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논쟁(2)
경제 2008. 4. 27. 22:52 |3. 외국자본 어떻게 볼 것인가?
정부가 금산분리 원칙을 수술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금융 공기업의 민영화와 결부시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외환위기 때 휘청거리던 것을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최대주주가 되었기 때문에 민간 은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정책금융과 중소기업금융 등 공적 목적을 띄고 만들어진 국책은행이지만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민영화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들 민영화 대상 은행을 인수할 만한 거액을 동원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는 현실적으로 외국자본 아니면 국내 산업자본 정도다. 7개 시중은행 가운데 6개가 외국인이 주인이며 우리은행만이 정부 소유이다. 이로 말미암아 토종은행을 더 이상 외국자본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민영화를 해야겠는데 국내에서는 사줄 곳이 없고, 외국자본에 내맡기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단계적인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금산분리 완화의 배경으로 제시하는 외국자본에 대한 방책은 앞으로도 금산분리 논쟁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할 것이므로 고찰하는 실익이 크다.
2007년 외국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보유하고 있는 외환은행 지배지분(51%)의 매수계약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체결했다. 이에 따라 국부 유출 논란이 벌어지면서 금산분리 논쟁이 심화되었다. 외환은행이 HSBC로 넘어갈 경우 국내 금융시장에서 은행 민영화가 확대되고 국내 금융시장에 씨티그룹과 스탠다드차타드(SC)에 이어 또 하나의 강력한 외국자본이 등장하게 된다. 외국자본에 의해 인수되어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은행은 외환은행,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이다. 2007년 말을 기준으로 국민, 신한, 하나, 외환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81.33%, 58.13%, 75.10%, 80.72%다. 주주 구성에서 본다면 우리금융지주에 속한 우리, 광주, 경남은행, 민영화가 논의되는 기업은행, 지방은행 중 전북은행만 토종은행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기관이 일정 부분 리스크를 감수하고 국내은행의 주인이 되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자본은 제도적으로 참여가 불가능했고, 엄청난 수익을 거둔 것에 비해 사회공헌은 전무하다는 점 등이 사회적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산업의 주권을 외국인에게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국내 토종자본이 은행, 또는 은행지주회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금지원칙을 완화하자는 주장이 적잖다.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강력한 논거 가운데 하나다. 그나마 외국자본에 대해 독립성을 지키던 우리은행마저 곧 매물로 나오는 현실은 더 이상 외자에 국내은행을 내어줄 수 없다는 여론과 결합하여 큰 호소력을 갖는다. 금산분리를 유지하자는 입장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명확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는 론스타와 같은 사모펀드가 국내 시중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투기자본보다 전략적 투자를 하는 곳만 유치할 것이라는 금융위의 자세는 일견 바람직하다. 외국자본에 맞서 국내 금융시장의 자주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수긍할 만하다. 국내자본이 역차별 받고 있다는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론스타의 사례는 좀 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론스타의 경우 산업자본으로 비금융주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금융당국이 돈이 급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fit & proper test)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엄연하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적용되는 은행법상 예외조항을 적용받았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의 불법적인 문제와 먹튀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대주주 자격을 심사하고 주식취득을 승인한 정부와 감독기관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직관적으로 볼 때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산업 진출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다. 먼저 은행산업 내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서비스 개선 효과를 가져다준다. 선진금융기법을 전수받아 금융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도 있다. 또한 감독 및 법체계 등을 포함한 금융시장 하부구조 개선을 통해 국내기업의 체질 개선에도 이바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진입한 외국계 은행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하지 못하다. 제일은행은 뉴브리지 캐피탈에, 한미은행은 칼라일에, 외환은행은 론스타에 팔았는데 이들 외국자본은 사실상 은행업의 경험이 없는 사모펀드일 뿐이다. 이 펀드들은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구조조정한 후 되파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사모펀드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은행경영을 기대할 수 없고 선진금융기법에 대한 전수도 미비했다. 외국계 은행이 보여준 안전자산 위주의 자산운용은 국내 금융산업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수적인 자산운용은 은행의 자금중개기능을 약화시켜 실물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외국계 은행이 중소기업금융에 인색할 우려가 크다. 외국자본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에 대해 정보의 비대칭성에 노출되어 있어 실제 리스크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더불어 외국계 은행이 우량고객을 선점하게 되면 서민금융 역시 위태롭게 된다.
이처럼 외국자본은 지금까지 그 순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하지만 외국자본이 못했다고 국내 산업자본만이 대안으로 내세우자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은행을 인수하는 주체가 은행을 얼마나 잘 경영할지를 판단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국내 산업자본은 증권회사나 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회사를 이미 많이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들을 세계적으로 키우기보다는 재벌의 지배구조 유지라는 목적으로 금융회사를 거느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하다. 국내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믿음이 없는 판국에 민족주의 논리에 따라 산업자본만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몰고 가서는 곤란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은행에 꼭 주인이 있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봄직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세계적인 민간 상업은행 가운데 민간 지배적인 대주주가 소유하는 곳은 많지 않다. 굳이 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주인이 될 자격이 모자란 주체에게 은행을 넘기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외국자본이 과도하게 국내은행을 좌지우지한다면 문제다. 정부가 은행을 지배하는 것도 문제고,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은행의 소유구조와 관련해서 외국자본, 산업자본, 정부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원칙이 필요하다. 세 주체 가운데 어느 것이 그나마 나은가 하는 식의 접근을 넘어 여러 가지 소유구조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4. 금산분리 정책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금산분리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없다. 다만 금융위의 방안이 완화 일변도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보완책과 향후 과제를 찾아볼 필요는 있다. 우선 국내 금융자본 육성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동안 금융전업기업가 제도 등을 통해 금융자본 육성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했다. 현실적으로 산업자본과 연계하지 않은 별개의 금융자본의 존재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아직은 그 규모가 작지만 자본시장통합법 등의 시행으로 비은행 금융회사의 규모가 커질 경우 순수하게 금융회사로만 이루어진 금융그룹이 출현 가능하다. 은행과 은행, 은행과 금융회사 간 상호 주식 보유(cross-shareholding)를 통해 산업자본이나 외국자본을 대체할 만한 구조를 형성할 수도 있다. 금융자본-산업자본-외국자본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한 동반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물론 비은행 금융회사를 운용하고 있는 산업자본에게 은행을 거느릴 수 있게 만들어 시너지효과를 누리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들어가지 않은 금융전업자본의 생성 가능성을 미리부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은행 민영화 시 인수자금이 부족한 금융자본에게 매각하거나 또는 국민주 형태로 민영화할 경우 할부(installment) 방식의 매각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할부방식의 매각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 정부지분 매각 시 활용한 방안으로 2단계에 걸쳐 인수가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매각대금이 완불되기 전이라도 투자자들은 배당을 받을 수 있어 많은 소액투자자들을 유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분 분산효과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이처럼 기관투자가에 다수 소액주주를 융합시키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기존의 재벌들이 소유와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금융그룹과 제조업그룹으로 그룹 내 기업들을 분할한 뒤 그 중 금융그룹이 은행을 인수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재벌 문화를 봤을 때 이 제안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해서 제조업체들을 묶은 산업지주회사와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해서 카드, 증권을 엮은 금융지주회사로 나뉘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이런 경향이 두드러질수록 산업자본의 금융화(financialization)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금융업이 발달해서 제조업이 위축되는 선진국에서는 실물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어 실업이 늘고 양극화가 심해진다. 금융기업의 성격이 강해진 GE가 금융화 축적 전략을 채택하면서 13만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가 해고한 사례가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우리의 상황도 그 굴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의 고용창출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몰두하자는 주장은 금융화가 몰고 올 위기를 간과한 처사다. 금융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산업 공동화를 가속화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으로 금융감독 체계를 굳건히 확립해야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 정부는 규제완화책에 몰두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신뢰는 어느 때보다 높으나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최근 들어 시정되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규제완화가 가장 효과적인 단기 처방임을 인정하더라도, 사후 감독을 강화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금융위는 보다 실질적인 중장기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금융감독이 선진적인 국가에서도 금융혁신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위험들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안이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 견주어 금산분리가 엄격하지 않은 선진국들에서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경영하는 예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엄격한 금융감독이라는 사후적 감시가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의 금융감독 체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카드사에 대한 규제완화로 40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경험에서 보듯이 금융감독 기능에 대한 불안감은 막연한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통합한 현재의 금융위는 관치금융의 우려를 계속 자아내고 있다. 정책적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감독권 발동을 태만하게 하는 감독유예 현상(supervisory forbearance)에 대한 걱정도 높다. 이럴 때일수록 은행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단호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시장의 규율은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정부안대로 금산분리가 완화될 경우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등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니 이에 대한 입법적 보완도 절실하다. 또한 은행 및 비은행 금융회사에 서로 다르게 규제하고 있는 부분을 어느 정도 통일시켜 산업자본이 규제 차이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규제차익(regulation arbitrage)을 차단해 철폐되고 남아있는 규제의 실효성은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가장 중요하면서도 번번이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다. 회계부정을 저지른 미국 엔론사의 최고경영자가 25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궁극적으로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모두 해외시장 개척을 권장해야 한다. 국내은행의 해외진출 비중(국내은행 총자산 중 해외점포 자산의 비중)은 2006년 2.3%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으로 투자은행(IB)은 은행과 증권사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국내은행의 수익 중 투자은행 부문의 비중은 3%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다 큰 위험을 안고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은행 부문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위험 부담을 안을 수 있는 자본금을 크게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리가 반드시 산업자본의 참여를 촉구하는 쪽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은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지금 당장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할 수 없다. 우선 국내 자본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공개, 상장 업무, 인수·합병 같은 투자은행 업무를 해가면서 실력을 키운 뒤 국제적으로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대신 실버만삭스를 제안한 그의 주장을 음미할 만하다.
산업자본에게도 외국은행 M&A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국내 산업자본이 보유한 잉여자본을 외국 우량 금융회사 투자에 나서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꼭 은행업이 아니더라도 증권, 보험사를 소유한 대기업들이 많은 만큼 진출에 큰 장벽은 없어 보인다. 싱가포르의 테마섹(Temasek)처럼 국외 금융업의 글로벌 경험을 쌓게 만드는 셈이다. 성공적으로 외국은행 경영을 해낸 산업자본에 한해 국내은행과 국경 간 M&A를 허용해 국내 은행산업의 글로벌화를 촉진하는 기폭제로 삼는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검증된 실력을 다시 국내로 도입하는 선순환을 노릴 수 있다. 금융위의 완화 방침 가운데 3단계는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잡혀있지 않다. 사회적 합의가 여의치 않을 경우 장기화 되거나 무산될 여지도 있다. 이러한 국내 일정에 얽매이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과감함이 요구된다. 국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결합하여 국내의 금산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 밖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발상의 전환이다(박동창, “‘한국형 테마섹’이 금산분리 해법”, 매일경제, 2007.07.16. 참조).
두서없이 살펴봤지만 금산분리 논쟁은 파고들수록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이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비율과 조합의 문제다.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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