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구의 얼렁뚱땅 시읽기』(11)

ㅋ - 정호승, 「칼날」

칼날 위를 걸어서 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피는 나지 않는다/ 눈이 내린다/ 보라/ 칼날과 칼날 사이로/ 겨울이 지나가고/ 개미가 지나간다/ 칼날 위를 맨발로 걷기 위해서는/ 스스로 칼날이 되는 길뿐/ 우리는 희망 없이도 열심히 살 수 있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세상은 칼자루 쥔 쪽이 움직입니다. 칼끝에서 독설을 퍼붓고 몸부림 쳐도 생채기만 나고 칼 잡은 자의 마음을 바꾸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올챙이적 시절을 기억하는 양심적 기억력만 있다면 우리가 칼자루를 쥐어 보는 건 어떨까요? 열심히 벼린 칼을 남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라 세상의 아픔을 덜어내는 수술칼로 써봅시다. 춘추좌씨전에는 무(武)라는 글자를 止戈爲武(지과위무)로 풀이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무기를 거두어들이는 것, 싸움을 그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무공이라는 뜻입니다. 공공의 적을 물리치며 부조리를 타파하고 남은 나머지 힘은 절제한다는 멋진 말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이 늘 휴대하고 다니셨다는 경의검이라는 조그만 칼과 성성자라는 쇠방울 두 개는 일상적인 긴장, 끝없는 자기검열을 상징합니다. 그 치열한 자아성찰은 자신의 능력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품은 꿈에 비해 힘이 약하다고 투덜거리지 말아요. 아직은 꿈을 줄일 때가 아닙니다. 벌써부터 output을 줄일 생각일랑 말고 바지런히 input을 늘려봅시다. 위기는 위대한 기회이며, 절망은 절실한 희망입니다.


후기 - 무(武)자 풀이처럼 정(正)자를 일(一)과 지(止)로 나눠서 풀이하기도 한다. 하나에서 그친다, 어느 정도에서 멈춤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꽤 그럴 듯하다. 바르게 살기 어렵지만 나는 우선 하나라도 잘 해야겠다.


『익구의 얼렁뚱땅 시읽기』(12)

ㅌ - 안도현, 「퇴근길」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짧은 시지만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입니다. 우리말은 두겹, 세겹이라는 말을 쓰지, 이겹, 삼겹이라고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삼겹살은 1994년에야 국어사전에 올랐습니다. 돼지고기 가운데 인기 없는 비곗덩어리로 취급되던 삼겹살은 개성 사람들의 정성으로 온 국민의 벗이 되었답니다. 돼지에게 섬유질이 적은 사료와 열량 많은 사료를 번갈아 먹여 비계와 살이 적당히 섞인 삼겹살을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좋은 마케팅 사례로도 손색이 없을 거 같아요. 세상이 아무리 팍팍해져도 서민들이 한 주에 한 번쯤은 삼겹살 구워먹을 여유는 지켜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삼겹살 나눠먹는 즐거움이나마 건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배곯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눈길을 보내고 손길을 건네는 사회가 되는 소박한 꿈을 품어봅니다.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과 터질 듯한 상추쌈 앞에서 잠깐이나마 “먹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하여 먹으라”라는 키케로의 말도 떠올리면 좋겠네요. 마음 맞는 대로 모여 앉아 삼겹살에 소주 한 병으로 불콰해진 얼굴을 마주보며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어봅시다.


후기 - “먹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큰 일이다. 하루도 먹지 않을 수 없거니와 또한 하루도 구차하게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먹지 아니하면 목숨을 해칠 것이요, 구차하게 먹는다면 의리를 해칠 것이다(食之於人 大矣哉 不可一日而無食 亦不可一日而苟食 無食則害性命 苟食則害義理).” 정도전이 쓴 『삼봉집』이 출전이다. 나 같은 소시민의 밥벌이에 의로움을 따지는 건 너무 팍팍해보이지만 정직하게 번 돈으로 삼겹살에 소주 한 병 나눌 수 있다면 내 인생도 그리 헛되지 않으리라.


『익구의 얼렁뚱땅 시읽기』(13)

ㅍ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아름다운 네가 내게로 왔다. 나는 새벽까지 한가로이 책을 뒤적일 때나 왁자지껄 어지러운 술자리에 낄 때, 한바탕 욕지기를 하고픈 미움이 솟구칠 때나 산사에서 빛 바랜 단청을 감상할 때도 너를 생각했다. 날마다 어떻게 하면 너를 좀 더 꼭 껴안을 수 있을까 궁리한다. 사르트르 말을 빌리자면 나는 너를 사랑하도록 저주받았으니까. 그러니 나는 늦게까지 네 곁을 지킬 것이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하지만, 사랑 또한 시간의 딸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를 알고 나서부터 한번뿐인 삶을 대충 살지 않게 되었다. 사랑의 생채기를 어루만지니 내 부박함이 원망스럽고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는 말이 사무친다. 나는 너와의 인연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익히 잘 알고 있다. 다만 너를 아낀다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너를 진실로 사랑하지 않아서 슬프다. 그네들은 자꾸 너를 독점하려 든다. 자신의 사랑은 로맨스라고 말하면서 남의 사랑은 불륜이라며 해코지를 하려 드는 것만큼 볼썽사나운 건 없다. 내 용기가 허락하는 한 너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들과 싸우겠다. 나는 낮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너의 눈물을 닦아주는 동반자가 되고 싶다. 너는 내 운명, 자유(自由)!


후기 -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한 대목. “어째서일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한 새에게 그가 자유롭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일, 또한 그가 조금만 시간을 들여 연습한다면 스스로 그걸 증명할 수 있다는 걸 믿게 하는 것이라니? 어째서 그 일은 그렇게도 힘든 것일까?”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말했지만, 내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본래 마땅하지 않았다. 자유가 마땅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생들이 학교를 부러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자격증을 땄다. 건전가요상을 탔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됐다. 5월 광주에서는 형은 계엄군, 동생은 시민군이 되어야 했으며, 6월 명동성당 농성장에는 고등학생이 지갑을 털어 성금을 보냈다.

상무대 영창에서 화장실까지 포복해서 혀끝에 똥을 묻혀 가지고 선착순으로 와야 할 때 인간에 대한 믿음은 어디까지 흔들렸을까. 한번 터뜨리면 쌀 7가마니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지랄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을까. 시위대가 불태운 도시락을 바라보는 전경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또 박종철과 권인숙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타인의 고통을, 과거의 아픔을 제것처럼 느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두를 위한 자유를 위해 나는 좀 더 기억해야 한다.


『익구의 얼렁뚱땅 시읽기』(14)

ㅎ - 황인숙, 「희망」

어제가 좋았다
오늘도 어제가 좋았다
어제가 좋았다, 매일
내일도 어제가 좋을 것이다.


이 시는 오늘이 그리워질 만큼 알차고 재미나게 보내라고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는 것에 익숙하잖아요. 베네통사의 루치아노 베네통 회장의 좌우명은 “내일 할 수 있는 걸 오늘 하라(Do today what you could do tomorrow)”라고 합니다. 어제의 비로 오늘의 옷을 적시지 않고, 내일의 비를 위해 오늘의 우산을 펴지도 말고 오직 오늘을 위해 살라는 말씀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의 먼 훗날 성공과 안락을 사랑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고뇌와 희망을 아낄 수 있다면 서로에게 늘, 혹은, 때때로 그리운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 애틋한 그리움끼리 만나 서로의 허물을 보듬고 서러운 눈물을 닦아준다면 날마다 고마운 인연이 될 겁니다. 오늘이 사무치게 그립도록 열심히 삽시다. 어제가 좋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그것이 희망입니다.


후기 - 린위탕(林語堂) 『생활의 발견』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은 12월 마지막 날, 연초에 결심했던 것들을 되돌아보며 ‘30%쯤 달성했군’하며 아쉬워하는 데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완역본을 찾아봤으나 어디에 있는지 잘 안 보인다. 나중에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이 말처럼 인간의 매력은 모자람을 아쉬워하는 데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알콩달콩 살아왔던 과거의 일상이 모여 내가 됨을 잊지 말자.


<연재를 마치며...>

글 읽고 쓰기를 축복처럼 여기는 제게 무언가를 털어놓을 공간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마무리도 짧은 시로 대신하려 합니다. 다시 ㄱ으로 시작해서 또 가슴 뛰는 여정을 떠납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장신구인 시 몇 구절쯤 외울 수 있는 멋진 飛반인이 되세요. 사랑합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그 꽃’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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