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보는 눈이 뜨여야 이런 저런 무엇을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안고수비(眼高手卑)라는 말이 있어서, 마음은 크고 눈은 높아도 재주가 모자라 손이 눈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기도 한다만, 수비는 나중 이야기고 우선은 안고가 되어야 한다. 보는 눈이 먼저 열려야 분별을 하게 되고, 눈에 격이 생겨야 그 격에 이르려고 부지런히 손을 익힐 것 아니냐. 타고난 재주가 아무리 출중허고, 일평생 익힌 솜씨가 아무리 능란해도, 눈이 낮은 사람은 결국 하찮은 몰풍정(沒風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사람은 눈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우리 사람의 정신 속에도 반드시 정신의 눈이라 할 혈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곳에 제대로 있고, 그 혈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른'이라 하지.
- 최명희, 『혼불』 4권 14~15쪽


지난해 한가위에 보름달을 보며 안고수비(眼高手卑)하지 말기를 다짐했었죠. 이번 한가위 보름달에도 똑같은 소원을 빌어야 하는 건 아닌가 자괴감이 드네요. 제 눈이 높은지는 확실치 않지만 재주가 낮은 건 분명하니까요. 최명희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제가 그나마 자신 있던(?) 안고(眼高)도 실은 제대로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꿈 꿀 수 있는 것이라면, 이룰 수도 있다(If yon can dream it, you can do it)”는 월트 디즈니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꿈에도 귀천이 있다면 너무 박절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건정대며 바란다고 꿈이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죠.


이렇게 화끈거릴 때면 으레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지나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君子恥其言而過其行)”라는 논어 구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 말을 퇴계 선생의 『자성록』 서문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으로 실천함이 말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라는 구절인데 뜻이 서로 통합니다. 혀로 살지 말고 손발로 살라는 죽비를 몇 대 맞으니 얼얼하네요. 서투른 정성이 교묘한 잔꾀를 이긴다(巧詐不如拙誠)는 한비자의 가르침을 저도 따르고 싶은데 의심이 많아서 걱정이에요.^^;


홍기빈 선생님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란 책 끄트머리에 실린 이병천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님의 발문을 길게 인용하고 싶네요. 무릎을 치면서 타이핑해둔 구절을 우연히 발견했거든요. 높을수록 낮아지고, 샅샅이 훑을수록 멀리 보는 그 오묘한 이치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선생님의 문제의식을 함께 음미해보면 좋을 듯싶네요. 세상을 세련되게 욕하겠다는 심보로 기교에 치중하고, 남의 흠 잡는 쾌감에 만족하는 제 자신을 반성해야겠습니다. 자기 둘레를 티끌만큼 바꾸는 게 버겁고, 돈이 되지 않는 가치를 도두보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제가 봐도 언짢은 엄살이지만요.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공부를 해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요동치는 대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살면서 새롭게 그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즉 보편적인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되 구체적인 때와 장소에 상응되게, 동료 시민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더불어 소통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것, 높은 것, 원대한 것, 우주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되, 아니 오히려 그것을 위해서라도 작은 것, 낮은 것, 미약한 것, 원자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소멸한 것, 패배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들이 연출하는 상호의존적인, 상관적 그물망의 숨결과 교감하고, 사랑하고, 애도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옛것, 고전, 선각, 대가, 그리고 외래적인 것으로부터 늘 배우고 익히되, 거기에 갇히고 그것을 물신숭배하면 위태로우며,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판잣집이라 해도 자기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한 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의 윤리경영지침으로 ‘빨간 얼굴 테스트(Red Face Test)’라는 게 있습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나 행동을 자기 가족에게 얼굴 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윤리적인지 자문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허승호, 『윤리경영이 온다』, 동아일보사, 2004. 참조). 이보다는 덜 순박하긴 해도 GE에서는 자신의 활동이 신문에 나더라도 그와 같은 활동을 지속할 것인지를 잣대로 판단하는 Newspaper Test라는 것도 있다네요(P&G의 뉴욕타임스 룰도 같은 맥락인 듯싶습니다). 굳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설명하려고 할 것도 없이 제 자신이 얼마나 민망한 모습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가능성의 실마리를 잘 엮어봐야겠어요.


최근 겪은 흉사가 원인이었는지 여드름이 얼굴 동서남북으로 나서 연지곤지를 연상케 했습니다. 피부 재생이 잘 되는 청소년과 달리 성인은 여드름이 생기면 흉터가 많이 남는다는 걸 제 자신의 임상실험을 통해 입증해버렸네요. 본래 뽀송뽀송하던 낯도 아니었던 데다가 흉까지 지니 피부에 무심하던 저도 적잖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이제 성인여드름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원통합니다.^^; 연휴 동안 제 젊음과 트레이드 할(단순히 맞바꾸기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해 교환하겠다는 의미) 공부거리는 무엇일지 궁리해봐야겠습니다. 이만하면 작년과 똑같은 소원을 비는데 대한 궁색한 변명은 되겠지요?^^;


넋두리가 길었습니다. 아무쪼록 넉넉하고 재미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혹은 그러셨길 바랍니다. 아참 이 글은 미괄식입니다.^0^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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