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최소한 언짢게 여기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한우도 위험하다 혹은 더 위험하다는 ‘한우 위험론’, 전경이 무슨 죄냐는 ‘전경 동정론’, 너무 감정적이고 선동적이라는 ‘군중심리론’, 그래도 불법은 안 된다는 ‘준법시위론’, 본래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순수 훼손론’, 쇠고기 협상만을 문제삼아야지 다른 정책이나 정부 퇴진을 외쳐서는 안 된다는 ‘쇠고기 국한론’, 집회로 인해 선량한 시민들의 이익이 침해받는다는 ‘선량한 시민론’, 시위에 참석 안 했다고 무뇌아로 몰아 부쳐서는 안 된다는 ‘계몽 반대론’, 재협상은 통상마찰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국익론’, 본래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했던 무리들이 문제를 부풀린다는 “안티 조장설” 따위가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은 안 했지만 대강 이해하시리라 본다. 몇 개는 쉽게 논파할 수 있지만 몇 개는 고민에 빠뜨린다.


특히 “물대포는 대한민국 폭력경찰이 쏘는 것이기도 하지만 권리를 침해당한 다른 선량한 국민들이 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내가 ‘선량한 시민론’이라 이름지은 주장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과연 선량한 시민이 침해받은 이익은 무엇일까요? 정부를 옹호할 권리? 이런 건 아닐 테고, 주말 저녁에 광화문 거리를 산보하는 여유? 한밤중에 숙면을 취할 자유?”라고 비꼬았다. 진의는 아니었지만 댓글 논쟁이 벌어진 곳이 익명게시판이라 직접 사과할 기회가 없어 안타깝다. 선량한 사람들이 빼앗겼다고 주장하고픈 권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적시해주시면 더 좋았다는 의도가 지나쳤다. 내가 든 예시는 경솔했지만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그런 표현을 쓴 측면이 있으니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홍관희 통일교육원장 내정자는 촛불 시위자들이 자동차 운전자들의 도로통행 권리, 심야에 숙면을 취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열거해줘야 토론하기가 좀 더 수월하다.


경찰이 ‘더’ 선량한 시민을 대신해 ‘덜’ 선량한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덜’ 선량한 시민들은 ‘더’ 선량한 시민을 향해 촛불을 든 것도 아닌데 물대포를 쏘아줘야 안심이 된다면 좀 민망하다. 그렇게 해서 유지되는 선량함이 그리 탐스럽지는 않다. 이를 주장한 분은 어떤 시민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다른 시민의 어떤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어느 정도 명료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경찰특공대가 지키려고 했던 건 청와대인가? ‘더’ 선량한 시민의 이익인가? 이명박과 그 둘레 사람들인가? ‘더’ 선량한 시민의 공민권과 행복추구권인가? 나는 헛갈린다. 결사의 자유라든가 불복종 운동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섬세한 논쟁이 필요한 대목인데, 구체적인 내용 없이 “침해받은 시민을 생각하라” 이렇게만 말씀한다면 난감하다.


짧은 댓글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를 내가 너무 타박하지는 않아 염려스럽다. 그럼에도 글쓴 분의 논지를 강화하려면 이런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가령 법을 준수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덕목이며 사회의 안정에 이바지해 궁극적으로 시민의 법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실정법에 어긋나는 가두시위가 적절치 않다고 볼 여지가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쇠고기 정국에서 정부의 태도를 지지하고 대통령을 옹호하는 국민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정부 VS 촛불집회 시민의 구도에서 혹시 소외될 수 있는 제3의 영역, 또 다른 우리 사회 구성원의 문제를 지적하신 건 좋은데 그 문제 제기가 좀 더 공감을 얻으려면 그에 걸맞은 근거가 조금 보강되었으면 좋겠다.


말씀하신 논리가 설득력을 더하려면 선량한 시민들의 범위가 좀 더 넓어져야겠다. 글 쓴 분은 사회적 소수파에 대해 넉넉한 시선을 보내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량한데도 경찰이 대신 물대포를 쏘아주기는커녕 사회적으로 소외 받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한다면 어떨까 싶다. 경찰이 보호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선량하다고 자부하는 시민들마저 나서서 손가락질하는 소수파의 목소리를 경청할 줄 아는 자세로 버려지는 사람, 버려지는 권리가 없기를 희망하시는 분이라고 믿는다. 이와 결부시켜 ‘전경 동정론’과 관련해서 한마디만 하자면 공권력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과 공권력 사용에는 늘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마냥 어긋나는 목표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민주 경찰과 민주 시민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번 촛불집회를 4·19나 5·18에 빗대는 것을 마뜩잖아 하시는 분들이 있다. 4·19나 5·18의 숭고한 대의를 높이기 위해 함부로 쓰이는 것을 경계하셔서 하신 말씀일 게다. 다만 그 기저에 흐르는 공통 분모를 뽑아내려는 시도가 그리 무익한 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4·19와 5·18은 소중한 기억이지만 그것이 관념화되고 신성시되는 건 곤란하다. 아마 우려하신 분께서도 생활 속에서 그 정신이 녹아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시리라 믿는다. 경험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마 그 때도 오늘과 같은 논쟁과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4·19는 반쪽이나마 성공함으로써 성역화되어 버렸고, 5·18은 불온시되어 제대로 음미할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4·19나 5·18의 의미를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헤아려보고 소통하려 하는 것이 4월 혁명, 5월 항쟁을 되새기는 또 다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정부가 거짓말을 남발하고 있다는 공통점은 확실히 있다.^^;


4·19와 5·18, 6월 항쟁을 지지한 시민도 그 때 당시에는 소수였다. 사안마다 다르지만 처음부터 전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은 건 아니다. 우리는 이 기억들이 어느 정도 성공한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의 의미를 기리고 마치 일부 집권층과 동조 세력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깎아 내리는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 과거 독재시절에 민주화를 위한 뚜렷한 명분이 있었다는 주장도 들린다. 그 때 그 시절에도 자칭 선량한 시민(?)들은 "그래 네 말이 맞는데 폭력시위는 안 된다" 뭐 이런 식에 가까웠다고 알고 있다. 더군다나 그 때는 빨갱이 사냥까지 있었고, 언론의 왜곡보도도 심대했다. 우리가 자랑하는 그 민주화도 애당초 용인되었기에 실현된 것이 아니다. 감정에 휩쓸려 제 앞가림을 못하고 과격한 언사를 늘어놓았던 그들이 우리가 지금 대통령을 마음껏 욕하고, 언론 보도를 의심하고, 군사주의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아마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국민의 손으로 뽑았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의 상황이 당시의 정세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핵심 논거다. 분명 무력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견주어 정통성이 월등히 높다. 좀 야박하게 말해서 이명박 정부의 무능함을 꿰뚫어본 국민이 적었다는 것이 대한민국 불행의 시발점이었는도 모른다. 이번 정권교체에서 보여주듯이 민심은 변하게 마련이다. 그 민심이 다시금 요동쳤다고 해서 군중심리라거나 조변석개(朝變夕改)라고 투덜거리는 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나눠봄직한 주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둘레 사람들이 그런 말을 꺼내서는 곤란하다. “고객은 무조건 옳습니다”라고 써 붙인 식당처럼 국민의 올바름을 믿는 것은 직선 대표의 숙명이다. CEO 대통령이라면서 식당 주인만도 못한 정치를 펼친다면 부끄럽지 않은가.


2004년에 내가 통상정책 발표 주제로 삼기도 했던 EC-호르몬사건(EC Measures Concerning Meat and Meat Products)은 유명한 통상마찰 사례다. 미국은 WTO에 제소를 했고 WTO는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EU(당시 EC)의 거부와 잇따른 미국의 제소가 이어져 지금도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고 EU는 각종 대가를 치르면서도 버티고 있다. 이것만 봐도 통상마찰은 괴롭고 지루한 여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번 쇠고기 협상이 전격적으로 채결되기 전까지 많은 줄다리기가 있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온전히 져야한다. 그들은 소 잃고 고칠 외양간마저 불살라 버렸다. 나는 쇠고기 협상 타결 초기에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던 정부 관료와 여당 의원들의 작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 그 과오를 만회할 길은 단 하나 뿐이다. 이게 과연 흑백논리이자 이분법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시 철회, 협상 무효”라는 국민의 요구는 간명하다. 현 시점에서는 이걸 수용하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통상마찰이 걱정되더라도 재협상 불가가 국익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지금 야당들이 장외집회로 선회하고 있지만 한나라당도 재협상(에 준하는 조치)을 사실상 수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회에서 의결하면 못할 것도 없다. 사실 의회 입법으로 정부의 빠져나올 알리바이를 만드는 방식은 미국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통상마찰을 우려한 국익론은 마치 지난날 이라크 파병 국익론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현혹하는 구호에 소모될 공산이 크다고 본다.


타격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이 두려워 다른 방식을 모색한 단계는 지난 게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한미 FTA나 대운하 같은 경우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을 찬반 양측이 엄청난 차이로 계산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나타날 통상마찰에 따른 피해를 경제학적 수치로 계산해서 결정하겠다는 것도 어폐가 있을 듯싶다. 기업비리가 터질 때마다 재계에서 경제사범에 대한 선처를 요구하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핑계를 늘어놓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궁색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원하는 건 두둑한 지갑만은 아니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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