으로 공식 집계되었다(쏘맥 제조를 위한 맥주 3,000cc와 어쩌다가 등장한 막걸리 1병도 있다). 이로써 2005년 3월 11~12일 집계한 소주 133병의 기록을 갱신했다. 07학번 여러분의 가열찬 참여로 이룰 수 있었던 신기록이 아닐까 싶다. 머잖아 이 기록도 깨지겠지만 일단 어렵사리 이룬 이 기록에 고맙다. 본의 아니게 술 권하는 선배가 된 거 같아 민망하다.


070311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님은 한국일보에 쓰신 옴부즈맨 칼럼에서 “매운 소리를 통해 ‘역린(逆鱗ㆍ임금님의 분노)’을 건드릴 것을 희망(한국일보 2000년 12월 21일자)”한다고 말씀하셨다. 성역 없는 비판에 대한 주문이다. 역린(逆鱗)은 한비자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말이다. 남을 설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서술한 이 글에서 “유세(遊說)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역린을 상대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봐도 좋고, 각별히 민감한 곳이라고 풀이해도 되며, 결정적 이해(vital interest)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로의 역린이 맞설 때 우리는 곧잘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역린은 있다. 하지만 큰사람일수록 그 역린은 적거나 작게 마련이다. 나에게 조금 거북하다고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행동하는 건 미성숙하다.

남의 밥그릇을 침범하는 건 역린까지 다다를 위험이 크다. 우리는 부득이 남의 역린을 건드릴 때면 충정이나 고언(苦言)을 방어기제로 내세운다. 가령 공무원들 앞에서 공무원 시간외 수당 문제를 꺼내는 건 무척 떨리는 일이다. 역린을 함부로 들쑤시는 폐해보다 역린이 너무 크고 많은데서 생기는 폐단이 더 크다. 내 역린을 많이 덜어낸다고 해서 반드시 남의 역린을 매만질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우선 내 역린의 비대함을 베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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