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 부처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통·폐합하는 방안을 심의해 확정했다. 기자실 통폐합을 놓고 언론과 정치권의 비난이 거세다. 그런데 누리꾼들의 댓글이나 블로거들의 글은 사뭇 다른 양상이다. 수많은 언론학자와 법학자들의 이 조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긍하지 못하고 항변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가 정보를 주로 얻는 신문, TV뉴스, 정치권 성명 거의 모두가 한 목소리인데 설복되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어인 영문인가. 언론사 세무조사로 귀중한 언론 지면을 정부 성토장으로 쓰던 시절에도 몇몇 언론은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이 한 목소리인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독자와 국민이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내 기억에 이례적인 현상이다.


나는 기자나 공무원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인데 도토리 키재기로 누가 더 나쁜 가를 재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냐는 볼멘 소리에 적잖이 동감한다. 행정부의 공개 수준이 여전히 미흡하기 때문에 기자들의 접근이 차단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맞다. 기자실이 공무원을 접하는 방편(方便)으로서의 기능할 가능성이 있는 건 감추고 담합의 가능성만 부각시키는 건 균형을 잃은 처사라는 것도 공감한다. 원론적으로 말해 이번 사안은 언론도 정부도 함께 노력하면 그만인 일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가 있지만. 굳이 선후를 따지자면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무원 조직에게 더 큰 책임을 지워야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마땅해 딱히 반박할 명분이 없다. 일반 국민들이 공무원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건 지당하다. 하지만 언론 자신들이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기에는 좀 화끈거리지 않는가. 자신들이 그렇게 약자이고 책임이 덜하다고 생각할까?


기자실이 없는 수많은 선진국들에 견주어 우리네 정부의 취재 환경이 열악한 게 사실이라면 그것을 차분히 설명하면 될 일이다. 괜히 언론 탄압을 들먹이면서 사생결단 하는 건 민망하다. 언론 자유를 억압하던 시절 방기하거나 심지어 동조하던 이들도 졸지에 언론 자유를 외치는 걸 보면 그만큼은 살기가 좋아진 모양이다. 언론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싸우는 건지 언론의 취재 편의를 위해 싸우는 건지 헛갈린다. 아마도 언론들의 과장된 수사가 거부감을 유발한 모양이다. 기자실을 유지해 국민의 알 권리가 신장된다는 확신도 없기도 하다. 기자들이 소속 언론사 데스크의 입맛에 어긋나는 기사를 쓸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자칭 비판 언론들의 트집 잡기는 식상한 수준이 아니라 측은할 정도다. 비판은 최대주의적으로 까는 게 아니라 최소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닐까. 훌륭한 집도의는 피를 적게 흘린다고 하던데.


슬프게도 많은 이들이 기자란 집단의 자정능력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듯싶다. 이게 정부 탓은 아닐 게다. 언론의 권위, 기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걸 누구에게 시비한단 말인가. 권위라는 말이 싫으면 기품이라고 해도 좋다. 대다수 국민들은 대다수 정치인이 제 몫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대다수 기자들이 제 노릇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기자들이 제 몫을 채우지 못하는 게 정부가 공개하는 정보가 적어서 만은 아닐 게다. 정부로부터의 독립만큼이나 중요한 건 편집국 데스크로부터의 독립이 아닐까 싶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다수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기자님들은 신장된 자유를 어디에 쓰시는 걸까? 물론 나의 이런 넋두리는 물타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정부 취재 논의를 하는데 편집권 이야기를 하는 건 논의의 본질을 흐린다. 그러나 몇몇 온라인 매체를 제외하고 거의 같은 논조의 기사들이 난무하는 걸 보면 이 분들이 정부의 독선이나 획일성을 질타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나는 바쁜 국민들을 대신해 언론이 정부의 고급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해 그 문제를 파악하고 알려나가길 바란다. 기자들에게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내밀한 접근 권한을 준 것은 그런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역할에 충실했는가 스스로에게 반문해볼 수는 없을까? 언론은 사악한 정부에 맞서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는 절대선인가? 정부도 국민이 비판하면 반성하는 시늉이라도 할 줄은 안다. 정당도 표 때문에라도 엎드린다. 가장 자성의 소리를 듣기 힘든 곳 가운데 하나가 언론이다. 자기네 사주의 억울함(?)을 항변할 줄은 알았지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나가겠다는 말은 좀처럼 안 보인다. 결국 언론의 십자포화에 상당수 국민들의 핀잔은 묻히고 정부는 항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잃어버린 믿음을 되찾지는 못하리라. 믿음은 남에게 빼앗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구박할 권리는 언론 집단에게 자연스럽게 도출된 권리가 아니라 국민이 맡겨둔, 빌려준 권리가 아닐까?


나는 정부가 기자들이 공무원을 접촉하는 걸 상당 부분 제약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 불만스럽다. 강준만 교수님 말씀대로 “언론에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최악’을 감시하기 위해선 ‘차악’이라도 용인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러 언론업 종사자들을 투덜거렸지만 공직 사회의 폐쇄성 또한 밉살맞다. 기자실 통폐합을 선진화라고 밀어붙이기에는 정부가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한미 FTA 추진 과정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후퇴시켰다. 정부 역시 기자실 통폐합에 상응하도록 행정 정보 공개를 넓히는 후속 조치를 내려야 한다. 나는 이게 윈윈이라고 생각한다(정부가 취재 편의 증진 방안을 내놓겠다고는 한다만서도). 강 교수님은 “이게 과연 한나라당 정권하에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생각해보라고 권유하지만 그건 편견이다. 기자실 통폐합의 좋은 취지를 새로운 집권 세력이 악용한다는 논리라면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선의를 친북 세력이 악용한다는 주장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 말씀대로 “정부가 정말 공무원들과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공무원 사회의 폐쇄성을 타파할 생각이라면 먼저 그것을 확인해주고 무엇을 하더라도 늦지 않”았다. 이런 방법상 혹은 선후관계의 실책은 인정하지만 기자실 기능을 대체하는 오히려 능가하는 행정 정보 공개로 논의의 초점을 옮겨가야 한다. 이 과정이 기자의 누림을 좀 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가 누리는 것을 좀 줄이더라도 국민의 세금도 절약(기자실 운영 비용)하고 국민의 정보 접근권도 높이는 방향으로 힘을 모을 수는 없을까? 반성해야할 건 정부만이 아니다. 언론의 권위나 기품이 추레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언론권력이 스스로를 신성시하는 것일 테다. 성역을 없애겠다는 이들 자신이 성역이 되는 모습은 희극이라기보다 비극이다. 여담으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데 모든 언론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구독 중지를 손쉽게 신청하는 배너를 만드는 건 어떨까? 이솝우화에 나오는 병 문안 온 짐승을 잡아먹는 사자 동굴은 들어가기는 쉬운데 나오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끊기는 어려운 이 요상한 구조를 허무는 것은 가장 쉬운 수준의 언론개혁이 아닐까 싶다. 언론에 대한 평가는 절독 밖에 없으니 해보는 말이다. - [無棄]


* 노파심에서 추신 - 저는 제 주변에 알고 지낸다고 할 만한 기자가 단 한 분도 없습니다. 만약 기자분의 고충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렇게 모질게 말하지는 못했겠지요. 오히려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속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다 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기자란 직종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평균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명제에 적극적으로 동감하지는 않는 녀석입니다. 가령 기자 같은 직업은 보통 생활인과 비교해 좀 더 멋지고 영향력도 있는 데다 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큰 것이겠지만요. 상당수 기자분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시는 거 같아 아쉽네요. 하긴 뭐 기자의 밥그릇 동맹은 특별히 숭고하지는 않아도 특히 더 나쁜 건 아니니까요. 저는 궁극적으로 이 논의가 기자들의 기품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특권이 아니라 기품이요.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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