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日記(07년 7월)

일기 2007. 8. 3. 07:11 |

070706
<평창 그리고>라는 제목으로 어느 익명게시판에 올린 글

평창이 아쉽게 졌습니다. 원래 스포츠와는 담 쌓고 지내는 저인지라 특별히 관심을 두지는 않았지만 평창 어린이들이 뚝뚝 흘리는 눈물은 가슴을 짠하게 합니다. 러시아의 막대한 로비자금이라든가 유럽의 지역주의 같은 풍문을 듣다보면 올림픽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올림픽정신은 어디에 가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프리젠테이션 동영상에서 고 이영희 할머니가 북녘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며 콧잔등이 시큰해졌어요.


이제 지난 일이니 솔직히 털어놓자면 한승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양지를 찾아다닌 철새 정치인의 극치로 기억하고 있었던지라 강원도에 쓸 사람이 저렇게 없나 내심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평창올림픽 유치 활동 지원을 이유로 사면을 받아 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죠. 이분들을 향한 제 서먹서먹함이 쉽게 가시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좀 덜 미워하는 계기가 된 거 같기는 하네요.


민주노동당이 이번 사안에 대해 내놓은 논평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유치 준비 과정에서 환경문제에 관한 염려가 적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건 꽤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용편익분석에서 환경 비용이 얼마나 고려됐는지 의심스러웠거든요. 아울러 월드컵, 아시안게임 유치 후 시설유지에 곤욕을 겪고 있다는 점을 들어 “국제체육경기가 많이 치러져도 그것이 우리 삶의 질을 개선되거나 쾌적하게 만드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논변은 꽤 설득력 있습니다.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서 윤효원님의 글을 읽다가 2명 이상 복수의 IOC 위원을 둔 나라들 가운데 올림픽 참가 경험을 가진 운동선수 출신이 아닌 위원만을 둔 나라는 한국(2명)과 중국(2명) 말고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두 명 모두 대기업 회장 출신이며, 중국의 경우 두 명 모두 국가 관료 출신이라고 하네요. 포스트 김운용 시대를 맞아 우리네 스포츠 외교력은 어떤 식으로 신장시켜야 할지 고심해볼 문제입니다.


올림픽을 비판적으로 톺아보는 이런저런 시각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유치활동 동안 지자체의 행정력이 편중된 만큼 이제 그간 평창주민들에게 미뤄뒀던 복지후생을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하나가 된 평창주민이라는 구호도 좋지만 시골에 살면서 겪었을 평창주민들의 불편을 꼼꼼하게 살필 때가 아닌가 싶네요. 아마 그간 신경을 못 쓰셨을 법한 평창도서관의 도서 확충도 서두르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고운 정성을 보여주신 평창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한 줄 요약>
만일 네가 나와 다르다면, 너는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


070714
오늘의 소장비평가들 가운데는 독자적인 사유 공간을 지닌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그들 중 상당수가 즐겨 참조하는 이론가들의 이름을 한번 보자. 너도나도 김윤식, 김현, 백낙청이요, 너도나도 루카치, 바흐친, 보드리야르, 제임슨, 푸코다. 왜 이렇게도 획일적일까? 이보영이나 이상섭이나 천이두의 업적(그것들은 다 누구누구의 업적 못지않게 소중한 업적들이다)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으로부터 귀중한 깨달음을 얻어내는 사람은 왜 안 나오는가? 유행도서 목록에 올라 있지 않은 외국인 학자의 사상에서 뜻있는 참조사항을 구해오는 사람은 왜 이렇게도 적은가? 남이 다 읽는 책만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란, ‘남이 다 할 수 있는 얘기’의 테두리를 넘어서기 어려운 게 아닐까? 김윤식이나 김현이나 백낙청은 남이 다 읽는 책만 읽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김윤식이 되고 김현이 되고 백낙청이 된 것이다. 그런데 김윤식, 김현, 백낙청을 존경해서 그들의 책을 즐겨 읽는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정작 그들의 본질은 배우지 않고 있으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이동하, 『홀로 가는 사람은 자유롭다』, 문이당, 1996, 191쪽


고종석 팬카페에 언어의 마술사님(이하 언마)이 올려주신 <고종석을 넘어서>라는 글에 인용된 글이다. 언마님은 “고종석을 읽고서 고종석 이상이 보여야 한다”는 지인의 충언도 언급했다. “지금의 나에게 고종석은 무조건적인 복종의 대상이 되는 것”인데 “그와 다른 시각으로 고종석을 비판한다는 것은 지금의 내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임을 돌아보는 글을 읽고 가슴이 짠했다. 따져보니 나는 이런 반성적 물음을 던질 용기조차 없었다. 나는 고종석 선생님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희미하고, 고 선생님을 넘지 못했다고 크게 좌절할 거 같지도 않다. 고 선생님을 넘어서야 한다는 명제는 좀 깔끄럽고 삭막하다. 나는 이 명제 자체는 추구할 만하지만 그게 또 하나의 강박관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의 (노력을 포함한) 재주가 불공평하다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람 가치의 우열을 따지는 건 매우 어렵고 조심스런 문제다. ‘고종석 이상’이라는 개념도 좋지만 ‘고종석과 다른’ 매력을 만들어보는 것도 꽤 도전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인용문의 취지나 언마님의 고심도 결국 대가(大家)와 다르게 보는 안목을 갖기 위한 노력이니 만큼 결론은 대동소이한 셈이다. 설령 차별화(?)에 실패한다고 해도 나쁠 건 없다. 세상에는 지식 도매상보다는 지식 소매상이 많고, 지식 소매상보다는 지식 유통상이, 그보다는 지식 소비자가 더 많기 마련이다. 꽤 괜찮은 유통상이나 소비자가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무게가 많이 낮아질 거 같지는 않다.


아Q의 정신승리법은 자신의 현실 속의 패배를 머릿속에서 승리인 것처럼 전환하는 기술이다. 정신승리법의 폐단은 덜 배우게 만들고, 덜 고치게 만드는 데 있다. 별 것도 아닌 차이점을 과대포장해서 스스로를 상찬하거나 앵무새처럼 외우는 삶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며 안일한 상대주의에 빠지는 것 같은 게 정신승리법의 징후일 게다. 틈만 나면 나를 파고드는 정신승리의 유혹을 떨쳐내고 내 스스로 사고하려면 얼마나 더 뼈를 깎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 걸까? 그것이 독창적인 산출물은커녕 상식을 건사하고 양심을 견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070717
앤드류 헤이우드의 『정치학』을 발췌독하다가 환경주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맘에 드는 대목을 발견했다. 생태주의자에는 “얕고 옅은(shallow and light)” 사람과 “깊고 짙은(deep and dark)” 사람이 있다는 분류다. 사실 모든 주의자 아니 모든 보통 사람들도 이렇게 나눠봄직 하다.


얕고 옅다 보면 합리적 이기주의가 기득권 옹호와 현상유지를 정당화하는데 복무하는 현실 추수주의로 전락할 염려가 있다. 깊고 짙다 보면 실질적 행동주의가 경직되고 독단적으로 변해 근본주의로 빠질 염려가 있다. 이 사이를 잘 조율할 수 있다면 함민복 시인의 시구대로 모든 경계에서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070718
남의 생일 잘 안 챙기는 내가 제 생일을 끔찍이 여긴다면 민망한 일이다. 무덤덤하게 보냈지만 생일 축전은 과분해서 고맙다. 얻어먹은 점심도 여느 때보다 달았고, 순두부찌개와 유부초밥이 함께 한 저녁도 황홀했다. 이맘때 늘 하는 말이지만 다음 생일 때는 “철” 좀 들기를 바란다. 철에도 귀천(貴賤)이 있다면 너무 야박한 소리겠지만 좋은 철을 많이 품고 나쁜 철은 조금만 가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숙명 혹은 사명이란 말은 참 무섭지만 그래도 내게 허락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 무엇인지도 찾아봐야겠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의 담소 속에서 내가 그간 무능하고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던 어느 분에 대한 악감정이 과도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때 당시 그 분과 난 약간 언쟁이 붙었고 나는 “할 수 없군!”을 외치며 미련 없이 돌아서겠다며 물러났었다. 지금 돌아보니 오만했던 내 잘못이 더 크다.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하는 걸 경계하는 계기로 삼자. 원망을 버리니 이렇게 홀가분한 것을 이제야 알겠다. 생일 같은 개인적 기념일에 평소 탐탁지 않게 여기던 인물에 대한 언짢은 감정을 눅이는 시도를 해보는 건 참 멋지다. 루쉰은 자신의 비판자들을 향해 “그대로 나를 증오하라. 나 역시 하나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 미움은 수술용 메스처럼 적재적소에 쓰였으면 좋겠다.


제 뼈와 살과 피와 땀이 되어 주시는 스승님들, 형누님들, 벗님들, 동생들 모두 고맙습니다.^0^


070725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이라니, 외우기도 힘들다. 이른바 범여권의 이합집산이 이제 얼추 정리가 되는 모양이다.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었던 정당이 이제 원내 3당으로 밀려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김한길 포함 20명의 의원들은 열린우리당을 나온 다섯 달 사이에 탈당을 두 번 하고, 새로운 정당에 세 번 몸담는 대기록(?)을 세웠다. 누구에게나 제 밥그릇은 중요하다, 아니 숭고하다. 하지만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인이라면 그 밥그릇의 숭고함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어쩌면 지금 목격하는 희대의 촌극은 세금의 지엄함을 망각한 이들이 너무 많은 권세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선거 일정 속에서 행정부, 입법부, 지방권력까지 모두 장악한 수구세력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품어봄직 하다. 그런데 그걸 막겠답시고 나선 인물들의 행태가 그리 떳떳하지 못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스티븐 런치만이 쓴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2004, 갈라파고스)에는 비잔티움이 서방의 지원을 얻기 위해 교회통합 문제에 매달리는 대목이 나온다. 동서 기독교계는 각종 교리 해석과 실천 문제를 놓고 갈렸다. 속인 사제의 혼인에 대해 논쟁했고, 성찬용 빵이 발효된 것이어야 하느냐 아니냐를 놓고도 다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교권의 문제였다. 로마 주교(교황)의 위상을 놓고 양측이 물러설 수 없었다. 동방 정교회는 모든 주교는 기본적으로 동등하다고 믿었고, 로마 주교는 수석의 지위를 가질 뿐 최고의 수장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교황의 절대적 권위를 주창하는 서방 교회는 이를 양보하지 않았다. 비잔티움의 요안네스 8세는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꾀하기 위해 동서 교회통합을 억지로 추진했다. 비잔티움의 많은 지식인들이 반발했고 시민들은 분열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함락될 때까지 그토록 갈망하는 서방의 도움은 거의 없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화해가 아닌 꿍꿍이로 맺어진 통합이 얼마나 실속 없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기 전날 밤 소피아 성당은 북적였다. 라틴인과 통합론자들이 더럽힌 곳에서 예배를 볼 수 없다는 독실한 그리스인들도 이날만은 소피아 성당에서 기도했다. 교회통합을 반대했던 사제들도 교회통합파와 함께 예배를 보았다. 글쓴이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동서 교회통합이 이루어졌다고 사뭇 비장하게 전한다. 그러나 이건 미화된 묘사일 뿐 하룻밤의 일치로 이네들의 갈등이 다 메워지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다만 외침의 공포로 말미암아 내부에서 티격태격할 동력을 잃었을 뿐이다. 제국의 최후를 함께 하는 유대감 정도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뜬금없이 옛날 이야기를 꺼내든 까닭은 오늘날의 현실이 갑갑해서다. 입으로는 수구 세력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이들이 내부에서 투쟁하는 모습을 보는 건 괴롭다. 이들에게는 소피아 성당에서의 맞잡음 정도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여권 일각에서 한솥밥 먹던 동지 가운데 몇몇을 친노파라고 딱지를 붙여 놓고 참여정부의 모든 과오를 덮어씌우는 희생제의를 펼치는 건 추악하고 민망하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공과에서 자유로운 신당을 만들려는 욕심은 너무 지나치다.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대리하게 만든다는 건 수치스럽다. 비록 정치적 측면의 개혁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기간당원제 확립이나 지역주의 청산, 깨끗한 정치 구현 및 각종 개혁 입법들은 신당도 이어받아 마땅한 과제들 아닌가. 기왕지사 신당을 하겠다고 나선만큼 이제 차분히 정책으로 승부하길 바란다. 당최 기존 정당들과 얼마나 차별화 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겠다. 아참 점심식사는 잡탕밥을 권한다.^0^


070729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한 한국인 피랍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의 애간장이 탄다. 지금 고초를 겪고 있는 분들이 죄를 넘어선 벌을 받고 있다는 건 또렷하다. 한국 사회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도무지 제 죄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의 수난은 너무 지나치고 안쓰럽다. 일단 무탈하게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그 다음에 비판하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그들은 비판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많은 고통에 시달렸을 게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개신교의 배타적 선교 행위 등에 대한 반감이 폭발한 것은 우리 사회의 소통구조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 제기가 평소에도 좀 있고 개신교인들이 이를 수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였다면 이런 넘치는 반응은 좀 줄일 수 있었으리라.


샘물교회 관계자 등의 분들이 봉사를 강조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나는 범속한 인물인지라 순수한 봉사 같은 말을 못 믿겠다. 설령 그 순수함을 인정하더라도 그 간의 편협과 오만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궁극적 목적이 선교라면 얼마나 그 순수성을 인정할 수 있을지는 어려운 문제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 강제는 과연 순수했을까? 조선 성리학자들의 사문난적 타령은 과연 순수했을까? 정도전의 <불씨잡변>은 순수한 학문적 동기일까? 나는 모든 이들이 봉사라는 말 대신 선교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끝끝내 봉사라는 말에만 갇혀 있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더 가엽다. 순수함이 극단주의자들의 도피처가 되는 경우는 늘 있어 왔다. 순수는 면책의 도구가 아니다.


여하간 선교가 명확하다고 하더라도 선교단의 활동은 봉사와 매우 흡사했을 공산이 크다. 적어도 한국에서 볼 수 있듯이 불신지옥 운운하는 저열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한양대 이희수 교수님에 따르면 “이슬람 국가에서는 선교라는 것이 이슬람법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속법에도 위배되는 행위”라고 한다. 기독교 선교뿐만 아니라 이슬람 선교도 금지되어 있다는 설명이 놀랍다. “신앙은 개인의 영역에서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여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라니 선뜻 믿기지 않는 감이 있지만. 적어도 민간인을 살상하는 광신도들에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이 외세를 반대하는 독립투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탈레반 집권 시절의 철권 통치를 살펴보면 그들은 문화의 특수성을 주장할 자격이 없어 보인다. 미국도 심심지 않게 어기는 제네바 협약을 탈레반더러 준수하라고 촉구하는 것 또한 허망하니 답답하다.


나는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고대하지만 그 이상의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용기는 없다. 이네들이 돌아오면 하나님의 은총을 운운할 게 틀림없다는 식의 댓글을 많이 읽었다. 연말 시상식에서 팬들보다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리는 연예인들을 죄다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나 역시 그런 광경이 펼쳐진다면 많이 언짢을 거 같다. 나는 나중에 덜 실망하기 위해서라도 무덤덤하게 비켜서 있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의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도 강제 예배에 반대하며 단식 투쟁을 해야했던 강의석님이 잊혀지지 않는다. 개정 사립학교법에 반대하던 종교 재단 관계자들의 탐욕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던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벗이었던 예수님의 삶을 대강은 들어 알고 있다. 제3자 입장에서 주제넘은 참견이겠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득권을 옹호하고 수구세력에 복무하는 건 그리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고귀한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한국 개신교의 천격(賤格)을 고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얼마나 불순한가. 하지만 그 불순함은 또한 얼마나 마땅한가. 이런 불순함이 우리 일상에서 자유롭게 논의되길 바란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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