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日記(07.04.23~04.29)

일기 2007. 5. 1. 13:01 |

070423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입니다. 22일 통계청의 2006년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국가구(2인 이상)의 한 달 평균 서적 및 인쇄물에 대한 지출은 1만288원으로 전년에 비해 2.8% 줄었다고 하네요. 서적 및 인쇄물 지출비는 서적(학습 참고서 제외) 7631원, 일간신문 2256원, 잡지 271원, 지도·악보·카드 등 기타 인쇄물 130원으로 조사됐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산출한 지난해 책 한 권당 평균 가격이 1만1545원이니 두 달에 한 권 정도 사보는 셈입니다.

책을 덜 산다면 빌려서라도 많이 봐야하는데 우리나라의 열악한 공공도서관 실태를 볼 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것 같네요. 전국 공공도서관에 대한 문화관광부의 자료구입비 지원이 2004년 폐지되면서 도서 구입 예산이 더욱 줄었거든요. 국민 1인당 월평균 독서량이 1권에서 왔다갔다하는 수준이고, 국민 1인당 도서관 장서수도 1권이 안 된다고 하니 책 관련 통계에서 1권을 돌파하는 것도 참 쉽지 않네요. 그나마 대학도서관의 사정이 나은 편이니 대학도서관을 시민에 개방하자는 주장에 끄덕이면서도 대출 중인 책이 늘어나 책 빌려보는데 불편할까봐 선뜻 찬동하기 힘든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저는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하는 책읽기를 추구하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간 허영의 독서도 있었고 불필요한 금전적 낭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책장을 넘기며 그 책들만큼 아름다운 마음들과 대화를 한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책이나마 붙잡게 된 건 천만다행이에요. 볼테르는 “책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세계는 결국 책으로 지배되어 왔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볼테르의 찬사와는 달리 독서가 무력할 때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읽은 만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봐야겠습니다. 한미 FTA 체결로 국내 출판업계는 좀 더 어려워질 공산이 큰데 책을 좀 사서 봅시다.

사실 전 도서 충동구매를 좀 줄여야 하는 입장입니다. 제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책꽂이에 책이 쌓이는 속도가 빠르거든요. 제가 애용하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장바구니에는 『전습록』, 『삼국지 시가 감상』,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비전을 상실한 경제학』, 『목적의 왕국』,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현대 정치과정의 동학』 등의 책들이 지름신이 강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수학노트가 추가된 이준구 교수님 미시경제학 해답집 증보판은 아직 등재되지 않아서 못 집어넣었네요). 이번 달에는 헌책방을 너무 과하게 이용해서 추가 지출을 막아야 하지만 아마도 오늘이 가기 전에 몇 권을 살 거 같습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명대사인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요(Just because it's christmas)”를 패러디하자면, Just because it's world book day!!!^-^

추신 - 근데 왜 술의 날은 없을까요? 하나 만들어도 좋을 거 같은데 말이죠. 처음처럼데이 뭐 이런 거 말이죠.^^;

책의 날 기념해서 쓴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입니다> 전문


070424
“수출만이 살길이야?”라는 도발적인 기사를 읽었다. 김소희 한겨레21 기자님의 글이다. 그는 스크린쿼터를 협상카드로 쓰지 않는 정부의 불철저함을 질타하는 글 말미에 “그냥 자유무역 안 하면 안 되나? 좀 못살고 세금 더 내면 안 해도 된다는데. 나는 정말 잘 먹고 싶지만 꼭 잘살고 싶지는 않다. 좀 처지더라도 대충 살길은 없는 걸까?”라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나를 비롯한 통상론자들이 김소희 기자님의 저 물음에 어느 정도 답변을 내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는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가 있다고 돌아설 사안이 아니다. “먹을 만큼 먹고 사는데 얼마나 더 잘 살아야 하냐?”는 질문에 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 돌격 앞으로만 외치는 건 우스꽝스럽다. 중국과 일본의 샌드위치가 될까 두려워 밤잠을 설치시는 분들의 우국지정 또한 마땅히 기려야겠지만.

김소희 기자님은 그저 탄식했을 뿐이지만 이런 비슷한 문제의식을 모든 이들이 체화해야 할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효용함수는 소중하다. 우리가 꾀할 바는 서로 다른 효용함수가 어울리면서도 김 기자님처럼 덜 살려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잘 먹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나는 덜 살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으나 그것을 후대에게, 내 둘레에게 강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복거일 선생님은 소박한 삶을 꿈꾸는 대안 공동체가 외부 세계의 노력에 편승한 무임승차자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복 선생님은 “현존하는 것들이 사회적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대안들 가운데 가장 나은 것들로 판명되었”으며 “대안으로 제시된 것들은 거의 모두 오래 전에 버려진 것들”이라고 주장하신다(“[책보기 세상읽기] 무임승차자들의 천국” 동아일보. 2002. 09. 07. 참조). 개인적 대안을 사회적 대안으로 확장시키는 데는 보다 섬세한 얼개와 동시대인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대안 없는 비판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언론인과 지식인이 얄밉다고 비판 그 자체가 대안일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 되겠지만.


070425
가끔은 양비론 말고 그 어떤 말도 구차스러울 때가 있다. 4·25 재·보선이 그렇다. 기초의원까지 포함한 총 56명의 당선자 중 무소속은 23명으로 한나라당의 22명보다 많다. 정당정치가 붕괴됐다. 오래 전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바라기보다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영국 언론의 악담은 한국인의 가슴에 오랜 멍울로 남았다. 이 말을 극복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노력한 필부들이 적잖다. 하지만 적어도 정당정치와 관련해서는 장미가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있음이 또렷하다. 지난 생채기가 오죽 쓰라렸는지 이 쓰레기통은 한국 유권자에게 그리 큰 멍울은 아닌 모양이다.

정당정치가 절대선은 아닐 것이다. 돈 주고받는 재미에 넋이 나간 배금주의 정당, 제 후보를 내쳐가며 죽여주길 자청하는 피학주의 정당, 차린 건 없지만 신토불이는 몸에 좋다는 향토주의 정당이 물고 물리는 판국에 정당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다. 물론 당선자나 낙선자 모두 나보다는 훌륭하신 분들이다. 그런 쟁쟁한 분들이 고작 이 정도 정당과 나라를 만들고 있다는 건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과학의 영역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한민국 땅의 지세(地勢)를 점검하며 풍수지리학을 비롯한 각종 주술과 미신(이라 불리는 점복과 제의)에 기대고 싶다. 좀 덜하다 싶었던 지역주의가 약동하는 모습을 보라. 짓밟아도 솟아나고 침 뱉어도 날름 받아먹는 저 맷집과 넉살이시여. 흩어졌다 모이는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여기 있었네.


070426
달팽이 뿔 위에서 싸워 무엇하리
부싯돌 불같이 반짝하고 없어질 이내 몸
부귀는 부귀대로 빈천은 빈천대로 즐기리
크게 웃지 않는다면 그대는 바보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문학 전반에 걸쳐 소양이 없는 나이지만 특별히 배우고 싶은데도 인연이 잘 안 닿는 게 한시(漢詩)다. 당시나 송시 선집을 아무거나 집어들어 음미하려 해도 도무지 흥취가 일지 않는다. 한학자 손종섭 선생님이 “시는 옮겨도 시가 되어야지 산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한시를 맛깔스런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도 한시의 감상을 돕기 위한 절치부심일 게다. 나야 그저 남들의 풀이 가운데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짜깁기할 뿐이지만.

고 정주영 회장께서 당신의 집무실에 걸어놓았다는 백거이의 시는 그의 삶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표상한 문학만을 아낄 필요는 없다. 때로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더 북받친다. 풍운아 김부식도 “부끄럽구나 달팽이 뿔 만한 세상에서 반평생을 공명 찾아 헤매다니(自慚蝸角上, 半世覓功名)”라고 읊었다. 너무 팍팍하게 산다는 느낌이 들 때 달팽이 뿔(蝸角)을 떠올리며 속도 조절을 해봐야겠다. 백거이의 시는 제목 그대로 술잔을 앞에 놓고 외워야지.


070427
한겨레신문에서 오랫동안 연재되었던 “내 영혼을 울린 한마디” 같은 연재물을 내 둘레 사람들과 이어달리기 하듯이 해보고 싶다. 자신의 좌우명 혹은 자신의 삶에 큰 울림을 준 문구를 소개하는 식으로 말이다. 알고 지내는 이 많아도 나는 그 사람이 아끼는 구절 하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으로는 지인들의 좌우명을 묻고 마음을 흔들었던 말을 여쭤봐야겠다. 당시 그 연재물에서 명사들이 꼽은 한마디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선과 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善惡皆吾師) - 한승헌 변호사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 한비야 여행가
하면 된다 -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유한 것이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 부유한 것이다 - 이경숙 국회의원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 이문재 시인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것이 아니나(得手樊枝無足奇),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懸崖撤手丈夫兒) - 성석제 소설가
실천은 사상의 종점이다 -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
생긴 대로 살아라! - 권혁범 대전대 정외과 교수
귀족이 되지 말라 - 이효인 전 한국영상자료원장
큰 열매를 맺는 꽃은 천천히 핀다 - 이순원 소설가
60억의 개인에게는 60억개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 - 변정수 미디어평론가


070428
2002 월드컵 한국-독일 4강전 다음 날 <서바이벌 역사퀴즈>라는 KBS 역사유적 순례 퀴즈프로그램에 촬영했다. 점심 시간에 진행자인 성세정 아나운서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성세정 아나운서는 소속이 소속인지라 그럴 수는 없지만 내심 MBC 차범근 해설위원의 중계를 보고 싶다는 바람을 솔직히 밝혔다. 오래 전 이야기니 이제 공개해도 무방하리라.^^; 나는 그의 진솔한 발언이 듣기 좋았다. 엄기영 앵커가 SBS 축구 중계를 보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술담배를 즐기며, 연개소문과 이세민을 한국과 중국 사람들이 서로 바꿔 좋아하고, 고대생이 연세우유를 애용하는 세상은 좀 더 너그럽고 흐뭇하지 않을까?


070429
나는 스스로 불효를 약간 면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갑자기 효성이 지극해질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널리 알려진 효경(孝經) 한 구절만은 즐겨 암송한다.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다치지 않도록 함이 효의 시작이요, 몸을 세워 도를 행하며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나게 함이 효의 마침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의 한자 독음을 외워서 10초 정도 읽는 것으로 나의 불효를 참회한다.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같이 있게 되는 주말을 아무 일 없이 보내고 나니 문득 이 10초 참회가 하고 싶어진다. 10초는 너무 짧으니 30초 정도 되는 걸로 새로 찾아봐야겠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뒤적여 봐야 하나?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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