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듣는 <문학 속의 법> 과제로 냈던 글을 재편집해서 올립니다. 「피니스 씨의 허무한 시간 여행」은 6쪽 정도의 짧은 이야기로 인터넷 상에서 본문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압니다.


   서기 원년의 로마로 날아간 발명가 피니스 씨는 20세기의 의학 기술과 청결한 생활 습관을 소개했다. 이 덕분에 기원 1세기의 인류는 전염병에서 해방되어 유아 사망률이 줄고 평균 수명이 늘어 인구가 급증했다. 인류는 발달된 과학기술을 이용해 먹을거리는 그럭저럭 해결했으나 폭증하는 인구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했다. 지구상의 사람의 총 질량이 지구 자체의 질량을 넘어서는 상황에 직면하자 인류는 특단의 계획을 세운다. 한 사나이를 기원 1년의 로마로 보내 피니스 씨가 타임 머신을 타고 나타날 때를 기다려 그를 사살한다. 프레더릭 폴의 단편소설 「피니스 씨의 허무한 시간 여행」의 줄거리다. 이 짧은 소설을 소재로 문학과 법학의 상관관계를 고찰해보자.


  최근 애그플레이션(Agflation)으로 말미암아 버려진 이론으로 여겨지던 맬서스의 인구론이 재조명되고 있다. 자원 부족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상황이라는 예측이 많다. 실제로 중국과 인도가 급성장으로 인해 자원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원 고갈을 부추기고 있다. 프레더릭 폴의 소설에서는 공간이 모자랐다. 식량 위기를 기술 혁신과 대체재 개발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 오늘날의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모든 인구가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을 때 파생될 위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소설은 경제 성장 혹은 후생의 증진이 반드시 행복한 삶, 질적으로 고양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계획이라는 구호 아래 산아제한이 실시되었으나 근래에는 저출산이 사회 문제시되면서 출산 장려대책이 다각도로 제시되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게 해준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구밀도를 나타내고 있음을 상기할 수도 있다. 소설은 입법자에게 출산 장려대책과 더불어 시행한 정책 수단을 개발하는데 영감을 준다. 또한 입법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있어서도 보탬이 된다. 가령 보육시설 확충은 출산 장려도 꾀할 수 있지만 여성인력을 활용하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기 때문에 좀 더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문학평론가인 김경수 서강대 교수는 「법과 문학, 문학법리학」이라는 논문에서 법학과 문학은 멀리 떨어진 세상의 이야기가 아님을 논증하고 있다(『현대사회와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그에 따르면 법학과 문학은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거나 해석하고 묘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법학과 문학은 양자 모두 언어를 매개로 구체적인 표현을 하고 체계를 형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학문 모두 텍스트의 해석 및 재구성이 중시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또한 허구(fiction)를 통해 사회적 현실을 규정한다는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허구가 발현되는 양식은 차이가 있으나 오히려 이 점이 상보적 연관 관계를 북돋운다.


  문학은 인간의 갈등과 모순을 다루며 인간 존재의 문제를 탐구한다. 이러한 인간다운 삶을 규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법이 포함된다. 아울러 비규범적인 소수자의 출현에 문학과 법학은 그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려 한다는 태도가 비슷하다. 그렇다면 문학이 법학에 그리고 법학이 문학에 줄 수 있는 영향력이란 어떤 것인가? 문학이 법학에 줄 수 있는 영향력은 주로 법학도에게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 법과대학의 정형화된 커리큘럼은 경직된 사고의 위협이 적잖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소수 입장의 학설을 취하는 것을 자제해야 안전하다는 식의 접근이 대표적인 사례다. 판례에도 소수 입장이 있으나 대개는 다수의 판례를 익히기 때문에 획일화된 가치판단을 낳을 공산이 크다. 문학에 등장하는 비규범적이고 비정형적인 인물을 접하면서 다양한 사고를 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법학이 문학에 줄 수 있는 영향력은 주로 비법학도에게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 문학에 법의 요소가 녹아 들어가면 문학적 허구는 좀 더 개연성을 확보하게 되고, 법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눅이게 만든다. 법의 논리적 속성이 가미되면 좀 더 입체적으로 현실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법리학이란 법철학과 법이론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일컫는다. 이러한 법리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문학이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문학법리학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시적 정의(Poetic Justice)』라는 저서에서 시인과 판사가 하나가 되는 세상이라야 공적 영역에서 정의가 세워진다고 역설했다. ‘공공의 상상력(public imagination)’을 주창하며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 없이는 법의 집행이 맹목일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공공의 상상력은 문학 작품을 미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질서의 변형을 모색하고 새로운 가치를 구상하는 등 적극적인 형성 작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은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며 개인의 상상력을 공공의 상상력으로 탈바꿈한다. 문학이 품은 문제의식은 규범의 세계에 투영되어 개인의 연민을 사회적 연대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소설로 돌아가서 여기서 제기한 공공의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나라 경제참가율을 살펴보자. 선진국이 70%대인데 견주어 우리는 60% 수준이다. 이러한 부족분이 여성인력과 은퇴인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될 때 노인인력 활용을 위해서 정년연장을 비롯해 다양한 노동 형태를 고안해 늘어난 평균 수명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노후 안정의 개념을 바꿀 것이며 노인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촉진한다. 또한 여성이 일자리를 얻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면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달라진다. 적어도 현모양처라는 규범의 강제성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관점에서는 지역 불균형의 문제점을 인지하는 계기가 된다. 지난 노무현 정부가 벌였던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 같은 균형발전 정책은 수도권 과밀화에 대한 해소를 위한 노력으로 소설의 상황과 통하는 면이 있다. 참여정부의 견해에 따르면 수도권의 교통혼잡, 대기오염, 환경처리 등의 비용은 생산력 악화를 낳고 있으며 반대로 지방은 인구의 유출로 저비용이라는 효율성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이와 반대로 일각에서 제기된 수도권의 기능을 더 강화하자는 대수도권론이 있다. 소설이 보여준 공간의 문제는 대수도권론에 대한 비판적 논거를 마련해준다. 서울의 삶의 질 순위가 세계 하위권에 머무르는 실정에서 매력 있는 도시,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되는 기준을 재설정하도록 이끈다.


  이처럼 소설은 규범이나 제도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시점의 처방에 급급한 미봉책을 넘어 장기적 안목에서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소설적 허구는 참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존의 문제의식을 극적으로 포장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이 소설은 후자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창의성과 과장성은 법과 규범이 바라보는 시각과 어긋나기도 한다. 이처럼 소설적 허구가 빚어내는 공공의 상상력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사회적 규범이라는 것도 결국 사회적 다수의 합의에 기초해 잠정적으로 약속한 제도적 허구다. 굳이 구분하자면 소설적 허구가 ‘있을 법한 세계’를 묘사한다면 제도적 허구는 ‘있어야 할 세계’ 혹은 ‘있었으면 좋은 세계’에 주안점을 둔다는 차이가 있겠다. 좀 더 나누자면 과학 소설은 ‘있을 수 있는 세계’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둔다고 할 수도 있다. 공공의 상상력이 새로운 사회적 규범으로 합의되기까지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대개는 시간이 걸린다. 소설적 허구와 제도적 허구 사이의 시차를 살뜰하게 채우는 사회 구성원간의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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