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에 진출해보다

잡록 2003. 11. 1. 22:57 |
신림동에 진출해보다
- 시민사랑 정모 참가, 고시생 친구 염탐

익구는 31일 금요일 관리회계 강의를 마친 뒤 서둘러 신림역으로 향했다. 모처럼 긴 외출길을 떠난 것은 두 가지 볼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유시민 팬모임인 ‘시민사랑’ 정모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시생 친구인 청원이 살림살이 관찰을 위한 것이었다.


신림역 근처 보물섬 호프집에서 열렸던 시민사랑 정보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홀홀단신으로 참가한 터라 엄청 낯설어하던 익구는 어디에 앉아야 하나 방황했다. 그러나 현재 대학 휴학 중이시고 신림동에서 공부 중이시라는 두 누님들께서 선뜻 자리를 권하고 말동무가 되어주어서 다행스레 그 날 자리의 낯설음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곧이어 유시민 의원이 도착했고, 참석자들은 무척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약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 유 의원은 각 테이블로 와서 악수와 술을 권했다. 담담하게 맞이하려던 익구는 유 의원이 바로 옆자리에 와서 악수를 권하고 잠시나마 앉아 있다 가자 소심함이 폭발하면서 몸둘 바를 몰랐다. 친구 원혁이가 전해달라는 부탁과 익구 자신의 부탁을 혼합해서 앞으로 글쟁이로 돌아오시면 경제학 카페 같은 쉽고 편한 경제학이나 다른 분야의 활발한 저술활동을 주문했다. 유 의원은 물론 그러겠다며 화답했으며 안 그래도 내년쯤에는 헌법에 관한 책을 하나 낼 계획이라고 귀띔해주셨다.


익구가 유 의원을 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WHY NOT?]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익구는 그 책을 통해 자유주의라는 것이 탐구하고 추구해 볼만한 녀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뒤에 고종석 선생으로부터 개인주의를 당당히 말할 용기까지 추가하게 되어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화두를 껴안고 심심하면 꺼내들게 되었다. 익구는 여전히 유시민 의원보다는 글쟁으로서의 유시민 선생을 더 좋아하고, 그가 본업(?)으로 돌아와 주길 은근히 고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 의원과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옆 테이블의 두 아저씨들(혹은 형님, 선배님)과도 합석하여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또한 의외의 참석자였던 개그맨 남희석씨도 옆자리에 익구 옆자리에 들러 재담꾼으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흥겹게 해주셨다. (남희석씨도 시민사랑 회원으로 읽기쟁이로 지내셨다고 한다) 또한 시민사랑 운영자이신 아이디 월영님의 은근한 달변에 취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정을 넘기면서 연거푸 마신 맥주의 기운이 몰려오며 대화마당이 한층 무르익어 갈 때 익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약속을 위해 일어났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친구 청원이의 고시방으로 작았지만 무척이나 깔끔하고 아담한 공간이었다. 시험 과목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나누며 익구의 평소 주특기인 법학 까대기를 하고 행정학의 경우에는 학문적 엄밀성이 떨어지는 말장난으로 폄하하면서 친구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어주려 노력했다.


고시원이 밀집한 곳이기는 하지만 서울대 근처이기도 한지라 꽤 크나큰 유흥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구경을 하면서 새벽길을 산책하다가 고깃집에서 가볍게 허기를 달랬다. 밤을 새고 전철 첫차로 노원으로 복귀하자는 청원이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시방에서 오랜만에 라디오를 들으며 잠시 눈을 붙였다. 네시간 즈음 자고 일어난 익구는 청원이와 함께 노원으로 향했고, 오는 전철길 내내 청원이의 투덜거림과 구박을 방어하며 모든 일정을 마쳤다.


다음은 신림동 진출에 대한 일문일답이다.

글쟁이 유시민을 고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물론 글쟁이 유시민보다는 국회의원 유시민이 세상을 더 많이 바꾸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이 잡글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글의 무력함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허나 그래도 글로써 소통하는 것이 더 즐겁고 가슴 뛰는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권위주의라면 딱 질색인 녀석이지만... 유 의원의 삶의 무게에서 우러나오는 권위, 진정성에서 피어나는 권위를 좋아한다. 그러나 역시 글발에서 물씬 풍기는 권위를 가장 동경한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더 지내실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글로써 이룩하는 편안한 느낌의 권위를 선사해주는 그 날을 기대하고 있다.


고시생 친구의 살림살이를 염탐한 소감은 어떤가?

- 하도 취업대란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고시에도 자연스레 마음이 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학자로 평생 살만큼 넉넉한 집안도 아닌 바에야 먹고 살 궁리를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고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다. 다만 매일 뉴스를 접하고 잡글을 읽고 쓰지 않으면 몸이 달아버리는 나로서는 그런 폐쇄된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건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청원이는 고시생 생활을 개인주의 문화의 극치라고 평했다. 나름대로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나이지만, 무척이나 외로움을 많이 타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개인주의자인 것 같다. 하여간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펼쳐지는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살길을 좀 더 궁리해봐야겠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얼른 신림동으로 들어오라는 청원이의 충고도 진지하게 검토 할 생각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