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본래 두 달 전인 6월에 작성한 글이지만, 과객님의 고마운 댓글을 반영해 고치고 문단을 이동시켰습니다. 외래어의 된소리 표기에 대한 부분을 좀 보강했을 뿐 크게 바뀐 부분은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어려운 문제네요.^^;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서해문집, 2004)라는 책 후반부를 읽었다. 서문에서 인명과 지명 표기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중국이 오늘날 한국의 인명이나 지명을 한국어 발음으로 표기하지 않고 중국어 발음을 고수하고 있는 한 우리도 형평에 맞추어 우리 식으로 중국 인명, 지명을 표기하자는 고집”하기로 한 저자들의 결단은 수긍할 만하다. 중화민국을 세운 1911년의 신해혁명 이전의 중국사람은 한국어 한자 발음으로 부르고, 그 이후는 중국어 한자 발음으로 부르는 게 대세로 자리잡았다. 호금도(胡錦濤)보다는 후진타오가, 온가보(溫家寶)보다는 원자바오가 더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신해혁명이 왜 가름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가 애매하다. 남의 나라의 역사적 사건이 우리나라 발음표기의 기준이 된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중국 지명의 경우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한국어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한자음에 따라 표기하게 되어 있다. 가령 쯔진청과 자금성(紫禁城), 톈안먼과 천안문(天安門), 완리창청과 만리장성(萬里長城) 등의 경우 역사 용어라 후자가 많이 쓰이는 편이다. 하지만 현대 지명은 일관성이 덜한 편이다. 베이징, 상하이가 많이 퍼졌지만 북경(北京), 상해(上海)도 여전히 많이 쓰인다. 청두보다는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 수도 성도(成都)가 익숙하고, 뤄양, 시안도 낙양(洛陽)과 서안(西安)이라고 부르고픈 마음이 적잖다. 사천(四川) 탕수육은 있어도 쓰촨 탕수육은 좀처럼 쓰지 않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던 충칭을 드나들었던 우리 선조들은 충칭보다 중경(重慶)으로 더 많이 불렀을 공산이 크다. 옌볜 조선족보다는 연변(延邊) 조선족이라 해야 어울린다. 실제로 연변대학 교문에는 한글로 연변대학이라고 써져 있다고 한다. 한국언론에서 옌볜대학이라고 표기하는 게 적절한지 헛갈린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경우 헤이룽장성을 흑룡강(黑龍江)성으로 쓰기는 해도, 하얼빈을 합이빈(哈爾濱)으로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혼란스럽다.


인명이야 중국어 한자음으로 부르는 데 거부감이 덜하지만 지명의 경우 한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들이 적잖기 때문에 쉽게 바꿔 부르기 힘들다. 우리에게 요동(遼東)과 집안(集安)은 있어도 랴오둥과 지안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반드시 관성 탓만은 아니다. 중국식 한자음을 무작정 존중하기 힘든 역사적 맥락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한국인이 백두산(白頭山)을 장백산(長白山), 심지어 창바이산으로 부르는 건 독도(獨島)를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언짢은 일이다. 이 여파 때문인지 황하(黃河)를 황허라고 부르는 건 낯설다. 특히 심한 건 양쯔강이다. 양자강(揚子江)을 중국식으로 불러준답시고 한 것이지만 중국에서는 장강(長江), 즉 창장으로 쓴다. 참고로 한국어에서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는 소리가 없기 때문에 자, 저, 조, 주, 차, 처, 초, 추로 발음된다. 이로 말미암아 주스를 쥬스라고 쓰지 않듯이 江을 쟝이라고 쓰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로 쟝졔스가 아닌 ‘장제스(蔣介石)’가 된다.


한글은 음소 문자이면서도 낱글자를 음절 단위로 네모지게 모아씀으로써 음절문자의 효과를 낸다. ‘하ㄴ가o(漢江)’, ‘겨o세제미ㄴ(經世濟民)’이라고 쓰는 것보다 ‘한강(漢江)’,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한자와 잘 어울림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을 위시한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한글 한 음절과 한자 한 음절이 일대일로 대응되면서 한자가 개입될 여지가 충만하게 만들었다. 이는 한국 한자음을 중국 한자음에 가깝게 고치고 싶다는 욕망의 실현이었다. 좀 좋게 말하자면 한국어와 중국어의 원활한 소통을 꾀한 것이 훈민정음이다. 고유명사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의 대원칙이라지만, 중국 고유명사를 표기하는 데 있어 겪는 혼란은 훈민정음 창제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습관과 버성기기 때문이리라.


김용옥, 최영애 선생님이 만든 중국어 표기법은 적극적인 된소리 표기와 더불어 모든 인명과 지명을 중국어 발음으로 읽기를 제안한다. 라오쯔(老子)와 차오차오(曹操)처럼 쓰자는 데는 공감하지 않지만 된소리를 좀 더 써야 한다는 주장은 검토해볼 만하다. 가령 東이 들어가는 마오쩌둥이나 산둥반도는 현지 발음과 너무 차이가 난다. 물론 외래어는 한국어 체계에 맞게 표기하는 게 맞지만 둥과 똥의 간극은 좀 지나치지 않나 싶다(예전 문교부안인 ‘동’이 더 나은 듯싶다). 이미 중국어 표기에서 ‘ㅆ,ㅉ’을, 일본어 표기에서 ‘쓰(つ)’를 쓰고 있다. 더군다나 2004년 12월 30일 문화관광부가 동남아시아 3개 언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면서 타이어는 ‘ㄲ,ㄸ,ㅃ,ㅉ’, 베트남어는 ‘ㄲ,ㄸ,ㅃ,ㅆ,ㅉ’ 등 된소리 표기를 인정했다.


푸케트(Phuket)가 푸껫이 되고 호치민(Hoa Chi Minh)은 호찌민이 된 것은 분명 현지 발음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것을 고치려는 의도다. 언젠가 중국어 표기에 ‘ㄸ’ 등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리 실제 발음과 가깝게 표기하려 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너무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빠리(Paris)’라고 굳이 고집하는 건 외국어 표기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한 외래어 표기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여담이지만 나는 ‘마르크스’와 ‘맑스’가 같은 사람인 걸 대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다만 어문규범의 신뢰를 높이는 측면에서라도 너무 실제와 다르게 느껴지는 대목은 다듬어줄 필요가 있겠다.


실상 우리가 내세우는 원음주의 표기법에는 많은 예외가 있다. 스페인을 에스파냐로 고쳐 부르는 건 영어식 표현을 교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만 여전히 영어식 명칭은 곳곳에 만연하다. 베네치아라는 이탈리아어 명칭만큼이나 베니스라는 영어식 명칭이 많이 쓰인다. 영어식 비엔나와 독일어식 빈은 같은 도시다. 프랑스 경제학자 Walras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발라’라고 해야하지만, 우리네 경제학 책에는 영어식으로 ‘왈라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비단 영어식 표현만이 아니라 우리식으로 바꿔 부르는 고유명사도 적잖다. 우리는 닛폰이라 부르지 않고 일본이라고 칭하며, 도이칠란트 대신 독일을 선호한다. 몇 해 전 중앙일보에서 독일어에 어원을 둔 게놈(genom) 대신 영어식 지놈을 쓰자는 홍보를 한 적이 있었다.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에서 이미 관용적으로 굳어진 게놈으로 통일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단락 났다. 이처럼 고유명사, 학술용어는 언중의 습관을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게 옳다.


유럽 공통 화폐인 유로(Euro)의 경우 독일에서는 오이로, 프랑스에서는 외뢰, 이탈리아에서는 에우로 등으로 읽는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원음주의보다는 자신들의 발음으로 변환하려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반면 북한에서는 철저한 원음주의를 써서 러시아를 로씨야, 멕시코를 메히코, 헝가리를 마쟈르, 폴란드를 뽈스카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까지 살펴보고 나니 오히려 더 갈피를 못 잡겠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을 예외 없이 따르게 할 것인가 관행을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어지럽다. 로마자 표기법의 허점이 적잖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확정된 공적 규칙을 지켜왔듯이 외래어 표기법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어떻게 표기하느냐는 매우 복잡한 문제다. 똑 부러지지 않는다고 성내기 전에 한국과 중국의 애증 어린 관계를 조망해보는 것도 좋겠다. 아울러 한국어와 중국어의 비대칭성도 고찰해봐야 한다. 지난 2005년 1월 서울시는 서울에 대한 새로운 중국어 표기로 ‘首爾(서우얼)’로 확정해서 발표했다. 한청(漢城)이 입에 익은 중국 언중들의 습관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을 게다. 서울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고, 그 밖의 우리 인명과 지명은 여전히 중국어 발음으로 읽힌다. 노무현(盧武鉉)은 ‘루우쉬안’일 뿐이다. 최익구(崔翼求)는 ‘추이이추(혹은 추이이치우)’가 되는데 중국사람이 나를 이렇게 부르면 처음에는 무척 어색할 듯싶다. 중국인과 형평에 맞게 우리도 한국어 발음으로 통일하자는 주장은 무척 설득력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소리나는 대로 쓸 수 있다(雖風聲鶴 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라고 자부했듯이 우리말의 표현력은 중국어를 비롯한 세계 어느 말에 견주어 뛰어나다. 중국인이 한자어로 된 우리의 인명과 지명을 자기네 발음으로 부르는 건 중화주의 때문만이 아니라 표의문자라는 언어적 특성 탓이기도 하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어 발음에 맞는 한자를 일일이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인은 외래어를 자기식대로 음차하는 걸로 유명하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커린둔(克林頓)’이라고 표기하고 맥도날드를 마이땅라오(麥當勞)로, KFC를 컨더지(肯德基)로, 코카콜라를 커커우커러(可口可樂)로, 피자헛을 삐셩커(必勝客)로 표기하며 외국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기발한 재주를 뽐내고 있다. 과연 우리의 인명과 지명을 이렇게 음차해서 불러주기를 요구하는 게 마땅한지 좀 더 고심해야겠다.


내 이름의 경우 중국어 병음으로 cui yi qiu라고 쓰고 로마자로는 choi ik gu라고 쓴다. 현행 로마자 표기법을 따른다면 최씨는 ‘Choe’라고 해야하지만 이름자는 예외를 인정하는 게 적당할 듯싶어 아직은 고치지 않고 있다. 여하간 내 이름을 중국어로 한국어 발음대로 음차하기가 어렵다. ‘최’의 중국어 병음인 cui 와 비슷한 음가로 chui 정도가 있으나 본래 한자를 바꿀 만큼 발음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아니다. 한국어 발음으로 ‘익’에 해당하는 한자는 모두 yi로 발음된다. 더군다나 중국어 병음에는 i로 시작하는 것이 아예 없기 때문에 yi가 그나마 가장 가깝다. 굳이 받침을 넣자면 yin 정도가 가능할 게다. ‘구’의 경우에는 gu라는 병음에 해당하는 글자가 많아서 무리 없이 바꿀 수 있다. 종합하면 내 이름 석자 가운데 음차할 수 있는 건 한 자 뿐이다. 어떤 사람은 석 자 모두 가능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한 글자도 근사치가 없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중국어 발음으로 부르는 것보다 원음에서 더 멀어진 음차로 부르는 게 온당할 것인가. 가령 내 이름을 모두 음차해서 chui yin gu라고 한다고 할 때 양국은 동등한 위치가 되는 걸까? 그래도 한국의 유명인사나 주요 도시만큼은 ‘서우얼’처럼 음차해서 부르는 수고로움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나.


현행 중국어 표기법도 이런 고민의 산물일 게다. 어느 나라 말이라도 소리나는 대로 옮길 수 있는 한국어의 장점을 국가적 자존심 혹은 언어 주권이라는 명분 아래 절제하고 감추는 게 나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등소평(鄧小平)을 덩샤오핑이라고 원음에 가깝게 쓰고 읽을 수 있는 한국어의 우수성 때문에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한국어의 강점을 저들이 모르고 알아서 긴다고 생각할까 그게 걱정이다. 아마도 이를 염려한 사람들이 저우언라이를 주은래(周恩來)로, 류사오치를 유소기(劉少奇)로, 자오쯔양을 조자양(趙紫陽)으로 부러 지칭하는 것일 테다. 대한민국 언중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까? 어쩌면 우리가 한국어의 매력을 얼마나 알려 나가느냐도 이 지끈거림을 다스리는 관건이 될지 모르겠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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